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13년 2월 24일, 일요일

산행코스 - 장회나루 - 제비봉 - 얼음골 (식사포함 3시간)

 

 

 

 

 

제비봉 지도

 

 

 

 

 

 

 

장회나루 (10시)

 

 

대전을 출발한 버스는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충주호반 장회나루터 앞에 도착한다. 원래는 얼음골로 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사봉을 지나 제비봉에 오른후 이곳으로 하산을 하려고 했었는데, 시산제 때문에 장회나루로 들머리를

변경 했다고 한다.

 

 

 

 

 

 

 

 

시산제

 

 

마침 대보름날에 주말이고 보니 시산제 마감일을 앞두고 많은 산악회에서 이날 시산제를 지내는데 한밭산사랑도

마침 이날이 시산제를 올리는 날이다. 지난번 천호산에서 때 이른 시산제를 지냈던 차에 이곳에서 다시 산신령

님께 한번더 절을 올린다. 아마도 제물을 들고 위로 올라가려 했던것 같은데, 입구를 지키시는 공단 할아버지

때문에 할수없이 등로 입구 차도변에서 시산제를 올리게 되었다.

 

 

 

 

 

 

 

 

시산제를 지내고 한사발 음복을 한후 산행을 시작한다. (10시30분)

 

 

 

 

 

 

 

 

장회교

 

 

장회나루 들머리에서 제비봉으로 올라가는 등로는 암봉과 계단의 연속이다.

또한 조망이 더할나위 없이 좋은데, 한가지 단점은 산행 코스를 이렇게 잡았을 경우 자주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장회나루로 제비봉에 올라 다시 돌아내려오지 않고 얼음골로 내려갈 예정 이라면, 산행을

얼음골에서 부터 시작하는것이 제비봉에서 장회나루로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절경을 정면으로 감상하며 하산을

할수가 있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구담봉

 

 

구담봉에 올라 제비봉을 바라볼때는 그저 밋밋해 보였는데, 막상 장회나루에서 올라보니 산수화에 나올법한 암봉에

올라가기 편안한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고, 청풍호쪽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역시 일품이다. 이 주변 산들은 구담봉,

옥순봉, 둥지봉, 가은산 그리고 이곳 제비봉 어느곳 한군데 빼놓을수 없는 절경이며 땀을 흘린 댓가에 비해 보상받는

경치가 너무도 수려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눈이 다리에게 많이 미안해 지는 곳 이다.

 

 

 

 

 

 

 

 

이런 절경을 보기위해 자꾸 걸음을 멈춰 뒤돌아 보게 된다.

 

 

 

 

 

 

 

 

말목산

 

 

아직 못가본 곳이다. 말목산의 가을 단풍이 그리 아름답다고 하는데 아마 이 근방 산중에 가장 인적이 드문곳이다.

말목산을 거쳐 둥지봉으로 산행을 할수도 있을것 같고, 아마 다음번에 이근처에서 산행을 하게 된다면 말목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장회나루

 

 

 

 

 

 

 

 

옛 조상들도 감탄을 했다는 아름다운 선경

 

 

 

 

 

 

 

 

제비봉을 향한 진행방향 암봉의 그림같은 풍경은 역광에 숨어 버렸다.

내 똑딱이로는 도저히 역광을 피할수 없고, 아무래도 해님이 산을 넘어 오기 전인 이른 아침에 올라야 그나마

정면 역광없이 사진을 담을수 있을것 같다.

 

 

 

 

 

 

 

 

진행방향의 우측으로는 이처럼 장회교쪽 풍광이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청풍호와 어우러진 말목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한다.

 

 

 

 

 

 

 

 

지나온 방향을 뒤돌아 보며

 

 

 

 

 

 

 

 

멋들어진 소나무

 

 

 

 

 

 

 

 

산행에 동행한 반보님

 

 

 

 

 

 

 

 

오늘 A코스는 사봉으로 해서 길게 도는 것인데...

우리는 조망이 없는 사봉길이 썩 내키지 않아 그냥 제비봉에서 바로 얼음골로 내려가는 B코스를 가기로했기

때문에 유유자적 걸음에 여유가 넘친다.

 

 

 

 

 

 

 

 

사진들이 비슷해 보여도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보여지는게 조금씩 다르다.

이런데서는 걷지 말고 그냥 잠시 주저 앉아야 하는데 말이다.

 

 

 

 

 

 

 

 

 

 

 

 

 

 

 

 

 

시간도 많겠다. 이런 절경을 보면서 막걸리 한잔 하고 가야 하는데, 오래전에 지리산 종주하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술에 데인 반보님이 그냥 정상까지 가자고 한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여기는 산책코스

인데 말이다. 산아래 수퍼에서 파는 막걸리 값이 조금 비싼게 바로 이런 조망값 까지 다 포함이 된 게 아닐까..

