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생신을 맞아 토요일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다. 늘 다음날은 가벼운 산행을
하였는데, 이번엔 마침 예년보다 단풍시즌이 몇일 빨라서 이번 주말에 계룡산의 단풍이 절정 이라는 뉴스가 전해
지니 일요일 산행은 온가족이 계룡산을 찾아 갑사계곡에 오르기로 뜻을 모은다.
예전부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태화산 마곡사가 좋고, 가을에는 계룡산 갑사가
좋다는 말이다. 갑사의 가을 단풍은 계룡8경중 하나로 진즉부터 그 빼어남이 널리 소문이 나 있다. 현재는 비록
동학사가 대전시와 가깝다 보니 계룡산의 주된 산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학사는 대부분의 영역이 비구니들의
수련도장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고, 또한 예로부터 사찰의 목적 보다는 충절을 기리는 사당을 목적으로 세워진
터라 계룡산 대표 사찰은 역시 갑사라 할 수 있겠다.
계룡산은 지리산 다음으로 두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예로부터 산이 기운이 세고 신령스럽다고 알려져
산을 끼고 많은 암자와 절이 즐비하고, 지금도 곳곳에 기도처가 있어 무속신앙의 중심처 역할을 하고 있는 산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국에 걸쳐 신비스럽고 웅장한 산들을 가르켜 신라오악 이라고 불렀는데, 계룡산은 그중 하나로
동쪽의 토함산, 북쪽의 태백산, 남쪽의 지리산 및 중앙의 팔공산과 함께 서쪽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무학대사는 계룡산을 표현하기를 금계포란(金鷄抱卵) 비룡승천(飛龍昇天)이라 하였다는데,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용이 승천하는 형의 산이라는 것이다. 조선 태조의 의지대로 신도안으로 도읍지가 옮겨졌다면, 현재 서울의 삼각산
처럼 수도의 주산이 되었을 비운의 명산 이다.
갑사일주문 (09시51분 :: 산행시작)
이른 출발 덕분인지 아직 주차장이 한적한 편이다.
상큼한 걸음으로 상가지구를 통과하고 가족 10명이 추갑사의 정취를 만끽하러 매표소를 통과한다.
갑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갑사로 가는 길은 높이 솟은 고목들로 인해 늘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번주가 단풍이 절정기 라서 갑사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갑사까지 단풍이 환상이라고 하던데 내장산 입구의
오색 단풍 정도는 아니더라도 단풍절정의 갑사를 느낄수 없다.
갑사
갑사의 유래와 영규대사
계룡산 서북쪽에 위치한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년)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으며 통일신라 시대엔 화엄십찰로서도 유명한 명찰 이었다. 岬寺, 岬士寺, 鷄龍甲寺 등으로 불리어 지다가 18세기말 부터 鷄龍甲寺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절의 이름으로 으뜸 또는 첫째란 뜻의 甲자를 써서 으뜸간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갑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영규대사로 유명한데, 임란이 발발하자 처음으로 승병을 일으킨 영규대사는계룡산 갑사에서 서산대사의 제자로 출가했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800여 명의 승군을 조직 조헌 장군과 함께 청주성을 최초로 탈환했으며 이후 금산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입적했다고 한다. 때문에 갑사는 왜군의 2차 침입 (정유재란)때 그 보복을 받아 건물 대분분이 전소되었고, 현재의 절은 그 이후에 중창이 되며 원래 대웅전 자리가 있던 현재의 대적전 에서 현재 대웅전 자리로 절의 중심이 이동하게 되었다. 어제 29일 갑사에서는 영규대사와 800여 호국 의승의 넋을 기리는 진위장군 기허당 영규대사 추모제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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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전 마루에서 오늘 산행에 참여한 일행들 (장인어른, 동서, 처제들, 그리고 딸과 조카들)
등산을 한다고 하였는데 아이들 복장이 인근 산이라고 계룡을 너무 쉽게 본듯 하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오늘 코스가 동네 뒷산 만큼 만만한 코스는 아닌데...
갑사출발 (10시15분)
갑사를 출발하여 연천봉 갈림길을 지나 금잔디 고개로 올라가는 갑사계곡에 들어선다.
학교다닐때 배웠던 수필 <갑사로 가는길>은 동학사에서 출발하여 남매탑을 거쳐 갑사로 가는길을 쓰고 있는데
오늘 우리는 거꾸로 갑사에서 출발하여 가을 단풍으로 아름답다는 갑사계곡을 감상하며 금잔디 고개로 오르는
것이다.
