이 한여름에 웬 영알이냐고 할테지만, 다들 계곡으로 몰려가던 여름이 정점을 찍던

주말, 산사랑 정기산행으로 영남알프스행 버스에 올랐다. 이 폭염속에 영알은 상상이

 안되니 맘은 이미 반쯤 계곡팀에 기울어 있지만, 재약산은 그 먼 거리를 달려서 잠깐

물놀이 하러 갈만한 산 역시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디로 갈지를 궁리해본다.

 

  

 

 

 

 

 

 

 

산행코스 : 표충사 - 관음봉 - 문수봉 - 고사리분교터 - 층층폭포 - 표충사 - 상가지구 (10km/5시간)

 

 

 

 

 

 

 

 

 

당연히 원점회귀 인줄 알았는데, 다시보니 등산팀은 건너편 주암계곡에서 올라 재약산을

넘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가까운 표충사가 아닌 배내골까지

가야만했다. 주암계곡으로 오르는 A코스팀을 내려주는 곳에서 바라본 하늘은 맑기만 하다.

 

오후들어 구름과 개스가 끼기 시작했으니 두시간 가량을 일찍 산행을 시작할수 있었던 점이

아쉽기만 하다. 대전에서 영알까지의 장거리를 고려한다면 A팀은 주암계곡으로 올라설게

아니라 금강동천으로 올라 옥류동천으로 내려오는 표충사 원점회귀를 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날 한시간반 이나 두시간 일찍 표충사에 도착하여 진행에 다들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표충사와 왼쪽 필봉

 

 

주암계곡 입구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A코스를 내려주고 표충사로

오는데도 한시간이나 걸렸다. 꼬불꼬불 시골길에, 피서철 주말이라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밀양 IC를 나와서 바로 표충사로 갔으면 3시간이 못걸릴 길을 4시간반

이나 걸려서 낮 12시에 도착을 하게 되니 난감한 상황이다. A코스에 6시간을

할애해서 여유있다 생각한 일정인데, 4시간반 밖에 없게 되었으니 서둘러야 한다.

 

 

 

 

 

 

 

 

 

표충사 뒤로 내가 오를 관음봉, 문수봉이 보인다.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뙤약볕에 재약산을 오르긴 싫고, 그런다고 B코스 따라

옥류동천길 계곡길만 왕복하기도 싫어서, A코스 보다는 짧지만 산행을 할 수 있는

C코스를 계획한다. 바로 표충사 뒤에 있는 두개의 암봉인 관음봉 - 문수봉 코스다.

 

 

 

 

 

 

 

 

 

관음봉, 문수봉을 지나 갈림길에서 바로 고사리분교터로 내려오는 코스 이기 때문에

A코스팀 보다 1시간 정도 빠를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미 버스가 그 한시간을 길에서

까먹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더우기 바윗길이라 속도를 내기 어려운점도 있었고..

 

 

 

 

 

 

 

 

 

효봉대종사 사리탑

 

표충사를 나와 천황산쪽으로 금강동천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효봉대종사

사리탑이 나오는데 그곳에 우측으로 재약산 사자평 4.5km 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자평으로 가는 산길이 있다.

 

 

 

 

 

 

 

 

 

너무 늦게 도착하여, 출발전에 이미 점심시간이고 보니 식사가 애매모호 하다.

일단 관음봉을 향해 오르다가, 허기져서 힘이 팽기면 아무데나 앉아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진한 땀을 흘려가며 아무도 없는 산길을 서둘러 오른다.

 

 

 

 

 

 

 

 

 

길이 잘못되지 않았나 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걸어서야 라-3 지점을 만났다.

이곳에서 50m 앞에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관음봉으로 가려면 왼쪽 리본이 있는 곳으로 빠져야 한다.

무심코 직진을 하면 고사리분교로 가게 된다.

 

 

 

 

 

 

 

 

 

초행길에 남들 잘 가지 않는 등로다 보니 이런 리본이 반갑기만 하다.

한시간을 올라선후 1시가 다되어 혼자 간단히 식사를 하고 일어선다.

