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 학산면에 있는 갈기산은 대전에서 가까운 근교산으로 산악회에서 일년에 몇차례씩 산행을 하는

곳이다. 마치 계룡산의 자연성릉을 보는듯한 말갈기 능선과 금강을 향해 사납게 솟아 있는 암릉과 벼랑은

산을 둘러싸고 유유자적 하게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금강과 더불어 풍광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남의떡이 더 커보인다고 대전 근처의 이 명산은 근처의 산객들 보다는 오히려 먼곳에서 더 그 가치를 알고

많이 찾는곳 이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갈기산. (9시10분)

 

 

여름내내 청명함을 보여주었는데, 가을로 접어드는 구월의 첫날은 가슴 아프게도 뿌연 안개를 피우고 있다.

해가뜨면 이내 사그라들겠지 하던 기대감이 남아 있었으나, 산밑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할때 까지도

안개가 가실줄을 모르니 적어도 오전 산행은 조망이 틀리게 되었다는 걱정이 앞선다.

 

 

 

 

 

 

지척에 있는 천태산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바닥이 보이도록 투명했던 금강물은 짙은 녹색을 띄고 있다.

 

 

 

 

 

 

20여분 가파른 길을 올라 만나는 헬기장 한쪽엔 청주에서 오셨다는 여성산꾼 두분이 식사를 하고 계신다.

다들 잠시 쉬었다가 그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먼저 출발하였는데, 나중에 보니 어느 사이에 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앞섰는지 또 다시 진행방향의 전망 좋은 곳에서 쉬고 계시는게 보인다.

 

 

 

 

 

 

산에는 여러가지 버섯들이 많이 나있는데, 그중에 사진에 보이는 붉은색 버섯이 많이 있다.

 

 

 

 

 

 

호탄교가 보이는 조망터

 

 

호탄리의 전설

 

호탄리는 범호虎, 여울 탄灘을 써서 호탄리라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한 효자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경주 김씨 금희라는 효자가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동지섣달 추운 겨울 어느날

병환중인 부친이 아들에게 딸기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하자, 효자는 딸기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갈기산 산속을

헤맸다고 한다.


산속을 헤매는 중 효심에 감동한 곰이 나타나 도와줘서 딸기를 구하게 되었는데, 겨울 짧은 해가 저물고 금강은

얼어 붙어 강을 건널 수 없어서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등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 집 앞에

내려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곰과 호랑이 덕택으로 병환 중의 그 아버지는 딸기를 먹고 병이 낳았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여울탄이 아니라 호랑이를 탄 그래서 호탄 으로 들리기도 한다. 

 

 

 

 

 

 

조망터에서...

 

갈기산 정상 못미쳐 최고의 조망터 인데, 사진에 보이듯이 오늘 날씨가 이렇다.

금강과 어우러진 풍광이 그림같기로 유명한 갈기산 인데 너무도 아쉽게 되었다.

시간도 여유있고 하니 조망터 바위에 앉아 마침 환하게 비추는 햇살이 어서 안개를 녹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아마도 오후엔 좀 좋아지지 않을까....

 

 

 

 

 

 

 

등로에 있는 기암

 

 

 

 

 

 

빙돌아 건너편에 있는 오후에 가게될 월영산

 

 

 

 

 

 

금강의 녹조, 짙은 개스,,,

멋진 그림을 기대했던것 만큼 실망도 커진다.

멀리 우측으로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이 보이고 좌중앙 바위앞 조금전 멋진 조망터에 도착한 후미팀의

모습도 보인다.

 

 

 

 

 

 

갈기산 정상부

 

 

 

 

 

 

갈기산 정상 (10시27분)

 

 

 

 

 

 

 

 

 

 

 

 

정상에서 바라본 말갈기 능선 (클릭)

 

말의 갈기를 닮았다고 해서 말갈기 능선 그리고 갈기산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앞서가는 일행들..

뒤로 보이는 코앞의 비봉산도 개스에 가려 선명하지가 않다.

