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산. 산세가 웅장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그 기세가 사뭇 남다르게

다가오는 힘차고 멋진산이 있으니 바로 문경의 진산 이며 문경새재의 주산 이라는 주흘산 이다. 주흘산 이라는 뜻은

우뚝선 우두머리산 이라는 말로 주변에 대미산과 조령산등 천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산세가

힘차게 뻗어있어 주변 산들을 호령하는 산으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인 중악(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고 한다.

 

 

그간 주흘산에 가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른 산을 선택했던 이유는 주위에서 주흘산은 멀리서 보는

바와 달리 안에서는 별볼일 없는 산 이다 라는 의견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겉에서 보기엔 힘찬 바위산 같은데 안에

들어가면 조망터 하나 없는 육산 이라는 의견을 여러차례 들었는데 이번에 막상 체험을 해보니 그분들의 조언에 

공감을 하며 이 멋진 산에 쓸만한 조망터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나마 일정을 조금 늦춰서

단풍철에 갔으면 아름다운 단풍에 위안 이라도 삼았을 지도 모르지만 조망터의 부족함은 피할수 없을것 같다.

 

 

주흘산 관봉(남봉)에서 주봉으로 오는 구간이 산아래에서 봐도 기골찬 암릉 인데, 관봉에 올라 주봉으로 왔더라면

그나마 암릉과 조망을 즐길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아쉬웠던것은 영봉 이후에 월악산

에서 대미산 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조망터가 없다는 것이고, 또한 건너편 조령산과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조망을 전혀 할수가 없다는데 있다.

 

 

오늘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나온 김정운 교수는 인간은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임마뉴엘 칸트가 말한것을 예로

들면서 감탄에 대해 설명을 하였는데, 칸트는 '장엄의 미학'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이 감당할수 없을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바라보며 인간이 느끼는 숨 넘어가는 감정이 바로 인간이 사는 이유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운 교수는 또 묻는다. 산에 왜 올라가세요?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어찌 됩니까? 바로 감탄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굳이 인간이 사는 이유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지 않고서도 산꾼들이 땀을 흘리며 산에 올라가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시원한 조망터나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주변을 바라보며 이와 같은 감탄을 하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싶다. 만일 힘들여 산에 오르는 자에 대한 제일의 보상이 능선이나 정상에서의 멋진 조망으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라면 주흘산은 밑에서 올려다 보던 기골찬 모습과 달리 김빠진 맥주와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앞에 주차를 하고 새재 1관문을 향해 걸어간다. (10시21분)

왼쪽으로는 조령산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우리가 올라야할 주흘산이 보인다.

 

 

 

 

 

주흘관

 

많은 드라마에서 공성전의 장소로 사용되었을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주흘관 앞 너른 공터 한구석에 공성전에 사용되었을 대형 장비들이 그대로 비치되어 있다.

방송에서 공성 장면을 잘 보면 이곳 주흘관 앞 벌판에서 촬영한것을 볼 수 있을것 같다.

 

 

 

 

 

주흘관을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혜국사를 향해 오른다.

 

 

 

 

 

여궁폭포 (10시44분)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여자의 마음을 닮아 여궁폭포를 여심폭포 라고도 하며 원래는 파랑소라 불렀던 곳이다.

 

 

 

 

 

혜국사 (11시06분)

 

여궁폭포를 지나 작은 구름다리를 하나 건너면서 계속 조망이 없는 오름길이 이어진다.

조망이 없는 길은 주봉 정상 바로 밑까지 이어진다. 아니 주흘산 전체의 조망처는 주봉 한군데라고 봐도

무방할것 같다. 다시 한참을 오르고 나니 혜국사 바로 밑의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는 주봉으로 가는 등로이고, 직진은 혜국사 방향인데, 혜국사를 다녀와서 다시 주봉으로 올라야 한다.

 

 

혜국사

 

혜국사(惠國寺)는 주흘산(主屹山)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문성왕때 (846년)

보조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이름은 법흥사(法興寺) 였다고 한다.

 

그 뒤 고려 말에 홍건적이 두번의 난을 일으켰는데, 공민왕 10년 두번째 침입때 개경이 함락을 당하는 국란을 겪게 되고

공민왕은 난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피신하다가 개성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인 험난한 문경새재의 좁은 산길을 올라

홍건적이 감히 쫒아 오지 못할 만큼 험준한 산속의 혜국사에 피신하다가 개성으로 돌아갔고 공민왕은 당시 작은 절이지만

스님들의 수행과 정진을 보고 감복하여 약간의 재물을 내려 주었는데 이 재물로 가람을 중수하고 국왕의 은혜에 보답

한다는 의미로 <혜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충북 영동 천태산에 있는 천년고찰 영국사 또한 원래는 국청사로 불리던 절이 공민왕이 피난길에 쉬어가며 현판을

써주고 나서부터 영국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예전엔 산속의 사찰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산장의 역할을 했고

이처럼 국난을 피해 파천을 하는 왕에게 까지 험한 산속의 사찰은 안전한 쉼터 역할을 했던것 같다.

