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기다리는  

(남여치-관음봉-세봉-내소사)

 

 

 

산들이 순백의 흰옷을 벗어 버리고 화사한 연분홍 꽃잎과 싱그러운 연녹색 새싹을 기다리고 있는 새봄이

시작되는 3월의 첫주말,  춘변산 추내장 중에 봄에 아름다운곳 으로 유명한 내변산에 때이르게 다녀왔다.

남여치에 도착하니 연분홍 꽃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내복을 생각나게 하고

봉우리 마다 하얗게 남아 있는 잔설로 인해 집에 두고온 아이젠을 떠올리게 한다. 일주일 전의 두번의

산행은 봄날에 화사한 풍경 이었는데 다시 겨울로 돌아간것 같으니 고어자켓을 벗어두고 바람막이 하나

들고온게 슬쩍 마음에 걸린다. 천미터가 넘는 고산준령도 아니고 기껏해야 500m도 채 안되어 우습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왔는데 꽃샘추위의 여파가 아직 남았는지 남여치에서의 첫인상은 쌀쌀맞기만 하다.

 

 

내변산은 최고봉인 의상봉(509m)을 비롯해 쌍선봉, 옥녀봉, 관음봉, 선인봉 등 기암봉들이 여럿 솟아 있고 

개암사, 내소사, 월명암 등 유서 깊은 고찰이 있으며 직소폭포, 봉래구곡, 낙조대 등 승경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산은 낮아도 첩첩이 이어진 산줄기들의 품이 깊고 넉넉한 변산은 석가모니가 설법을 했던 능가산, 또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으로도 불렸다.

 

 

오늘 산행길은 남여치에서 시작하여 월명암을 지나 봉래구곡중에 사자동계곡의 절경에 있는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탕을 구경하고 관음봉과 세봉에 올라 청련암을 스쳐 내소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곳곳에 절경과

명소가 많고, 산길은 유순하며 조망이 시원하여 변산의 아름다운 속살을 구경하며 편히 걸을수 있는 곳이다.

비록 춘변산에 어울리는 신록과 연분홍 춘색은 없었지만 봄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사람들이 적은 호젓한

길을 따라 아름다운 내변산의 풍광을 전세내듯 느긋하게 관람하고 왔으니 때 이르게 찾을 이유도 충분한것

같다. 

 

 

 

남여치에서 바라본 내변산의 제일봉인 의상봉

그 오른쪽으로 쇠뿔바위봉이 잘 보였는데 사진으로는 분명치가 않다.

 

남여치에 도착하여 고개를 들어 진행방향의 산등성이를 보니 잔설에 하얗게 덮혀있는게 보인다.

몇일전 진도 동석산과, 여수 금오산에 갔을때는 화창한 날에 봄산행을 하였는데, 여긴 아직 지난 겨울의

바짓가랭이를 틀어잡고 쉽게 놔주려 하지 않는듯 하다. 그렇게 붙잡아도 이내 봄은 오고 꽃은 필 것이다. 

 

 

 

 

 

남여치

 

남여치(藍輿峙)의 유래

 

남여치라는 지명은 얼핏 구수한 지역 방언 이거나, 男女간에 뭔가 애틋하고 가슴절절한 고갯마루의 사랑의 전설이

있을것만 같지만, 실상 남여 라는 것은  조선시대에 양반님네들이 쓰던 지붕없는 가마로써 조선말  그 유명한 매국노

이완용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있을때 남여를 타고 서해 낙조를 보기 위해 쌍선봉에 올랐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남여치에서 쌍선봉 까지는 먼 길이 아니지만 가파른 된비알로 현대식 등산복장과 배낭을 메고 오르는 나도 힘이

드는데, 이 가파른 길을 가마를 타고 올랐다니.... 이완용의 심성은 딱 봐도 알만 할 듯하다.

 

남여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준비운동을 하고 힘찬 출발을 한다 (10시 5분)

 

 

 

 

어쩌다 보니 맨 선두에 서서 십여분 오르니 바다가 보이는 조망터가 나온다.

청명한 날을 기대하고 왔는데, 하늘엔 구름이 가득 껴있고 원거리 조망은 뿌옇기만 하다.

황사가 심하거나, 눈오고, 비와서 가시거리 제로인 날도 있기 때문에 이정도면 그래도 대충 만족스럽다.

