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곡선이 아름다운 전주 한옥마을

 

 

 

군산을 빠져나온 버스는 일행을 태우고 전주로 향한다. 오후 일정은 전주의 한옥마을 구경과 유명한 전주 막걸리 체험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에 있는 한옥이 보존되어 있는 마을로, 약 700여 채의 한옥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옛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주민들이 직접 마을에서 생활을 하며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특별한 곳으로

전라북도와 전주시에서 문화 관광 명소로 보존, 개발하고 있는, 우리에게 전통의 아름다움을 선물해주는 의미 깊은 장소이다.

 

 

 

 

오목대에서 내려다본 한옥마을

 

 

 

현대와 전통의 경계선

 

한옥마을 주차장에 버스를 정차하고 모두 내려서 골목길로 접어든다.

어릴적에 교동 한옥마을을 슬쩍 지나친적이 있었는데....

경기전은 몇번 가본기억이 나지만 한옥마을을 관심을 두고 제대로 구경하는것은 이번이 처음인듯 하다.

 

 

 

 

 

 

어릴적 초등학교 시절에 본것들을 다시 만나고 나니 다들 반가움에 즐겁기만 하다.

 

 

 

 

한옥마을 은행로를 지나노라니 졸졸졸 물소리가 들린다.

화강석으로 조성된 실개천이 남천교에서 동부시장 사이 은행로를 따라 흐르기 때문인데,

술잔을 띄워 놓으면 물결을 따라 흘러갈것만 같은게 경주의 포석정 생각이 난다.

 

 

 

 

이렇게 한옥마을 골목을 5분여 거닐면서 뒤를 돌아보니 한옥마을을 전체적으로 볼수 있는 동산이 하나 보인다.

오목대다. 저곳에 오르면 한옥마을을 전체적으로 볼수 있을것 같은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올라서 본다.

하루종일 둘러봐도 시간이 부족할듯 한데, 한시간 남짓 짧게 주어진 시간이니 만큼 일단 전체를 보고나서

남는 시간에 부분을 보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대표적인 한옥을 꼽으라면 근대 상류 가옥인 학인당을 꼽을 수 있다.

지방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ㆍ관리되고 있는 학인당은 인제(忍齊) 백낙중이 지은 근대 한옥으로 1908년에 완공됐다.

2년6개월 걸려 지은 이 집에 사용된 나무는 모두 압록강과 오대산 등지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지금은 대지 520평에 건평 69평 규모만 남아 있다.

 

 

 

오목대에 오르며 바라본 한옥마을

 

한옥의 아름다움은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 가볍게 솟아오른 팔작지붕과 용마루로 완성되는 듯하다.

700여채의 한옥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보려면 오목대에 올라야 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골목길 중 전국 유일의 도시한옥군인 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의 전체적인 풍경과 한옥 지붕들의 부드러운 용마루의 곡선을 제대로 감상하기엔 오목대가 제격인듯

싶다.

 

 

 

 

오목대로 올라가는 길

 

 

 

 

한옥마을 뒤로 경기전이 보이고 (사진중앙) 그 왼쪽으로 성심여고 뒤편으로 유명한 전동성당이 보인다.

주어진 시간내에 저곳들도 보고 와야 하니 걸음을 서둘어야 한다.

 

 

 

 

경기전을 조금 당겨 본다.

 

 

 

 

성심여고와 전동성당도 당겨서 본다.

 

 

 

 

 

 

오목대

 

 

수백채의 한옥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처마를 맞댄 전주한옥마을을 한눈에 보려면 오목대에 올라야 한다.

나지막한 동산에 위치한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곳으로 고려말 우왕 6년(1380년)에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다 승전을 자축했던 곳이다.

 

오목대 정자마루 앞에 벗어둔 신발들이 보인다.

정자마루에 오르기 위해서 신발을 벗은 것이다. 봄볕이 따뜻해지는 5월이 넘어서면 저곳에 누워 낮잠을 한숨

청해도 좋을것 같다. 육백년이 넘는 긴 시간을 두고 같은 공간에서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함께하는 것이다.

 

 

 

 

오목대에서 바라본 동고산성

 

전주시 교동 승암산에 있는 동고산성은 지난 900년에서 36년간 후백제 도읍지였으며,

후백제 관련 유물들이 다양하게 발굴돼 왔다.