 

 

 

 

 

 

 

 

 

 

 

 

 

 

 

 

말목산과 고사목

 

 

말목산의 유래

 

옛날 하진 마을의 안동장씨 문중에 장군감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가 탈 용마도 용소에서 태어나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조정에서 내려와 아기를 가마솥에 넣고 솥뚜껑을 맷돌로 누른 다음 불을 때서 죽이고

용마도 큰 소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였는데 용마를 목매어 죽인 산 이라 해서 말목산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충주호 건너편에 있는 제비봉에서 보면 정상에서 서쪽으로 남한강을 향해 있는 능선의 모습이 물을 먹으려고

머리를 내민 말의 목 같다고 해서 말목산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호수가 얼어 있는데 유람선이 길을 나선다.

오늘길에 차창을 통해 작은 저수지 위에서 얼음낚시를 하는 분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같은 때 얼음낚시는 무척

위험하다. 가장자리는 어느정도 얼어있는듯 하지만 깊은 가운데는 두께가 얇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천안 모 저수지에서 노부부가 저수지 한가운데서 얼음 낚시를 하다 변을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얼어있는 폭포와 우측 뒤로 고개를 내미는 월악산

 

 

 

 

 

 

 

 

고도가 높아감에 따라 대미산에서 월악으로 이어진 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쪽도 우측으로 멀리 동산에서 부터 신선봉, 망덕봉, 금수산이 조망이 된다.

 

 

 

 

 

 

 

 

말목산 쪽도 그림같다.

 

 

 

 

 

 

 

 

오늘 산행의 주된 목표중 하나는 제비봉에서만 볼수 있다는 두향의 묘를 육안으로 보는것 이다.

 

 

 

기생 두향과 퇴계 이황

 

 

말목산의 우측 청풍호 자락에 관기 두향의 묘가 있다.

이곳 출신으로 일찍 조실부모한 두향은 단양고을 퇴기인 수양모 밑에서 자라다가 13세에 기적에 오른 후 16세에

황초시라는 사람에게 머리를 얹었다. 그러나 세달 만에 황초시가 죽자 두향은 본격적인 기생의 길로 나선다.

 

 

시화와 풍류에 능했던 두향은 조선 명종 2년(1548년) 단양군수로 왔던 퇴계와 시문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불과 10개월 만에 퇴계가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면서 그와 헤어지게 된다. 퇴계는 자신의 친형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형제가 한 지역에서 상하관계로 일하면 나랏일이 공평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여 그 날로 사표를 제출

했다. 퇴계의 성품을 안 조정에서는 그를 경상도 풍기 군수로 임명하였다

 

 

관기를 못 데리고 다니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결국에는 두향이를 혼자 두고 이황은 풍기로 떠나 갔는데 떠나면서

꾸린 짐속에는 두향이가 준 수석2개와 매화 화분 한개가 있었다고 한다.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마주 앉아 주고

받았던 한시가 애틋하다.

 

 

死別己呑聲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別常惻測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퇴계선생이 힘든 말을 남긴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아 붓을 들고 시 한수를 쓴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들고 슬피 울제,

어느듯 술 다하고 님마져 가는구나.

꽃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져 1570년 이황이 69세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한번도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퇴계선생은 평생을 두향이 건네준 그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으며 생전에 107수의 매화시를

남기고 매화시첩까지 펴냈다고 한다. 이황은 두향을 보듯 매화를 애지중지했으며 세상을 떠날 때 까지도 그의

유언은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 한마디 었다고 한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이황-

 

 

퇴계에 대한 예를 지키기 위하여 두향은 후임 사또에게 청하여 관기에서 나와 고향마을 강 맞은편 말목산 아래

강선대(降仙臺) 옆에 초가를 짓고 퇴계를 그리워하며 수절하며 외롭게 은둔 생활을 한다.

 

 

두향의 묘는 말목산 산자락에 있으나 말목산이나 구담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청풍호 건너 이곳 제비봉에서만

볼 수 있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어 비로소 오늘에야 보게 된다. 단양문화원에서는 매년 5월이면 두향을 추모하는

두향제를 지내준다.

 

 

 

 

 

 

 

 

단양에서 풍기, 요즘 도로로 34km, 예전엔 멀기도 했겠지만 그녀는 아마도 관기의 신분으로 찾아가기도 불가능

했겠거니와 이황에게 누를 끼치기 싫어서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를 잇고 지금도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서 그대로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한다.

 

 

퇴계가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내

왔는데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차린 퇴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는데, 우물물을 받은 두향 역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가 돌아가신

님이 누워있는 건물을 먼 발치서 보고 곡을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오랜기간 수절을 하다가 종내는 강선대위 하얀소복, 애절한 초혼가로 님의 혼을 불러놓고 저승길

동행 하겠다고 부자탕을 마셨다는 그녀 생각이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강선대는 수몰되기 전에 강에서 30m높이에 있었으나 지금은 수몰되어 20m 강물에 담겨있으며 가뭄에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강선대 암석에는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가 1717년에 "강선대" 라고 각자한 글이 새겨져

있다고.. 지금도 퇴계 종가에서는 두향이 묘에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기린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의 문인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는 두향 사후 150년이 지나 묘앞을 지나면서 두향을 흠모하는

시를 남겼다.

