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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산을 만나 빚어낸 선경

 

 

미한 구름이 출발전 하늘에 떠 있어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장마철도 끝나서 일기예보가 상당히 정확성을 가지고 있는 가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며, 아침 출발전에도 확인을

했지만, 오늘은 오전 까지는 날씨가 맑고 오후에는 구름이 낀다고 했으니 비온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여름내내 구라청이라 불리우던 기상청이 그래도 가을엔 제이름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주를 지나 괴강에 도착하기 전에 차창에 떨어전 한방울의 빗물은 불안을 현실로 만들었으며 슬금슬금

설마가 혹시로 변하고 있었다.

비가 내려도 조망을 볼수있게 안개만은...

비가 내려도 우르릉 꽝꽝 번개 만은...

 

푼 탁배기 잔에 앞풀이 막걸리를 한잔 하고 나서 슬슬 걷노라니... 하나둘 배낭 커버를 씌워야 하게 되고...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산객들은 비옷마저 챙겨 입고 길을 나선다.

쩝... 기상청이 야속한건지, 하늘님이 오락가락 하는건지...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면서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중에서는 웬만큼 내리는 비는 이파리에 걸려 실제로 잘 맞지 않는데, 이날 내리는 비는 기껏해야 이슬비나 가랑비

정도니 크게 젖을 걱정은 안하는데 오름길 정상부근에 자욱한 안개가 조망을 날려 버린듯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산객들의 투덜거림을 들은 탓 일까.... 희양산 신령은 이내 못된 안개를 걷어 버리고, 구름 무희들을 불러다가

하루종일 별별쇼를 다 보여준다. 비와 안개 때문에 걱정했던 산행이 구름덕분에 최고의 산행이 되어 버렸다.

이젠 구름없는 산은 못 가겠다고 할정도로...

 

 

지난번 마분봉, 악휘봉 산행때 이어 두번째 찾은 은티마을

 

은티마을에서 시작하는 악휘봉, 마분봉, 구왕봉, 희양산등의 명산들이 많아 산객들이 많이 찾는곳이다.

특히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은티마을 주막은 대간꾼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은티마을은 지세가 여궁혈 이라고 한다.

희양산 계곡과 악휘봉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Y자 형태로 만나 여근곡을 이루는 지점이 은티마을 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입구 주막집앞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는 남근석을 세워놓고 금줄을 둘러 놓았다.

여궁혈에 큰 비가 내리면 물난리가 나는데 그것을 막기 위함 이라고 한다.

 

 

은티마을 남근석 앞... 주막에는 지나가는 등산객들과, 백두대간을 하는 산꾼들이 남겨 놓은 흔적이 가득하다.

 

원래는 하산을 하면서 뒤풀이를 해야 하는데, 일행중 한분의 제안으로 뜻밖의 '앞풀이'를 하게 된다.

주막에 들러 산행전에 한사발씩 들이키는 재미도 묘한데....

주막안에는 지난밤 백두대간 진행을 하면서 산속에서 야영중에 멧돼지의 가뿐 숨소리에 무서워서 마을로 내려와

1박을한 대간꾼 한분도 홀로 앞풀이를 하고 계신다.

 

 

술기운 탓일까...

선두에서 길을 인도하는 속리님이 길을 착각하여 거친길로 들어선다.

얼핏보면 약초산행 가는길 같다.

 

 

거친길로 잠시 진행 하다가 아니다 싶어서 다시 후퇴를 하여 제길로 들어선다.

등산로 양쪽으로 사과밭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빨갛게 익은 탐스런 사과가 유혹의 미소를 던진다.

 

 

조금더 올라가니 정자가 나오고 너른 공터가 나온다...

우리는 한참을 걸었는데, 진정한 고수들은 죄다 차를 이곳까지 몰고 온것 같다.

 

여하튼 간간히 내리는 비가 걱정이다.

대전에서 오는중에도 예정에 없던 비가 내려 모두를 놀래켰는데.... 정자에 도착하니 다시 부슬부슬 비가내린다.

비가 내리면.... 조망이 없기 때문이다.

 

정자에 있던 몇몇 분들은 코란도 뒤로 나있는 지름티재로 바로 올라가는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고

우리는 능선을 타고 구왕봉에 바로 오르기 위해 이정표뒤 속리님이 서있는곳 뒤로 희미하게 나있는 산길을 따라 거칠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

 

 

30여분 가파른길을 올라 능선에 서니 안타깝게도 온산에 구름만 가득하다.

구름이 바람따라 이동하면서 간혹 슬쩍 슬쩍 감질나게 찰라의 조망을 열어 준다.

아.... 오늘은 이정도 인가...

 

 

하지만 변화무쌍한 구름은 10여분 후에 다시 풍경을 바꿔 놓는다.

건너편 마분봉쪽 조망이 환상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굵직 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산세가 험해서 일제시대에 수탈을 못해간 것일까?

