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지독한 바람

 

 

백산의 겨울은 우리나라 최고의 매서운 칼바람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1월의 정기산행지로 소백산이 올라 왔는데, 반갑지 않을수 없다.

작년 1월에는 무릎때문에 몇달간 산행을 쉬느라 소백에 함께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답고, 덕유의 칼바람 속에서도 즐거웠던 기억이 나니 이번 겨울에 만날

소백의 칼바람은 한참을 보고싶어 기다렸던 녀석이다.

 

대산은 체해서 복통에 시달리며 올랐는데, 이번엔 감기다.

멀쩡하던게 산행 전날인 토요일날 몸살이 심해졌다. 하필 이때...

그래도 갈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아서 약을 먹고 땀을 흘리면서 최대한 컨디션 조절을 시도했다.

그러나 포기했어야 했다. 겨울 소백산은 오한에 시달리는 감기 환자가 넘어가기엔 너무도 혹독했다.

그것도 몇십년만의 최고로 추운날에 말이다. 

4~50대의 산꾼들이 모두들 평생 만나본 가장 심한 추위라고 하니 얼마나 추웠는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도와 같이 몰아치는 거센 칼바람!!

소백산의 거센 파도에 일엽편주 마냥 흔들리는 몸

오한으로 입고 있는 등산복 섬유의 분자 구조가 축구 그물망 처럼 뻥뻥 뚫린듯 느껴지는

지독한 소백의 칼바람에 간신히 무사귀환 했던 산행 이었다.

 

 

어의곡리 (10시 43분)

 

아침 6시30분에 승차를 하여 7시에 대전을 빠져나간 버스는 10시30분이 되어서야 어의곡리에 도착을 하였다.

어의곡리는 산꾼들을 싣고온 버스들로 가득차 있다.

이날 약 만여명의 등산객이 소백산을 찾았다고 하는데 추운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겨울소백의

진경을 보기 위해 소백을 찾은것 같다.

어의곡이란 늘 푸른 옷을 입었다 하여 붙은 이름 이라 한다.

 

 

 

다들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 처럼 비장 하다.

그러나 10년만에 맞는 한파라고 해서 다들 단단히 준비를 하였는데

막상 어의곡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니 생각만큼 춥지 않다.

잠시 걸은후에 고어텍스 자켓을 벗고 산행을 이어간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산꾼들....

배낭뒤에 매단 산악회 명찰도 제각각 이다.

그저 그런 편한 날씨속에 출발했던 것과 달리 위로 올라갈수록 쌀쌀해진다.

올해 운장산과 덕유산에서도 춘추용 장갑으로 너끈히 문제 없었는데, 손끝이 시려워 조금 두꺼운 겨울용 장갑으로 바꿔꼈다.

 

 

능선에 가면 칼바람에 식사를 할수 없을것 같아... 능선 전에 식사터를 찾는데 마땅한 데가 없다.

위 사진처럼 국망봉에서 신선봉으로 가는 능선이 보이는 지능선의 작은봉우리 같은 조금 넓은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많이 올라왔다고 싸늘한 바람이 살살 불어 온다.

 

식사를 하려고 장갑을 벗었는데...

순식간에 양손에 심한 통증이 온다. 그만큼 추운것이다. (대충 영하 20 ~ 25도)

 

배낭에서 자켓을 꺼내입고 의자에 앉아 장갑을 낀채 어설픈 식사를 하는데... 갈수록 한기가 몰려온다.

아마도 약기운이 떨어져서 몸살 감기로 인한 오한이 밀려드는것 같다.

온몸이 참을수 없게 떨리면서 진정 하려고 해도 내가 떠는 모습이 다른분들에게도 보이는것 같다.

이제껏 겨울산에서 이렇게 떨어본적이 없고, 다른분들은 춥다고 해도 이정도는 아닌것으로 보아

감기 때문 인것 같다. 식후에 좀더 두꺼운 장갑으로 다시 갈아 꼈다.