 

 

 

 

이제 오목대를 내려와 경기전으로 향한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

 

전주의 한옥마을의 유래는 지난 1905년 을사조약이후, 전주 다가동 근처의 전주 천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성내의 상권을 차지하기 위해 성곽을 허물고 전주 도심으로 세력을 확장 하면서, 다가동과 중앙동에 일본식 집을 짓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전주시민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아름다운 한옥마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옛 선조들의 나라사랑의 기틀에서 시작된 한옥마을 지금은 전국에서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과 용마루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인들까지 한국의 전통의 아름다운 주거환경과 전통을 체험해보기 위해 찾고 있는 등 한마디로 전통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목대를 내려와 왼쪽으로 바라본 한옥마을 외곽

뒤로는 완산공원 왼쪽으로 돌아서 장승배기길을 따라 평화동으로 가는 서서학동 근처가 보인다.

 

 

 

한옥마을 이모저모

 

 

담장 너머로 보이는 고택이 궁금하면 들어가 구경해봐도 좋다.

민속촌과 달리 이곳은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곳 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달리 낮에는 대문을 잠그지 않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문풍지를 발라 놓은 곁문들과 툇마루, 햇볕이 잘 드는 마당, 항아리 등 우리네 전통가옥에선

넉넉한 인심과 푸근한 옛 향기가 베어나온다.

 

 

슬로시티와 으뜸명소로 선정된 한옥마을 

 

지난해 전주한옥마을은 국제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되었다.

세계 20개국 135곳의 슬로시티 가운데 인구 5만명 이상의 도시가 지정된 것은 전주한옥마을이 처음이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전주한옥마을이 한옥 700여채와 골목길이 살아있는 한옥촌이자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이 모셔진 조선왕조 발상지로서 한국적인 전통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음식을 대표하는 전주비빔밥 등 슬로푸드 콘텐츠와 함께 한지와 한지공예품, 판소리 등 ‘한스타일’의 본고장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고 한다.

 

또한 전주한옥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선정 발표한 8곳의 으뜸명소중 한곳으로  전주한옥마을은 문화콘텐츠형에서 서울 북촌과 삼청동, 인사동을 묶은 전통문화거리와 함께 선정되었으며, 국내외 관광객들이 꼭 가보아야 할 한국 관광의 ‘으뜸명소’로 최종 선정돼 관광인프라와 홍보 분야에 대해 정부로 부터 맞춤식 지원을 받아 국내 관광의 핵심거점으로 집중 육성될 전망이다.

 

아울러 전주한옥마을이 점차적으로 국내가 아닌 국제적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국인들의 관심에서 나타난다. 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외국인 관광객의 체류형 패키지 여행지로 꼽히면서 2010년 한해 방문객은 12만명이나 됐다고 한다.

 

 

 

 

 

경기전 앞

 

경기전에 들어서기 전 정문 앞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하마비.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려 지나야 하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비석이다.
왕의 어진은 곧 왕의 존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경기전에 들기 전에 예를 다하라는 뜻 이다.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경기전을 드나들수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면 경기전의 본전인 보물 제1578호 경기전 정전이 나타난다.

경기전 건물은 맞배지붕 구조로 돼있어 우리 고건축의 엄숙하고 장엄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경사스러운 땅에 지었다고 하여 경기전 이란 이름을 가진 이곳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이방원이 재위 10년 되는 해에 지은 건물이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가 설치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의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중건됐고 사적 제339호로 지정돼 있다.

 

 

 

 

경기전의 본전인 보물 제1578호 경기전 정전

 

 

 

경기전은 조선 태종 10년인 1410년에 태조 어진을 봉안하고자 건립돼 올해로 창건 600주년을 맞았다.

이곳의 어진박물관에 모셔진 태조 어진은 현존하는 어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데다 화폭이 크고 상태가 좋으며

각종 고서에 제작 과정이 자세히 기술돼 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커 보물 제931호로 지정돼 있다.

 

 

 

전주사고

 

조선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전주사고 건물인 실록각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1991년 원래 전주사고가 있던 자리에 복원한 건물이다.

조선왕조실록을 1445년 12월 춘추관사고, 충주,전주,성주 사고에 각 1부씩 봉안했는데, 춘추관과 충주, 성주 사고는

임진왜란때 불타 버리고, 전주사고의 실록만 남았다. 전주사고도 건물은 임란때 불타버렸는데, 당시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은 실록 804권과 태조 영정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 화를 면했다.