 

 

 

 

 

 

 

 

 

조망터에서 바라본 옥류동천 계곡 건너편의 향로산

 

 

 

 

 

 

 

 

 

등로 주변에도 싸리버섯이 많이 보이는 산길을

한참을 올라서니 이윽고 암릉 지대가 나온다.

 

 

 

 

 

 

 

 

 

암릉지대의 부처손

 

 

 

 

 

 

 

 

 

조망터

 

 

 

 

 

 

 

 

 

조망터에서 바라본 옥류동천 협곡

B팀은 계곡 물가 어디쯤에서 식사를 하며 쉬고 있을 것이다.

오전에 맑았던 하늘이 점점 구름이 끼면서 개스까지 밀려온다.

 

 

 

 

 

 

 

 

 

음봉

 

 거대한 암벽이 가로 막는다. 관음봉이다. 저 암벽 우측 바위틈으로 아슬아슬한

길에 누군가 친절하게 걸어놓은 자일을 잡고 조심스레 올라서면 된다.

 

 

 

 

 

 

 

 

 

 우측도 낭떠러지라 조심해야 한다.

 

 

 

 

 

 

 

 

 

 중간에 다시 두번째 밧줄로 이어진다.

 

 

 

 

 

 

 

 

 

 관음봉을 오르며 내려다본 풍경

 

 

 

 

 

 

 

 

 

다시 3번의 밧줄을 더 잡고서야 관음봉 정상에 오른다

 

 

 

 

 

 

 

 

 

 관음봉에서 내려다본 표충사

 

 개스와 역광으로 조망이 좋지 못한게 아쉽다.

일찍 올랐으면 좋았을텐데, 원거리라 쉽지가 않다.

 

 

 

 

 

 

 

 

 

 유/불교 이념이 통합된 표충사를 당겨본다.

 

 

 표충사는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 봄에 원효대사가 지금의

극락암 자리에 절을 세우고 이 절의 이름을 죽림사라고 하였다.

 

이후 흥덕왕 4년(829)에는 왕의 셋째 왕자가 풍병으로 고생할 때 사자평의 영정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으므로 절 이름을 영정사로 고치고 산을 재약산 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표충사란 명칭은 헌종 5년(1839)에 사명대사의 8세 법손인 천유선사가 임진왜란때

구국을 위해 헌신한 사명, 청허, 기허대사 등을 기리고자 밀양군 무안면 표충사 사당에 있던

삼대선사의 진영과 위패를 옮겨와 모시면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출처 : 표충사>

 

 

 

 

 

 

 

 

 

 관음봉에서 바라본 우측의 문수봉과 재약산

 

 

 

 

 

 

 

 

 

 문수봉을 당겨본다

 

 

 

 

 

 

 

 

 

 관음봉 정상부에 핀 산부추꽃

 

 

 

 

 

 

 

 

 

재약산 동남쪽 광활한 사자평 뒤로 간월산, 신불산이 서있다.

 

 

 

 

 

 

 

 

 

 문수봉으로 가면서 바라본 재약산 정상과 왼쪽 문수봉 정상석

 

 

 

 

 

 

 

 

 

원추리 숨은그림 찾기 

 

 

 

 

 

 

 

 

 

 문수봉 근처의 원추리

 

 

 

 

 

 

 

 

 

 

 

 

 

 

 

 

 

 재약산 문수봉 (960m)

 

 

 

 

 

 

 

 

 

 재약산과 천황산

 

 

재약산과 천황산의 이름에 대해 현재 밀양시와 울산시의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밀양시의 입장은 현재의 천황산이 일제의 잔재이며, 재약산은 원래 명칭인 재악산(載岳山)

