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 저자 이중환이 극찬한

 

 

 

조선시대에 산꾼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지금에야 누구나 지리산과 설악산등 전국의 명산을 쉽게 가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사대부들 조차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명산에 한번 가보는게 큰 소원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더우기 일반 양민들이야

말할나위도 없었을 것 이다.

 

어쩌다 약초산행을 할때 문득 생각을 하는것이, 요즘날 우리가 산에서 만날수 있는 것들중에 가장 무서운

것을 꼽으라면 뱀이나 벌을 꼽을수가 있는데, 과연 옛날도 그러했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에야 인간에게

위협을 줄수 있는 맹수들이 산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예전만 해도 호랑이나 곰 늑대등이 깊은 산중에

서식을 하고 있었음으로 아무나 쉽게 요즘처럼 산에 오를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교통이나, 생활의 여건

및 산행을 위한 여러 제반요건도 마찬가지 일테고 말이다.

 

여하튼 그런 조선시대에서 최고의 산꾼중 한명 이자 지리학자로 유명한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꼽은

최고의 명산승지 라는 청화산은 속리산 근처에 있는 산으로 인근에 너무도 유명한 국립공원 속리산의

그늘에 가려 근래에는 백두대간을 하는 산꾼들을 제외 하고는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산이 되어 버렸다.

 

청화산을 극찬했다는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스스로의 호를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칭하고 청화산에 기거

하였으며 청화산을 두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청화산은 내선유동과 외선유동을 위에 두고, 앞에는

용유동을 가까이 두고 있는데, 수석의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은 험한 곳은 없다.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은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다.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을 가린 곳이 없으니 거의 복지(福地)다.>

 

청화산 아래 원적사가 있는 계곡 마을을 우복동 이라고 하는데, 우복동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의

하나로 소의 뱃속처럼 사람이 살기 편안하며,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부터 화를 면할수 있는 축복받은

좋은 땅 을 말한다. 일본이 대지진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이즈음에 만일 이땅에 큰 지진이 발생 한다면 

청화산 아래 우복동으로 가면 안전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한번 해본다. 우복동의 후보지는 몇군데가

있었지만 청화산 아래 지금의 화산마을이 있는 지역이 가장 유력한 우복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앞에는 아름다운 쌍룡계곡이 속세와 담을 쌓는다는 속리산과 길을 갈라놓고, 뒤로는 청화산이 빙 둘러

있으며 마을로 들어오는 계곡의 입구가 승무산 으로 가려져 있는 첩첩산중 시골이니 전쟁이 나도 알턱이

없을것만 같다. 실제로 조선시대 말기에 많은 부자들이 이곳에 땅을 사서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복동이란 당쟁과 전쟁을 피하고, 사람과 속세를 피하기 위한 피란처 라고도 볼수 있는데, 또 어찌보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찾던 전설의 이상향 과도 맥락이 통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번 묘봉에서 관음봉을 거쳐 문장대로 가는 길에 청화산을 바라보고, 기회가 생기면 가보겠노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마침 우복동천 환종주를 세구간으로 나눠서 진행하는 길에 합류하여 청화산에 다녀올

수가 있었다. 옛날 도선국사가 우복동 이라는 화산마을로 가는 계곡의 진입마을인 광정 마을 서쪽에 있는

청화산 남릉의 승무산(516m)에 올라 청화산과 시루봉 풍광을 보고 너무 명산이라 감격해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도 있다는 승경지에, 마침 일본에 큰 지진과 해일이 일어 수만명의 사상자가 나고 있는 시점에 찾은

곳이 공교롭게도 가장 안전하다는 십승지의 우복동 이라니 이 또한 어찌보면 시기적절한 인연인듯 싶다.

 

 

 

늘재에 있는 웅장한 백두대간 기념비 (9시56분)

 

 

 

 

늘재

 

늘재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을 잇는 해발 370m 의 그리 높지 않은 고갯마루로

예부터 경상도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상주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던 고개로 

고개 양쪽에서 늘티(재) 오름길이 완만하여 '늘어지는 고개' 라고 해서 늘재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늘재 도로변 양쪽엔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 임을 알리는 팻말이 서있다.

