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단풍을 시작으로 또 다시 단풍과 억새의 계절이 되었다. 교차로를 보니 대전의 수십개의 안내산악회중에

거의 대부분이 설악으로 행선지를 잡아놓고 있다. 꽃이든 단풍이든 제철 산행을 하면 늘 인파속에 허덕인다고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도를 넘어선 미련한짓 같아 보인다. 모든 안내산악회 차량이 정원을 채울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꾼의 입장에서 매년 최적 이자 최악의 타이밍에 설악을 찾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때 오히려 다른 멋진 곳으로 방향을 잡아 산꾼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현명한

산악회가 환영을 받을게 분명하다. 대전 한군데서만 수십대의 버스가 설악으로 향하는데, 그동네 복잡한 사정은

안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단풍은 설악에서 시작을 하였으니, 설악과 오대산 근방에서 절정을 맞고 있을것이고, 남쪽에서는 억새의 제왕

영남알프스를 선두로 하여 은빛 축제가 시작 되었다. 억새 하면 누구나 영알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오늘 산행지인

장흥의 천관산은 억새 외에도 아름다운 기암들이 즐비하니 억새의 축제장 만이 아닌 1+1 행사장 같은 느낌을

주는 기분 좋은 산이다. 마치 억새는 덤 같다. 천관산이 자랑하는 멋진 바위와 암봉들은 굳이 이 붐비는 시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산꾼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태를 뽐내며 사계절 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천관산은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며,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며, 신라 김유신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오는 산이다. 비록 설악만큼 붐비지는 않았지만

억새의 향연에 멋진 기암의 자태를 동시에 감상하려는 1+1 행사장을 찾아오는 많은 손님들을 맞느라 천관산은

연중 가장 분주한 하루를 보냈고 나 역시 그 행렬에 일원이 되어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짓는 손님이 되었다.

 

 

사람들이 분주한 주차장을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드니 방송에 나왔던 이승기와 강호동의 갈림길이 기다린다. 

예정된 코스대로 강호동길로 방향을 잡고 금강굴을 거쳐 환희대로 오르는 길을 찾아드는데, 귀연에서의 첫 산행

인데다 인파가 많다보니 산행 시작하자 마자 일행들을 잃어 버리고 반보님과 달랑 둘이서 산행 대열에 합류

하였는데, 그나마도 인파에 밀려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를 신경쓰며 산행을 시작한다. (10시45분)

 

 

 

 

600년 넘은 태고송과 장천재(長川齋)

 

 

장천재는 장흥 위씨의 상징적 제각(祭閣) 으로 인근의 방촌마을은 장흥위씨의 집성촌 인지라 천관산은 장흥위씨

(長興魏氏) 에겐 고향이라고 한다. 장천재는 호남 실학의 대표 학자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 1727~1798) 선생이

후학들을 지도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장흥군에서 강진만을 건머면 바로 옆에 강진군이 있다. 장흥군 방촌 마을의 뒷산 자락 한 부분이 다산(茶山)인데,

강진의 만덕산 아래 산자락의 한줄기가 또 다산이다. 장흥의 다산에서는 존재 위백규가 다산정사(茶山精舍)를 짓고

학문에 힘쓰고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강진의 다산초당에서는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존재 위백규와 천관산의 山誌 <지제지>

 

존재 위백규는 조선 후기 경세치용학파의 한 사람으로 호남파 실학(實學)의 대가였다. 18세기의 인물로서 순창의

여암 신경준, 고창의 이재 황윤석과 함께 호남의 3대 천재로 일컬어 지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는 이곳 장천재에서

천관산의 구석구석을 답산한 후 기존의 천관산 산행기, 고사적기 등를 참조하여 이 산에 관한 역사 문화지리 등을

기술한 산서<지제지> 를 저술하였다. <지제지>는 우리나라의 산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문헌자료로서, 대체로

산행기를 중심으로 엮어진 기존의 산서와 달리 구성면에서 이 산에 관한 내용을 여러 항목으로 세분화하여 엮은,

산서의 모범적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훌륭한 산지이다. (출처 : 김윤우/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현재의 천관산의 각 봉우리 이름들은 이 지제지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선인봉

 

조망이 없는 가파른 숲길을 40여분 오르다 보니 드디어 아래로 시원스런 조망이 열리며 진행방향으로 멋진 바위가

등장을 한다. (11시41분)

 

 

 

 

 

 

뒤돌아본 출발지 방향의 관산읍 일대 파노라마 조망도 (클릭)

 

들판너머 왼쪽으로 부용산이 우뚝 서있고, 그 우측으로 월송리의 운봉산과 녹원리의 승주봉이 낮게 서있다.

