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1년만에 진안 구봉산을 다시 찾게 되고 보니, 이곳이 가을에 더욱 아름다운 산 인데 왜 유독 무더운 여름날

땡볕에만 이 바위산을 찾게 되는지 스스로가 의아스러울 뿐이다. 유달리 기승을 부렸던 올 여름 더위가 몇차례의

짧은 비와 함께 기세가 누그러지게 되고, 마침 산행을 계획한 이날은 중,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일말의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더운날, 젖으면 안되는 것들만 간단히 방수조치 하고 시원하게

비를 맞고 걸어 보리라 생각을 하고 집을 나섰는데 결론적으로 이날은 우려했던 바와 달리 날씨가 산행하기에

너무도 좋기만 했다.

 

 

 

한여름의 태양은 짙은 먹구름속에서 힘을 잃었으며 멀리서 부터 다가오는 비구름은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을 앞

세우고 있었다. 걷다가 멈춰서면 태풍처럼 불어대는 시원한 바람이 얇은 여름 등산복을 통과하여 땀방울을 기분

좋게 날려 버린다. 센 바람에 휘청이며 벼랑 끝에 서는걸 조심 하고, 혹여 모자가 날아 갈까봐 벗어 들고 걷기도

했던, 이날 구봉산에 불어제낀 그 시원한 바람은 이 여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할것 같다.

 

 

 

 

 

윗양명마을 주차장에서 산행 시작 (9시8분)

 

구봉산까지 2.8km, 오늘 산행의 최종 목적지인 구봉산 정상인 장군봉 까지 고작 2.8km 라고 나온다.

이 거리를 보고 대충 가볍게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고생을 하게 되는 산이 바로 구봉산 이다.

 

 

 

 

 

 

꼬박 1년전 구봉산에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며 1봉을 향하여 걸음을 내 딛는다.

우측으로 구봉산의 첫번째 봉우리인 1봉이 보이고, 왼쪽뒤로 구봉산의 9봉이자 주봉인 장군봉이 보인다.

 

 

 

 

 

 

사랑으로님과 GS테크님 그리고 창회님이 이번 산행에 동행을 하였다.

대전 관저동에서 출발을 하다 보니 GS테크님은 관저동 뒤에 있는 대전 구봉산을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다고 하신다. 다른 복장은 문제가 없는데, 신발이 아쿠아슈즈 인것이 아홉개의 암봉을 오르내려야 하는 바위

산행에서 조금 걱정스럽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계곡 초입에서 새끼더덕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이후 장군봉에 올라 바랑골로 내려설때 까지

제대로된 더덕줄기 하나를 볼 수가 없었다. 어느 고수님이 진즉 다녀가신듯 하다.

 

 

 

 

 

 

1봉으로 오르는 능선에서... (9시52분)

잠깐 서있는데 바람이 너무도 시원하다.

 

시원한바람~

오늘 산행의 메인 테마 이다.

 

 

 

 

 

 

1봉으로 오르는 능선길

사진에 보이는 나뭇잎들만 봐도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알수가 있을것 이다.

걷다가 멈춰서면 시원한 바람이 금새 땀을 말려 버린다.

 

 

 

 

 

 

구봉산의 연봉들과 장군봉

 

 

구봉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구봉 송익필과 구봉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본다. 아직도 송익필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면 대부분이 허황된 기록들이 많다. 이여송이와 칼부림을 하고, 눈빛이 형형해서 선조가 무서워 하고..

승자들의 기록이라는게 다 그렇지만 조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악당을 정여립의 이야기를 마치 송익필의

이야기 인것 처럼 섞어서 미화를 시켜논것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크게 놓고 보자면, 임진왜란을 자초한것도, 임진왜란때 그렇게 힘들게 싸운것도, 조선이 망할때까지 계속된

당쟁이 생긴것도, 병자호란과 정묘호란도 그리고 조선이 망한것도 모두 이 간흉 송익필로 부터 시작을 한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니 말이다.

 

 

역사의 기록을 대하고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소관 이겠지만, 구봉산과 운장산이 그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한

개인의 욕심을 위해 거짖 역모를 일으켜 조선조 최대 옥사를 일으키고 회복될수 없는 당쟁의 골을 만들었으며

수십만을 죽게 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임란의 한축을 담당하였던 그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송익필과 구봉산과 운장산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난해 올린 게시물을 참고 하면 된다. 클릭

참고로 송익필의 호는 九峰 이 아니라 龜峰 이다.