 

 

 

백두대간 기념비 뒤로 성황당이 있다.

 

성황당 옆에 있는 백두대간 성황당 유래비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백두대간의 정기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 때는 횡액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난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신앙으로 승화되어 당(堂)도 지지(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성황당 뒤로 소리 없이 산길로 스며든다.

오늘 새벽까지도 기상청 날씨정보엔 오전, 오후 햇님이 방긋 거리는 맑은 날씨라고 하였는데

아침부터 구름이 가득하고 이동중에 간혹 차창에 빗방울이 스치더니, 늘재에 도착해서도 하늘은 짙은

회색빛 구름에 덮혀 있다.

 

늘 카메라의 성능을 믿고 화벨을 오토로 두고 다녔는데, 진득한 구름이 마뜩치 않아 화벨을 Cloudy로

바꿨는데, 그만 깜박하고 오후에 해가 떳을때 원위치 한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아직 흐린날씨의 화벨이 적응이 안되는지 노란 색감이 낀듯한 오후 사진의 하늘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임도를 따라 매기재를 넘어 화산마을로 가는 길

 

 

 

 

정국기원단 (10시23분)

 

청화산 중턱에 조성된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간이다. 
비 좌측에는 白頭大幹 中元地(백두대간 중원지 : 백두대간의 중간지점)라 적혀 있고,
우측에는 白衣民族(民族中興)聖地  不失其祖 三巴水 (백의민족(민족중흥)성지 불실기조 삼파수)라

적혀있다. 삼파수란 한강,낙동강 금강의 세 물줄기가 갈리는 곳이다는 의미 이다.

 

정국기원단은 커다란 바위 위에 있는데, 비석 뒤로 가서 바위에 서면 속리산의 주능선을 제대로

조망할수 있어 쉬어가기에 좋은 곳 이다.

 

 

 

 

정국기원단에서 조망한 속리산 주능선과 동릉

능선 맨 우측 뾰족한 삼각형 형태의 봉우리가 관음봉 이다.

 

우측 묘봉, 관음봉에서 부터 문장대를 거쳐 천황봉, 형제봉까지 일렬로 시원하게 조망되는 속리산 주능선

날씨가 따뜻하니 개스가 끼인데다 하늘마저 짙은 구름이 끼고 있으니 조망은 많이 아쉽기만 하다.

더 위로 올라가면 조망이 더욱 좋겠지만, 개스로 인해 더 멀어 질수록 조망이 좋지 않을것 같아 이곳에서

미리 사진을 담아 두었는데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 되었다.

 

 

 

 

속리산 왼쪽으로는 피앗재를 지나 형제봉으로 가는 능선길과...

도로 건너 왼쪽으로는 우복동천 구간인 도장산과 청계(대궐산)이 보인다.

 

 

 

 

속리산 오른쪽으로는 입석리 도로 건너로  백악산이 보인다.

 

 

 

 

낙옆이 진 앙상한 가지 사이로 속리산을 조망하며 늘재에서 청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편 이다.

초반부터 완만한 길을 따라 가며 암릉이 나오기도 하고 정상에 가까워서 약간 가파르게 진행된다.

 

 

 

 

속리산 주능선을 배경으로...

얇은 셔츠를 입고 산행을 하였는데, 반팔 생각이 날 정도다.

 

 

 

 

산행 들머리인 늘재와 윗늘티 마을

 

 

 

 

조금 더 진행하니 속리산 조망이 좋은 곳에 식탁같은 네모 반듯한 바위가 나온다.

 

 

 

 

오늘 산행을 같이한 깨소금님과 브라운슈가님

 

안내산악회를 따라 동행하는 지라 산행속도가 널널모드의 동호회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쉼없이

꾸준하게 걸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오랫만에 산행을 한다는 브라운슈가님을 조금 걱정하였는데 

의외로 끄떡없이 잘도 가신다.