 

 

 

 

 

 

 

 

 

 

 

 

 

 

 

 

 

 

 

 

 

 

혜국사 대웅전은 가파른 돌계단 위 꼭대기에 세워져 있으며, 그 왼쪽으로 산신각이 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풍경

 

 

 

 

 

 

 

 

혜국사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낮은 산에서는 보기 힘든 잘생긴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 서있다.

금강송 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굵고 쭉쭉뻗은 금강송이 시원한 氣를 뿜어내고 있다.

특히 잘생긴놈을 껴안고 기를 받아보려 했더니, 반보님이 조금전에 어떤 아줌니가 껴안고 기 다 받아가 버려

남은 기가 없다며 놀려댄다.

 

 

 

금강송

 

금강송(金剛松)은 황장목(黃腸木), 강송(剛松), 춘양목(春陽木), 춘향목(春香木), 미인송(美人松), 적송(赤松),

직송(直松) 등으로 불리우는 금강송은 소나무의 제왕 이라고들 말한다.


임금과 사대부의 관재로 쓰이며, 속이 황금빛을 띠어 황장목이라고도 불렸으며 궁궐과 고찰의 대들보로 사용

되었다 한다. 금강송은 더디게 자라 나이테가 조밀하고, 송진 함유량이 많아 잘 썩지 않고 갈라지지 않으며 강도가

높아 옛날부터 우수한 목재로 사용된다. 

 

금강송이 자라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지역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황장금산(黃腸禁山) 으로 

지정돼 서민들이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고 엄격한 보호를 받아왔다. 하지만 일제시대 무차별적인 금강송 수탈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금강송이 거의 사라져 현재 이런 금강송을 보호하기 위해 울진 소광리 같은 곳은 금강송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금강송이 자랄 수 있는 남방 한계선이 바로 이곳 주흘산 이라고 한다.

 

 

 

 

 

안정암 갈림길에서 ... 오늘 산행에 동행한 반보님 (11시34분)

혜국사에서 20분 가량 올라서니 혜국사의 유일안 암자인 안정암 갈림길에 도착한다.

갈림길에서 주봉으로 등로 안내가 되어 있고, 안정암 쪽은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다.

 

 

 

 

 

 

대궐샘 (11시59분)

 

 

공민왕이 난을 피해 숨어 있을때 행궁을 설치했던 대궐터가 있는 곳 이라고 한다.

고로 이 대궐샘은 고려시대 공민왕도 마셨을 어수(御水)가 되시겠다. 

850m 고지에 있는 대궐샘의 약수는 시원하고 물맛 또한 아주 좋다.

 

 

 

 

 

가지가 신기하게 꼬아진 나무

 

대궐샘부터 980m의 대궐터능선에 오르기 까지 구간이 주흘산 주봉을 오르는데 가장 힘들다는 깔딱고개다.

조망터라도 나온다면 사진도 찍어가며 쉬어갈텐데 조망터 하나 없는 주흘산 오름길은 열심히 걷는것 말고는 

달리 할게 없다.

 

 

 

 

15분간의 깔딱고개 오름을 지나니 나무데크로 된 편안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첫번째 만나는 조망터

 

 

 

 

 

반보님이 서있는 능선따라 주흘산 관봉 (남봉, 고깔봉)과 그 뒤로 멀리 백화산이 보인다.

관봉 정상에 있는 관봉 유래에 관한 안내문을 옮겨본다.

 

 

主屹 冠峰(주흘관봉, 고깔봉)


예로부터 주흘산은 나라의 큰 산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를 올리던 신련스런 산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이기도 한 주흘산은 주봉의 기상을 받들어 남쪽에 이 봉을 세워 산세의 웅장함과 장쾌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그 동안 이름없이 일부 산사람들이 주흘의 남쪽에 있다하여 '남봉'으로 불러왔으나 신라때 문경의

옛이름이 관산현(冠山縣), 고사갈이성이라 한 것은 아마도 이 산의 생김새가 '갓' 또는 '고깔'과 같은 형상을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연유로 문경 애산인(愛山人)들의 뜻을 빌어 이 봉의 이름을 '주흘 관봉(主屹 冠峰)'

또는 '고깔봉'으로 새겨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지곡리와 우측으로 문경읍, 죄측 뒤로는 단산

 

 

 

 

 

 

 

 

주봉으로 걸어가며 정상 밑 조망터에서 반보거사님

산색이 슬슬 가을로 가는것 같다.