 

 

 

 

마분봉~악휘봉 방향

 

 

구름이 조화를 부리며 환상적인 조망이 연이어 열린다.

다들 감탄의 연속이다.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조금전에 비오고 안개구름 가득해서 날씨탓을 했는데....

이게 웬 횡재인가... 밋밋한 산에 구름이 수를 놓고 있다.

 

 

구왕봉 가는길에서 살짝 벗어난 능선끝 벼랑의 조망바위...

저곳에 서면 또 얼마나 멋질까.

 

 

조망바위에 올라 바라본 악휘봉, 마분봉 일대

 

 

은티마을 방향의 조망

 

 

은티마을

뒤로 산허리를 끊어 버릴듯 파고 들어간 채석장이 흉물스럽다.

 

 

산에 구름이 걸치니 산이 더욱 생기가 돈다.

 

 

조망터에서 한참을 감상하고 놀다가... 지근 거리에 있는 구왕봉 정상을 향해 오른다.

 

 

정상석 하나 없는 괴산 35명산 구왕봉의 초라한 정상 모습

 

구왕봉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자체 산도 멋지지만 희양산을 조망할수 있는 산으로 더욱 유명하다.

 

올해 충청 방문의 해를 맞아 괴산 증평 교육청은 괴산 35명산을 일일히 소개하는 명함을 만들어 소재지, 높이, 등산코스와

시간등을 명찰에 안내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정작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것 같아 아쉽다.

 

괴산 35명산중 연중 가리지 않고 실제 산행이 가능한 곳은 군자산, 칠보산, 도명산 등 3곳의 국립공원에 속한 산과

신선봉·마역봉·마분봉, 금단산, 박달산·주월산, 성불산, 보광산의 국립공원에 속하지 않은 8곳을 더하여 총11개 산에 불과하다.

나머지 24곳 가운데 국립공원 14곳은 비법정 등산로로, 국립공원이 아닌 10곳은 산불예방 입산금지로 각각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구왕봉에서 바라본 희양산

 

정상에서 희양산 쪽으로 조금더 진행하면서 내려가면 희양산을 제대로 조망할수 있는 바위가 나온다.

시간도 늦었고 하니 그 바위에 앉아 식사 준비를 한다.

 

 

희양산 좌측으로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그림이 환상적이며

 

 

희양산 우측으로는 첩첩히 펼쳐진 산위로 흰 구름이 수를놓고 그 위 하늘에서 바람을 따라 휘어져 내리는 빗줄기가 장관이다.

 

 

희양산

 

동서남 삼면에서 단단한 화강암 암벽을 두르고 솟아 있어 마치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인다.

옛날 사람들은 장엄한 암벽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 했으며, 신라 헌강왕 때 지증대사는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며 희양산 남쪽 너른 터에 봉암사를 창건했다.

지증대사는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어 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며 경탄했다고 한다.

 

 

희양산이 장쾌하게 열리는 최고급 바위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점심 준비를 한다.

 

 

점심을 준비하는 사이 희양산 오른쪽 구름너머 어딘가에는 계속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희양산과 이쪽 구왕봉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한 구름들이 쇼를 한다.

 

 

구름이 빠르게 이동을 한다.... 이윽고

 

 

운해는 순식간에 희양산을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번엔 구름이 밀물이 되어 희양산이 바다에 잠기는가 하더니..

 

 

다시 썰물이 되어 절경을 만들어 낸다.

식사중에 계속 되는 공연에 산객들은 즐겁기만 하다.

 

 

황홀한 쇼에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지름티재를 향해 가파른길을 잠시 내려가다 만난 조망바위 에서...

 

 

 

구왕봉에서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길은 밧줄구간이 많이 나오는 가파른 길이다.

하지만 이 가파름도...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올라가는것엔 비할바가 못된다.

 

 

지름티재의 초소에서... 

아마도 스님들이 지키던 초소인가 본데... 금일 휴무인가 보다.

 

 

출입금지 너머가 희양산으로 올라가는 길 이다.

 

산속에는 끝까지 울타리가 쳐져 있어 봉암사 쪽과 그 반대편으로 나뉘어 있다.

오른쪽 울타리 건너편이 1년에 1회만 경내를 개방한다는 봉암사 쪽이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절대 금지되는 저곳은 2002년에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이 되어 온갖 희귀 동식물이 모여 사는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백두대간 일대의 산짐승들이 주변에서 총소리가 나면 희양산에 숨으러 달려온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동식물들의 낙원이다.... 산삼이 있을만도 하다.

 

혹자들은 스님들의 수양때문이 아니라 저곳이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설정될 만큼 각종 희귀 약초의 보고라서 그렇다는

말도 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산꾼들의 발자국 소리가 2~3km 떨어진 봉암사 스님들의 참선수행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되겠냐는 말이다. 정작 이유는 따로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고 한다.