 

 

 

 

앞서간 반보님과 충박님이 등로 옆에 있는 암릉을 타고 가신다.

무심코 등로로 가던 나도 뒤돌아서 바위를 타고 오른다.

 

 

 

 

암릉에서 반보거사님과 충박님

 

 

 

 

원적사

 

멀리 가야할 시루봉이 그 특이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발 아래 계곡 깊은 곳에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 했다는 고찰 원적사가 보인다.

광정과 화산 마을을 중심으로 서쪽에 승무산, 북쪽에 청화산, 동쪽에 시루봉이 있어

전체적인 산세가 청학포란형이라 한다. 즉 푸른 학이 알을 품고 있는 산세로 청화산이 학의 머리와

몸통이라면 승무산은 오른쪽 날개, 시루봉은 왼쪽 날개가 된다고 한다.

원적사 뒤뜰에는 학의 알에 비유되는 계란바위(일명 학바위)가 있어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우복동(牛腹洞)

 

일생을 사람이 살만한 땅을 찾아다닌 청화산인 이중환(李重煥 1690~)은 택리지에서

'청화산은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고 앞 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만은 못하나, 속리산 같이 험준한 곳은 없으며,

흙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살기가 적도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수기가 흩어지고

드러남을 가리지 않아 자못 복지이다' 라고 극찬했고 이곳에 살면 당대의 벼슬이 재상에 이르고

은퇴 후에도 큰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우복동이 청화산에 흘러오는 계곡, 원적사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우복동가-정약용(丁若鏞)

 

俗離之東山似甕(속리지동산사옹) : 속리산 동편에 산이 항아리 같아
古稱中藏牛腹洞(고칭중장우복동) : 옛날부터 그 속에 우복동이 감추어져 있다네
峯回磵抱千百曲(봉회간포천백곡) : 봉우리는 두을고 골짝물은 천 구비 백 굽이 둘러  (중략)

 

 

 

 

지나온 능선길

 

 

 

청화산 정상을 지나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시루봉 왼쪽 옆으로 연엽산이 보인다.

 

운행중에 가끔 녹지 않은 낙옆밑의 얼음으로 인해 미끄러운 구간이나 경사가 가파른 구간이 나와도

다들 편안하게 지나간다. 이중환이 청화산을 두고 속리산과 달리 살기가 없는 산 이라고 했다니

믿고 가는 것이다. ^^

 

 

 

 

청화산은 백두대간 길로 조항산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근처에 속리산 이라는 걸쭉한 명산이 있기에 대간길을 걷는 산꾼들이 아니라면 잘 찾지 않는 곳 이다.

표지목에서 보듯이 산행 들머리인 늘재는 눌재라고도 불리운다고 한다.

 

 

 

 

청화산 정상 (11시25분)

 

청화산은 산에 소나무와 산죽이 많아서 산이 늘 푸르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이라고 한다.

시루봉에서 연엽산쪽으로 아래 계곡에는 청화 마을이 있기도 하다.

 

정상은 잡목으로 인해 조망이 시원스럽지가 않다.

하지만 청화산은 주변 산군들의 조망이 특히나 뛰어난 곳으로 정상에서 조금만 더 가면

멋진 조망 바위가 나온다. 정상의 높이는 984m 라고 하는데, 정상석은 970m 라고 되어 있다.

어느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반보거사님이 고도계가 오차가 있다며 수정을

하시는데 이때문 인지도...

 

 

 

 

산죽길을 지나며

 

청화산은 소나무와 산죽이 많은곳 이라고 하는데, 오늘 길에서 만난 산죽은 정상부가 다였다.

 

 

 

 

지나온 능선 오름길과 정상부뒤로 희미하게 속리산 능선이 보인다.

 

 

 

 

조항산

 

시루봉으로 가는길에 조망바위에 서니 왼쪽으로 능선따라 조항산이 보이고 왼쪽 뒤로는 흰색 암반이

뾰족한 중대봉에서 우측의 대야산 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며, 조항산 오른쪽으로는 둔덕산이 서있고

조항산과 둔덕산 사이로 희양산이 연무로 인해 희미하게 보인다.