 

 

 

 

전좌문

 

 

주흘산(주봉) 정상 바로 아래 문경읍 지곡리로 통하는 입구에 있는 바위로, 옛날 공민왕이 이곳에 피신해 있으면서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파발(擺撥)을 기다리기 위하여 앉아 기다렸다는 곳이라 전한다.

 

바위가 마치 문을 이루는 형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전좌문이고, 그 바로 옆으로 두개의 바위가 병풍으로

세워진 것처럼 되어 있는 곳을 전좌바위로 일컬어진다.

 

 

 

 

 

주흘산 주봉 (12시33분)

 

 

제2봉이 주봉(主峰)이 된 이유는?

 

주흘산 최고봉은 1106m의 영봉 이다. 하지만 이곳이 주봉(主峰)이 된것은 산세가 막 비상하려는 학의 모양인데

이곳 주봉이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 이라고 한다. 또한 주흘산에서 이곳의 조망이 가장좋은데 그래서 높이에

상관없이 이곳을 주봉으로 삼았다고 한다.

 

 

 

 

 

 

 

 

 

주봉에서의 조망

운달산과 그 앞으로 성주봉, 종지봉이 가깝게 보인다.

 

 

주흘산 설화

 

주흘산이 솟아오를 때에 산밑에 도읍을 정하리라고 생각하고 솟아 올라보니 삼각산이 먼저 솟아 있어서 삼각산을

돌아 등지고 앉았다고 한다.  전국의 모든 산들이 서울쪽을 보고 있으나, 유독 주흘산 만이 돌아앉은 이유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남쪽 사면으로 수백 길 높이의 절벽을 만들어 철옹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주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조망 (클릭)

 

 

 

 

 

주흘산의 유일한 조망터인 주봉에서의 문경쪽 조망

이곳에서 실컷 조망을 해두어야 그나마 미련이 없을것 같다.

 

 

 

 

주흘산 주변의 산들을 거의다 와보았는데, 정작 문경의 진산 이라는 이 거창한 주흘산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이곳을 오려고 할때마다 주위에서 조망이 볼품 없다고 말렸기 때문이다.

오늘에야 비로소 그들이 왜 말렸는지 이해를 하게 된다.

 

 

 

 

당겨본 관봉 (남봉, 고깔봉)

 

 

 

 

 

대미산과 왼쪽으로는 포암산으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 우측으로는 마전령 넘어 운달산으로 가는 능선의 봉우리들

 

 

 

 

 

주흘영봉 (13시36분)

 

주봉 정상에서 일행들과 식사를 하고 영봉으로 향한다.

주봉에서 영봉까지는 조망터 하나 없는 숲길...

 

주흘산이 문경의 진산이라면 주봉에서 영봉가는 능선상에 월악에서 포암산, 하설산, 문수산, 대미산을

잘 조망할수 있는 곳에 잡목을 일부 제거하고 조망터를 하나 만들어 두면 어떨까....

조망터 하나 없이 잡목으로 가리워진 능선길은 나무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화려한 조망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주흘산의 악명은 바로 이렇게 조망이 없는데서 생겨난 것이다.

 

 

백미일추 주흘산

 

멀리서 봐서는 기골이 장대하고 멋지게 생겼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주봉을 제외 하고는 조망터가

하나도 없는 따분한 산 이라 주흘 이라는 그 장대한 이름이 아깝게만 느껴진다. 언제 주흘에 다시 올것인가.

다시 오고싶은 매력을 쉬이 찾을수 없다.

 

 

 

 

 

참고사진 - 왼쪽 관봉에서 오른쪽 주봉

이토록 멀리서 보면 멋진 산이, 안에 들어서면 그 멋을 찾을수가 없다.

 

 

 

 

 

지난번 부봉에서 바라본 주흘산 영봉 - 주봉 - 고깔봉

 

 

 

 

 

포암산

 

 

잡목을 제치고 등로 옆으로 올라서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지난달 정기산행으로 다녀온 포암산과 만수봉이 보인다.

 

 

 

 

그 옆으로 하설산 ~ 문수산과 백두대간 길을 타고 문경 최고봉인 대미산으로 가는 능선길

 

 

 

 

 

조망을 비관하며 포기하고 내려가려는 찰나에 간신히 이정도 시야를 열어주는 조망터가 나오며 월악이 보인다.

