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의 아가봉, 옥녀봉을 가기로 한날 새벽에 내린눈으로 인해 승용차로 접근이 어려워지자 당일 아침 산행지를

변경 하기로 한다. 계룡산 장군봉이 거론되었으나 자주 가본데다 바위길이 미끄러울것 같아 이곳 저곳을 검토끝에

가까운 곳중에 차량이 평지를 달려서 갈수 있는곳을 모색하다 보니 나는 지난봄에 다녀왔지만 다른분들에게는

초행지인 금산의 자지산으로 인도를 하게 된다. 조망이 시원했던 봄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기러기공원 주차장 (9시20분)

 

 

금산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차량이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에 있는 기러기공원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응달진곳이

많아 미끄럽게 얼어 있는 가운데 살짝 오르고 내려서는 고개 커브길이 있어 사륜구동이 아닌 일반 승용차로는

눈내린 겨울철날 주행이 위험해 보인다. 다행이 오늘은 사륜구동 차량에 베스트 드라이버인 속리님이 핸들을

잡고 있으니 무난하게 도착을 한다.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동네 아주머니께서 쌀을 가지러 가야 한다며 미끄러운 오르막길을 슬금슬금

다가온다. 한번에 주욱 올라서면 될지 모르겠는데 자꾸 멈칫거리시는 바람에 차가 헛바퀴만 돌고 있다. 오후엔

눈이 다 녹아 문제가 없었으니 그때 갔더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금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의 부엉산과 오른쪽의 월영산이 나뉘어져 있다.

임진왜란때 두 산 사이의 가파른 절벽 밑 좁은길을 따라 왜병이 양산에서 금산으로 진격을 하였었다.

 

 

 

 

 

 

 

세월교를 건너 산행들머리인 난들교로 가는 강변길

지난봄 자지산 산행기 에서도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보다는 이 강변길을 추천을 했었다.

따로 준비운동할 필요 없이 강변 갈대밭길을 따라 2km 가량 걸으며 몸도 풀고 걷는길이 참 좋다.

이 코스가 아니면 반대로 바로 부엉산에 올라 하산후 이 길을 따라 원점 회귀 해야 하는데 이길은 산행을

마치고 걷는것 보다는 이렇게 산행전에 준비운동 하듯 걷는게 더 좋은것 같다.

 

 

 

 

 

 

 

난들교 앞, 산행 들머리에 있는 자지산 표지석 (9시58분)

 

 

제원신협산악회에서 세워놓은 이 표지석은 월영산 아래에 서있는 표지석과 크기와 모양새가 흡사하다.

표지석에서 보다시피 산중에 자지산성 이라는 성이 있어 성재산 이라고도 불리우며, 한자로 쓰여진

자지산 이라는 의미는 민망한 한글 이름이 아니라 흔히 지치 라고 불리우는 자주색 지초를 의미 한다.

 

산삼과 버금간다는 지치를 예쁜 유리병에 술과 함께 담아 놓으면 한시간이 지나지 않아 술병이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수가 있다. 하지만 별 향이 없어서 그런지 맛은 색 만큼 황홀하지 않다.

 

 

 

 

 

 

 

 

난들교 앞에 있는 표지석 왼쪽 능선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잠시후 마을에서 이어진 임도를 만나게 되며 한동안 임도를 따라 걸으면 된다.

 

 

 

 

 

 

 

임도를 따라가다가 이곳에서 왼쪽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앞서간 반보님과 속리님의 발자국이 임도를 따라 간다.

임도를 따라가면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산길에 능숙한 두분이 이내 길을 잡았는지 왼쪽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두분의 발자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번째 밧줄 구간에서 푸름님

 

 

 

 

 

 

 

두번째 밧줄구간

 

 

지난봄과 마찬가지로 밧줄이 아래까지 이어져 있지 않지만, 밧줄없이 오르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봄엔 왼쪽으로 올랐는데, 이번엔 오른쪽으로 올라선다.

 

 

 

 

 

 

 

바위구간에는 여전히 부처손이 많이 있다.

 

2012년 3월 금산 자지산 산행기 :: http://blog.daum.net/boxer1234/640

 

 

 

 

 

 

 

지나온 능선길

 

 

무주를 거쳐온 금강은 왼쪽으로 빙둘러 흘러가며 산행출발지인 세월교로 흐르고 오른쪽으로 뻗어나간 봉황천이

금산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중앙 뒤로는 이달초 올랐던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이 서있다.