출발지 탑동 주차장과 진입로에는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서 많은 인파가 이곳 천관산에 몰려 왔음을

알수가 있다.

 

 

 

 

 

 

 

 

 

 

아름다운 암릉과 뒤로 부용산

 

 

 

 

 

 

지나온 능선과 뒤로 멀리 제암산 - 사자산 - 삼비산 - 일림산 능선 (클릭)

 

 

 

 

 

 

왼쪽 암릉과 뒤로 부용산과 운봉산 (클릭)

 

 

 

 

 

 

아름다운 파노라마 조망 (클릭)

 

 

 

 

 

 

환희대로 가는길의 아름다운 기암들...

 

 

 

 

 

 

단풍이 물들어 가는 천관산

 

 

 

 

 

 

따뜻한 가을 날씨는 뿌연 하늘을 만들어 조망을 흐리더니 오늘은 날이 조금 쌀쌀해진 덕분에 화창한 가을날을

보여주고 있다.

 

 

 

 

 

 

 

 

 

  금강굴 (12시18분)

 

  많은 인파로 인해 환희대로 오르는 등로가 

  수시로 정체 구간을 만난다.

 

  가끔씩 내려오는 분들이 있는데 한명씩

  지나야 하는 좁은길에서는 정체가 생길수 

  밖에 없다.

 

  3시까지 하산을 하라고 하였는데 환희대로

  오르는데 이렇게 정체가 되니 제시간에 하산

  할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산행 오르기 전엔 금강굴이 양근암과 대비되

  는 음양의 이치인줄 알았는데, 여근석은 중간

  금수굴 능선에 있는 금수굴 이다.


 

 

 

 

 

금강굴 지나 올려다본 진행방향의 대세봉과 기암들

 

천관산은 억새로 유명하지만, 억새 보다도 더 아름다운 멋진 바위들이 있으니  이 가을에 많은 사람들로 부터

더욱 사랑을 받고 있는것 같다. 바위가 덤인지, 억새가 부록인지 모를 지경이다.

 

 

 

 

 

 

환희대로 올라가는 길에 바라본 천관(天冠) 같은 바위들...

수십 개의 멋진 바위 봉우리가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 부른다는데 어찌 보면 신라시대의

금관 같은 모양 같기도 하다.

 

 

천관산의 이름 유래

 

천자의 면류관에 오채의 주옥이 꿰어 있듯 주옥같은 암석들이 박혀 있는 산이란 뜻에서 온 산 이름으로 보기도

하는데 천관산의 이름은 화엄경에서 유래된 산 명으로 천관산은 곧 천관보살의 영(靈)이 머물고 있는 산 이란

뜻을 가진 이름 이라고 한다.

 

 

<동남방에 지제산(支提山)이라 부르는 산이 있다. 옛적부터 여러 보살의 무리가 그 속에 머물고 있었으며, 지금도

보살이 머물고 있는데 이름하여 천관보살이라 한다. 그의 권속인 1천 보살의 무리와 함께 늘 그 가운데 있으면서

법(法)을 연설(演說)하고 있다> (출처 : 화엄경)

 

 

<한 산이 남방을 진호(鎭護)하며,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 있다. 세인의 전설에, 통령화상이 가지산(迦智山)에서

오면서 멀리서 이 산을 바라보니 마치 기둥이 버티고 서 있는 듯 하므로 지제산이라 이름하였고, 가까이 다가가

이 산을 바라보니 마치 산정에 천자의 면류관을 드리운 듯 하므로 천관산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이 산은

참으로 영선(靈仙:신선)이 살고 있는 곳이다.> (출처 : 김여중(金汝重:1556~1630) <유천관산기(遊天冠山記)>)

 

 

 

 

 

 

종봉

 

 

 

 

 

 

점심 식사를 하면 딱 좋을것 같은 종봉에 반보님과 함께 올라서서 조망을 하며...

 

 

 

 

 

 

종봉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능선길

 

 

 

 

 

 

종봉에서 바라본 기암들...