비록 우측으로는 시야의 절반 이상이 잡목에 가려 대미산으로 가는 능선이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나마 월악산

이라도 보이는게 다행스럽기만 하다.

 

바로앞 탄항산 뒤로 송계계곡 따라서 왼쪽으로 박쥐봉과 말뫼산이 우측으로는 월악산 영봉과 덕주봉 ~ 만수봉이

보이며 우측 끝으로 삼베치마를 펼쳐놓은듯한 베바위, 포암산이 보인다.

 

 

 

 

북바위산, 박쥐봉 방향의 조망

 

 

 

 

 

월악산 영봉쪽 조망

 

 

 

 

능선을 타고 가다 왼쪽으로 꽃밭서들로 가기위해 가파른 길을 내려서는데 계곡이 깊다.

 

 

 

 

꽃밭서덜 (14시45분)

 

 

서덜은 너덜의 지방 사투리이다. 꽃밭서덜은 너덜길의 현지 사투리인 ‘서덜’과 진달래 등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곳이란

뜻을 담은 ‘꽃밭’이 합쳐져 붙여진 이름이다. 80이 넘은 지역주민들이 그 이전부터 사용되던 지명이라고 하니 조선

시대로 거슬로 올라가지 않나 싶기도 하다.

 

조곡골에 있는 꽃밭서덜에는 족히 1천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가지각색의 돌들이 쌓여진 돌탑들이 서 있다. 옛날부터

문경새재를 넘든 사람들이 각종 소원성취를 바라면서 이렇게 돌탑들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나도 조심스레 꽃밭

서덜 한켠에 작은 돌탑을 세워놓고 소원을 빌어본다.

 

 

 

 

꽃밭서덜을 배경으로 일행들을 위해 기념 촬영을 하는 산대장님

 

 

 

 

저 꼭대기의 기기묘묘한 돌탑들은 과연 누가 다 쌓았을까...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 보니 꽃밭서들이 확인히 보인다.

위성사진을 보니 이렇게 보이는것 말고도 옆에 두군데나 더 있다. 

 

 

 

 

  

꽃밭서들의 구절초

 

 

 

 

 

둥그런 동굴 목욕탕 같은 곳을 지나고...

 

 

 

 

땀을 씻으며 잠시 쉬어간다.

 

 

 

 

문경새재 조령 2관문 조곡관 (15시32분)

 

양쪽에서 험준한 산들이 가로막고 있는 문경새재 조령계곡.

 

 

임진왜란때 이곳에서 왜적을 맞았어야 하는데, 두만강 유역에서 북방의 적들을 상대로 공을 세운바 있는

신립장군은 자신의 기마용병술을 자만하며 유성룡이 조총을 경계하라며 그 위력에 대해 충고를 했음에도

이를 가볍게 무시한채, 부장들이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령을 고스란히 내어주고 충주 탄금대로

전장을 옮겨 배수의 진을 치는 전술을 펼치다 전멸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누누히 서인과 그들에게서 파생된 노론의 전횡에 대해 언급을 했지만, 임진왜란때 유명한 패장인

원균과 신립이 바로 서인 출신이다. 임란 2년전에 천반산의 정여립을 역모로 몰아세우고 조선 최대의

사화이자 4대사화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천명이 넘는 무고한 인재들을 역모라는 이름으로 모함해

죽여버리고 정국을 큰 혼란에 빠뜨렸으며, 제대로된 인재를 다 죽여, 그로인한 국가적인 전투력 상실과 이를

간파한 왜적의 침입을 초래한 서인. 우리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율곡 이이와 인간백정

송강 정철이 서인의 영수로 활동하던 시기이다. 

 

 

 

 

참고사진 - 문경새재 3관문 조령관

 

 

 

 

 

조곡관 앞에서 영봉거쳐 하산을 함께한 우리들 님들과 ~

 

 

 

 

전에 못 보던 인공폭포 앞에서

 

 

 

 

인공폭포와 통나무 수로


 

 

 

편한 마사토 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신발을 벗고 걸어도 좋을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지시에 따라 도로포장이 금지된 이길은, 당시 사람들은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다니며 불편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 덕분에 매년 수백만명이 찾는 걷기의 명소가 됐다.

 

문경(聞慶)은 장원급제 하고 돌아가는 선비들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곳 이란 뜻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로는 문경새재 외에도 추풍령과 죽령이 있다. 그러나 유독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고집했다. 죽령을 넘으면 과거시험에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던

반면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교귀정

 

조선시대 왕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 하던 곳 이라고 한다.