 

 

 

 

 

 

 

가까이 당겨본 진악산

 

 

 

 

 

 

 

산성 너덜 구간

 

성벽을 쌓았던 성돌이 무너져서 마치 너덜겅이 처럼 되었다.

금산군내에 있는 임진왜란의 주요한 역사적 유물인데 이처럼 방치 되어 있다.

 

 

 

 

 

 

 

자지산성

 

 

임진왜란 당시 중봉 조헌이 중심이된 의병과 백성들이 금강에서 이곳까지 손을 맞잡고 서서 투석전을 위해 강돌을

전달해서 날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난봄에 올랐을때는 각진 산돌이 아닌 둥그런 강돌을 볼수가 있었는데,

눈에 덮혀서 그런지 찾을수 없었다.

 

 

 

 

 

 

 

금산이 내려다 보이는 자지산성

 

 

천내리 앞을 휘돌아 지나는 금강을 이 지역 사람들은 천내강 이라 부른다. 임란 당시 양산에서 금산으로 진격하는

왜병은 험준한 갈기산, 월영산 절벽 밑 좁은험로를 지나 현재 제원대교가 있는 저곳 (당시 닥실나루) 에서  금강을

건너야만 했다.

 

당시 공주목사이던 권율의 사촌이자 금산군수 이던 권종은 힘을 모아 병사를 일으키기로 하고 군사를 이끌고

전주로 갔다가 관찰사에게 병사를 모두 빼앗기고 금산으로 돌아와 200여명의 병졸과 제원역 역졸등 60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저곡산성에 진을 치고 왜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망이 좋은 서봉에서 바라본 동봉 (자지산 정상)

 

 

권종의 군사들은 닥실나루의 상류 용화마을의 윗쪽 불겅댕이에서 황토를 풀어 금강물이 흙탕물이 되게 만들어

강물의 깊이를 알 수 없게 만들면서 왜군의 도강을 3일간 저지를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

으로 흘러들어가니, 3일간 강을 건너지 못하던 왜군들 앞에 웬 아낙이 치맛자락을 휘어잡고 여유있게 건너는

것을 보고 강물이 얕은것을 알고 일시에 도강을 하여 전투가 벌어지게 되고 이곳에서 권종과 그의 아들 권준이

전사를 하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그 여인은 권종을 짝사랑 하다 자살했던 여인으로 권종의 꿈에 나타나 권종을 만류하였으나

다시한번 배척을 당하자 앙심을 품고 원수를 갚은것 이라고 한다. 부하장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립장군이

조령을 버리고 충주 탄금대에서 죽음의 배수진을 치게되는 배경에도 이와 똑같은 사연의 여인이 나온다. 

 

 

 

 

 

 

 

금산 전투도

 

 

금강변 갯벌인 포평에서 권종이 이끄는 조선군이 패하고 이후 금산성을 차지한 왜군을 공격하고 후퇴하면서

와평에서 고경명, 유팽로가 이끄는 의병이 패배를 하게 된다. 이후 조헌이 성급하게 700여명의 의병을 데리고

금산성을 향해 돌진하니, 영규대사와 800여 승병은 조헌의 무모한 전략으로 다 죽을줄 알면서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어 성을 박차고 뛰어나온 만오천의 왜병과 연곤평에서 전투를 벌여 모두 전사를 하게 된다.

 

  

 

 

 

 

 

서봉에서 신안천 계곡을 넘어 보이는 천앙산

 

 

 

 

 

 

 

신안천 계곡 입구에 지난봄에 짓던 건물(암자?)이 완성되어 있다.

 

 

 

 

 

 

 

서봉에서 바라본 신안천 계곡

저 왼쪽 뒤로 하얗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서대산이 보인다.

 

 

 

 

 

 

 

당겨본 서대산

 

 

 

 

 

 

 

자지산 정상 (11시18분)

 

 

 

 

 

 

 

자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오른쪽 천태산과 왼쪽 대성산 

 

능선에선 겨울 찬바람이 불고 있는데, 정상에선 높은 바람막이가 없는데도 바람이 불지 않는다. 

장소도 넓어 식사하기 딱 좋은 곳 인지라 정상에 앉아 느긋하게 이른 점심 식사를 한다. 

 

 

 

 

 

 

 

역광이 비추는 천내리

 

 

왼쪽 멀리 민주지산 병풍처럼 서있고 그 우측으로 덕유산이 높게 우뚝 솟아있다.