 

 

 

 

조금 더 오르니 오른쪽으로 낙조대에서 분초대, 망포대, 신선대로 뻗어간 산줄기가 보인다.

봉래구곡은 지난번 봤던곳이라 몇일전 산행코스를 검토하면서 오늘 저곳을 타고 한바퀴 돌아서 재백이재

에서 일행들과 합류할수 있을까도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식사를 안하고 달려도 빠듯할것 같아서 포기

하였었다. 저 코스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가보리라...

 

 

 

 

선두에서 진행하다가 풍경을 한컷 담았는데...

사진에 보이는 두분이 왜 사진을 찍느냐고 말씀하신다.

다가가서 보니 한분이 약초괭이를 들고 있는것으로 보아 약초산행을 오신듯 하다.

국립공원에 약초 괭이를 들고 있는게 스스로 맘에 걸리신것 같다.

내 카메라는 줌이 별로라 이 거리에서는 아무리 당겨도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 드리고... ^^

잔설도 안가셨는데 새싹이 나왔겠느냐...물으니 그냥 바람쐬러 나오셨단다.

 

봄이 시작되고 새싹이 나오면 나또한 지난해 같이 다녔던 약초산행 지인들과 전투복장을 하고 나설것이다.

지난해 산삼을 캐고 기억해둔 구광자리만 찾아 다녀도 바쁘게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쌍선봉 삼거리에 도착하고 두리번 거려 보니 진행방향의 반대쪽으로 쌍선봉이 보인다.

아직 뒤에오는 일행들은 보이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특히 조망터를 좋아라 하는 나에게 직감적으로 저곳은 기막힌 조망터라는 냄새가

풀풀 풍겨온다. 나중에 뛰어서 쫓아가더라도 저런곳은 빠뜨릴수 없는 것이다.

 

 

 

 

쌍선봉으로 가려하니... 월명암 주지스님의 경고판이 붙어있다.

요즘에도 산에가서 야~호를 외치는 분들이 더러 있기에 스님의 고충을 이해를 하지만서도...

주말이면 늘... 참배객과 등산객으로 시끄러운 내소사는 수행을 할 수 없는 곳 이란 말인가.... 훔~

여하튼 고성방가도, 수목훼손도 안할거니... 조용히 다녀오기로 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쌍선봉

 

쌍선1봉... (10시49분)

한달음에 첫번째 봉우리로 뛰어 올라가니 헬기장이다. 빙고 ~

잡목으로 빙~ 둘러져 있으면 조망이 없을텐데 헬기장이라 하면 충분히 조망이 가능한 곳이다.

 

 

 

 

월명암

 

쌍선1봉에 올라서니 바로 아래 월명암이 보인다.

월명암은 월명무애 라고 하는 새벽의 운해가 인상적이다.  

요즘에는 부안댐 건설 이후 운해 보기가 매우 힘들어졌다고 한다.

운해와 함께 월명암을 알리는 것은 낙조대다.

월명암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낙조대에 서면,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멋진 낙조를 볼 수 있다.

깜박 하고 낙조대에 다녀오지 못한게 아직도 마음에 걸리지만 이날 낮에 올랐어도 어차피 그 멋지다는

낙조를 볼수 없었을것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쌍선봉에서 바라본 풍경1 - 멀리 오후에 오를 관음봉이 보인다.

 

 

 

 

쌍선봉에서 바라본 풍경2

 

 

 

 

쌍선봉에서 바라본 풍경3 - 파노라마 (사진클릭)

 

월명암을 중심으로 주변 풍경이다.

 

 

 

 

쌍선봉에서 바라본 풍경4 - 파노라마 (사진클릭)

 

 

 

 

쌍선봉에서 바라본 풍경5 - 오르면서 보았던 바다 풍경

 

 

 

 

쌍선봉에서 바라본 풍경6 - 낙조대에서 신선대로 가는 능선

 

 

 

여기까지 보고 나니...

보고싶었던쪽 조망이 잡목에 가려있다.

그 뒤로 봉우리 하나가 더있다.

쌍선봉 이라니... 봉우리가 두개임이 분명할테니... 저곳도 다른 하나의 쌍선봉이 분명하다.

갈까 말까... 갔는데 잡목에 빙둘러 있으면 어쩌지... 고민 3초...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달린다.