저 바위들도 멋진 이름들이 있을것인데..

 

 

 

 

 

 

종봉에서 구정봉 일대의 바위군을 배경으로 선 반보님

 

 

천관산의 구정봉

 

구정봉은 맨 왼쪽에서부터 대장봉-천주봉-문수보현봉-대세봉-선재봉-관음봉-신중봉-홀봉-삼신봉 등 각기

기묘한 형상을 하고 솟아있는 9개 암봉군을 통틀어 일컫는 봉 이름이다.

 

 

 

 

 

 

물개바위

 

 

 

 

 

 

건너편의 금수굴 능선과 뒤로 하산시에 내려올 양근암 능선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

 

 

 

 

 

 

천관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12시39분)

원래 이시간이면 환희대를 지나 식사를 하고 있어야 정상인데... 인파로 인해 늦어졌다.

 

 

 

 

 

 

멋진 바위

 

 

 

 

 

 

엄청나게 큰 기암과 비로봉

 

 

 

 

 

 

보현봉

 

 

 

 

 

 

아래로 지나온 능선과 조금전 반보님과 둘이 올랐던 작은 소나무가 있는 종봉이 보인다.

 

 

 

 

 

 

 

역광을 받은 거대한 바위와 구절초

 

 

 

 

 

 

 

 

 

 

비로봉을 한장 담고 돌아 가는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일락님 부부와 함께

 

 

블방 이웃인 여수에 사시는 일락님 내외가 나와 반대 코스로 진행을 하면서 용케도 나를 알아보신다.

블로그를 통해 사진으로만 만나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갑다.

사진으로 자주 보다 보니 마치 자주 만났던 느낌이 든다.

아... 그런데 나는 연대봉으로... 일락님은 아마 벌써 연대봉~환희대를 거쳐서 하산을 하시는것 같은데...

산악회 일행들과 오다보니 이런 만남에 막걸리 한잔 못하고 헤어지려니 너무 아쉽기만 하다. 

 

그나저나 이날 천관산에 인파가 엄청나서 같이온 귀연 산님들도 모두 잃어 버리고 반보님과 달랑 둘이서

산행을 하고 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오고 가는 길에서 한눈에 나를 알아보시다니...

일락님 시력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ㅎㅎ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 반갑고, 고맙고, 아쉽기만 하다.

귀가길 버스속에서 핸드폰으로 억불산을 찾아 우연히 들어가서 감탄을 했던 글이 일락님의 블방이고 보니

이날은 이래 저래 일락님과 한번은 만났어야 하는 날 이었나 보다.

 

 

 

 

 

 

천주봉

 

사진으로 보면 볼품 없이 작아 보이는데, 상당히 큰 바위다.

천주(天柱)를 깍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속에 꽃아 세운것 같다고 하는데 그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큰

광개토대왕 비석 같이 보인다.

 

 

 

 

 

 

진죽봉 - 석선봉 - 비로봉 능선

 

 

 

 

 

 

중수봉?

 

 

천관산 지장봉의 위치는?

 

다들 지장봉 능선 이라고 부르고, 여러 지도에도 지장봉이 나와 있지만 실제로 지장봉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

할수가 없다. 수십명의 블로그와 카페 심지어 지도 까지도 제 각각 이다.  천관산 전체 봉우리를 표시하는 상세

전도가 한장도 없을뿐더러 지도 마저 제각각 이니 오르는 사람들마다 자기 마음대로 봉우리 이름을 정하고

있는듯 하다.

 

절반의 사람들은 진죽-석선-비로-중수봉을 언급하고 있으며, 잘못된 지도를 보고 봉우리를 판단하는 분들은

비로봉 위치에 지장봉을 대입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 현재 천관산의 봉우리 이름에 기초 한다는 존재 위백규의 <지제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검토하면서 문제가

되는 현재 지장봉 능선(?)의 봉우리들과 좌표가 되는 구룡봉과 문제의 지장봉을 다시 검토해 보자.

 

 

1. 진죽봉

    

거석(巨石)이 기둥같이 대장봉 중대(中臺)위에 홀로 우뚝 서있는데,자그마한 조각돌을 그밑에 고인것이 마치

사람이 만든 것 같다.하면(下面)은 모나게 깎아졌고 두어자 위에 넓이와 길이가 판자(板子)같은데, 꼭대기를

뚫고 아래로 드리워져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배 의 돛에 자리를 걸어 놓은 것 같다. 불설(佛說)에 관음보살이

불경을 돌배에 싣고 이곳에 와 쉬면서 그 돛대를 여기 놓아둔 것이라 한다.