 

 

 

 

 

 

구봉산 암릉을 배경으로 선 GS테크님

 

 

 

 

 

 

유난히도 바람이 시원했던 1봉

 

 

 

 

 

 

수직 바위 낭떠러지가 강한 인상을 주는 2봉

 

 

 

 

 

 

구봉산 주능선에 올라서니 일행들은 1봉을 제껴두고 2봉으로 가려고 한다. (10시11분)

이정표는 모두 능선 왼쪽의 장군봉 정상을 가리키고 있다.

구봉산 1봉은 능선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없는 우측으로 살짝 내려서야 한다.

진안군은 이곳에 1봉을 안내하는 화살표를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연봉을과 조금 떨어져서 그런지 태풍과도 같은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 구봉산 1봉

광복절 휴일인데도 주말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일행들은 우리팀 밖에 없는것 같다.

이런 좋은 바람에 등산복을 벗어버리고 풍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1봉에서 한참을 바람맞고 마음을 추스려 2봉을 향해 내려서는 길에...

테크님 뒤로 명도봉과 명덕봉이 보인다.

 

 

 

 

 

 

왼쪽으로 명도봉과 명덕봉, 그리고 우측으로 얼마전 다녀왔던 성치산 

 

 

 

 

 

 

1봉에서 2봉 가는길에 시원한 바람 맞기 ~

 

 

 

 

 

 

제2봉 (10시31분)

 

 

 

 

 

 

2봉에서 바라본 1봉

1봉 우측 뒤로 멀리 향적봉에서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로 이어지는 덕유 능선이 보인다.

 

 

진안의 지명 유래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군 백운면, 호남의 물과 산의 근원이 되는 진안의 지명은 신라 경술왕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경술왕은 호남의 물과 산의 근원이 되는 이 지역을 진압해서 안정을 시켜야만 나라가 평안해 진다는 생각에 그렇게

이름을 붙혔다고 한다.

 

 

 

 

 

 

산아래 양명 마을과 정천면으로 가는 725번 지방도로

 

 

 

주자학과 양명학을 딴 진안의 지명

 

구봉산과 운장산의 이름이 당대의 유학자 송익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이 일대의 지명을

살펴보면 주천면, 명도봉, 정천면, 주자천, 정자천, 안자천 등의 이름은 조선중기 이후 조선사회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송나라시대의 주자학의 대가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송나라 주잠이 이곳에 제자 7명을 데리고 찾아

왔다고 하여 그의 영향으로 주자천, 안자천, 정자천의 지명 유래가 되었으며, 구봉 송익필 등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조선 주자학의 종주라는 송시열의 스승이 김장생이고 김장생의 스승이 송익필이고 보면 아마도 주줄산이 운장산이

되고 보니 주자학의 대가들의 이름이 즐비한 땅에 조선 주자학의 대가 였던 송익필의 운장산과 구봉산이 우뚝 서있는

것을 보면 당시 주자학을 신봉하는 선비들에게 송익필의 위명이 어느정도 였는지 알것 같다.

 

 

구봉산 아래의 마을은 성리학의 한 계파인 양명학을 일으킨 왕양명의 이름을 딴 양명 마을인데 마치 우뚝선 송구봉이

왕양명을 내려보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성치산 뒤로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이 보인다.

 

 

송익필의 호 구봉은 파주 구봉산?

 

이곳 진안 구봉산이 송익필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실상 송익필이 구봉(龜峰) 이라는 호를 가지게 된것은

파주의 구봉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훗날 송시열의 스승이자 당대 서인의 영수로 크게

되는 사계 김장생을 제자로 받아들이는데, 이게 바로 파주의 구봉산 근처다.

 

 

 

 

 

 

명덕봉에서 용담호 까지의 파노라마 조망 (클릭)

 

 

 

 

 

 

당겨본 용담호와 용담대교

 

 

 

 

 

 

2봉에서 바라본 3봉 (우측)

 

사실 2봉과 3봉 사이에는 양쪽에 안부를 가지고 있는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

이 봉우리까지 세면 구봉산은 현재의 장군봉을 빼고 원래의 구봉산으로 불리울수가 있을것 같다.