갑사계곡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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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구곡중 8곡인 용문폭포와 윤덕영의 별장이었던 전통찻집
갑사구곡과 매국노 윤덕영
계룡산 갑사 옆을 흐르는 계곡에 구곡 이라고 부르는 계곡이 있다. <갑사구곡>은 순종황제의 두번째 정비인 정효황후 윤씨의 숙부인 윤덕영이 갑사 계곡에다 간성장이란 별장을 짓고 별장 앞을 흐르는 계곡을 구곡이라 부르며 명소마다에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윤덕영은 순종 임금을 겁박하여 일본에게 국권을 완전히 넘겨주는 조약문서에 옥새를 찍도록 강요한 인물이다. 당시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치마 속에 옥새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는데, 이를 안 순정효황후의 백부 윤덕영이 황후를 위협하여 옥새를 강탈하다시피 뺏어다가 순종으로 하여금 합방조약 문서에 찍도록 강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공로로 윤덕영은 일본정부로부터 자작(子爵)의 지위를 받았다. 경술국치 이전부터 일제의 조선 지배를 막후에서 도운 그는 나중에 순종의 일본행까지 성사시킴으로써 중추원 부의장에까지 오르는 등 말년까지 영화를 누리며 살았다고 한다.
<구곡>은 중국 복건성의 무이구곡에서 나온 말인데, 주자가 무이산(武夷山)을 사랑하여 그곳에 무이정사를 짓고 은둔하며 아름다운 아홉 곳을 정하여 유자(儒者)들의 이상향으로 삼았다는데, 주자를 흉내내는 것이 선비의 의무요 고매한 취향인 것처럼 여겨졌던 조선시대 때 주자학을 하늘처럼 신봉하며 친명 사대주의에 물든 사대부들에 의해 이 땅에도 꽤 여러 곳에 <구곡>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갑사구곡 또한 그중 하나인데 사대주의를 넘어 친일까지한 매국노인 윤성영이 구곡입네 하고 명명한 갑사계곡의 명소에 글을 새겨 넣은 치욕적인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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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님을 만나고..
갑사를 출발하여 30여분 올랐을까.... 등로 왼쪽으로 넓은 길이 있어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길에 바람재님을
만났다. 배낭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그새 한바퀴 둘러보고 오시는지 벌써 내려가는 중이시다. 이렇게 산속에서
우연히 산님들을 만나면 늘 반갑기만 하다.
신흥암 (10시48분)
신흥암은 두개의 전각을 새로 짓는 불사가 한창이라 전기톱 소리가 요란스럽다.
신흥암 뒤로 수정봉 암릉이 강렬한 기운을 뿜으며 당당히 서있다.
갑사계곡의 단풍
이번주말이 인근의 대둔산과 계룡산에 단풍이 절정 이라고 하던데, 갑사계곡의 단풍은 사진으로 본 대둔산의
단풍만 못한것 같다.
늦으면 혼잡할것을 예상하고 조금 일찍 갑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아이들과 연로하신
장인 어른의 보조에 맞춰 천천히 걷다보니 바쁜 산객들에게 하나, 둘 추월을 당하더니 갈수록 많은 산객들이
우리를 지나쳐 산을 오르고 있다.
금잔디고개 (11시20분~46분)
금잔디 고개는 예전에 금잔디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고 금잔디는 겨우
흔적만 남아있다. 몇몇 산객들이 이른 점심을 먹고 있고, 제대로 먹을걸 챙겨오지 못하고 서둘러 길을 떠난 우리들은
과일과 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어른들은 산 아래에서 사온 공주 밤막걸리를 한잔하며 갈증과 허기를 면한다.
삼불봉에 오르며 뒤돌아 바라본 장군봉 능선과 남매탑 바로 위 이름없는 능선
갑사계곡
삼불봉 정상에서
아직까지 아이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은것 같다.
삼불봉 정상에서 오늘의 막내인 조카 민재 (12시09분)
뿌연 개스로 인해 삼불봉에서의 조망은 생각만큼 좋지가 않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왜 날이 푹해져서 개스가 뿌옇게
끼는 바람에 원거리 조망이 좋지 않은것 같다. 지난해도, 그전 해도 내장산 단풍구경을 갔을때 산정에서의 원거리
조망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조금전에 쉬어갔던 금잔디 고개가 저만치 아래로 보인다. (원안)
삼불봉
삼불봉을 지나 관음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삼불봉의 모습 이 우뚝선 세 부처님 바로 밑에 심우정사가 있다.