 

 

 

 

경기전 대나무 숲

 

 

 

 

“고궁(古宮)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 혼불의 작가 최명희님의 단편소설 <만종> 中 에서...

 

 

 

 

전동성당

 

경기전을 나와 찾은 곳은 전동성당이다.

어릴적에는 몇번 가봤는데,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역사적인 성지로, 전주시 안에 세워진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호남 전체에서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이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영화의 촬영지나 결혼식 장소로 자주

쓰이기도 한다.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국내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풍남문 밖 전동성당 터에서 처형됐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프랑스 신부 보두네가 1914년에 건립한 것이 전동성당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특히 밤에 조명이 비춰지면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터는 천주교 사상 최초

순교자였던 윤지충(1759~1791)의 순교지이다.  1891년 보드네(Baudenet) 신부가 대지를 매입하고, 1908년

프와넬(Poisnel) 신부의 설계로 착공하여 1914년 준공되었다.  

 

 

 

전동성당 내부모습

 

영화 '약속(주연·박신양, 전도연)'의 마지막 결혼식 장면을 촬영한 장소이다.

 

 

 

성당을 나와서 성심여중/고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오래전 추억이 남아 있는곳 베테랑을 찾아가려는 것이다.

경기전 정면 성심여고 뒷담길은 영화 '클래식(주연·손예진, 조승우)'에서 학생시위대와 진압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손예진과 이기우의 애틋한 사랑 장면을 연출한 곳이기도 하다.

 

 

 

베테랑

 

시간이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식당이 아직도 영업을 하는것만 확인하고 돌아섰다.

전주 성심여고 앞 베테랑 하면 전주에서 학교를 졸업했던 분들 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명소중의 명소이다.

저녁에 돌아와서 집사람에게 베테랑이 아직도 영업을 하더라는 말을 전했더니 반색을 하며 반가워한다.

 

1976년 문을 연 베테랑은 달걀, 들깨 가루, 김가루, 고춧가루를 잔뜩 푼 걸쭉하고 푸짐하여, 구수한 옛날식 칼국수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손님들로 늘 북적댄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제는 맛도 그만큼 더 숙성이 되었겠지만

70~80년대에 이곳에서 친구들과 칼국수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을 반찬삼아 찾는 분들도 많을것이다.

다음에 전주에 가게되면 아내와 함께 가서 30년 묵은 추억의 칼국수 맛을 보고 싶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면서 어느 빌딩 3층에 올라 계단 창문을 통해 한옥마을을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짧은 시간 덕분에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훑어보게된 한옥마을...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와서 여러가지 먹거리들도 맛을 보고 천천히 전통의 향기를 음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옥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서신동 막걸리 골목으로 향했다.

저녁식사와 함께 술 한잔 걸치고 싶다면 막걸리 골목으로 가는 것이 딱 좋다. 

수십 개의 막걸리 전문점이 성업 중이고 전주 특산 막걸리를 주전자주전자 1만 5000원으로 판매한다.

스무 가지도 넘는 안주들이 막걸리를 시키면 함께 제공된다.

 

 

 

 

찌개에 매운탕까지 ...

뱃속을 충분히 비워두고 가야 제대로 맛을 볼수가 있다고 한다.

 

 

전주엔 이런 막걸리집 말고도 가맥 이라는 술집(?)이 있다.

<가게에서 먹는 맥주>의 줄임말인 가맥은 전일 슈퍼 등 동네 구멍가게에서 술꾼들에게

맥주와 함께 안주를 제공하던 문화에서 기인한다. 예전에 한동안 전국적으로 유행을 했던 24시간 편의점 주점도

전주에서 출발을 했다. 가게에서 직접 술을 마시는 만큼 술집보다 저렴하고, 가게는 술집보다는 싸지만 일반

가게 판매금액 보다는 비싸게 팔수 있음으로 인해 술꾼과 가게쥔장들의 마음이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투명한 막걸리

 

임실쪽에 있는 사선막걸리 라고 하는데, 투명하게 생긴것이 마치 흔들지 않은 막걸리병에서

윗물만 떠낸것 같이 묘하게 생겼다. 막걸리가 동동주 인척 하고 있다.

술집 벽에는 세번의 여과과정을 거쳐 숙취도 없고, 트림도 없고, 뒤끝도 없다는 3無를 자랑하는

술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데... 싱겁다고 소주를 넣어서 마시는 분들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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