 

 

비봉산

 

비봉산은 천태산 영국사등과 함께 양산8경중의 하나로 고층산 또는 남산 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비봉산 아래 가곡리는 인천 이씨들이 모여사는 곳인데, 이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려고 하자 마을 뒷산으로

한쌍의 봉황이 날아들어 길지로 생각하고 산 이름을 비봉산 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곳이 안동의 하회와 더불어 최고의 명당 자리라고 소개할만큼 금강의 아름다움과

비옥한 벌판으로 무척 살기 좋은 곳 이라고 한다.

 

 

 

 

 

 

멋진 바위, 소나무 뒤로 보이는 차갑재와 성인봉

 

 

 

 

 

 

갈기산 정상에서 능선으로 넘어오는 후미팀

 

 

 

 

 

 

갈기산과 월영산 

 

 

 

 

 

 

다시 앞 봉우리에 오르고 있는 일행들

개스에 역광으로 오늘 사진들은 죄다 엉망이 되었다.

 

 

 

 

 

 

진행방향의 능선

 

 

 

 

 

 

갈기산과 월류봉 그리고 우측뒤로는 비봉산 (클릭)

 

 

 

 

 

 

 

월류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 바위능선이 참으로 멋지다.

계곡을 끼고 양쪽 능선으로 등로가 마련되어 있어 갈기산 관광농원에서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

이 계곡 양쪽엔 호랑이굴과 뜸북굴이 있는데 이 굴들은 전란이 있을때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된 곳 이라고 한다.

 

 

뜸북이골

 

이골짜기는 예전에 뜸부기가 많이 서식하고 여자의 음부형상을을 한 뜸북굴이 있어 '뜸북이골' 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전해지는 전설로는 마을에 큰 재앙이 덮치거나 전쟁이 일어나 마을사람들이 해를 입게 되면 신기하게도 이

골짜기에 있는 수천 마리의 뚬북이떼가 마을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한다.

 

 

 

 

 

 

 

 

 

 

 

 

암릉을 타고 넘는 일행들

 

 

 

 

 

 

 

말갈기 능선에서..

 

 

 

 

 

 

 

 

 

 

 

 

조망이 아쉬워도 즐겁기만한 동행들...

그리고 뒤쪽으로 헬기장에서 만났던 청주에서 오신 산꾼 두분

 

 

 

 

 

 

층꽃풀

 

 

 

 

 

 

갈기산 정상에서 부터 이어진 지나온 말갈기 능선

 

 

 

 

 

 

움푹들어간 차갑고개 뒤로 성인봉이 보이고 능선따라 가야할 월영산이 멀리 보이는 봉우리에서..

차갑고개에서 소골로 하산할 B코스 일행들을 위해 함께 식사를 한다. 

 

 

 

 

 

 

차갑재

 

골짜기에서 차가운 바람이 분다고 해서 차갑재 라는 이름을 가진 것일까?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우측 소골로 하산을 하고, 열댓명만 A코스로 길을 잡고 성인봉을 향해 간다.

 

 

 

 

 

 

성인봉을 오르며 바라본 식사를 하며 쉬었던 봉우리

 

 

 

 

 

 

갈기산 정상에서 555 봉우리 까지 능선길 (클릭)

 

 

 

 

 

 

오후가 되었건만 개스는 사그라들줄 모른다.

월영봉 우측으로 보이는 가까운 천태산의 모습이 개스에 가려 희미하기만 하다.

 

 

 

 

 

 

성인봉의 산성터

 

 

 

 

 

 

성인봉  (12시11분)

 

성인봉의 높이가 624m 이면 갈기산 보다 높다는 말인가?

 

 

 

 

 

 

안자봉 (월영산 동봉) 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

맨 왼쪽이 갈기산이고, 우측의 말안장 같이 들어간 곳이 차갑고개, 그리고 우측으로는 성인봉 

 

 

 

 

 

 

월영산 삼거리

 

우측으로 가면 능선을 타고 원점 회귀 산행이 되는 것이고.

왼쪽으로 가면 안자봉을 거쳐 월영산에 갈수가 있다.

 

 

 

 

 

 

안자봉 직전 조망터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길 (클릭)

 

 

 

 

 

 

안자봉 (월영산 동봉) 정상

 

 

 

 

 

 

안자봉에서 바라본 월영산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월영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안자봉

 

 

 

 

 

 

월영산 정상의 밧줄구간

 

 

 

 

 

 

월영산에서 바라본 안자봉과 뒤로 갈기산

 

월영산과 안자봉을끼고 성인봉 옆의 458봉 사이의 서쪽으로 있는 계곡이 옥녀탄금대가 있는 금성골 이다.