 

2. 석선(石船)봉

   

진죽봉 아래 있다. 큰 돌이 배 같아 뱃전밖에 돌가닥이 있어 사람의 팔뚝 만한데 ,그 끝이 나누어져 다섯 손가락이

되었고 ,엄지 손가락은 길지만 가운데는 짧아 펴지거나 불설에 서축(西竺) 사공(沙工)이 돌아감을 고하고, 그 한

팔을 잘라 관음보살께 시주하고 후세에 신표(信標)로 삼겠다고 하니 관음보살이 뱃전에 붙여 두라고 명(命)하였다

한다.

 

3. 비로봉

    

진죽봉 서쪽에 있으며,돌더미가 포개어 산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가운데는 뾰쪽하고 서편은 낮아 ,바라보면 큰

일산(日傘)과 같은데 그 돌 사이를 이용하여 발걸음을 빨리하면 두루 돌아볼수 있거니와 가끔 선천시대(先天時代)

의 굴껍질이 돌에 붙어 있는것을 보게된다.

 

4. 중수봉

   

비로봉 서쪽에 있으니 뭇돌이 무더기로 모여 한결같이 빼어나 보인다. 불설에 부처님이 대장경(大藏經)을 연설할때

서축(西竺)의 사중(四衆 · 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尼의 총칭)이 모여 듣다가 머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5. 구룡봉

   

아육탑 서쪽 정상에 있다. 돌사다리를 비스듬이 타고 올라가 절학(絶壑 · 깊은 골짜기)을 굽어보면 정신이 아찔하여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없고 다만 먼곳을 바라볼 수 있을뿐이다. (중략)

 

6. 지장봉

   

구룡봉 서쪽 아래에 있다.큰 골짜기가 휘어 들어 많은 돌이 비늘처럼 모인 가운데 한 석봉이 엄연히 솟아 있는

것을 본다. 머리며 이마며 어깨등이 흡사 금불과 같다. 좌우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수없이 모여 있는데 그러나

차례대로 서 있다. 스님이 전한 말로는 십왕(十王) 권속들이라 하니 참으로 할 말이 없으나 , 또 하나의 절관

(絶觀)임에 틀림없다.왼쪽에는 천당석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옥굴이 있다.

(출처 :: 존재 위백규 <지제지>, 덕운 위황량 <天冠山에 꿈을심고>)

 

이렇게 보니 지장능선 이라고 칭한 능선의 바위군들이 정리가 된다.

 

진죽봉 - 석선봉 - 비로봉 - 중수봉 순서다.

또한 책자 <천관산>에도 <환희대 서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조각돌로 그 밑을 고인 것이 마치 사람이 만든 것

처럼 보이는 봉이 진죽봉이요, 그 아래가 석선봉(石船峰), 비로봉(毘盧峰), 중수봉(衆秀峰)이다.> 라고만 나오지

지장봉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럼 문제의 지장봉은 어디에 있는것인가? 위 지제지의 설명대로라면 현재 천관산 지도에 나오는 지장봉의

위치는 모두 틀린것이 아닌지...

 

아래 봉우리가 제법 자세히 나온 천관산 참고지도를 올려본다. 지제지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서 봐도 소위 지장봉 능선 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능선에는 지장봉이 없는 것 이다.

지제지에는 구룡봉 서쪽 이라고 했으니 분명 진죽봉에서 이어진 능선의 봉우리는 아닌것 이다.

현재 배포된 많은 지도에 표시된 지장봉은 구룡봉 서쪽이 아닌 북쪽에 있는 비로봉을 가리키고 있는것 같다.

그럼 환희대에서 구룡봉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뻗은 능선중에 지도에 572봉이라고 쓰인 봉우리나 그 능선 다음

봉우리가 암벽으로 멋지게 생겼는데 그게 지장봉은 아닐까?