으로 바꾸고, 현재 재약산 정상을 載岳山 수미봉, 천황산을 사자봉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산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할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재약산(載藥山)을 재악산(載岳山)으로 바꾸는데 부정적인 입장이다. 신라 흥덕왕때 영정사가 된 표충사의 그럴싸한 유래에서 비롯된 재약산 이라는 이름이 충분한 매력과 근거가 있어보이며, 載 라는 한자의 의미를 고려해봐도, 岳보다는 藥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고려시대에 쓰여진 삼국사기가 조선왕조실록 같은 당대의 상세한 기록도  아니고 흥덕왕의 세째아들이 있냐 없냐는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것 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10대 악산 이라는 설악산, 화악산, 치악산, 황악산, 월악산, 운악산, 모악산, 감악산, 삼악산, 관악산의 이름을 봐도 악산 앞에 대부분 명사가 오는데, 앞에 동사를 붙혀서 '한국 오악산의 정기를 가득 실은 산' 이라는 설명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한국 오악의 정기를 가득 실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했거나 그만큼 산세가 거창한 산은 아니라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천황산에서 재악산 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고원의 넓은 평원 능선길을 거닐다 보면 절로 멋진 산 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사실이다.

 

또한 재약과 재악의 논쟁을 떠나서 산 이름이란 시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수 있는 것인데, 이걸 굳이 옛 기록을 찾아서 현대에 널리 알려진 이름을 바꾸려 하는것은 무의미하다고 보는것이다. 현재  이곳 말고도 많은 산들이 조선시대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팥배나무

 

 

 

 

 

 

옛날 사람들은 중하게 생각치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솔직히 '재약' 이라는 이름이 현재의 재약과 재악 논쟁의 시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국어의 모음변화를 들며 재악이 재약으로 변화가 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는데, 나는 반대로 재약이 이후에 재악으로 잘못 옮겨진 것이라 생각한다. 중모음을 단모음화 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성이 그러하고, 신라 흥덕왕때의 일화가 그럼직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岳과 藥이란 글자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등산인구가 2천만이 넘는 이시대, 지금에야 산과 산 이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불과 얼마전만해도 등산과 산명은 그저 극소수 일부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지는 대상에 불과했었다. 남아있는 기록자료가 거의 없는 천년 또는 그 이전에는 이런 이름에 대하여 그저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다가 가끔씩 그 구전을 토대로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재약 보다는 재악이 분명히 편한 발음이고, 산이름에 藥 보다는 岳이 더 보편적인 이름임으로 입에서 입으로 산이름이 전해내려 왔다면 후대에는 재약보다는 재악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재약도 대충 들어보면 재악 같다. 산명에 藥을 쓰는것은 유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특이한 케이스 임으로 보편적인 岳자와의 원조논쟁을 벌인다면 우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유명산이 아니라면 산 밑 동네 조차도 뒷산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것을 알수가 있다. 등산인구 2천만의 시대에도 그분들에게는 관심밖의 일일 것이고, 천년전 글을 읽는 선비나, 염불을 외우는 승려들 에게도 마찬가지 였을것이다. 재약이든 재악이든, 지금처럼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울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기에, 대충 재악이라고도 했고, 재약이라고도 했을것이다.

 

 

 

 

 

 

 

 

천왕산 이라는 기록이 가장 많이 보인다

 

 

재약산이 유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재악산으로 불리웠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재악이 산 이름으로 생각하기도 쉽고, 부르기도 쉽다.

 

대동여지도 같은 주요 지도에  재악산(載岳山) 이라 쓰여졌다는 주장에 서울대학교 규장각 사이트를 방문하여 대부분의 고지도를 확인해 봤다. 하지만 당시 지도 제작이란 전국답사의 방식이 아닌 기존 지도를 통한 짜집기 방식이라는 의견이 강한바, 누군가의 초기 오기를 다른사람들도 그냥 답습했을 가능성이 크다는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가장먼저 대동여지도를 보았는데, 현재 지도와 비교해 봤을때 산의 위치도 다르고, 산줄기의 모양도 많이 다른걸 볼 수가 있었다. 실제 답사의 방식이 아닌 서양식 지도제작 기법을 바탕으로 기존에 쏟아져 나온 지도를 편집했다는 의견들이 힘을 얻는 이유다.