 

 

 

 

 

 

월영산의 멋진 조망바위에 올라선 두더지 산대장님

 

 

 

 

 

 

월영산 (13시40분)

 

달그림자 산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월영산은 동국여지승람에 금산 동쪽 20리에 있다고 소개되고 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은 정월 대보름에 월영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달맞이 행사를 해온다고

한다. 이 때 월영산 중턱에 구름이 걸치면 그 해에는 많은 비가 내려 장마가 지고, 성인봉 위로 달이 뜨면 가뭄이

든다는 설이 전해진다.

 

 

 

 

 

 

월영산에서 내려다본 천내리와 난들 

금강 건너 보이는 산줄기는 지난봄에 다녀왔던 자지산~부엉산 능선

 

 

 

 

 

 

참고사진 - 지난봄에 자지산에서 바라본 비봉산-갈기산-월영산

 

 

 

 

 

 

아름다운 수직 벼랑과 금강

그 뒤로 자지산과 부엉산이 보인다.

 

 

 

 

 

 

지난 봄에 왔을때만 해도 맑은 물 이었는데..

진한 녹색으로 변한 금강물 뒤로 개스가 조금 가셨는지 자지산에서 천태산으로 가는 능선길이 보인다.

 

 

 

 

 

 

참고사진 - 지난봄 월영산 아래 금강의 맑은물

 

 

영규대사

 

체구가 엄청나게 컸다고 전해지는 무승 영규대사는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

승병을 모아 청주성과 금산전투에 참전한다. 관군이 패하고 물러선 가운데 영규대사를 따르는 승병 1000

여명은 왜군과 사투를 벌이다 조헌이 데리고온 의병 1600명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하기에 이른다.

 

이에 감동한 선조는 조선개국이래 처음으로 승려에게 당상관을 제수 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에 임명하고 비단옷 한 벌을 내려 주었다. 그러나 선조를 따라 진북 하려던 의병과 승병들이 이들을 시샘하는

관군들의 계략으로 의병들을 흩어지게 하고 금산으로 향하게 되니, 이에 조헌의 의병들은 700명만 남게

되었고, 영규대사는 승병 800명을 이끌고 조헌과 함께 금산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청주성 전투이후 18일만에 무모한 금산전투가 시작되니 영규대사는 왕이 보낸 비단옷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전사를 하게 된다. 영규대사의 묘비가 계룡산 갑사에 있는것으로 보아 사람들은 영규대사가 전장에서

사망한게 아니라 큰 부상을 입고 갑사까지 와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왼쪽 아래로 지난번 자지산 산행시 출발점인 주차장과 어죽으로 유명한 원골식당이 보인다.

 

 

칠백의총은 잘못된 명칭

 

금산성에는 이미 만명이 넘는 왜군이 자리하고 있어 고작 천오백의 의병과 승병으로 공격하는것은 무모한지라

영규대사는 조헌에게 즉각적인 전투를 만류하고 관군의 지원이 있기를 기다리자고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헌은 군주가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목숨을 버려야 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며 불나방 같이 700명의

의병을 데리고 골리앗 같은 금산성을 향해 돌진을 하게 된다. 조헌을 만류하던 영규대사는 당시 전투가  뻔히

눈에 보이는 죽을자리인줄 알았지만 의리상 의병들을 홀로 보낼수 없어 800명의 승병과 함께 전장에 뛰어들어

산화를 하게 된다.

 

임진왜란 이후 역사를 장악한 서인 양반들은 승병 800명의 기록은 어느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조헌이 데리고

돌진한 의병 700명만을 기록하여 칠백의총을 만들어 두고 있다. 사실 정확한 명칭은 700의총이 아니라 800명

승병을 포함한 1500 의총이라 해야 할 것이다.

 

 

 

 

 

 

부엉산

 

여름에는 저 바위벼랑 중간에서 시원하게 인공폭포가 뿜어 내린다고 하였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폭포마저

가동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지난봄에 미처 제대로 보지 못한 부엉산의 음굴을 오늘은 놓치지 말고

가서 볼수가 있을것 같다.