 

식후 30분 후에 약을 복용 하라는데.... 능선에 오르면 그럴 겨를이 없을것 같아 10분 정도 걷다가

감기약을 꺼내서 먹으려고 물병을 꺼내드니... 보온캡으로 감싼 물병이 얼어 붙었다.

힘들게 병뚜껑을 열고서 입구의 얼음을 스틱으로 부수고 아직 얼지 않은채 남아 있는 약간의 물로 약을 먹었다.

그래도 오한은 가시지 않는다. 

 

 

 

식후 30분 정도 올라 능선에 도달했다.

 

능선에 오르는데 많은 분들이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의곡리에서 출발해 오를때도 많은 분들이 내려 오고 있었는데, 소백산이 작은산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 산행을 시작했기에 벌써 하산을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능선에 오르고 나니 금방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포기하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려오면서 추위로 인해 안면마스크를 하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한다.

여기는 봄날 입니다.

위에는 시베리아가 울고 갑니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능선에 서니...

순간 지옥에 온듯한 느낌이 찾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한으로 정신을 못차리는 와중에 몰아치는.... 덕유산의 칼바람을 웃어 넘겨 버리는듯한 소백산의 칼바람...

狂風,,,거센바람에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정신적 공황

체감온도 영하 40도, 50도?

이게 도대체 어느정도의 추위란 말인가?

전날 설악의 온도가 영하 27도에 체감온도가 영하 53도 였는데, 소백은 더 추울거라는 님의 댓글이 생각난다.

고개 숙이고 모자 눌러쓰고, 거센 칼바람에 비틀비틀...한걸음 두걸음 앞으로 직진하는것 뿐 

 

그동안 겨울산행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던 바지가...

마치 구멍송송 뚫린 망사스타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얇은 기능성 내복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소용이 없었다.

칼바람은 바지와 내복을 우습게 통과하고 감기로 인해 오한에 떨고 있는 뼈골을 관통하는것만 같았다.

고어텍스 자켓에 달린 모자를 자꾸 뒤집어 써도 정면에서 부는 바람은 이내 모자를 벗겨 버려서 소용이 없고

다만 귀 덮개가 있는 겨울용 윈드스토퍼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꽉 붙잡고 있었다.

풍속으로 보아 한번 날려가면 다시는 찾을수 없을테고, 그러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로봉을 오르는 중에

 

비로사나 천동계곡으로 올라 어의곡으로 하산하는 분들은 능뒤로 칼바람을 맞고 있어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완전무장에 고글까지 끼고 오는 분이 제대로된 복장을 하신것 같다.

 

 

국망봉 - 상월봉 - 신선봉으로 가는 능선

 

국망에는 여러가지 전설이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마의태자의 전설 이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태조에게 투항하자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면서 이 산에서 신라 경주를 바라보며

나라를 잃은 슬픔에 통곡하였다 하여 국망봉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진행방향의 비로봉 정상과 비로봉에서 이어진 연화봉으로 가는 능선

 

현재의 상태로 비로봉을 거쳐 저 멀리 보이는 연화봉 까지 간다는 것은 끔찍해 보인다.

한 겨울 추위에 대한 낭만을 따질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버스는 이미 희방사로 출발을 했을테고...

내가 선택할수 있는 길은 단 한가지... 참고 직진 하는것 뿐이다.

저 연화봉.... 까마득히 보이는 곳 까지

군대에서도 안해본 개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모두들 하산후에 한마디씩 하였는데....

바람이 사람을 죽일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이번에 실감을 하였다고들 한다.

배낭에든 소주가 얼어 버리고...

사람을 밀쳐내는 칼바람에 체감온도가 영하 40도 밑으로 떨어져 내린 상황에서...

오늘자 신문기사를 보니 이날 소백산에서 조난사고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청바지를 입고 산행하다 저체온증으로 실려간 분도 계시고...

너무 춥다보니 근육이 움츠러들어 쥐가 나서 걷지 못하는 분도 계시고...