 

 

 

 

낼름 뛰어서 쌍선2봉에 도착을 한다.

이 표지목이 있는거 보니 조금전 지나온 봉우리가 쌍선1봉인가 보다.

 

 

 

 

쌍선2봉의 모습

 

여기도 헬기장이다.

마침 내가 원하던 방향쪽으로 조망도 시원하게 열려있다. 빙고 AGAIN !!!

 

 

 

 

쌍선봉에서 바라본 풍경7 - 부안호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며 바라본 가장 아름다운 조망이다.

 

 

쌍선봉의 전설

 

일찍이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청년시절에 큰 뜻을 품고 팔도를 두루 편답 하면서 지리도 익히고

인정도 살피다 부안의 변산 선계골 발을 멈추어 이런 영산에는 고명한 도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곳에

암자를 짓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러던 중에 어느날 남루한 옷을 입었으나 높은 기상이 엿보이는 두 노인이 이 암자에 찾아 왔다.

청년 이성계는 범상하지 않은 두 노인을 맞아 극진한 대접을 하였더니 두 노인이 말하기를, "우리는 유산

하는 사람으로 잠시 다리를 좀 쉬어 가려는 것이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언동이나 몸가짐이 속세의 때가 묻은 속인 같지가 않아, 이성계는 노인들을 앉히고 글과 무예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었더니 아무 막힘이 없이 척척 대답하여 주어 이성계는 뛸 듯이 기뻤다.

그래 속으로,"이분들이야말로 내가 찾던 스승이 될 분이로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두 노인에게

큰 절을 올리고, "두 분 선생님께 청을 드릴 말씀이 있사온데 허락하여 주시겠습니까"하고 말하였더니,

"잠시 다리를 쉰 것도 이 또한 인연이고 신세를 진일인데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듣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기뻐하며, "오늘부터 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하여 큰 뜻을 펴보고자

하오니 물리치지 마시고 시생의 앞날을 지도하여 주시면 그 은혜 잊을 수 없겠습니다." 하고 엎드려 청하였다.

두 노인이 처음에는 한사코 사양하드니 이성계의 끈질긴 간청에 감복하여 쾌히 승낙하고 사제의 의를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날부터 두 노인은 선계암에 묵으면서 이성계를 지도하였는데 한분은 문을, 다른 한 분은 무예를

지도하는데 어찌나 총명하던지 그 학업이 일취월장하여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청년이 되었다. 두 노인은

그 뛰어난 총명을 찬양하며,"이제 우리의 힘으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세상에 나아가 큰 뜻을 펴 성취하라"

하니 이성계는 그 동안 베풀어 준 가르침의 은혜에 대하여 깊이 사례하고 작별을 하게 되는데 그동안 사제의

정이 어찌나 깊었던지 서로 헤어지기가 안타까워 이야기 이야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은 것이 선계골의

암자에서 북쪽으로 삼천보나 떨어진 어느 봉우리까지 오게 되었다.

 

두 노인은 이성계를 돌아보며 이만 돌아가도록 일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스승에게 하직의 절을 하고 보니

두 스승은 간곳이 없고 그 앞에 놓은 봉우리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이 두 봉우리를

쌍선봉 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 선계골에는 이성계가 공부했다는 암자자리에 주춧돌이 남아 있고 그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대밭이 있으며, 활쏘고 말달린 자리라고 전해지는 석벽과 반석이 있고, 그 아래로는

선계폭포가 흐르고 있다. (출처 : 부안군)

 

 

 

 

쌍선봉에서 내려와 그새 지나갔을 일행들을 쫓아 가니 일행들 앞으로 쌍선봉 오르기전에 만났던

약초 복장의 님이 건너편의 편안해 보이는 능선에서 내려오신다. 뭘 보시긴 했을까...

 

 

 

 

월명암

 

 

월명암은 쌍선봉에서 자연보호헌장탑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이 암자는 통일신라 시절인 692년 부설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월명암은 안개 낀 아침풍경이 특히 아름다워 오늘날 직소폭포, 내소사와 더불어 월명무애((月明霧靄)가

변산8경중의 하나로 꼽히며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로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더불어 호남지역의

3대 영지로 일컬어지는 명소이다

 

부설거사(浮雪居士)의 본명은 진광세(陳光世)이고 부설(浮雪)은 법명이다.