 

 

 

 

천관산 지도


 

 

 

 

멋진 조망이 있는 가을 식탁

 

 

 

 

 

 

올려다본 환희대에서 연대봉 으로 가는 능선

 

 

 

 

 

 

천관사로 가는 능선

 

 

 

 

 

 

환희대에서 바라본 연대봉 (13시9분)

 

 

 

천관산의 다른 이름들

 

천관산의 이름들은 존재 위백의 저서 <지제지>에 5개의 산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데, 천풍산(天風山), 천관산

(天冠山), 지제산(支提山), 불두산(佛頭山), 우두산(牛頭山)이 바로 그것이다.  

 

천관(天冠) 이란 이름은 불서에 해동의 지제산은 천관보살(天冠普薩)이 머문곳 이라 하여 부른 이름이다 라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천관산은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해서 천풍(天風)산 이라 불리웠으며, 지제(支提)산 

이란 이름 또한 불서에서 지제가 탑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하늘을 괸다는 뜻인데, 이 산의 모양이 그와 같아 지제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불두산, 우두산 으로 불리웠다고 하는데, 천관산의 산세가 몹시 기운차서 흰연기 같은

신묘한 기운이 서린다고 했다는데 산 곳곳에 우뚝서있는 멋진 기암들을 보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희대에서 바라본 천관사 능선

 

환희대에 오르니 각각 다른 코스를 타고 모인 인파가 엄청나다.

많은 사람들이 환희대의 혼잡한 곳을 벗어나 이곳 저곳 풍경 좋은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비로봉 능선도 잘 보이고...

 

 

 

 

 

 

 

 

 

환희대에서 바라본 비로봉 능선 (왼쪽) 과 천관사 능선 (오른쪽)  (클릭)

아래는 농안저수지 뒤로 들판 건너는 부용산 

 

 

천관산의 봉우리 이름 유래

 

천관산의 각 봉우리 이름은 이미 고려때 정명국사(靜明國師) 천인(天因:1205~1248)의 <天冠山記>에 나와

있는데 조선시대 산아래 장천재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존재 위백의 저서 <지제지>에 33개 기암 봉우리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고 한다.

 

 

신라 신호왕(神虎王:신무왕)이 태자가 되었을 때 마침 임금의 견책을 당하여 산 남쪽 완도(莞島)로 귀양을 갔다.

화엄 홍진(華嚴洪震) 대사가 본래 태자와 좋아하는 사이라, 동궁(東宮)의 일이 급함을 듣고 달려가 이 절을 의지

하여 밤낮으로 정성껏 예를 하며 화엄 신중(華嚴神衆)을 불렀다. 곧 여러 신중을 감동시켜 부름에 응하여 절의

남쪽 봉우리에 죽 늘어섰으니, 지금의 신중암(神衆岩)이 그것이다. 절 남쪽에서 바라보면 바윗돌이 더욱 기이하여

뾰죽하게 우뚝 솟은 것은 당암(幢岩)이요, 구부정하여 몸을 굽혀 명령을 듣는 것 같은 것은 측립암(側立岩)이요,

엉거주춤하여 사자가 뽐내는 것 같은 것은 사자암(獅子岩)이요, 겹겹이 쌓아 올려서 굄질하여 놓은 것 같은 것은

상적암(上積岩) 하적암(下積岩)이요, 외연(巍然)히 가운데 서서 홀로 높은 체 하는 것은 사나암(舍那岩)이요,

뾰족뾰족하게 양쪽을 옹위하여 공결(空缺)된 곳을 보충하는 것은 문수암(文殊岩) 보현암(普賢岩)이다. 암자

(구정암)의 구멍으로부터 비탈길을 기어 올라가면 넓적한 석대가 있는데, 환희대(歡喜臺)라고 한다 산에 오르는

자가 위험한 길로 곤란하다가 여기에서 쉬면 기쁘다는 뜻이다.

(출처 : 고려 보조국사 천인의 천관산기 中)

 

 

 

 

 

 

환희대에선 반보님

 

 

반보님과 둘이서 연대봉으로 가다 사진의 바위에 가려진 멋지게 우뚝솟은 바위 식탁을 찾아 기어 올라 매실주를

반주 삼아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일어서서 지나온 환희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것 같아 환희대로 다시 돌아

가는길에 연대봉으로 가는 귀연님들을 만난다.