 

규장각의 옛지도를 검토해본 결과, 팔도군현지도와 광여도, 영남지도에는 <천앙산(天仰山)>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팔도지도, 좌해지도, 팔도분도, 해동지도, 여지도(회화식 필사본), 여지도(기타 필사본), 지승지도, 팔도지도 등에서 <천왕산(天王山)> 이라는 산 이름을 쓰고 있었고, 여지도(기타 필사본2)는 <천왕대(天王坮)> 대동여지도와 동국지도, 동여비고, 경상도읍지에서 <재악산> 이라는 산 이름을 쓴것을 확인할수가 있었다. 청구도는 김정호가 작성한 것이기에 별도 추가하지 않았고, 여지도는 종류가 많았다. 이걸보면 재약산도, 재악산도 아닌 천왕산이 더 많은 기록을 보이고 있는 이름이다.

 

재약사나 재악사나... 매한가지

 

또한 현재의 표충사는 죽림사-영정사-표충사로 이름을 바꿔 왔는데, 조선후기 지도를 보면 해동지도, 여지도, 지승지도 등에 재악사(載岳寺) 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팔도군현지도, 광여도, 1872년 지방지도, 비변사인방안지도, 영남지도에는 같은 표충사를 재약사(載藥寺)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상도읍지, 영남읍지, 동여비고 에서는 영정사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더욱 당시 기록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정사에 대한 정확한 지명확인도 없이, 기존 지도의 산 이름을 좆아서 재악사, 재약사 라고 적었을수도 있고, 영정사가 재약사, 또는 재악사로 대충 불리웠을 가능성도 있다.

 

 

 

 

 

 

 

 

 

 

 

 

 문수봉에서 내려다본 표충사 방향의 풍경

 

 

 

 

 

천황(天皇) 이라고 다 일제의 잔재는 아니다

 

 

또한 천왕산이 천황산이 된것이 일제의 잔재냐, 아니면 우리나라가 왕에서 황제로 바뀌게 되면서 천왕산을 천황산으로 부르게 된것이냐 라는 문제는 역시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1917년에 제작된 일제시대의 지도인 조선지형도를 보면 천황산의 지명이 그들의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않고 천황 소리나는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라고 기록되어 있는점, 1872년 용담현 지도에 현재 진안 구봉산 장군봉 이라 되어 있는 봉우리가 천황산 이라고 되어 있고, 같은지도에 월출산도 천황봉이라 되어 있으며, 장수군 노곡리 뒷산도 천황봉이라고 되어 있는 기록을 보면 <천황> 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으로 일제의 잔재라고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일본의 천황 이전에 이땅에도 옥황상제를 가리키는 천황 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인들은 감히 天皇山 이라는 이름을 부르지도 못한다

 

 

일본 포털에 들어가서 일본의 천황산(天皇山)을 검색해 보니 흥미로운점을 발견할수 있었다. 일본에는 여러곳의 天王山이 있지만, 天皇山은 오직 키츠쿠리쵸에 있는 안토쿠 천황과 관련된, 지금도 정상에 신사가 있는 56.7m의 낮은 산 하나뿐이다. 그것도 인근 마을사람들은 감히 天皇山(てんのう) 이라고 부르는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고 무서워해 에둘러서 高山 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들도 어떻게 감히 天皇山 이라는 산 이름이 있냐며, 혹시 잘못된 이름이 아닌지 유래 등을 조사하는것을 보았다. 자신들은 부르지도 못하는 경외스러운 이름을 우리보고 밟고 다니라고 우리산 이름 으로 천황산 天皇山(てんのう) 이라는 이름을 붙혀줄수가 있었을까?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리고 일본에는 여러개의 天王山이 있다는데, 한국의 천왕산이나, 천왕봉도 그럼 일제의 잔재란 말인가? 그건 분명 아니라고 본다. 

 

 

 

 

 

 

 

 

 

 

 

 

 

어찌보면 산 이름은 그리 대단한것도 영구불변 하는것도 아니다.