 

다음에는 청화산과 조항산을 묶어 산행을 하는것도 좋을 것 같다. 조항산은 척 봐도 조망이 무척

좋아 보이니 말 이다.

 

조항산은 청화산과 대야산 사이에 위치하고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경계가 되는

산 으로, 조항(鳥項)은 새모가지 란 뜻으로 북쪽에서 바라보면 새모가지 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옛날에는 갓바위봉 이라고도 불리웠다는데, 이는 옛날에 온세상이 물에 잠겼을때

정상바위 꼭대기만 갓 만큼만 물위로 나와 있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이라고 한다.

 

 

 

 

백두대간길 (사진클릭)

 

 

청화산 정상을 지나 조금 걷다 보면 도석재 전에 도석재 삼거리에서 산길은 직진하여 시루봉 으로

가는 길과 조항산으로 가는 백두대간길로 갈라진다. 문장대에서 늘재로 뚝 떨어졌다 다시올라

이어진 백두대간은 청화산을 지나 조항산 -  대야산 - 장성봉 - 악휘봉 - 희양산 으로 이어진다.

 

시루봉으로 가는 능선의 왼쪽... 조항상 아래쪽에 있는 궁기리는 후삼국시대에 견휜이 기반을

구축하고 궁궐을 지었다는 데서 유래 한다고 한다. 지금도 궁기리엔 궁터마을이 있다.

 

 

 

 

조망사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청화산 근처 산군들

 

문장대 ~ 늘재 ~ 청화산 ~ 조항산 ~ 대야산 ~장성봉 ~ 악휘봉(삼거리) ~ 구왕봉 ~ 희양산(살짝 옆) 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도 한번 같이 보면서 늘재 ~ 청화산 ~ 시루봉 ~ 장군봉 ~ 쌍용계곡으로 진행한

오늘 산길과 주변 산들을 보아두면 좋을것 같다.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시루봉으로 간다.

꽃은 한송이도 보지 못했지만 완연한 봄날씨다.

구름이 가득했던 오전과 달리 햇님이 비추고 있는데, 깜박잊고 화벨조정을 하지 못했다.

 

 

 

 

벌써 청화산 정상이 저만치 있다.

 

 

 

 

가까워진 시루봉을 당겨보니 정상부 바위 오른쪽 끝에 누군가 서 있다.

 

 

 

 

시루봉

 

응달진 사면은 아직 눈이 채 녹지 않고 있다.

간혹 그늘진 곳을 지날때면 등로상에 깔린 햇볕을 차단한 두터운 낙옆 밑으로 얼음이 미끌거린다.

 

 

 

 

청화산 정상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진 능선길과...

우측으로 도석재 삼거리에서 백두대간길 조항산으로 뻗어간 산줄기가 보인다.

 

 

 

 

시루봉과 우측의 광정마을의 파노라마 사진 (클릭)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

 

 

 

 

시루봉을 오르면서...

 

 

 

시루봉 정상부의 암릉길

시루봉은 한개의 바위로 된 봉우리가 아니라 세개의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화산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진 능선과 백두대간 능선길 따라 조항산과 그 오른쪽의 둔덕산 (클릭)

 

 

 

 

시루봉 정상

 

 

 

 

연엽산

 

시루봉 가는길에서 갈라진 지능선을 타고 연엽산으로 이어진다.

농암면 뒤로 작약산은 희미하다.

 

 

 

 

청화산 ~ 시루봉 능선에서 연엽산으로 갈라지는 지능선이 바로 앞에 있다.

둔덕산 우측 뒤로 백화산과 주흘산이 보여야 할텐데 개스로 인해 조망이 희미하게 뿌옇기만 하다.

 

 

 

 

조항산과 둔덕산으로 가는길의 마귀할멈통시바위 능선을 당겨 보았다.