당시 조헌의 의병군이 서서 열배가 넘는 왜병으로 가득찬 전장을 내려다봤을 자지산 정상에서 400여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당시 피가 강이 되어 흘렀을 당시의 모습을 그려 본다.

 

 

 

 

 

 

 

능선따라 우리가 가야할 부엉산이 보이고 그 뒤로 금강 건너에 있는 월영산과 갈기산이 보인다.

 

 

 

 

 

 

 

진행방향을 좀 더 당겨본다.

자지산 정상에서 바로 앞에 있는 능선상의 첫번째 봉우리는 바로 이어 갈 수 없다.

왼쪽 천태산 방향으로 빙 둘러서 능선길이 나있다.

 

 

 

 

 

 

 

자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앙산과 신안천 계곡 주변의 산들

 

 

 

 

 

 

 

약초주와 린 몇병을 비우고 한시간이 넘게 정상에 머무르다 일어선다. 

서두르지만 않으면 크게 힘들거나 위험할곳 없는 초보가능한 평탄한 산길 이다.

 

 

 

 

 

 

 

천태산으로 가는 능선길

 

 

지난 봄 후기에서 자세히 언급을 하였지만, 정상에서 다음 봉우리 까지는 직진 능선길이 아니다. 직진으로

나있는 길을 부엉산으로 가는 능선길로 착각하고 가면 마을로 내려서게 되는데 이렇게 길을 잘못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직진방향 대신 왼쪽으로 보면 천태산으로 가는 능선이 보이고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사진에 있는 우측 봉우리까지 가서 천태산으로 가는 왼쪽길과 부엉산으로 가는 오른쪽 길중에 선택을 해서

가면 된다.

 

 

 

 

 

 

 

진행방향의 정상 다음 봉우리

 

 

바로 가는 길이 없이 이렇게 빙 둘러서 가야 한다. 

 

 

 

 

 

 

 

 

 

 

 

 

 

 

진행방향의 봉우리(왼쪽)와  계곡 사이로 보이는 천내리 난들마을

 

 

 

 

 

 

 

천태산

 

 

 

 

 

 

 

갈기산과 월영산 

 

 

월영산 아래 가파른 벼랑지대를 제원 덜게기 라고 하고 갈기산 북쪽 가파른 곳을 양산 덜게기 라고 한다.

바로 영규대사가 왜병이 금산으로 진입하기 전에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싸우자고 주장했던 곳 이다.

 

 

 

 

 

 

 

천태산에서 수산교 방향의 조망

 

 

 

 

 

 

 

천태산에서 갈기산 까지 파노라마 조망도 (클릭)

 

 

 

 

 

 

 

자지산에 보랏빛 지초는 안보이고 등로에 창출만이 자주 눈에 띈다.

 

 

 

 

 

 

 

창출~을 돌려다~오~~  

술한병 담는다고 푸름님이 창출을 조금 수확하는 사이에 속리님과 반보님은 종종 걸음으로 앞서 가신다.

 

 

 

 

 

 

 

부엉산 (14시13분)

 

 

부엉산의 명물은 정상팻말이 걸려있는 나무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다.

 

 

 

 

 

 

 

부엉산 정상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사방팔방을 시원하게 감상할수 있는 멋진 조망터다.

우리가 도착해서 발자욱이 없는걸 보니 앞서가신 두분이 여길 그냥 지나친것 같다.

 

 

 

 

 

 

 

부엉산에서 바라본 천태산과 그아래 깊은장선 마을로 가는 인적 드문 깊은 계곡길.  

천태산 영국사는 산너머 저쪽에 있다.

 

 

 

 

 

 

 

수산교 뒤로 내려서는 천태산 줄기 뒤로 봉화산, 노고산, 마니산이 서있다.

갈기산행에서 보이는 호탄교는 저 굽어진 강물 뒤쪽에 있어서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부엉산에서 바라본 조망도

 

 

 

 

 

 

 

부엉산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조망도 (클릭)

 

 

 

 

 

 

 

수산교

 

 

 

 

 

 

 

가선리 마을

 

 

 

 

 

 

 

금강에 역광의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산행 출발지점인 원골과 천내리

 

 

 

 

 

 

 

하산길에 바라본 자지산 (뒤쪽)

 

 

하산길은 능선을 따라 바로 내려가는 길 뿐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아무생각 없이 앞서 걷고 있는 푸름님 뒤를 따라

걷는데 자꾸 오른쪽으로 간다.  앞서간 속리님과 반보님이 발자욱을 우측으로 내놓고 돌아선 것인데, 우리는 뚜렷히

보이는 우측으로 계속 직진을 하다 속리님의 전화를 받고서는 잘못 내려서고 있는것을 깨닫는다. 다시 허겁지겁

능선으로 뛰어 올라 부엉산 폭포쪽으로 직진을 한다.