신라 선덕여왕대에 서라벌 남쪽 항아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신라통일 이후에 전북 변산 월명암에서 사망

했는데, 부설이 사는 마을 하늘엔 언제나 하얀 눈이 흩날렸다 해서 두능리를 부설촌(浮雪村)이라 부르게

됐다고 하며 부설 거사의 법명도 여기에서 유래 됐다고 전한다. 두능리가 현재 지명으로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수는 없으나 부안은 눈이 많은 곳 이기도 하다.

 

부설거사는 불심과 도력이 높아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와 더불어 세계3대 거사로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거사(居士)란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사실 부설거사는 원래 승려였는데 묘화라는 여인을 만나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을 낳고 파계를 하여 거사가

되었다. 월명암은 바로 부설거사가 딸 월명을 위해 지은 암자이다.

 

 

 

 

월명암에서 바라본 풍경

 

월명무애(月明霧靄)

 

월명암의 이름 그대로 월명암에서 떠오르는 밝은 달빛...

그리고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새벽아침의 운해는 절경으로 꼽힌다.

예전에는 운해가 끼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는데, 아쉽게도 부안댐 건설 이후 운해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월명암 지킴이 삽살개 '만수'

 

귀신도 잡는 다는 삽살개 녀석이 귀엽게도 온순하니 사람들을 잘 따른다.

그러고 보면 절에서 사는 견공 치고 사나운 녀석을 본적이 없는것 같다.

 

 

 

 

월명암 해우소...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해우소에 남자 화장실 방향표지로 '선남자' 라고 쓰여 있다...

아... 남자용 소변기만 있다는 말 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겨 보는데...

그 옆에는 '선여인' 이라고 쓰여 있다.

여자보고 서서 볼일을 보라는 말은 아닐테니... '선' 자는 아마도 仙 이거나 善 일텐데... 그래도...풋..

 

 

 

 

월명암을 지나니 응달진 곳이라 그런지 다시 한동안 눈길이 이어진다.

잔설이 녹아가는 3월... 육산은 질퍽거려서 산행하기에 가장 불편한 때이다.

 

 

 

 

바위에 큰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 곳에서 동행한 '우리들' 님들

 

 

 

 

인공호수가 멀리 보이는 곳을 내려가면서 바라본 반대쪽 능선

 

 

 

 

조망이 시원한 바위 위에서 바로위 사진 방향을 조망하는 일행들

 

 

 

 

조망 바위에선 멋진 일행들...

 

 

 

 

그 반대편의 웅장한 벼랑이 시선을 잡아 끈다.

대충 지나가고 싶은데, 자꾸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선남선녀 - '잔나비띠 8인방' 님들이 절벽을 배경으로 모여 섰다.

 

 

 

 

그 앞으론 이렇게 멋진 절경이...

광각으로도 한컷에 모두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파노라마로 만들어 보았다

누구나 감탄이 나오는 절경이다.

 

 

 

 

인공호숫가 따라 그림같은 길이 보인다.

이곳을 내려가 사자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넓은 잔디밭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저 길을 걷게될 것이다.

 

 

 

자연보호헌장탑 근처의 너른 잔디밭에 군데군데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건장한 체격의 국공파 3명이

사자동에서 어슬렁 거리고 올라와 '신고를 받고왔다'며 카메라를 들고서 훑어본다.  

산꾼들이 산에 다니면서 라면 끓인다고 서로를 신고하는것은 본적도 없으니 대충 둘러대는 말 일테다.

그나저나 마침 이날 50명이나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찌개나 라면을 끓여먹는 선수가 한분도 안계신가 보다.

이정도 인원이면 버너가 7~8개는 동원이 될텐데, 마침 공교롭게도 다들 운이 좋은날이다. ^^

아무도 문제가 되어 단속에 걸린분이 없으니 말이다. 산행 하면서 라면 끓인다고 단속나온 국공파를

현장에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자동의 내변산지원센터에서 올라 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식사를 하고 출발을 한다.  (12시34분)

 

 

 

 

맛난 식사에 술까지 몇잔 하고 호수변 그림같은 길을 찾아 간다.

 

 

 

 

그림같은 인공호수...

이름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 따라 아름다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

 

 

 

 

내변산 계곡과 직소폭포에서 흘러내린 호수 물이 참으로 맑다.

 

 

 

 

호숫길이 끝나며 오름길이 이어진다.