삼불봉의 힘찬 바위와 옆 봉우리 사이의 가파른 협곡에 물든 단풍
삼불봉 다음 봉우리에서 아이들...
아직까지는 괜찮은거지?
근데 얼굴이 점점 어두워 지는것 같구나.
장인어른과 처제
바로 아래 동서내 부부는 금잔디 고개를 오르는중 슬그머니 실종이 되었다.
나중에 문자로 확인해 보니 아래에서 잘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는데 나머지 구간동안 기다리는것도 쉽지 않은
일인지라 결국 먼저 대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삼불봉
자연성릉의 멋진 암봉을 지나며...
삼불봉 정상 옆의 삼불봉의 세봉우리중 한 봉우리와 그 사면의 단풍
자연성능을 걸으며 바라본 황적봉 능선의 파노라마 조망 (클릭)
자연성능(왼쪽)과 천황봉에서 뻗어간 황적봉능선(오른쪽) 사이의 동학사 계곡 조망
계곡 밑으로 동학사와 멀리 동학사 시설 지구가 보인다.
자연성능의 암봉들
자연성능길 따라 중앙 끝에 서있는 관음봉과 철계단 오름길
관음봉
천황봉과 능선 사면의 秋色
지나온 자연성능과 오른쪽 아래로 동학사 계곡 (클릭)
관음봉에서 상봉(천황봉)으로 가는 비지정 구간인 쌀개능선
지나온 자연성능
저 멀리 우뚝선 바위봉우리, 삼불봉이 보인다.
상봉에서 뻗어내린 황적봉 능선
통제된 상봉을 대신하여 계룡산 정상 역할을 하는 관음봉 (13시24분)
관음봉 정상석 주변은 고지를 점령하려는 인파로 가득하다.
관음봉 정상석 뒤로 보이는 문필봉과 그 뒤로 오늘의 최종 목적지 연천봉
관음봉에서 바라본 천황봉
관음봉 삼거리에서 연천봉으로 함께 걸어가는 씩씩한 조카 지환이
연천봉고개에서 연천봉으로 가면서 헬기장을 지나 뒤돌아본 문필봉
연천봉에 올라 바라본 황금조망 (클릭)
문필봉을 중심으로 왼쪽 삼불봉과 자연성능, 그리고 오른쪽으로 쌀개봉능선과 천황봉
천황봉과 쌀개봉 사면의 짙은 가을색이 참으로 곱다.
연천봉 바로 아래 등운암이 살짝 보인다.
연천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클릭)
천황봉 우측으로 금남정맥을 타고 이어지는 향적산 봉우리가 보인다.
산줄기는 천황봉에서 향적산을 지나 백제의 혼이 서려 있는 황산벌에서 숨을 죽인다.
이 멋진 조망을 보여드리려고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 장인어른은 처제와 함꼐 연천봉 고개에서
갑사로 그냥 내려가고 계셨다.
신원사 방향의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일대와 양화저수지
천황봉
계룡산 상봉(천황봉)에 대한 논란
현재 천황봉이라 불리우는 계룡산 주봉은 예전부터 상제봉(上帝峰), 상봉(上峰), 제자봉(帝字峰) 등으로 불리었으나, 1998년에 정부가 <천황봉> 이라고 고시한 이후로 현재는 천황봉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천황봉 아래는 우리나라 군의 수뇌부가 있는 계룡대와 대통령 별장으로 인해 통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의미있는 중요장소의 신령스런 뒷산 정상에 일본 천황을 붙혀 놓았다는 반대 의견들이 있다.
혹자는 천왕봉을 천황봉으로 잘못 사용한것이 아니냐고도 하는데, 계룡산에는 위 사진의 천황봉 말고도 황적봉 능선에 천왕봉이 별도로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천왕봉이나 천황봉이라는 지명이 계룡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둘다 의미 없는 이름같다. 실례로 일제 강점기 지도와 조선지지에는 계룡산의 연천봉만이 나와 있을뿐 천황봉에 대한 기록은 찾을수 없다.