장군봉을 천황산으로 독립을 시키고 구봉산은 따로 이 연봉들로만 이름을 가져야 옳을 것 이다.

 

 

 

 

 

 

3봉 (10시40분)

 

 

 

 

 

 

오르고 내리고... 구봉산은 하여튼간에 아홉번은 오르 내리락을 해야만 한다.

 

 

 

 

 

 

4봉 (10시47분)

 

4봉은 중턱을 가로지르는 진행방향에서 봉우리를 향해 리본이 묶여 있는것을 잘확인하고 다녀와야 한다.

1봉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봉우리 안내 표시가 필요하다.

 

4봉은 장군봉을 제외하고 구봉산의 여덟연봉들중 제일 높은 봉우리라 조망이 탁월한곳 임으로 놓치지 말고

밧줄을 잡고 올라서 감상을 하는게 좋다.

 

 

 

구봉산의 옛 주봉은 현재 4봉?

 

1872년도 조선말 용담현 지도에 의하면 이 4봉이 제5봉이자 구봉산의 山名이 적혀 있는 主峰 으로 나온다.

그러니 조금전 2봉과 3봉 사이에 하나 건너뛴 봉우리가 원래는 3봉이 맞으며 그래서 장군봉(원래이름 천황산)을

제외하고 이 바위연봉들이 구봉산이 되는 것 이다.

 

 

 

 

 

 

4봉 조망터인 낭떠러지에서 바라본 지나온 봉우리들

용담호 뒤로 지장산과 그 뒤로 적상산이 보이고 왼쪽 맨뒤 라인으로 뾰족하게선 민주지산이 보인다.

 

 

 

 

 

 

4봉에서 바라보는 장군봉

 

 

 

 

 

 

 

 

 

 

 

5봉으로 가는 길에..

 

 

 

 

 

 

운장산 복두봉(왼쪽뒤)과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중앙에 정상이 보인다.

사진 우측의 바위봉우리는 명도봉 이다.

 

 

 

 

 

 

장군봉과 우측뒤로 운장산 복두봉

 

 

 

 

 

 

수직 바위 절벽이 힘차게 느껴지는 5봉

 

 

 

 

 

 

일행들이 5봉에 오르고 있다.

 

 

 

 

 

 

천황암

 

이곳에서 천황은 일제의 잔재가 아니다.

 

 

 

 

 

 

5봉에 오르는중 포토포인트에서..

 

 

 

 

 

 

지나온 4봉

 

 

 

 

 

 

5봉 (11시14분)

 

 

 

 

 

 

운봉리의 소류지

 

 

구봉 송익필

 

지난해에 구봉산에 오르며 구봉 송익필의 악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는데 오늘도 간단히 구봉 송익필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자 한다.

 

송익필에 대한 평가는 송시열 만큼이나 극과극 이다. 송시열 이후 조선이 망할때까지 정권을 잡았던 서인 일당들

그리고 이후 친일파를 거쳐 해방후 역사편찬위 까지 도맡아 버린 서인의 후손들로 인해 현재 배우는 조선역사

까지도 신뢰할수 없는 승자들의 기록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승자들이 기록한 저서에서 송시열은 조선 주자학의 종주요 하늘같이 위대한 학자며 선비겠지만

반대파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들은 임진왜란을 자초하고 역모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현명하게 중립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쫒아내고 무능한 인조를 앞세워 대책이 전혀 없었던 두번의 호란을 일으키고 주변국가들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 할때에 고리타분한 죽은 주자학의 뒷다리나 만지며 자신들의 권력유지에만 급급하다 결국

사상초유의 40년간 왜적에 국가가 침탈을 당하는 대수모를 겪게 만든 조선 최대 역적들의 종주에 불과할 따름인

것이다. 송익필 또한 평가는 송시열과 다르지 않다.

