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산세로 인해 주변 산에서 보면 그 모습을 금방 알아 볼수 있는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 이번주말 산행은

그동안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뤄두기만 했던 진악산으로 향한다. 우리동네 산악회인

진잠산악회에 오래전에 가입만 하고 선뜻 산행 참여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백합님이 초청을 하셔서 마침

눈이 내려 설경이 아름다운 일요일에 반보님과 함께 진악산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보석사 주차장 (9시41분)

 

 

원래 수리넘어재에서 보석사를 향해 출발하기로 한 산행 일정이 눈 때문에 보석사에서 원점회귀로 바뀌게 된다.

버스가 눈때문에 수리넘어재를 오를수 없기 때문이다. 보석사에 도착해서도 주차장으로 오르는 짧은 경사로가

얼어서 버스가 계속 미끄러지는 바람에 할수없이 배낭을 메고 고사음식을 들고 보석사 입구로 향한다.

 

 

 

 

 

 

 

마침 이날이 진잠산악회에서 종산제를 지내는 날이다.

보석사 일주문 앞쪽 한켠에 젯상을 마련하고 종산제를 진행한다.

 

 

 

 

 

 

 

한해 무사 산행을 감사드리는 고사를 지내고 산행을 시작한다. (10시35분)

 

 

 

 

 

 

 

 

의병승장비

 

 

보석사 일주문을 지나 조금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왼쪽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 되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기허당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고자 세운 의병승장(義兵僧將) 비각이 나타난다. 일제가 비각을 부수고 글씨를

훼손한후 땅에 묻어버린 것을, 해방 후에 찾아서 다시 세워놓은 것이라 한다.

 

 

 

 

 

 

 

보석사의 전나무 숲길

 

 

 

 

 

 

 

보석사 은행나무

 

 

통일신라시대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는 그의 다섯 제자들과 함께 모두 여섯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나중에 그 여섯그루의 나무가 하나의 나무로 합쳐져서 성인 여섯명이 손을 맞잡아야 두를수 있는 두께에 높이가 

40m나 되는, 양평의 용문사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높은 은행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나무는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로써 천백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은행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은행나무가 특이한점은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 내 울음으로써 재난에

대비 하도록 알려준다고 하며, 이로인해 마을의 수호신으로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보석사를 그냥 지나쳐 설국으로 들어선다.

 

 

 

 

 

 

 

 

 

 

 

 

 

 

 

 

 

 

 

 

 

보석사를 지나 영천암 갈림길로 가는길의 설경들

꽃중의 꽃은 눈꽃 이라고 그러지 않던가..

여름산에 대한 상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겨울산이야 말로 진짜 雪레임 이다. 

 

 

 

 

 

 

 

영천암 갈림길에서 정상을 향해 오른다.

 

 

영천암

 

조구대사가 885년에 처음 보석사를 창건할때는 금산 지역에 큰 가뭄이 든 해였다.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지자,

대사는 가뭄을 해갈할 샘을 찾아 진악산에 올라 마침 산 기슭에서 커다란 바위를 찾아내고는 주장자(柱杖子)로

바위를 내리쳤는데 바위 아래에서 맑은 물이 콸콸 솟아나왔고 곧 이 샘물은 금산 지방의 논과 밭으로 흘러들어

가뭄을 이겨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대사는 그 영험한 바위를 지키고자 바위 옆에 암자를 짓고 영원한 샘이

있는 암자 라는 뜻으로 영천암(永泉庵) 이라 했다고 한다.  

 

 

 

 

 

 

 

도구통바위로 올라가면서

 

 

 

 

 

 

 

도구통바위 (11시35분)

 

원래는 도구통(절구통) 모양 이었는데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모양이 조금 변했다고 한다.

 

 

 

 

 

 

 

노적봉

 

 

도구통바위에서 바라본 바로앞의 노적봉과 왼쪽 뒤로 눈에 덮힌 금산시내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강처사가

인삼을 심었다는 개삼터가 있는 성곡리다. 성곡리는 우리말로 비실이라고 하여 비실이마을 이라고도 부른다.

비실이라는 말은 원래 별실에서 온 말이라고 하며, 이 별실이 변하여 비실로 부르다 한자화 하여 성곡(星谷)

이라 씌이게 되었다고 한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산중은 완전 눈밭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물굴을 지나 개실저수지로 내려가는 길 이다.

 

 

 

 

 

 

 

물굴봉 정상 (737m)에서 백합님 (11시56분)

 

 

 

 

 

 

 

물굴봉

 

 

진악산 최고봉 (737m) 인데 마치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대군처럼 정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봉우리

아래에 조금전의 갈림길에서 내려가다 보면 물굴 또는 용굴 이라는 큰 굴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물굴(水窟)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물굴봉 이라 부르는데 금산쪽에서 잘 보이지 않아서 인지 진악산

정상으로의 대접은 받지 못하고 있다.

 

 

 

 

 

 

 

천등산과 대둔산

 

 

물굴봉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데 바가지 모양의 천등산과 우측의 대둔산이 가까이 보인다.

