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생신을 맞아 대둔산 자락 수락저수지 앞에 펜션을 빌려서 처가쪽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늦게까지 처제,
동서들과 술을 함께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4시가 넘으니 정신이 말똥말똥 한것이 지난밤에 마신 약초주의
효험을 본것인가 아니면 밤새 뜨끈뜨끈하게 지져댄 황토방의 효과를 본것인지 모르겠다. 창밖으로 별이 총총하게
보이는데 헤드랜턴을 안가져와 새벽산행을 할수가 없어 할수없이 해가 비추기만을 기다려 본다.
가족 모임으로 1박을 했던 수락저수지 앞의 산초의집 펜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의 수락저수지 건너편으로 대둔산 월성봉이 보인다.
저수지 넘어로 보이는 산의 높이가 만만해 보이고 다녀온지 오래되서 기억도 가물가물 한지라 아침 운동삼아
월성봉에 오르기로 한다.
대둔산 입구 수락마을 (8시14분)
차에 성에가 끼어 간신히 운전할수 있는 작은 구멍만 내놓고 가까운 거리라 수락마을 앞 까지
조심스레 운전을 한다. 나무 우측 뒤로 보이는 2동의 하얀색 화장실 앞으로 내려서 계곡을 건너면
바로 월성봉 산행의 들머리다.
산초의집이 보이는 곳에서
계곡을 건너서 왼쪽으로 길을 잡고 등로를 찾아야 하는데 낙옆으로 인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한번 왔었는데, 그때는 아무생각 없이 앞사람 뒤만 따라가다 보니 정확한 들머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우측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섰는데 조금 올라가다보니 길이 끊기고 더이상의 등로가 이어지지 않아
할수없이 쌩길을 치고 낙옆에 두껍게 내려앉은 사면을 오른다.
첫 이정표가 나오는 정상부 능선에 올라서서 바라본 풍경 (8시59분)
40여분 가파른 된비알을 오르니 처음으로 이정표가 나온다. (수락주차장 1.42km - 월성봉 0.47km)
왼쪽으로 대둔산 짜개봉 뒤로 뾰족 머리만 보이는 천등산과 양뿔만 보이는 운장산 마루금이 보인다.
월성봉에서 덕곡리로 이어진 능선
나중에 정상에 올라서 저능선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돌아왔는데 저 우측끝 봉우리를 지나 덕곡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을까...?
정상앞 바랑산 갈림길
이따가 하산은 왼쪽으로 하기로 하고 일단 정상에 다녀와서 다시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진행해 보기로 한다.
바랑산 갈림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몇미터 가다보면 왼쪽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바로 나온다. 그 갈림길을
놓치면 직진해서 빙 돌아 영주사로 가게 된다.
월성봉 정상 (9시11분)
월성봉의 유래와 달이산성(達伊山城)
월성봉은 달리 달이성봉 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월설봉에 있는 달이산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즉 달이산성을 한자로 만들면서 월성이 된 것이다. 옛날 고려초 이곳에 달이라고 하는 의적이 은거하고
있었는데. 조정의 군사와 3년을 싸우다가 싸움에 지친 의적들이 포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의적 달이도 칼을 내팽개 치고 '자! 우리는 이젠 고향에 가서 농사나 짓자' 라고 하며 다들 뿔뿔히
헤어졌다고 한다. 그후 사람들은 달이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하여 달이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월성봉에서 내려다본 소서바위와 바랑산 (우측)
소서바위를 지나 바랑산으로 향하고 싶지만 오늘 산행은 가족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잠시 운동삼아 올라온거라 서둘러 내려가야만 한다.
산아래 법계사와 오산리 풍경
월성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조망 1 (클릭)
월성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조망 2 (클릭)
왼쪽 짜개봉 뒤로 천등산이 보이고 운장산은 그 뒤로 멀리 섬처럼 보인다.
소서바위
소서바위 유래
왼쪽의 바위 봉우리는 소서바위 라고 하는데, 소서바위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바위들이 웅장하게 우뚝 솟아 있어 소서바위 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때 월성봉에 고지를 구축하고 공비들과 사투를 벌였다는 기록
정상석 뒤의 조망터
월성봉으로 오른 능선과 수락저수지 뒤로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펜션이 보인다.
대둔산 자락 뒤로 저 멀리 우뚝선 서대산이 보인다.
서대산을 당겨 본다.