 

 

 

 

 

 

식사터에서 바라본 조약도 방향의 바다 (클릭)

 

 

 

 

 

 

식사터 바위에서 바라본 대장봉의 환희대

 

 

환희대의 유래

 

책바위가 네모나게 깍아져 서로 겹쳐 있어 마치 만권의 책이 쌓여진것 같다는 대장봉의 석대를 환희대라 한다는데

만권의 책이 쌓여진것 같은 바위는 찾을수가 없었다. 이곳에 오른자는 큰 성취감과 기쁨을 얻게 된다고 해서

환희대라고 하는데... 그 유래를 찾아보니 요즘에는 그 환희를 쉽게 찾을수 없는것 같다.

 

환희대란....

다름아닌 고려시대 <천관산기> 에 나오는 환희대는 당시 등산로가 제대로 없어 천관산에 오르는게 위험하였는데

<산에 오르는 자가 위험한 길로 곤란하다가 여기에서 쉬면 기쁘다는 뜻>이다 라는 뜻 이라고 하니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 현대에 있어서는 찾아볼수 없는 '환희' 가 아니겠는가...

 

 

 

 

 

 

환희대 우측의 지나온 명품바위들

이런 멋진 조망들이 열리는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연대봉으로 가는 길

 

 

 

 

 

 

구룡봉

 

 

환희봉에서 구룡봉이 보이는 곳으로 가보았다.

구룡봉까지 다녀올수도 있을테지만, 올라오는 길에 정체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쉽지만 이렇게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한다.

 

 

 

 

 

 

진죽봉

 

이 라인에 지장봉이 없으니 지장능선 이라 부르는것은 잘못된것 같다.

 

 

 

 

 

뒤쪽에서 바라본 천관사 능선

 

 

 

 

 

 

다시 환희대를 지나와 연대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천관사 능선과 우측의 우뚝선 천주봉

 

 

 

 

 

 

연대봉으로 가는 억새능선

 

 

 

 

 

 

연대봉으로 가면서... 왼쪽은 지나온 천주봉이 있는 천관사 능선, 중앙은 금수굴 능선, 우측은 양근암 능선

 

 

 

 

 

 

천주봉에서 연대봉까지 파노라마 (클릭)

 

 

 

 

 

 

아름다운 억새밭

 

 

 

 

 

 

억새는 바람결에 춤을 추고

 

 

 

 

 

 

이승기와 강호동이 여기서 만나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갔던가...

 

 

 

 

 

 

연대봉으로 가는길

 

 

 

 

 

 

연대봉

 

 

 

귀양을 떠난 천관산

      
이성계가 위화도 에서 회군하여 사실상 역성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을 무렵 무학대사의 말을듣고 전국 명산의

산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혁명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각 산의 신들은 이성계의 혁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이성계는 천관산의 신에게도 지지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천관산의 산신은 "지지 할수없다"고 대답 하여 이성계는 크게 화가 났고, 곧이어 내려진 조치가 바다건너

흥양(興陽·현재고흥) 으로 귀향 명령이 내려졌다. 이렇게 해서 천관산은 산가운데서는 유일하게 귀양을 간 산이

됐다고 하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도 천관산을 흥양의 천관산으로 적은 기록들이 가끔 나온다고 한다.

 

 

 

 

 

 

 

 

 

 

 

 

 

 

연대봉 으로 가는 억새길

 

 

 

 

 

 

연대봉

 

 

연대봉과 정상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다.

정상석을 포기하고 억새밭으로 나와 봉수대를 담아 본다.

 

연대봉의 옛 이름은 옥정봉이었으며 고려 의종때 봉화대를 설치하여 이후 봉수봉으로 바뀌었다가 후에 같은 

의미인 연대봉(烟臺峰)이라고 변경하여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고 한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그 뒷 이야기

 

천관산에는 신라의 김유신이 사랑했던 천관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온다.

<김유신은 소년 시절에 기생인 천관의 집을 드나들며 서로 사귀었는데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마을을 잡은 뒤,

 천관의 집으로 자신을 태우고 간 말의 목을 쳐서 죽이고 오로지 무예를 닦아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었다.>

 

이것은 모두가 잘 아는 얘기인데, 천관산의 전설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줄거리 이다.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은 경북 월성군 내남면 일남리 뒷산에 암자를 짓고 숨어살면서 김유신이 성공하기를

바랬는데, 삼국을 통일한 뒤 경주로 돌아가던 김유신은 이 소문을 듣고 천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함께 경주로

돌아가자고 했다.

