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방황하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김제   

 

 

귀신사는 모악산 서쪽면 금산면 청도리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신라 삼국 통일 후 전국에 세운

화엄십찰 중 하나로 한때 금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큰 절이다.

지금은 종파도 조계종으로 바뀌고  거꾸로 금산사의 말사가 되었으니...

역사의 격변기를 거친 무심한 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다.

 

귀신사는 처음엔 국신사(國信寺)로 불리우다가, 귀신사(歸信寺), 구순사(拘脣寺),

귀신사(鬼信寺), 귀신사(歸信寺)로 여러번 바뀌었다고 한다.

 

양귀자님은 자전적 소설 <숨은 꽃>에서 "지난 가을에 귀신사는 우선 이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라고 썼다.

 

영화 보리울의 여름 에서 보리울 마을의 우남사의 배경이된 귀신사...

2003년 영화 촬영 이후 명부전과 요사채가 해체 복원하게 되어 그때의 풍경은 영화속에만

남아 있다. 

 

 

일요일 오후 조용한 귀신사

참배객 하나 없는 차분한 경내에 조용히 들어섰다.

 

 

귀신사 전경

 

마당 전면에 대적광전이 있고 마당 우측과 대적광전 좌측에 요사가 있다.

뒷열, 대적광전 뒤편으로 우측에 명부전이 있고, 좌측에 영산전이 있는 단촐한 모습이다.

대적광전 앞에 꿈틀거리는 배롱나무가 인상적이다.

 

 

 

귀신사 대적광전

 

 

대적광전

보물 제826호

 

17세기경 조선시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겹처마 ·단층 목조건물.

귀신사는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16년 후인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대적광전은 그 훨씬 후인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이며, 고려시대의 일부 부재를 사용하였다.

구조는 내이출목 ·외이출목으로 공간포는 1조식이며, 공포 양식의 전 ·후면이 서로 다르다.

 

법당 안에 3구의 대형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중앙불은 비로자나불이고

오른쪽은 노사나불 왼쪽은 석가모니불로서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란다.

 

 

귀신사 탑재, 배례석

 

 

절 경내에는 탑재, 배례석을 비롯해서 장대석과 주초석, 기단석 등이 흩어져 있어

옛날 이곳이 대가람 이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

 

 

대적광전 뒷편 계단을 오르면 석탑과 석수가 있는곳으로 올라갈수 있다.

언덕 입구에 서있는 큰 느티나무 잎이 노랗게 가을색이 되었다.

 

 

왼쪽 한그루는 잎이 없고, 오른쪽 두그루만 잎이 무성하다.

 

 

올려다본 느티나무...

참 아름답다.

 

 

 

대적광전 뒷편 언덕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고 큼직한 느티나무와 석탑이 있다.

 

 

귀신사 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62호

 

고려시대에 만든것으로 꼭대기 부위가 크게 손상되었다.

현재 탑의 높이는 4.5m 이며, 층마다 탑 몸체 귀퉁이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각층 지붕은 넓고 귀퉁이 밑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다.

받침부와 1층몸체, 각층 지붕은 여러개의 돌판을 짜 맞추어 만들었다.

고려시대에 세운 탑 이지만 전체적인 조각 기법으로 보아

백제시대의 양식을 크게 반영하고 있다.

 

 

귀신사 석수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64

 

석탑 앞에 놓여 있다.

돌사자상 위에 남성 성기 모양의 돌탑이 놓여 있다.

이 석수는 이곳 지형의 나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워진 것 이라고 한다. 

또는 남근석을 두는 사찰은 백제 왕실의 내원사찰(內願寺刹) 뿐이므로,

이로 보아 이 절은 백제 때의 사찰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불교와 남근숭배의 무속신앙 그리고 풍수지리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종교의 모습이다.

 

석수는 멀리 보이는 규봉산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이곳은 모악산 봉우리들로 둘러 싸여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

멀리 규봉이 남의 집 담을 기웃거리듯 살짝 들여다보는 형상이라

이 석수(石獸)를 세웠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 돌짐승이 사자상이 아니라 개 라고 한다.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이 이곳이 구순혈(拘脣穴:개의 음부를 상징)이라고 한다.

음란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석수를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흘러간 과거의 전설일 뿐이다.

 

 

 

그 언덕에서 내려다본 귀신사 전경

 

 

언덕위 느티나무 아래에서 바라본 모악산 줄기

우측으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백운동이 보인다.

 

귀산사 맞은편 모악산 자락에 자리한 백운동은 강증산의 제자였던 안내성이 세운 곳으로

증산대도회를 믿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지금도 20여 가구의 안씨 후손들이

당시 조상들이 심은 뽕나무에서 무공해 오디를 채취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요사

 

 

귀신사 명부전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사찰 속으로 옮겨놓은 전각이다.

이 전각 안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하고,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귀신사 영산전

 

 

 

청도리 삼층석탑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53호

 

귀신사 에서 구성산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탑으로, 귀신사와 관련이 있는 탑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귀신사 앞에 주렁 주렁 달린 감나무..

 

 

 

귀신사를 다녀와서 양귀자님의 <숨은꽃>을 읽었다.

아무래도 양귀자님은 귀신사가 한참 보수공사중 일때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와

귀신사를 다녀갔었나 보다.

 

199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양귀자님의 자전적소설 <숨은꽃> 에서

귀신사 보수공사에 참여한 김종구 라는 일꾼이 아래와 같이 말을 한다.

양귀자님 본인도 같은 생각에 깜짝 놀라는...

 

김종구는 품삯이 들어 있는 바지 주머니를 보란 듯이 두들기다 말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웃기는 일입니다. 대체 뭐 하러 이 짓을 합니까?

목수하고 이 절에 처음 온 날이 마침 비오는 날이었어요.

'첫눈에 야, 이건 굉장한 절이다.' 라는 느낌이 확 들었지요.

전국의 이름난 절들을 나도 숱하게 봤지만 이런 절은 처음이었거든요.

작가 앞에서 문자 쓰기 거북하지만, 뭐 생사를 초월한, 그런 인생무상 같은 게

가슴을 찍어 누르대요.

그런 절을 싹 뜯어서 울긋불긋하게 만들겠다니 얼마나 웃기는 짓이에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길래 첨엔 이 일을 손 뗄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아십니까?

조금이라도 덜 웃기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있어야겠다,

이건 정말이지 순수한 내 충정입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구요."

 

나 또한 김종구의 의견에 공감을 한다.

 

 

3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