덕곡리로 뻗은 능선을 따라 암봉에 올라서니 소서바위(왼쪽)와 바랑산(오른쪽)이 이제 이렇게 뒤에서 보인다.
바랑산의 유래
어느 고승 한 분이 입적할 곳을 찾아 바랑을 둘러매고 헤매다 겨우 찾았다는 산이라해서 바랑산 이라 불렀다
전하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산 생김새가 바랑처럼 생겼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뒤에서 보니 바랑 같이도 보인다.
월성봉 정상
오른쪽 앞으로 덕곡리 상사바위가 보이고 왼쪽 뒤로 천호산 줄기 뒤로 멀리 계룡산이 우뚝 솟아 있다.
향적산에서 계룡산으로 향하는 능선과 계룡의 각 봉우리들이 뚜렷히 조망된다.
계룡산을 좀 더 당겨본다.
탑정호와 논산시
월성봉에서 덕곡리로 향하는 능선과 왼쪽 뒤로 보이는 상사바위
상사바위의 전설
조선 중기 때 벌곡면 덕곡리 마을에 마음씨 좋은 한 농부가 어느 날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숲 속에 쓰러져 있는
원님의 아들을 구해서 보살피다가 그만 농부의 딸과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는데, 원님 부부가 절대 반대를 하여 할수 없이 한양의 규수와 혼인을 하게 되어서 다시 말을 타고
사모관대를 쓰고 그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오매불망 청년을 기다리던 농부의 딸이 산에 올라 그리
애타게 도련님을 불렀건만 청년은 양가 규수와 혼인하러 가는 길이라 이 소리를 외면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천둥과 벼락이 진동하였고, 그녀는 사라져 가는 청년을 보면서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산마루를 지나던 청년 또한 회오리바람에 말려들어가
산 아래로 떨어져 죽었는데, 이후 이곳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두 개의 바위가 생겨났다고 한다. 농부의 딸과
청년이 떨어져 죽은 자리에 바위가 솟아오른 것으로. 사람들은 이들 바위가 맺지 못한 두 사람의 원혼이라 하여
상사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논산문화원)
월성봉 흔들바위
월성봉 정상에 올라 능선길을 따라 덕곡리로 가서 상사바위와 계룡산 구경을 마치고 다시 월성봉 으로
돌아오는데 3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하산길은 올라왔던 가파른 길이 아닌 완만한 길을 택해 흔들바위를
지나치게 되었다.
월성봉 정상
월성봉 아래 오산리와 법계사
법계사
대웅전이 왼쪽에 따로 떨어져 있고 팔각형의 모양의 희락원 건물이 독특하게 보인다.
법계사는 대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서, 조용한 곳에서 노년을 보내고자 하는 비구니 승려들의
수행 공간이자 전국 유일의 비구니 노후 복지 시설이기도 하다.
소서바위와 바랑산
월성봉에서 소서바위로 내려서는 능선과 바랑산쪽 조망 (클릭)
소서바위 아래 자리한 법계사와 바랑산 우측 뒤로 논산의 탑정호가 보인다.
흔들바위에서
마침 산객 두분이 오셔서 사진을 한장 부탁하였다.
법계사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
대둔산 주능선은 역광에 놓여있고 한 가운데 개척탑이 서있는 마천대가 보인다.
하산길 능선 뒤로 짜개봉이 서있고 그 뒤로 대둔산 남릉과 마주서 있는 천등산과 멀리 운장산이 보인다.
짜개봉 뒤로 보이는 운장산과 연석산
명품 소나무
하산길 바위 벼랑 아래로 바라보는 건너편 짜개봉 계곡의 가을색이 곱다
월성봉 하산길의 지능선의 암릉
대둔산 밑 사진 중앙에 승전탑이 보인다.
대둔산 승전기념탑은 한국전쟁 당시 대둔산 일대에서 활동 중인 빨치산 및 영호남에서 패주 북상하던 북괴군 등
3,412명을 섬멸하면서 경찰관, 국군, 애국청년단원 1,376명이 전사하여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계단을 내려서며 바라본 월성봉 능선 (왼쪽)과 대둔산 능선 (오른쪽)
산은 벌써 낙옆이 수북하고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주차장 뒤로 보이는 월성봉 능선
산행종료 (10시55분)
대둔산, 월성봉 지도
산행코스 :: 수락주차장 직전 - 월성봉 - 영주사방향 능선길 왕복 - 월성봉 - 수락재 - 수락주차장 (2시간 40분)
산행일시 :: 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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