 

 

 

조령산 이름 유래

 

조령산의 이름에 대해 흔히들 알고 있는것 으로는 이 산이 새(鳥)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嶺)였다고 해서

"새재" 라고 불렸는데, 조령(鳥嶺)은 이를 한자어(漢字語)로 표현 한 것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말에 많은 사람들이 반박을 한다.

 

조령산이란 산 이름을 낳게한 조령(鳥嶺)이 잘못 와전된 이름 이라고 한다.

새재의 한자 표기는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앞선 문헌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중,후기의

지리지 기록에 조령(鳥嶺)으로 나와 있는데, 초(草)는 억새 등을 말하는 '새'이고 점, 재(岾)는 우리가 만든 한자로서

'땅이름 점', '고개 재' 로서 초점, 초재는 '새재'이고, 여기서 새는 우리말인 억새를 의미하여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를

의미 했는데, 엉뚱하게도 억새의 새가 날아다니는 새로 변해 조령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조령 제1관문 위쪽을 상초리(上草里), 아래쪽을 하초리(下草里)라 부르고 있으며, 이곳 조령 일원에 새

(억새 따위)가 많아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령산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설로는...

 

조령은 옛날 영남지역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다니던 가장 유명한 큰 고개의 하나인데,

조령은 대간 상에 최초로 뚫린 고갯길인 하늘재(계립령)를 대신하여 조선 태종 14년(1414)에 열린 새로운 고개로

새(新) 고개라는 뜻의 새재(새길) 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지막 으로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의 사이재가 새재로 변이 되었다고 하는 유래가 있으나 어찌 되었건 조령이

새가 관련 되었거나, 새도 넘기 힘든 고개 라는 유래는 찾아볼수 없다. 새도 넘기 힘들긴 커녕 산악회 버스를 타고

오르는 수많은 아지매들도 막걸리 마시고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넘어 가신다.

 

 

영남지방의 유래

 

우리가 경상도지방을 <영남> 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영(고개) 이란 바로 이 조령을 일컫는 말로서, 조령 이남

지방을 뜻한다.

 

 

 

 

태조왕건등이 촬영되었던 KBS 세트장엔 지금 광개토태왕을 촬영하느라 분주하며 관광객들 사이로 연기자들도

보인다.

 

 

 

 

다시 제1관문 주흘관을 통과하며...

주위에 멋진 산들을 두루 갖춰 두고서도, 쓸만한 조망터 하나 없어 아쉬웠던 주흘산 산행을 마무리 한다.

 

 

 

 

이렇게 글을 마치나 했는데.... (16시34분)

 

엄청난 인원의 산악회가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 앞 잔디밭에 모여 쿵짝쿵짝 풍악을 울리며 신명나게 놀고 있다.

산악회 한번 엄청 크다 생각하고 지나치려는데... 그들이 타고온 버스가 무려 28대나 된다.

학급수가 많다던 우리 중학교때 수학여행도 학년당 14학급이라 버스 14대가 줄줄이 사탕으로 몰려다녔는데...

정기산행에 참여한 한 산악회의 관광버스가 28대라니... 엄청나지 않을수 없다. 김천 드림산악회. 대단하다.

주차장 버스창문에 적인것을 보니 정기산행에 김천의 모든 면, 동단위로 버스가 한대씩 배정된것 같다.

 

산악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 회장님과 운영진 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봤을것만 같다.

저녁에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바로... 이날 행사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부터 나온다.

 

신문기사를 보니 산행에 지역 국회의원과 도의원 시의원들이 참여를 하고, 김천시장 및 시의회 의장과 시의원들이

산악회의 산행 환송을 하였다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산악회가 아닌 특수 목적을 띤 모임인듯 하다.

운영진들 복장이 파란색 일색이라 느낌이 확 오지만, 여하튼 정치색을 띠든 아니든 간에 이런 진풍경은 처음 본다.

 

 

 

145

 

주흘산 등산지도

산행코스 :: 주차장 - 1관문 - 혜국사 - 주봉 - 영봉 - 갈림길 - 꽃밭서덜 - 2관문 - 1관문 (6시간20분)

산행일시 :: 2011년 10월 1일 토요일, 우리들 산악회

 

주차장에 도착하니 방금전 지나왔던 28대의 버스가 아닌... 달랑 한대 놓인 우리 버스 옆에서 총무님표 두부김치에

막걸리를 몇잔 걸치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볶음김치맛이 정말 좋던데, 나도 한번 볶아보게 총무님은 그 레시피좀

꼭 쪽지로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맛난 볶음김치 만드는법 레피시 제공시 후사함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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