 

 

 

 

선녀탕

 

저 안쪽으로 물이 내려오는 곳에 바위로 가려져 선녀님들이 옷을 벗어두고 목욕을 했음직한 아담한 소가 있다.

 

 

 

 

그 옆으로 천연 바위로 테두리가 빙 둘러져 있는 '탕'이 하나 더 있다.

 

 

 

 

이렇게 맑은 물이 계곡을 타고 호수를 향해 흘러간다.

 

 

 

 

직소폭포

 

곧이어 만나게 되는 직소폭포

30m 높이에서 흰포말을 일으키며 뇌성같은 소리를 내면서 쉴새없이 떨어지는 물은 깊은 소(沼)를 만들고 있다.

지난번 왔을때는 가뭄으로 인해 폭포물도 거의 없었고, 아래의 맑고 푸른 탕도 볼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시원한

폭포수에 깊고 푸른 탕을 볼수가 있다. 폭포 밑의 큰 물웅덩이를 탕 이라고 한다.

 

 

 

詩  직소폭포 - 천양희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 박수 소리 같은
바위들이 몰래 흔들 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분옥담

 

직소폭포를 향해 계곡을 따라 올라 가면서 봉래구곡의 제3곡 분옥담을 만난다.

모양이 분화구 같이 생겼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분옥담 위 나무데크에서 식사를 하던 다른 산악회 님들이 우리에게 헛탕을 치고 올라간 국공파 일당에게

라면을 끓여 먹다 딱 걸렸다. 쩝... 그 의도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분에게는 재수없는 날이

분명할 것이다.

 

 

 

봉래구곡(蓬萊九曲)

 

제1곡 대소(大沼, 大蘇, 구시둠벙)

가장 큰 소란 뜻으로 내소사의 유래인 대소래사와 소소래사 중 대소래사를 가르키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시대 때 大蘇로 불리던 것을 근래 들어 大沼로 바꾸어 부르는 것 같다.


제2곡 직소폭포(直沼瀑布)

변산8경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폭포로 내변산의 자랑거리이다. 폭포 하단부의 소를 실상용추

(實相龍湫)라 하는데 용이 상승한 곳이라는 뜻으로 불경에서 유래되었다.

 

제3곡 분옥담(噴玉潭)

소의 모양이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움푹 파인 소에 고인 물은 옥빛을 담고 있다.


제4곡 선녀탕(仙女湯)

선녀들이 놀다 갔을 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계단상으로 여러 웅덩이가 모여 있다.


제5곡 봉래곡(蓬萊曲)

'봉래’란 무릉도원과 같은 상상의 산을 이르는 말이다. 그 정도로 봉래구곡 중 가장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

이다. 물이 흐르는 암반 위에 각자(刻字)된 봉래구곡(蓬萊九曲)이라는 글씨는 정읍군 태인면에 살았던

동초(東樵) 김철곤(金晳坤)이 썼으며 그 글씨 때문에 일반인들은 봉래곡을 봉래구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6곡 영지(影池)

고여 있는 물에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춰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도 물이 고여 있을 때는 쌍선봉 능선에

위치한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한다.

 
제7곡 금강소(金剛沼)

구전되어지는 말에 의하면 금으로 만든 비석을 빠트려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쩌면 아직도 그 비석이

물속 깊은 곳에 묻혀있을 것 같다.

 

제8곡 백천(百川)

일대의 모든 계곡이 모이는 장소로 어림잡아 백여개의 천이 모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안댐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 한여름 피서를 즐기던 곳 이었다.

 

제9곡 암지(暗池)

봉래구곡의 마지막이며 현재는 부안댐 하루에 잠겨있다. 잠두마을 앞에 있던 소라는 내용 외에 전해지는 사항이

없다.

 

지금은 부안 댐의 축조로 제6곡 영지에서 제9곡 암지까지는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다.

 

 

 

 

봉래구곡의 아름다운 계곡

조만간 계곡에 봄꽃이 피면 선경이 펼쳐질 것이다.

 

 

 

 

직소폭포 위를 지나며

 

 

 

 

위에서 내려다본 직소폭포

 

 

 

 

다시 한동안 친구와 걸으며 정겨운 담소를 하면 좋을듯한 조용하고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계곡을 지나며 이내 재백이고개에 이른다  (13시22분)

 

 

 

 

 

 

재백이재를 지나 관음봉이 보이는 아름다운 조망 바위를 오른다.