 

승자들의 기록에서 바라본 송익필은 당대의 천재이며, 조선의 제갈공명 이겠지만 그가 조선에 끼친 해악을 살펴

보면 당대의 유학자고, 천재이며 제갈공명이라는 것은 맞을지 모르지만, 그 뛰어난 머리로 인해 수천명의 억울한 

선비들이 목숨을 잃고, 국가는 도저히 제대로 전쟁을 수행할수 없는 파탄지경에 빠지게 되며, 이를 파악한 왜적

으로 하여금 침략의 구실을 제공하여 수백만을 전쟁으로 인해 죽게만든 천고의 원흉임에 틀림없는 것 이다. 또한

송익필의 간계에 의해 조선 후기에 나라를 좀먹는 암적 존재라는 사화와 당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니 그가

끼친 해악은 이루 해아릴수 없는 것이다.

 

 

 

 

 

 

5봉을 내려가는 일행들

 

 

 

 

 

 

장군봉 - 복두봉 - 운장산 - 명도봉 - 명덕봉 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 (클릭)

 

 

 

 

 

 

5봉을 내려선 일행들이 6봉을 향해 가고 있다.

 

 

 

 

 

 

5봉 정상에서 당겨서 바라본 일행들..

우측 능선뒤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암봉이 복두봉 이다.

 

 

 

 

 

 

6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5봉

 

 

 

 

 

 

6봉 (11시29분)

 

오늘은 다들 여유만만 느긋하게 진행 함으로 봉우리별 시간은 기록 이외의 큰 의미가 없다.

 

 

 

 

 

 

 

 

 

 

 

6봉에서 바라본 7봉 바위벼랑 중간의 소나무 자태가 너무도 아름답다.

 

 

 

 

 

 

지난 여름엔 7봉 정상석이 길가에 공사대기중 으로 있었는데, 그 이후에 공사를 하였는지 이렇게 7봉에

오를수 있도록 철계단이 놓여져 있다.

 

 

 

 

 

 

7봉 정상에서...

 

 

 

 

 

 

조망이 좋은 7봉에서 바라본 6봉과 5봉

 

 

 

 

 

 

7봉

 

 

 

 

 

 

7봉에서 바라본 8봉과 뒤로 9봉 정상

 

 

 

 

 

 

7봉을 내려서며 8봉을 감상중인 일행들

 

 

7봉에서 내려서 등로를 따라 8봉을 우회하고 철계단을 오르고 나면 이정표는 왼쪽 정상이 있는곳만 가르키고

있다. 반대로 아무 표시도 없는 봉우리가 바로 8봉인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 곳 이다.

절반은 힘들어서, 그리고 절반은 8봉이 있는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봉우리다.

이곳도 역시 진안군의 관심이 필요한 곳 이다.

 

 

 

 

 

 

8봉에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제법 힘이 든다.

식사시간을 앞두고 있어서 인지 다른 봉우리보다 힘이 든다고들 한다.

 

 

 

 

 

 

8봉에 올라 에고 힘들어~ 퍼포먼스 중인 GS테크님

오늘 아쿠아슈즈 신고 구봉산 험한 암릉을 잘도 다니신다.

 

 

 

 

 

 

8봉에서 바라본 장군봉

식후에 저 가랭이 사이 험한 깔딱고개를 올라야 한다.

 

구봉산과 따로 분리되어 홀로 별도의 이름을 가졌던 옛 이름 천황산의 기운찬 모습 이다.

마치 하나의 커다란 바위가 산을 만든듯 하다.

 

 

 

 

 

 

8봉을 패스하고 배낭지킴이를 하고 계시는 창회님이 밥터에서 손을 흔들고 계신다.

조망도 좋고 널찍한 곳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식사를 한다.

 

 

 

 

 

 

밥터에서 바라본 8봉과 지나온 봉우리들

 

 

 

 

 

 

돈내미재 (13시11분)

 

이곳에서 바로 하산을?

고민도 잠시 다들 9봉을 향해 오른다.

 

 

 

 

 

 

겨울이면 엄청난 고드름이 살벌하게 매달리는 장군봉 오름길

바위 위에서 마치 폭포처럼 시원한 물이 떨어지는데 신기하기만 하다.

 

 

 

 

 

 

철계단이 없던 시절 악명깨나 높았던 길

 

 

 

 

 

 

돈내미재에서 장군봉 정상까지는 거의 수직상승 하듯 가파른 깔딱고개다

 

 

 

 

 

 

35분 가량 가파른 깔딱고개를 지나 조망이 좋은 곳에서 한숨 돌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상까지는 가파르고 멀기만 하다.