 

 

 

 

 

 

 

대둔산

 

 

 

 

 

 

 

천등산

 

 

 

 

 

 

 

정상으로 가면서 바라본 왼쪽 풍경 (클릭)

 

 

우측부터 대둔산 - 천등산 - 선야봉 - 신선봉 그리고 선야봉 앞으로 평행으로 늘어서 있는 백암봉이 조망된다.

순백의 세상, 흰눈이 온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화시킨것 같은 모습이다.

 

 

 

 

 

 

 

그 왼쪽으로 구봉산 - 복두봉 - 운장산 - 연석산이 선명히 조망 되는데 역광이라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진행방향의 정상부 능선

 

 

 

 

 

 

 

능선 반대쪽 (진행방향 우측) 으로는 눈에 덮힌 금산 시가지와 그 뒤로 갈기산 - 월영산 - 자지산 라인과

천태산 - 대성산 - 장용산 으로 이어지는 천성장마 라인이 병풍처럼 두르고 서있다. 그중에 금산 왼쪽으로

우뚝서있는 충남제일봉 서대산의 모습만 도드라져 보인다.

 

 

 

 

 

 

 

금산시내와 왼쪽 뒤로 우뚝선 서대산

 

 

 

 

 

 

 

조금전에 지나온 물굴봉

 

 

 

 

 

 

 

 

 

 

 

 

 

 

개삼터 방향의 개삼저수지 왼쪽 뒤로 금산시내가 보이고..

중앙 우측으로 월영산 - 갈기산 - 성주산 으로 이어지는 능선 ~

좌측으로는 월영산에서 금강 건너편에 있는 부엉산과 그 옆 자지산 - 천태산 - 대성산 - 서대산이 보인다.

 

 

 

 

 

 

 

가까이 당겨본 금산 뒤편의 천태산과 대성산 

 

 

 

 

 

 

 

다시 능선 반대쪽으로 백암산과 선야봉

 

 

 

 

 

 

 

능선따라 우측의 진악산 정상과 그 좌측뒤로 보이는 월봉산과 인대산

 

 

 

 

 

 

 

천등산과 대둔산을 좀 더 당겨본다.

 

 

 

 

 

 

 

눈이 많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능선길을 걷는중에 산행에 동행한 반보님 

 

 

 

 

 

 

 

개삼저수지 아래로 금산 인삼의 시초가 되었다는 개삼터가 있다.

 

 

 

 

 

 

 

개삼터에서 시작해 비조봉, 관음봉, 물굴봉, 개삼봉으로 지나는 새로운 원점회귀 코스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동안 진악산은 일자 형태의 산행코스만 있어서 원점 회귀를 하려면 간길을 다시 돌아와야 했는데 올해

개삼터에서 시작하여 진악산의 주요 지점을 모두 들러서 돌아오는 새로운 등산코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굽이굽이 흐르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가선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월영산과 부엉산 그리고 월영산 뒤로

갈기산과 부엉산 뒤로 이어진 자지산, 천태산이 조망이 된다.

 

 

 

 

 

 

 

진악산 정상 (12시40분)

 

 

733m에 불과 하지만 고봉이 없는 충청남도에서 서대산 - 계룡산 - 대둔산 - 오서산 - 선야봉에 이어 여섯번째로

높은 산 이다. 진악산 이라는 이름을 얼핏 들으면 진짜로 악산 인가 보구나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상석에서

보다시피 진악산은 한자로 進樂山 이다. 큰 풍류가 있는 산 이라는 말 이다. 전설에 의하면 진악산은 원래 큰

배였다고 한다. 태초에 천지개벽이 되어 큰 물난리가 났을 때 금산을 지나다가 물에 잠기지 않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그만 눌러앉아 산이 되었다고 한다.

 

 

 

 

 

 

 

진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금산

인삼의 고장 금산은 근래들어 산행 뒤풀이로 어죽을 먹으러 자주 가다 보니

이젠 금산 하면 또 어죽이 맛있는 동네 라는 인식이 생겼다.

 

 

 

 

 

 

 

능선따라 직진 방향의 풍경

왼쪽으로 월봉산과 인대산이 있다.

 

 

 

 

 

 

 

해가 구봉산 머리위에 떠있어 육안으로 선명한 운장산 사진이 흐릿하기만 하다.

마루금을 따라 왼쪽부터 구봉산 - 복두봉 - 운장산 - 연석산이 뚜렷히 조망된다.

 

 

 

 

 

 

 

정상에서 식사를 마치고 반보님과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덕유산을 조망하고 관음굴로 내려선다는 것이 엉뚱한

길로 가고 말았다. 

 

 

 

 

 

 

 

덕유산 방향

 

육안으로는 희미하지만 덕유산이 조망되는데,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이 많이 쌓여 가파르면서도 미끄러운 길을 한참을 내려서는데 관음굴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내려왔다 싶어 가만히 보니 개삼저수지로 향하는 능선을 타고가는 것이다. 이런... 