 

 

 

 

조망바위에 올라 내려다본 모습

일행들이 앞줄 능선을 따라 오르고 있다.

 

 

 

 

정면으로 멀리 곰소항이 보인다.

 

 

 

 

관음봉이 옆으로 우뚝서 있다.

지난번엔 저곳이 관음봉 삼거리에서 내소사로 하산을 하였는데 이번엔 관음봉과 세봉에 올라 내소사로

가기위해 일행 두분과 길을 나선다.

 

 

 

 

관음봉 삼거리 직전의 조망 바위에 올라 조금전 조망바위를 바라보니 일행들이 모여서 쉬고 있다.

 

 

 

 

관음봉삼거리  (13시51분)

 

관음봉과 세봉으로 길을 잡고 오른다.

 

 

 

 

지나온 호수와 그 뒤로 멀리 쌍선봉이 마치 지리산 반야봉 처럼 보인다.

 

 

 

 

관음봉에 오르는길

 

철골 구조물에 의지해 경사진 암벽을 따라 가면서 바라본 그늘진 곳에 매달린 커다란 고드름

 

 

 

 

관음봉에 가면서 그림같이 아름다운 내변산 지나온 길의 파노라마를 담아 본다 (사진클릭)

 

 

 

 

기가막힌 조망터에 자리잡은 묘소

 

관음봉 정상 아래에 왼쪽으로 출입금지가 보인다.

얼핏 살펴보니... 또 다시 직감상 조망터 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수 없는 포인트 !!

바람처럼 스며들어 보니.... 기대했던것 이상으로 기가막힌 조망터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조망터 앞에 자리한 딱봐도 명당같은 무덤...

 

 

 

 

저 멀리 내변산 최고봉인 의상봉이 보인다.

 

 

 

 

무덤앞 탁 트인 조망터에서 바라본 그림같은 파노라마 (사진 클릭)

 

왜 이렇게 멋진곳을 출입통제 하였을까?

등산로에서 고작 20~30여 미터 옆인데...

국립공원으로 바뀌면서 느끼는 가장 큰 불편함과 단점은 지나친 통제다.

차라리 지자체가 관리하는 산이 더 좋다고 느낄때가 많다.

 

 

 

 

저 멀리 지나온 조망바위는 역광속에 흐릿하게 잡힌다.

 

 

 

 

무덤뒤로 보이는 관음봉과 그 뒤에 있는 관음봉 삼거리에서 보이는 첫번째 봉우리

 

 

 

 

관음봉 정상 - 해발 424m (14시14분)

 

 

 

 

관음봉에서 바라본 내소사

 

 

 

 

관음봉에서 바라보니 조금전에 일행들이 모여서 쉬던 조망바위가 멀리 보인다.

 

 

 

 

 

 

관음봉에서 세봉으로 가는 길에...

 

 

 

 

세봉가는 길에 바라본 쌍선봉

 

 

 

 

세봉

 

왼쪽 뒤로는 의상봉(왼쪽), 쇠뿔바위봉(오른쪽)이 보인다.

 

 

 

 

세봉쪽 파노라마 (사진클릭)

 

 

 

 

뒤돌아본 관음봉

한참을 내려와 다시 세봉에 오른다.

 

 

 

 

세봉에서 내소사 왼쪽 바위 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청련암을 당겨 본다.

 

 

 

 

해가 서쪽으로 길을 잡은 오후

역광에 흐린 내소사와 곰소항을 바라본다.

 

 

 

 

세봉 (14시37분)

 

세봉의 유래

 

어디를 봐도 세봉의 유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어떤분은 이곳에 봉우리가 대충 3개 인듯 해서 세봉 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ㅎㅎ

 

부안의 향토 사학자들은 세봉을 잘못된 오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제는 우리나라 땅이름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세봉'이라는 땅이름 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산 봉우리에 붙혀진 관음봉의 관음(觀音)의 고귀함에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고 한다. 

혀가짧은 그들은 관음을 유사한 발음인 '가늠'으로 부르며, 나중에 한문으로 옮긴다고 가늘 세자를 써서

세봉(細峯)으로 오기 했다는게 부안의 일반적 해석 이다.