 

 

 

 

 

 

부엉산과 월영산의 암봉 덜게기 사이로 흐르는 금강 (클릭)

 

지금은 차가 다니고 있지만 임진왜란때는 험준한 암봉 밑에 사람 한두명이 겨우 지나갔을 정도로 좁은 길을

혹시나 매복이 없을까 바짝 긴장하며 걸었을 왜병들을 생각해 본다. 영규대사 말대로 이곳을 지켰더라면

왜군은 쉽게 금산으로 진격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입곡류(嵌入曲流)

 

장수군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산태극 수태극을 그리면서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간다.

부엉산, 월영산, 갈기산을 휘어 감고 도는 아름다운 금강 (클릭)

 

 

영규대사의 흙탕물 전략

 

영규대사의 계책을 조헌이 따르지 않는 바람에 무사히 험로를 통과한 왜군은 천내리 강가에서 사흘 동안 발이

묶였다고 한다. 배가 없고 강물이 흙탕으로 깊이를 알 수 없게 되자 함부로 강을 건너지 못한 것이다. 이는 영규

대사가 배를 모두 없애고 강의 상류 불겅댕이(용화마을 위의 마달피 일대 황토 밭)에서 황토를 강에 풀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사흘 뒤 어떤 여인네가 치마만을 걷어올리고 강을 건너는 것을 보고 그제야 속은 것을 알게된 왜군은

강을 건너 금산으로 진격하게 되었다 하는데, 이 여인네가 누구냐 하는 것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부엉산에서 바라본 월영산의 험준한 덜게기 (2012년 3월)

 

 

돈키호테 조헌

 

무모한 금산전투로 조헌의 의병과 영규대사의 승병이 모두 전사하기 전에 왜병의 동태를 미리 알게 된

영규대사는 왜병들이 금산에 침입하기 전에 갈기산과 월영산의 양 덜게기에 바위를 쌓아 놓고 기다리다

왜병이 그 곳을 지날 때 허물어뜨려 왜병을 막자고 했다. 그러나 조헌은 양반답지 못한 방식이고,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며 영규대사의 계책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후 왜군은 험준한 이 곳을 무사히 통과했고 이에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치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탄금배에 배수진을쳐 패전을 자초한 신립과 똑같은 스토리를 보여준다.

참고로 신립과 조헌은 둘다 서인 이며, 조헌은 정여립을 탄핵하는 상소를 수차례 올리다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낙향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은 서인이 음모를 꾸며 조선최대의 사건인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조작

하면서 국력이 피폐해 짐으로 인해 시작이 되는 것이니 그 또한 책임론에서 온전히 벗어날수는 없는것 같다.

 

 

 

 

 

 

월영산 모텔이 있는 계곡으로 내려선다. (14시20분)

 

계곡에서 땀을 씻어내고나니 버스가 도착을 한다.

후미가 땀을 씻는 사이에 50여미터를 달려가 부엉산 음굴을 구경한다.

 

 

 

 

 

 

부엉산과 음굴

 

 

 

 

 

 

바로 옆 자지산에서 불을 때면 이곳에서 연기가 난다는 부엉산의 음굴이다.

왼쪽옆의 흰색줄은 인공폭포관 인데 가동을 하지 않고 있어 조금 아쉽다.

 

 

 

 

 

 

버스뒤로 보이는 월영산

산행종료 (14시40분)

 

이후 무주로 이동 김호천 고문님이 운영하시는 금호축산식당 에서 맛난 뒤풀이를 하며 산행을 정리한다. 

날씨 덕분에 기대했던 멋진 풍광은 절반도 감상할수 없었지만 멋진분들과 함께한 산길이 즐겁기만 했던

영동의 명산 갈기산~월영산 산행 이었다. 선명한 조망을 위해 담에 한번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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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기산, 월영산 산행지도

 

산행코스 :: 소골주차장 - 갈기산 - 차갑재 - 성인봉 - 안자봉 - 월영산 - 원골 (식사포함 5시간30분)

산행일시 :: 2012년 9월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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