 

 

 

 

 

 

 

당겨본 자지산

 

 

 

 

 

 

 

금강변을 향해 가파르게 서있는 월영산

 

 

이 험하고 좁은 길을 내주고만 아군의 어리석음 때문에 왜군은 이길을 통과한후 멍청한 조선군을 비웃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문경새재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스토리다. 송익필, 정철로 시작되어 당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망친 서인들의 이야기가 임진왜란을 맞아 원균, 신립에 이어 여기에서도 오버랩 된다.

지장은 없고 무모한 용기만 가지고 사병들을 몰살시킨 이런 맹장 들에게 과연 박수를 쳐야만 할까?

 

 

 

 

 

 

 

하산길에 내려다본 금강

 

 

 

 

 

 

 

월영산과 금강 크게보기 (클릭)

 

 

충북 영동에서 전라도와 충청남도쪽 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양산을 거쳐 이 곳을 지나는 것이다.

이곳 제원은 왜병이 금산으로 가기위해 추풍령을 넘어서 영동을 거쳐 올 수 있는 지름길로 주요한 길목인 것이다.

조령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문경새재 같은 곳에서 우리의 군은 조총을 든 왜병을 맞아 지리적으로 유리한 곳을

선점하고 전략을 폈어야 했다. 그러나 ... 

 

 

 

 

 

 

 

제원덜게기

 

 

지금은 월영산 가파른 벼랑 밑으로 도로가 나있지만 임진왜란 시기에는 좁고 험한 길 이었다고 한다.

이런 길이 바로 위쪽 갈기산 북쪽에도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양산 덜게기다.

덜게기란 바위나 절벽을 일컫는 이지역 방언 이다.

 

영규대사가 이런 험한곳에서 왜병을 맞아 효율적으로 전투를 벌이자고 하였는데, 조헌은 그럴수 없고

선비가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며, 라만차 평원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처럼 애꿎은 700여

의병과 함께 조총으로 무장한 1만5천의 왜적을 향해 돌진하고 만다. 그들이 오죽하면 금산성에서 나와서

까지 아군을 맞이했을까...

 

 

 

 

 

 

 

대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달려가는 조헌과 의병들이 마치 불꽃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 같이 죽을것이 뻔히

보였지만, 영규대사와 800여 승병은 의리를 지키기 위해 뒤따라 달려가 결국 전원 산화 하고 만다.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지금 칠백의총이 아니라 천오백의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 하는 것 이다.

 

 

 

 

 

 

 

기러기 공원 주차장에서 바라본 인공폭포 옆 음굴, 하산완료 (15시16분)

 

 

어떤분들은 인공폭포 왼쪽에 있는 바위가 갈라진곳이 음굴이라고 하시는데, 주차장에서는 각도상 음굴을 제대로

볼수가 없다. 음굴을 제대로 담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주차장을 벗어나 좀더 가야 한다. 지난 9월

월영산을 내려와서 이곳으로 와서 음굴을 담은적이 있는데, 겨울에 보아도 위 사진과 같은 모양이다. 자지산은

한문으로는 전혀 다른뜻을 가지고 있지만 한글로 그 비슷한 음으로 인해 양기가 강한 산 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지산에 불을 피우면 보름후에 이곳 음굴에서 연기가 난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부엉산 하산길에 데크로 계단 공사를 하고 있다. 내년 봄 쯤이면 부엉산 하산길이 편리하게 정비되어 있을것 같다.

지난번에 지나치게 여유만만 산행을 하여 자지산~부엉산 연계산행의 최장기록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오늘도 6시간

이나 걸린거 보니 상당히 여유만만 산행을 한것 같다.

 

 

 

 

 

211

 

 

자지산 등산지도

 

 

산행코스 :: 원골기러기공원 주차장 - 강변길 - 난들교 - 자지산 - 부엉산 - 원점회귀 (식사포함 놀매쉬매 6시간)

산행일시 :: 2012년 12월23일 일요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