 

 

 

 

 

 

조망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나온 봉우리들

 

 

 

 

 

 

장군봉 오름길 중간 조망터의 시원하고 아름다운 조망 (클릭) 

 

 

 

 

 

 

구봉산 정상 (14시10분)

 

돈내미재에서 1시간 가량 걸렸다.

사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좋지가 않다.

지난해 처럼 정상에서 나무를 지나 위험한 바위 절벽 위에 서면 지나온길이 보이기는 한다.

 

 

 

 

 

 

정상에 서있는 '천왕봉' 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

천황봉 이라고 했다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장으로 일제 지명을 청산 한답시고 천왕봉으로 바꿔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일제 이전부터 천황산 이라고 불리우던 곳 이다.

즉, 그동안 여러차례 언급을 하였지만, '천황' 이라는 용어가 꼭 일제의 잔재가 아니라는 것 이다.

 

 

 

 

 

 

일제시대 이전인 조선말의 용담현 지도 1872년도

 

 

현재의 구봉산 1~8봉과 장군봉(천왕봉)은 1872년도 조선말에는 별개의 산 이었던 것이다.

현재 1~8봉이 구봉산이고, 작금의 천왕봉은 천황산 이라는 별도의 산 이름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산 이었던

것이다. 2봉과 3봉 사이에 명패 없는 봉우리에 이름표를 달아주면 구봉산은 장군봉을 제외하고 독립적으로

원래의 9봉산 으로 돌아갈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2011년 8월 구봉산 산행기에 구봉산의 유래와 이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은적이 있다. (클릭)

 

 

 

 

 

 

복두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

 

바로 아래 계곡이 천황사로 이어지는 절골이고 그 뒤 능선을 넘어서면 운장산 휴양림에서 복두봉을 향해

길게 늘어선 갈거리안 계곡 이다.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사진과 같은 바위가 능선에 있고 등로는 우측 아래로 우회해서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

왼쪽 능선의 바위로 길을 잡고 가봐야 한다.

유명한 조망터다.

 

 

 

 

 

 

아래에선 뾰족한 바위처럼 생겼지만 위에 올라서면 이렇게 평평하고 넓은 조망터가 나온다.

진사님들이 카메라들고 구봉산에 올라 일출 포인트를 찾는다면 아마 이곳일 것이다.

 

 

 

 

 

 

 

 

 

 

 

진안 구봉산

 

성능좋은 망원렌즈가 있다면 이곳에서 지나온 연봉들의 모습을 잘 볼수 있을 것 이다.

 

 

 

 

 

 

조망터에서 바라본 용담호와 주변 풍경

 

아침부터 구름 가득 낀 하늘에 더욱 진한 먹구름이 몰려온다.

운장산 정상부는 비구름으로 덮혔고, 그 너머에선 비가 내리고 있는게 보인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대니 조만간 이곳도 그 바람을 타고 비구름이 몰려들 것이다.

하산하는 걸음이 그러다보니 더욱 바빠진다.

 

 

 

 

 

 

 

 

 

 

 

능선을 따라 하산 하다가 한번 더 조망을 해본다.

 

 

 

 

 

 

구봉산의 명물, 명품소나무 앞에 선 창회님

 

 

 

 

 

 

하산길은 가파른 바랑골로...

 

중간에 예상대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활엽수가 많은 숲속이라 그런지 실제 머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 그 비도 오래가지 않고 그치고 말았다.

 

 

 

 

 

 

하산 완료 (15시44분)

 

더덕 몇 뿌리 보면서 짧은 계곡 탐방후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씻고 산행을 마친다.

오랫동안 잊을수 없는 상쾌한 바람이 하루동안 함께한 즐거운 산행 이었다.

 

 

 

 

 

 

양명마을의 솟대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바라본 구봉산 

그러고 보니 산행 시간이 지난해와 똑 같다.

산행완료 (1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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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운장산~구봉산 등산지도

 

산행일자 :: 2012년 8월15일 수요일

산행코스 :: 구봉산주차장 - 1봉 ~ 8봉 - 장군봉 - 바랑재 - 주차장 (식사포함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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