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의 한이 애달픈 강경

 

 

 

강경의 지명은 江景浦에서 유래되었는데 금강을 낀 포구의 이름이 이 지방의 지명으로 대표하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은진현 강경호가 있으며 미내교비에도 강경촌이라는 지명이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오래전부터 지어내려온 지명인 것같다. 1914년 군명을 폐합하여 행정구역 재편성 때에 채운면의 城西里를

병합하여 강경포의 이름을 따서 江景面으로 하였으며 1931년 江景邑으로 승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강경포구를 통해 수산물의 집산지요 내륙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강경은 아직도 일제시대를 맛 벗어난

듯하다. 다른 도시들이 근대화를 하는동안 강경은 잠을 자고 있던 것 일까...

 

어느 한가한날 오후...

강경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산악회 회원님을 찾아 점심이나 같이 하자던 연락을 받고 가볍게 동행하였다.

고풍스런 식당의 맛깔스런 음식과 소화시킬겸 걸어본 공원 ...

조용한 옥녀봉의 풍경이다.

 

 

속리님이 추천하는 옥녀봉에 위치한 유명한 음식점 대가에서 삼계탕 한그릇 뚝딱...

주문하니 얼마 되지 않아 식사가 나왔는데...

얼마나 끓였는지 삼계탕 국물이 진국이다.

맛이 최고다.

 

 

식후 바로 뒤에 위치한 옥녀봉 공원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긴다.

 

 

송재정

 

이지역 인사인 송재 윤훈 선생을 기려 지은 정자 라고 한다.

 

 

송재정에서 바라본 금강 하구쪽

 

 

송재정에서 바라본 강경 시내

 

 

공원에 웬 폐가가 방치 되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사적 유물이다.

잘 보전되고 관리되어야할 역사적 기념물이 이렇게 흉가처럼 방치되어서야....

 

 

송재정을 나와 봉수대로 걸어가는 길에 만난 느티나무 고목

 

 

곰바위

 

 

정상의 느티나무

 

 

봉수대

 

 

봉수대 복원기

 

 

 

정상풍경 - 느티나무와 봉수대

 

 

옥녀봉 정상에서 바라본 금강

위쪽 물길은 공주에서 내려오는 물길이고...

아래쪽 물길은 대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금강 옥빛물에 노닐던 선녀들은 어디로 가고...

4대강 정비 한답시고 기계소리만 들린다.

논산8경중의 하나인 강경의 옥녀봉에는 이런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옥녀봉의 유래

 

옛날... 옥녀봉 아래로 흐르는 금강의 옥빛은 너무 맑아 깊은 강물속 물고기까지 잘 보일정도 였다고 한다.

그래서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곳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하루는 천상의 옥황상제의 딸인 옥녀라는 선녀가 시녀들과 내려와 옥수에 몸을담고 목욕을 하고있었는데

다들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시간가는줄 모르고 하늘로 올라가는것을 잊고  말았는데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가 목욕을 같던 옥녀가 돌아오지 않자 신하들에게 나팔을 불게하여 하늘로 올라오게 했다고 한다.

 

옥녀는 나팔소리에 깜짝놀라 어서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급한 나머지 옷을 입다가 앞 가슴을 한쪽을

제대로 못잠그고 하늘로 올라가게 돼는데 멀리 하늘에서 그 모습을 보고있던 옥황 상제가 자신의 딸인줄도 모르고

가슴한쪽을 연채로 하늘로 오르는 선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땅으로 쫓겨난 옥녀는 이곳 옥녀봉에 올라 하늘로 올라가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눈몰로 호소를

하며 기도를 하던중 어느날 하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옥녀앞에 떨어졌다고 한다.

거울에는 옥황상제의 화난 얼굴과 신하들과 시녀들이 옥녀를 하늘로 올라오기를 간청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옥녀는 매일매일 거울만 들여다 보며 눈물로 지새다가 끝내 용서를 받지 못하고 죽고 말았는데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죽은 자리를 옥녀봉이라 하였으며

옥녀가 들여다 보던 거울은 바위로 변하여 용영대라 부르고 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대전쪽으로 이어지는 물길 상류도 4대강 공사가 한창이다.

옥빛 청류도 조만간 흙탕물이 될것이다.

 

 

 

 

 

옥녀봉 공원 전경

 

옥녀봉은 다른 말로 강경산 이라고 하는데, 최근엔 옥녀봉으로 통일이 된것 같다.

 

 

 

 

공원 한쪽에는 각종 비석들이 역사의 한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다.

 

 

 

 

금강 하구둑이 완공되고 나서 강경 포구는 사실상 은퇴를 하게 되었다.

어판장이 있던곳에 잔디가 깔리고 체육공원이 들어섰다.

사진속의 저 배들은 내륙의 강에서 고기를 잡는 배인가... 아니면 행락객을 실어 나르는 배인가....

4대강이 완공되면 이곳은 또 어찌 달라질지가 궁금하다.

 

옛날엔 동해의 원산과 함께 서해의 수산물은 모두 강경으로 모이고,

그러다 보니 강경엔 개들도 조기를 물고 다닌다고 했었는데...

평양, 대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시장을 형성하던 강경은 지금은 젖갈시장을 제외하고는

예전의 성시를 찾아 볼수가 없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수 있다.

 

 

 

공원에 위치한 매점에서는 간단한 것들을 살수가 있다.

 

 

 

 

옥녀봉 정상석 아래에는 옥녀봉에 얽힌 전설히 빼곡히 적혀 있다.

 

 

 

 

송재정자의 배경이 되는 윤훈선생 추모비

 

 

 

 

 

옥녀봉 형상바위 안내도

 

 

 

아래에서 올려다본 송재정과 매점 그리고 정상의 봉수대

 

 

 

 

공원을 장식하는 예쁜 나무와 글들

 

 

아까 위에서 내려다 보던 문제의 폐가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강경침례 교회라고 한다.

 

이곳 옥녀봉 정상일대에 15,000여 평방미터 대지위에 교회가 위치하고 있었으나

1943년 일제치하에서 항일 비협조 이유로 일본사람들이 신사당을 짓기 위해 교회건물을 강제적으로 폐쇄 철거 하고

교회부지의 모든 토지는 증여형식으로 일본정부에 압수당하여 빼앗겼다고 한다.

 

1895년경 인천에서 강경으로 배를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씨가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에게 전도되어 서울에서 침례를 받고

겨울철 금강의 결빙이 풀려 뱃길이 열리자 강경으로 내려와

1896년 2월 9일 주일에 강경 북옥동 136번지 지병석씨 자택에 강경 침례교회를 세우고

폴링부부와 아만다 가데린양을 비롯한 지병석씨와 그 부인 천성녀씨 다섯분의 예배를 시작으로

한국 침례교회의 첫 교회로 탄생하게 된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당시 첫 예배를 드린 지병석씨의 115년된 고가 라고 한다.

 

 

 

그나 저나....

이런 역사적 유물을... 흉가처럼 방치할게 아니라

보수를 하여 제대로 관리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지금 처럼 페가나 흉가처럼 방치 한다면, 터만 남겨두고 헐어 버리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6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