다시 푹푹 빠져 미끄러운 길을 손발을 이용해 기어서 오르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건너편 절벽 중턱에 관음굴이 보인다.

 

 

 

 

 

 

 

정상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능선을 타고 조금 내려가면 관음굴 갈림길이 나온다.

그런데..

 

 

 

 

 

 

 

아무도 안갔는지 러셀이 안되어 있다.

일단 내려가는 것은 죽죽 미끄러지면 되기에 쉬운데 다시 올라오는게 문제일것 같다.

 

 

 

 

 

 

 

관음굴은 가파른 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다 우측으로 절벽길을 타고 가야 한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새끼손가락 굵기의 리드선이 매어져 있는 구간이 있고

또 그나마도 없는 구간이 있는데 왼쪽은 바로 낭떠러지라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여자회원님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가 그냥 돌아가신것 같은데, 잘한일 이라고 서로 의견일치를 본다.

오르내리는 길도 눈이 쌓여 무척 미끄러울 뿐더러, 관음굴로 접근하는 바위길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벼랑을 빙 둘러 가면 관음굴이 보이며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바닥에 두껍게 쌓인 눈 틈 아래로

낭떠러지 허방이 가끔씩 보인다. 나중에 보니 바닥에 철망이 있는듯 하다.

 

 

 

 

 

 

 

관음굴 입구에 먼저 도착한 반보님

 

 

 

 

 

 

 

관음굴에서 바라본 풍경

 

 

이 관음굴은 금산과 진악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곳으로 진악산이 금산의 진산이 되고 금산의 인삼이

시작된 모태와도 같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곳을 좀 더 안전하게 갈수 있도록

시설 보완을 해야지 지금처럼 아슬아슬 위험하게 가게 해서는 안될것 같다.

 

 

 

 

 

 

 

관음굴

 

 

관음굴과 인삼의 설화

 

약 1,500여 년 전 백제시대에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개안이 마을에 강씨 성을 가진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효성이 지극한 강 선비는 어느 날 홀 어머니가 병들어 눕게 되자 세상에서 좋다는 약은 다 구해 치료를 해 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강 선비는 금산의 명산인 진악산 관음굴에서 어머니의 쾌유를 빌며 100일 기도를 드리게 됐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진악산 관음봉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3개가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 뿌리를 어머니께

달여 드리면 네 소원이 이뤄질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꿈에서 깬 강 선비는 꿈속에서 본 암벽을 찾아가 보니 과연 그런 풀이 있어 뿌리를 캐내 어머니께 달여 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다. 이후 강 선비는 그 씨앗을 남이면 성곡리 개안이 마을에 심어 재배를 하기 시작했으며

뿌리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인삼이라 부르게 된다.

 

 

 

 

 

 

 

 

그렇게 진악산 정상에 세번이나 올랐다 (14시9분) 

 

 

정상이 있는곳은 관음봉 이라고 한다. 아마 이 아래에 관음굴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한번의 알바와 관음굴을 다녀오는 사이에 50분이 흘렀다. 

이제 후미를 따라 잡으려면 쉬지 않고 바삐 가야 한다.

 

 

 

 

 

 

 

그렇게 정상을 출발하여 24분만에 물굴봉을 지나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정상을 향해 갈때보다 딱 절반의 시간이 걸렸다.

 

 

 

 

 

 

 

도구통 바위를 지나 하산길에 상민님 일행을 만났다.

 

 

 

 

 

 

 

보석사 의선각

 

 

대웅전 맞은 편엔 의선각이 있다. 이곳은 영규대사가 머물던 전각이라고 한다. 영규대사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번 갈기산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그는 계룡산 갑사와 보석사를 내왕하면서 수도생활을 했던 스님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했으나 이어 벌어진 금산전투에서 조헌의

무모한 전략으로 인해 800 승병과 함께 순절하고 말았다. 현재 800 승병의 이야기는 묻혀진채 조헌과 그를

따르던 유생들의 칠백의총 만이 전부인양 알려지고 있다.

 

 

 

 

 

 

 

소담하게 작은 대웅전

 

 

대웅전 왼쪽 옆에는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신 기허당이 있다.

현재 보석사는 조계종 제6구 본사 마곡사 말사이다. 현재의 도량은 규모가 작지만 예전엔 31본산 중 하나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한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구 스님이 이 절을 창건할 당시

절 앞산의 금광에서 채굴된 금으로 불상을 조성 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보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보석사 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 범종루 

 

 

산행종료 (15시15분)

보석사를 휘르륵 둘러보고 후미팀들과 함께 주차장으로 달려가 막걸리 한잔에 갈증을 풀고 산행을 마친다.

산행후에 진잠으로 돌아와 산악회에서 준비한 푸짐한 식사를 하고 나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다.

 

 

 

 

 

진악산 종합안내도

 

산행코스 :: 보석사 - 도고통바위 - 물굴봉 - 관음봉 - 관음굴 - 물굴봉 - 보석사 (원점회귀, 식사포함 4시간 40분)

산행일시 ::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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