천황봉을 지난번 진안 구봉산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고대로 우리나라 에서도 환웅천황 등을 언급할때 천황 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꼭 일제의 잔재라고 볼수는 없는데, 굳이 지금에 와서 1998년에 국가에서 천황봉 이라고 명명한 봉우리의 명칭을 두고 일제의 잔재다 아니다 라고 할게 아니라, 옛 이름인 상봉이나 상제봉으로 돌려놔야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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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봉 조망 바위에서 계룡산의 가을을 감상하고 계시는 님들
연천봉에 새겨진 조선 멸망에 대한 예언
계룡산 연천봉 정상 바위에는 '방백마각 구혹화생(方百馬角 口或禾生)' 이라는 어구가 새겨져 있다. 역사가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는 <사백팔이 국이(四百八二 國移)>를 의미하는데, 方은 동서남북을 뜻해 4, 百은 100, 馬는 옛부터 소(牛)를 뜻하며 牛는 八과 十으로 구성되어 80을 의미하고, 角은 두개의 뿔을 뜻해 2를 의미 한다고 한다. 口或을 합치면 國이되고, 禾生을 합치면 移(옮길 이)가 된다. 이를 종합하면 482년후에 나라를 옮긴다(망한다)는 뜻 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두고 정감록에서 예언한 정도령의 출현을 가리킨다고도 하였는데, 이걸 가지고 일본인들은 일본의 조선 합병은 하늘의 뜻 이라고 주장을 했다고도 한다.
연천봉 바로 밑에는 등운암 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는 위와 같은 참언이 전국에 횡행 하자 명성황후가 정씨의 기운을 막고 왕조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하늘과 닿아 있는 연천봉 정상밑에 정씨를 억누르는 압정사(壓鄭寺)를 세웠다고 한다. 압정사는 현재 등운암으로 바뀌어 연천봉 정상 바로 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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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봉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하산을 시작한다. (14시20분)
연천봉
하늘과 이어진다는 뜻의 연천봉은 그 기운이 계룡산 봉우리중 가장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연천봉 아래 서쪽으로 무속인들이 많이 굿당을 만들어 두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계룡산 연천봉에 올라 제단을 차려 놓고, 이곳에 왕도가 서고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천지신명께 엄숙히 기도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연천봉에서 갑사로의 하산길은 가파르다.
처음부터 계속 가파른 깔딱고개 돌계단이 이어진다.
갑사에서 연천봉 고개로 오르는 길은 그만큼 가파른 길 이다.
다들 배는 고프지만 뛰어갈수 없는길 이라 막내조카 민재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하산을 한다.
갑사 대적전(15시33분)
갑사로 돌아와 하산길은 대적전을 지나 올라오던길이 아닌 옆에 있는 옛길(자연관찰로)을 이용한다.
갑사 대적전이 있는 터는 예전 갑사가 전란으로 화를 입기 전에 있는 본래 터 라고 한다. 하여 대적전은
그 건물적 가치 보다는 그 터가 더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고 한다.
갑사를 빠져 나가니 비로소 산에서 쉽게 볼수 없었던 예쁜 붉은 단풍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계룡산 (15시53분 :: 산행종료)
주차장은 많은 관광버스와 등산객들 그리고 오고 가는 승용차로 혼잡스럽기 그지 없다.
특히, 산객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 시간에 갑사로 몰려드는 승용차의 행렬이 끝도 없다.
이들은 주차장에 공간이 없어 산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내어 줄때까지 좁은 진입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한없는
기다림을 하고 서있는데 뒤로 이런 상황을 알리없는 차들이 계속 들어와 꼬리를 물고 있다.
금잔디 고개 까지만 가고 하산을 하기엔 너무도 아쉬운, 삼불봉에 오르니 관음봉까지 펼쳐진 환상적인
자연성능을 외면할수 없어서, 그리고 삼불봉 이후로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중간탈출로가 없는 외길...
아이들에게 예상보다 힘든길이 된것 같아 미안하지만 다음에는 먹거리를 충분히 챙겨서 여유있게 쉬면서 진행을
하면 이번보다 훨씬더 재밌는 길이 될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도 자연성능에서 바라본 장쾌한 조망은 좋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장인어른의 생신을 맞아 함께한 계룡산행, 때마침 계룡산이 단풍절정기라고 하여 계룡산 갑사계곡을 찾아
조금 무리한 산행을 하였는데, 바쁘게 출발하다보니 음식을 제대로 준비 못해 힘든 산행이 된것 같다. 모쪼록 등산으로
꾸준히 몸관리를 하시는 장인어르신의 건강이 계속되어 내년 생신날 단풍시즌에도 아름다운 산행을 함께 할수 있기를
바라며, 내년에는 보다 쉬운 코스로 안내 할것을 생각해본다.
계룡산 등산지도
산행코스 :: 갑사 - 금잔디고개 - 자연성능 - 관음봉 - 연천봉 - 갑사 (9km, 6시간)
산행일시 :: 2011년 10월 30일 (10명 가족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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