백두나, 지리 같은 고래로 전해오는 명산을 제외하면, 왕을 포함한 권력층의 유력인사나

유명한 양반 또는 지역의 세도가들이 산세를 보고 흥에겨워 붙혀 놓은 것이다. 시대에

따라 변할수도 있는게 그 이름인데, 없던 이름이라면 모를까 현시대에 널리 알려진 이름을

두고 굳이 오기일 가능성도 있는 옛 기록을 근거삼아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다른 생각을 가진분들의 행동에 관여할 생각은 없다.

 

 

 

 

 

 

 

 

 

높은산 꼭대기에 제단을 쌓아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天仰山이 시간이 흘러

天王山으로 변했다가 지금은 天皇山이 되어 왜색 논란까지 일으키는건가?

지금도 천황산 정상에는 커다란 제단이 있고, 하늘에 기도하는 풍습을 봤을때

토속신앙의 天仰山이 상제를 의미하는 天王山으로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과 관음봉

 

 

 

 

 

 

 

 

 

당겨본 관음봉

 

 

 

 

 

 

 

 

 

 

사자평과 산들늪

 

 

 

 

 

 

 

 

 

A코스팀이 저기쯤 있을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갈림길에서 사자평으로 내려선다.

 

 

 

 

 

 

 

 

 

광평추파(廣平秋波) 라고 불리우는 사자평의 억새는 가을에 봐야 제멋일듯..

 

 

 

 

 

 

 

 

 

잔대꽃 - 사자평의 영정약수에 스며드는 약초물중의 한가지련가?

 

 

 

 

 

 

 

 

 

사자평엔 산들늪 이라는 고산습지가 있다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못했다.

 

 

 

 

 

 

 

 

 

고사리분교터에 들렸다.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

1996년 폐교될때까지 30년동안 36명의 졸업생을 남겼다.

 

 

 

 

 

 

 

 

 

어푸푸, 이 삼복더위에 이 먼데까지 와서 땀뻘뻘 이라니...

유명한 영알임에도 한 여름날씨속엔 인근동네 등산객도 없는듯 하다.

재약이면 어떻고 재악이면 어떤가, 난 그래도 이 물이 사자평

영정약수에서 흘러내려온 몸에 좋은 약수물 이라 믿고 싶기만 하다.

 

그런데 이름도 예쁜 옥류동천 인데다 상부에 오염원이 하나도 없는데

최상류부터 왜 물색이 탁하고 흐린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층층폭포

 

지난번에 왔을때는 물이 말라서 폭포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는데 이번엔 제대로다.

잠시 통화를 하느라 핸드폰을 배낭에서 꺼내 놓고 깜박 잊고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높이가 굉장한데, 딱히 모델도 없고, 날도 덥고 하여 폭포수를 맞으러 달려갔다.

엄청난 물줄기의 시원함에 전율하는 그 순간 주머니 속의 핸드폰은 익사를 했다.

 

 

 

 

 

 

 

 

 

층층폭포 하단

 

 

 

 

 

 

 

 

 

층층폭포 앞 출렁다리

 

 

 

 

 

 

 

 

 

 

 

 

 

 

 

 

 

흑룡폭포

 

 

 

 

 

 

 

 

 

지난번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운데 폭포 소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진을 보았는데 저길 어떻게 올라간 것인지, 아찔하기만 하다.

 

 

 

 

 

 

 

 

 

층층폭포에서 A팀이 앞서 하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하산길이 바빠졌다.

바쁜 걸음으로 계곡길을 내려와 표충사 근처에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후

다시 식사를 하는 상가지구 까지 1키로 가량을 걸어 내려가야했다.

 

 

 

 

 

 

 

 

 

너무 멀어서 가을에 가기에도 고민을 해야하는 영알을 한여름에 다녀왔다.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더운날 이어서 그런지 정규 등로에서도 등산객을 보기

힘들었지만 폭포수가 시원하게 쏟아지던 층층폭포의 아름다운 모습 만큼은

잊을수 없을것 같다. 산행대신 B팀과 같이 물놀이를 하지 못한점이 아쉬웠고

산행길이 어떻든 장거리와 무더운 날씨속에서도 운영진들의 수고와 미소에

힘입어 다들 무탈하고 즐거운 마무리를 하게 된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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