 

 

一點孤墳是杜秋(일점고분시두추)-외로운 무덤하나 그 이름 두향

降仙臺下楚江頭(강선대하초강두)-강 언덕 강선대 그 아래 있네

芳魂償得風流價(방혼상득풍류가)-미인 이 멋있게 놀던 상으로

絶勝眞娘葬虎丘(절승진낭장호구)-경치도 좋은 곳에 묻어 주었네

 

 

 

 

 

 

 

 

기생 두향의 묘

 

 

초혼(招魂) 이라는 것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혼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함에 따라 이미 떠나버린 혼을 불러 내려는

간절한 소망을 의식화한 것으로 그사람이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번 부르는 행위를 하며 행해진다고 한다. 두향의 초혼은 이황의 혼을 붙러 저승행에 함께 하려는

애절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수몰전 강선대

 

 

 

 

 

 

 

 

두항리

 

 

제비봉 서쪽에 있는 이곳 두항리(斗項里)는 두향이 태어나고 자란 곳 이라고 한다. 뒤로 멀리 월악 영봉이 보인다.

그녀는 두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살 때 어머니까지 잃은 외로운 처지에서 관기 신분이 됐다. 그의 이름은 마을

이름과 비슷한 발음을 따와 두향(杜香)으로 지었다.

 

 

 

 

 

 

 

 

 

 

 

 

 

 

 

 

날이 푹하다 보니 개스가 올라와서 시계가 조금 투명하지 못한게 아쉽다

 

 

 

 

 

 

 

 

바위 벼랑의 아름다운 소나무

 

 

 

 

 

 

 

 

제비봉 정상 

 

 

 

 

 

 

 

 

 

 

 

 

 

 

 

 

큰 소나무가 밑동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가지들까지 마치 연리지 처럼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하고 있다.  

 

 

 

 

 

 

 

 

지난주 남쪽산과 달리 이곳엔 잔설과 얼음이 녹지 않고 있다.

대신 오후 하산길은 질퍽한 곳과 얼음이 있는곳이 섞여 있어 아이젠을 하기도 불편하고 안할수도 없는 상황이 된다.

 

 

 

 

 

 

 

 

얼음골 갈림길 (12시10분)

 

 

정상 직전에 얼음골 갈림길이 있다.

다들 사봉으로 안가고 이곳으로 내려가기로 했다며 정상만 보고 내려오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까지 짊어지고온 성의가 있는데 막걸리는 한잔 하고 가야지...

 

 

 

 

 

 

 

 

제비봉 정상 (12시 14분)

 

 

제비봉의 유래

 

연비산(燕飛山) 이라고도 불렸던 제비봉은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구담봉 방면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충주호쪽으로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 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처럼 올려다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한 다른 유래로 옛날 천지개벽 때 온나라가 물속에 잠겼을때 저산이 봉우리에 

제비가 앉을 만큼만 남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제비봉 정상에서 바라본 그림같은 청풍호 주변 풍광

 

 

 

 

 

 

 

 

강줄기 반대편 단양대교쪽 조망

 

 

 

 

 

 

 

 

산행도 짧고, 내려가면 꿩탕이 기다리고 있다니...

 

 

블방이웃인 영동양반님 처럼 끄윽 해본다.

반보님과 소백산을 바라보며 고사떡과 반찬을 안주삼아 산아래에서 사서 올라온 소백산 막걸리로 정상주를 한잔

한다. 열심히 지고 올라온 도시락과 오미자술은 꺼내볼 겨를도 없다. 이런 절경에서 맛난 오미자술을 그대로 들고

내려가다니... 기름 떨어질때까지 주행한다는 여수의 돌팍님과 풍경소리님이 알면 용납못할 일이다. 산책 수준의

가벼운 산행이다 보니 물도 한모금 안마시고 병채 그대로다. 반보님도 물 1리터를 그냥 나무에 부어주고 일어선다.

 

 

 

 

 

 

 

 

옛다, 고사떡이나 나눠먹자...

고사떡을 조금 떼어 바위에 올려 놓으니 작은새 한마리가 와서 후다닥 물고 간다.

 

 

 

 

 

 

 

 

제비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소백산과 도솔봉

 

 

 

 

 

 

 

 

제비봉에서 바라본 사봉

 

 

 

 

 

 

 

 

그리고 얼음골로 가파른 길을 내려서 하산

곳곳에 얼은 구간이 있어 아이젠을 차고 있었지만 길은 대부분 질퍽질퍽

 

 

 

 

 

 

 

 

얼음골 (13시30분) 

 

 

정상에서 얼음골 까지 30분만에 하산을 완료하고 계곡에 내려가 맑은 얼음물로 시원하게 세수하고 흙범벅이 된

아이젠과 신발을 닦고 후미를 기다렸다가 꿩탕이 기다리는 수안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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