진행중에도 그 추위에 등로 옆 나무 데크에 쓰러져 계신분을 맛사지 하고 따뜻한 물을 먹여 주고 계시는

우리 일행중의 '탱크'님을 볼수 있었다.

 

소백산...

아무리 껴입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파가 연일 몰아치는 요즘 소백산 능선을 걸어야 한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최상의 보온 방책보다 한두겹은 더 껴입어야 한다.

특히 두꺼운 장갑과, 안면마스크 (또는 바라클라바)는 필수 이고, 가능하면 핫팩도 여러개 준비 하는게 좋다.

 

 

 

비로봉

 

칼바람에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서 비키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다.

어차피 눈밖에 보이지 않는거라 모자이크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비로봉은 비로사에서 유래되었으며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주봉 이다.

 

소백산과 태백산등 '백'자가 들어가는 산명이 많은데...

백(白)은 '밝'의 음차이고, 또 희다는 뜻을 가지고도 있어 밝다와 통하므로, 배달민족,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우리민족의 많은 산에 이 이름들이 붙어 있다.

옛 선인들이 산을 인간 세계에 광명을 주는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였으며,

희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깨끗하다, 정결하다, 숨김이 없다, 환하다(밝다)의 뜻을 가지므로 많은 산에

'백' 자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국망봉과 신선봉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부드러운 능선

흰눈에 덮힌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그러나 현실은 혹한과 광풍이 격렬하게 싸우는 참혹한 전쟁터

 

 

 

비로봉에서 바라본 비로사 계곡

 

잠깐 정상석 밑 칼바람을 피할수 있는 곳에 서니... 이곳이 바로 봄날이다.

바람을 조금 피했다고 영하 25도의 추위가 봄날같이 느껴지는것을 보면

칼바람이 얼마나 매섭게 불고 있는지 알수가 있다.

 

비로사에서 올라 인파로 인해 정상에 서지도 않고 정상석 뒤편의 바람을 막아주는 이곳에서 이쪽 저쪽 경치만 보다가

다시 비로사로 내려간 분이 하는 말이... 이날 소백산엔 칼바람도 광풍도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우습기만 하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비로사계곡과 연화봉쪽 파노라마

 

여기까지 찍고나니...

카메라가 이상하다.

세칸 가득차 있던 배터리 잔량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지고 켜지지 않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보조 배터리로 갈아 끼우고 나서 사진을 딱 한장 찍었는데...

다시 카메라가 켜지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강추위에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 않는듯 했다.

배터리 또한 다시 모두 소진 되어 버렸다. 허.... 대략 난감 하다.

카메라 또한 동상이 걸렸는지 추위에 제정신을 못차리는 것이다.

그나마 꾹 참으며 이 길을 걷고 있는 유일한 위안이 사라져 버리는 순간 이다.

에고..에고.. 어서가자 연화봉...

 

 

 

비로봉을 지나서 연화봉으로 가는 능선에 뒤돌아본 비로봉 (우측)

 

다시 보조배터리를 방전된 주배터리로 갈아 끼우고 카메라를 고어텍스 자켓안에 넣어서 체온으로 감싸본다.

혹시라도 이놈이 조금 따뜻해지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다.

30분 정도 품었다가 다시 꺼내보니 완전 방전된 배터리가 2칸으로 올라와 있고 전원을 켜니

렌즈가 슈욱 ~ 밀려 나온다.

이놈 다시 동상걸리기 전에 후다닥 한컷 담고 다시 품에 넣었다.

 

 

칼바람을 피할길 없는 능선길

 

지금까지 겨울 산행하면서 윈드스토퍼 모자를 뚫고 차가운 한기가 머리로 스며드는것은 처음 느꼈다.

너무 춥다보니 온몸의 근육이 움츠려들고 수축되는게 느껴진다.

이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이날 쥐가 나서 고생을 한것이다.

 

윈드블록 폴라텍 바지를 입고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아니면 쉘러 WB400 원단 바지라도 입었으면 좀 나았을건데... 그걸 왜 잘 두고 왔을까. 쩝..