 

 

 

 

 

 

시루봉 (13시 27분)

 

 

 

 

시루봉에서 바라본 청화산

 

 

 

 

시루봉에서 청계산과 도장산을 바라보며...

우측으로는 형제봉과 구병산이 보인다.

 

 

우복동천 환종주길

 

상주시 화북면은 '삼산', '삼수'의 지역으로 불린다.

삼산 이란 속리산, 도장산, 청화산을 이름이고, 삼수란 속리산 천황봉에서 한강, 금강, 낙동강이 갈라짐을 말한다.

상주시 에서는 이 세개의 산을 엮어 원점회귀를 할수 있는 37.8km의 등산코스를 만들었는데, 이를 우복동천 이라 한다.

 

 

 

 

<참고자료> 우복동천 종주 길과 백두대간 안내도 (출처 : 인터넷)

 

 

 

 

시루봉 내려가는 길

 

 

 

 

시루봉을 지나면 바로 이대로 내려가서 끝나는줄 알았다.

하지만 시루봉에서 회란석이 있는 마을까지는 상당한 거리를 가야만 한다.

사진에 보이는 능선상의 오르내림을 몇번 거친후 장군봉을 지나서 내려가야 한다.

 

 

 

 

반대쪽에서 바라본 시루봉

이쪽에서 바라보면 정상의 모습은 시루 모양이 아니라 웅장하고 뾰족한 바위 봉우리다.

 

 

 

 

그냥 이대로 내려가는줄 알았던 길은....

바로 앞의 봉우리 두개를 넘어서 가야 한다.

 

 

 

 

시루봉의 가파른 길을 내려와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 보니 조금전의 시루봉이 저만치 있다.

 

 

 

 

장군봉의 바위

 

 

 

길따라 맑은물이 흐르는 쌍용계곡

 

 

두 마리의 용이 마주앉은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가 있다 해서 이름 붙은 쌍용계곡.

기암괴석과 그 사이 흘러내린 물이 수만년 억겁의 세월과 함께 빚어놓은 담과 소가 즐비하다.

용이 발톱으로 긁어 놓은 듯 물결치는 기이한 모습의 너럭바위인 회란석은 그중 압권이다

 

 

 

 

가파른 내리막 길에 밧줄 구간이 몇 차례 나온다.

 

 

 

 

참고사진 - 시루봉에서 회란석으로 내려오는 능선과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가파른길 (고라니님 作)

원래는 이 가파른 길로 오르려고 했었다.

 

 

 

 

이윽고 쌍룡계곡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세수와 세족을 하고 있다.

산행종료 (15시)

 

 

 

 

회란석이 있는 곳의 큰 바위에 이곳이 회란석임을 알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회란석이 있는곳의 절경

여름날엔 바로 풍덩 뛰어들 장소다.

 

쌍용계곡 휴게소가 있는 이곳은 여름엔 유명한 물놀이 장소라고 한다.

쌍용계곡 늑천정 가든은 민박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사장님이 명함을 주시며 여름날에

찾아 달라고 말씀하신다. (쌍용계곡 휴게소 민박 :: 농암면 내서리 687  T. 054 - 533- 0988)

휴게소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마시며 버스를 기다린다.

 

 

 

 

회란석의 남근바위

 

회란석(廻瀾石) ... 수만년동안 계곡을 흐르는 물이 회란석의 큰 바위를 지나면서 물결의 부드러운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바위로, 커다란 암반위로 물결들이 굽이쳐 휘감아 돈다란 뜻이다.

비온뒤 수량이 많으면 볼만할것 같다.

 

주민이 남근바위에 올라타면 뭐 좋은일이 있다고 해서 다들 한번씩 올라타본다.

재밌는것은 바로앞 길 위의 쌍용계곡 휴게소 옆에 여근바위가 따로 있다는 것 이다.

 

 

 

 

돌아오는길...

고속도로 속리산 휴게소에서 바라본 구병산의 암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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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 등산 지도

산행코스 : 늘재 - 청화산 - 도석재 - 시루봉 - 장군봉 - 회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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