 

현재는 관음봉과 세봉이 별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지만 원래 관음봉 자락의 지봉 이었나 보다.

지금도 부안사람 그 누구도 관음봉을 '세봉'이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조망이 좋은 세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풍경1 (사진클릭)

 

 

 

 

세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풍경2 (사진클릭)

 

 

세봉삼거리에서 무심코 직진 하다가 발지를 보고 일행을 따라 청련암으로 길을 잡아 내려간다.

사진찍는다고 조금 늦어 일행들을 급히 쫓아 가는 통에 청련암으로 내려오는길에 있을 노루귀와 복수초

군락지를 못본채 지나치고 만다... 아쉽다. 그렇게 서두를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청련암

 

가을단풍으로 유명한 곳 이다.

 


 

 

청련암을 지나 내소사로 내려오는 편안하고 널찍한 길

관음봉과 세봉을 넘어 내려오는 A코스를 타고 온 다섯명이 즐겁게 내려온다.

 

 

 

 

내소사

 

내소사에 내려오니 지장전을 건립하는 불사가 진행중이라 경내가 번잡스럽게 보인다.

지난번에 두루 살펴보고 사진을 담은지라 이번엔 가볍게 둘러보고 지나친다.

 

내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으며

633년(선덕여왕 2) 신라의 혜구(惠丘)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석포리에 상륙해

이 절을 찾아와 군중재를 시주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내소사로 바꿨다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내소사앞의 유명한 전나무 숲길

 

내소사앞 전나무 숲을 헤치고 곰소만 앞 바다의 푸른 어둠을 향해 퍼져가는 내소사의 은은한 저녁 종소리는

‘소사모종(蘇寺暮鐘)’ 이라고 해서 변산8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내소사를 빠져나오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남자 한분이 다가와 내소사 뒤편의 산을 가리키며 저 산이 무슨산

이냐고 묻는다. 내소사 편액에 능가산 내소사 라고 되어 있으니, 능가산이 맞긴 하겠는데, 그게 요즘에도

쓰는 말인지 판단이 안선다. 그래서.... 그냥 '변산' 이라고 대답을 하고 만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분은

아~ 그래서 변산반도 라는 말이 생겼군요... 하며 돌아서는데... 이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껏 내가 넘어온 산이 '변산' 인가?

 

알고 있기로는 부안의 변산(邊山)은 원래 변산(卞山) 으로써 삼국시대의 변한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개암사 자리가 원래 변한의 궁궐터로 변한이 백제에 통합이 되고 난후에 궁궐이 허물어지고 절을 지었다고

하는데.... 정말 산 이름이 변산 인가? 정작 중요한것을 생각해본적이 없는것 같다.

 

 

산행종료 (15시 10분)

 

 

 

 

 

 

곰소항 풍경

 

 

 

 

내소사를 빠져나와 곰소항의 젓갈시장으로 이동하니 운영진이 미리 빈 식당을 빌려 장소를 섭외해 두었다.

잘 삭힌 홍어회와 홍어무침에 막걸리가 뒤풀이 음식으로 준비되었는데, 홍어귀신이 잘생긴 홍어를 만났으니

힘든 산행중에 오행 삼잎을 만난 것 만큼 반갑기 그지없다. 뒤풀이후에 다들 장소를 빌려준 종갓집젓갈에

들러 해산물 쇼핑을 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오른다. (종갓집젓갈 : 582-4984)

 

이 글을 빌어 이른 아침 식사부터 뒤풀이 까지 힘든 수고스러움을 도맡아 해주신 운영진 여러분과 멋진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자 한다. 지금껏 안내산악회를 포함한 많은 산악회를 통하여 산행을 해왔지만 '우리들'님들

처럼 정성껏 준비된 맛있는 아침을 제공 하는 곳을 보지 못했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달에도 맛을 봤지만

아침식사때 함께 나오는 국은 쉽게 맛볼수 없는 진미라 할수 있겠다. 참으로 맛있다 ^^

 

 

 

이곳에서 지난번 다녀온 부안 마실길 코스가 가까우니 참고로 마실길 포토에세이 바로가기를 이어두고자 한다.

★ 부안마실길 ★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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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 등산지도

산행코스 : 남여치 - 쌍선봉 - 월명암 - 재백이재 - 관음봉 - 세봉 - 청련암 - 내소사 (5시간 : 점심식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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