오늘 입고온 동계 바지는 방풍과는 담쌓고 있는 놈 인것 같다. 덕유산과 설악에서는 끄떡 없었는데...

또한 겨울 소백산행중에 바라클라바는 생존과 관련된 필수품 이니 꼭 챙겨서 가야만 한다.

 

많은 산악회에서 능선의 칼바람에 진행이 어려우니 부랴부랴 다들 코스를 변경하여 하산을 시킨다.

어의곡에서 희방사로 내려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천동계곡으로 하산을 시키는 것이다.

우리도 그랬으면 싶은데 앞서간 분들도 있고 하니 진행만이 살길인듯 싶다.

 

 

 

한참을 온것 같은데 연화봉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제1 연화봉을 내려서며 바라본 연화봉

한고개 두고개 넘고 마지막에 주욱 올라서면 연화봉이다.

 

 

 

비로봉(좌측)과 비로사 계곡

뒤로는 일월산과 청량산 방향 인데 추위에 제대로 볼 겨를도 없다.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

 

추위로 지친길

마지막 오름길이 힘이 든다.

 

 

연화봉에 올라 바라본 소백산 능선

좌측의 제1연화봉과 맨 우측의 비로봉 그리고 그 뒤로 국망봉이 보인다.

 

 

연화봉

 

연화봉은 430여년전 봉화를 올렸던 산이라 하여 연화봉이라 한다.

비로봉에서 그 아득함에 절망했던 봉우리

드디어 그곳에 섰다.

 

오늘의 소백산 산행은 순 엉터리다.

감기에 떨고

추위에 떨고

칼바람에 떨고

 

추워서 조망은 커녕 고개 푹 숙이고 걷기 바빴고...

카메라는 추워서 죽을라고 깜박깜박...

방수, 방진, 충격과 내한에서 강한 루믹스 터프(방수) 카메라를 보조로 들고 왔어야 했다.

소백의 능선이 꽃과 신록으로 예쁘게 물들 6~7월에 다시 와야겠다. 

 

 

연화봉에서 역광으로 바라본 통신탑이 있는 제2 연화봉과 좌측의 흰봉산과 도솔봉

 

 

연화봉에서 바라본 천문대와 백자골과 왼쪽 뒤로 금수산 

 

 

하산길

능선의 칼바람이 없으니 정말 살것 같다.

 

 

흰눈에 덮힌 저 봉우리와 능선길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지금도 저 능선엔 체감온도 영하 40도 아래로 떨어지는 칼바람이 불어대고 있을것이다.

 

내려오는 중에 만나는 분들마다 내얼굴을 한번씩 처다본다.

우습게 생긴 윈드스토퍼 검정색 테둘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상태에서 눈만 살짝 드러난 안면마스크...

그 콧김이 나오는 곳에 10cm가 넘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것이다.

콧김이 얼어서 생긴 고드름이다.

고드름을 떼어내고 하산을 완료해 보니 다시 5cm의 고드름이 다시 매달려 있다.

그 코가 지금도 느낌이 없이 얼얼하다.

 

 

희방사를 지나며 무사귀환을 감사드리고...

희방사의 폭포는 통제구간 이라 하여 사진에 담지를 못했다.

 

비로사에서 포장도로를 한참을 걸어내려가 상가지구앞에 주차된 버스에 올랐다. (17시)

다들 한결같이 이렇게 지독한 추위는 평생 처음 이라고 한다.

감기까지 더해 고통스러웠지만 나만 추웠던게 아니었나 보다.

집에오는 내내 버스에서도 오한에 떨었다.

 

다음날 ... 병원에서 감기몸살 기타등등 처방을 받아 약을 지어 먹고...

코끝과 볼에 동상 연고를 바르고...

이번 산행을 통해 느낀것은....

몸이 아프면... 쉬는게 좋다는것.

소백산에서 죽다가 살아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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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어의곡 - 비로봉 - 제1연화봉 - 연화봉 - 희방사 - 희방사 상가지구 주차장 (6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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