 

천관은 자기는 천관보살의 화신이며 김유신이 큰일을 할 사람임을 알고 기생이 되어 그 마음을 시험했 으나

이제는 자기의 일도 끝나고 두 사람의 인연도 끝났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김유신은 말을 몰아 그 뒤를

쫓았는데 장흥 천관산에 와서 천관을 놓치고 말았다. 하여 장흥 천관사에는 천관보살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고 한다. 

 

천관산의 이런 김유신과 천관녀의 설화를 모 단체에서 신문에 신라가 전라도에서 건국한 결정적 근거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던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연대봉에서 바라본 외동리로 내려가는 능선과 수동 저수지

 

 

연대봉 봉수대에 올라서니 전망이 참으로 뛰어나다. 쾌청한 날은 팔영산, 완도의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를 비롯한

남해안 다도해, 해남의 대둔산, 장흥의 제암산, 서쪽으로는 주작산, 우측으로는 영암의 월출산, 북쪽으로 광주의

무등산과 담양의 추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개스로 인해 원거리는 희미하니 알아볼수가 없다.

 

 

 

 

 

 

연대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클릭)

 

왼쪽은 장천재로 되돌아 가는 능선이고, 우측은 외동리, 연지리로 가는 능선이다.

정면에 수동 제1,2 저수지가 보이고 중간 갈림길에서 사진의 왼쪽 능선으로 빠져 외동리로 간다.

 

 

 

 

 

 

연대봉 아래의 벼락이 머물다 간 자리

 

 

 

 

 

 

연대봉에서 장천재로의 하산길

 

 

 

 

 

 

억새

 

 

 

 

 

 

봉황봉과 관산읍

 

 

 

 

 

 

하산길에..

 

 

 

 

 

천관산의 가을 꽃들 

01

02

03

04

산부추 

구절초 

철쭉?

용담 



 

 

 

 

 

 

 

 

 

 

 

 

 

 

 

 

 

 

 

 

 

 

 

 

 

 

 

 

 

 

 

 

하산길 풍경

 

 

 

 

 

정원암(좌) 과 사모봉 (우)

 

 

 

 

 

 

양근암

 

이 각도로 봐야만 남근석으로 보이는 정도니 동산의 남근석 보다는 질이 많이 떨어진다.

금수굴 능선에 있는 여근석인 금수굴과 함께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다고 한다.

우측 작은 네모는 우리나라 최대의 남근석인 동산의 남근석

 

 

 

 

 

 

관산읍 전경

 

 

천관산과 일본정벌

 

고려시대 원나라의 쿠빌라이는 고려를 정복하고 바로 일본을 정벌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쿠빌라이는 고려에 크고 작은 전함 9백 척을 건조하도록 하였으며, 전함의 건조는 부안의 변산과 장흥의

천관산의 2개소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원나라는 기마민족으로 배를 건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송의 전함과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를 하였으며, 몽골군은 고려의 전함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비록 당시

두번에 걸친 원정은 태풍으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아쉽게 패전을 하고 말았지만 당시 변산과 천관산의

숲이 얼마나 울창했으면 수만명의 인부와 목수가 동원되어 그 많은 전함들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두부나 식빵처럼 생긴 바위를 지나며

 

 

 

 

 

 

마지막 기암

 

 

세족탕에서 차가운 약초물에 발을 씻으니 피로가 확 풀리는듯 하다. (15시30분) 산행종료.

화장실에서 땀을 씻어내고 주차장에 있는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뒤에 있는 기이한 건물로 가본다.

 

 

 

 

 

 

 

 

 

 

 

 

 

 

신의(神醫) 라는 드라마 세트장 이라고 한다.

 

 

 

 

 

 

항공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고 하는데... 근사한 모습이다. (안내판 사진 참고)

 

 

 

 

 

 

장흥으로 이동하여 뒤풀이를 하는데 강건너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멋진 산이 보인다.

억불산 이다.

 

 

 

천관산의 기암에 감탄을 하고 억새에 반했던 하루...

서프라이즈 했던 일락님과의 우연한 만남이 너무도 반가웠고...

마무리는 장흥에서 맛난 소머리 국밥

귀연님들과 함께한 첫 산행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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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지도

 

산행코스 :: 장천재 - 금강굴 - 환희대 - 진죽봉 - 환희대 - 연대봉 - 봉황봉 - 장천재 (4시간45분 정체, 식사포함)

산행일시 ::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with 귀연산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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