 

 

 

희양산을 오르는 중에 소라님이 큰 바위를 두손으로 밀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건너편 산은 방금 내려온 구왕봉 이다.

 

 

 

구왕봉에서 보았던 뾰족한 암봉인 희양산을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며 밧줄구간의 연속이다.

겨울철엔 특히 위험하니 출입을 삼가 하는게 장수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다.

 

 

마치 직벽을 치고 올라가듯 지름티재에서 희양산으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밧줄길이 끝나니 또 다시 통나무 목책이 가로 막는다.

방금 올라온 길이 사망사고가 있는 위험 구간이라 통제를 하기위해 목책을 만든것 같다.

 

 

희양산 정상은 백두대간 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속하는 '명산'이 이렇게 통제가 되고 있다니...

민주주의, 자본주의라 개인소유는 이해 하겠지만, 작은 땅이나 건물이 아닌 거대한 유명산을 목책을 쳐놓고 통제 한다는 것은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봉암사 측에서 입산 통제를 해놓은것 같은데.... 스님들의 수행도 이해못하는것은 아니지만, 괴산 35명산의 장수격인 희양산

정상은 국민들에게 열어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라는 책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게 불과 얼마전인데, 정작 스님들은 소유에 집착을 하고 있나 보다.

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일제때 총독부에서 주지승을 임명하고, 사찰이 친일의 댓가로 국유지를 불하 받았다는데, 개인 소유랍시고 유세를 떠는게 마뜩치 않다.

친일재산환수법에 의하면 조계종 사찰 임야들도 국고환수 대상이라는데... 거꾸로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돌려준 국립공원 입구에 국공단
직원들이 떠난 매표소를 차지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 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국가에서 기독교나 불교에 관해서는 선거때의 '표' 때문에 제대로 법을 입법.행사하지 못한다고 하니 정부는 머리깍은 스님들의 표는 무섭고

주말이면 전국의 산을 누비며 유격훈련을 하는 스님들 보다 더 많은 국민들의 표는 별로 관심이 없나 보다.

누군가 일제시대때 총독부로 부터 불하받은 전국 사찰의 땅을 국가에 환수 하는것을 국민투표에 붙힐수 있는 용감한 정객은 없는 것일까?

 

 

시사저널에 의하면 사찰들이 임야 소유권을 갖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임야에 대한 소유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조선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산림을 개인이 점유하면 볼기 80대를 때린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른바 공산무주(公山無主) 원칙을 잘 지켜왔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가 전국의 산림조사를 마치고 1926년‘조선특별

연고삼림양여령’을 제정한 후 국유림 중 불요존치 임야를 특별 연고자에게 소유권을 주었는데, 이 법령에 따라 산속에 있던 사찰에도 임야가

무상으로 제공되었다고 한다. 당시 사찰이 총독부 산하 기관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사찰 자체에게 준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에게 소관

업무를 넘긴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게 기사의 내용이다.

일제는 사찰에 임야 소유권을 양여하면서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했다.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승려들을 식민지 정책에 적극 이용했다고

한다.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발동해 ‘31본산 제도’를 만들고, 모든 사찰의 주지 임명권과 재산의 처리, 사찰의 병합, 사찰의 신설

등의 전권을 행사했다. 이런 사실은 총독부 관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계종의 역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로 거슬러 올라갈수도 있으나, 실제 조선의 조계종은 일제강점기에 위와 같은 상황에서 만들어 졌다.

독립투사의 집터를 헐고, 증산도의 원류이자 일제시대에 최대 독립운동 자금의 원천이자 항일투쟁을 벌이던, 총독부 집계 600만 신도의 

민족종교인 보천교의 본당을 헐어 조선시대 궁궐에서나 쓰던 ~전 이란 이름을 사찰건물에 붙혀서 당시 12만 전국 불교신도를 장악하기 위해

총본산으로 태고사를 조계사로 바꾸고 대웅전을 지었다고 한다. 1941년 조선 총독부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이라는 종명을 확정지었고,

조선총독부에서 본산사찰 주지 뿐 아니라 말사 주지승까지 임명하는 총독부의 예하 행정기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국유림을 사찰에(행정기관)
불하해 주었고, 이것을 근거로 지금 조계종은 국가에 토지를 환수하기는 커녕 매년 120억원 이상을 등산객들에게 징수하고 있다.
또한 서프라이즈에 의하면 현재 수백년 묵었다는 유명 사찰의 현판은 죄다 일제 시대에 이완용등의 친일파들이 ~ 전을 붙혀서 새로 써서올린
것들 이라고 하는등, 현재 사찰에 남아있는 ~ 전 이라는 명칭은 총독부가 조선통치를 위해 불교를 이용하던 시절에 만든것 이며, 이것이  바로
친일 매국의 잔재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교계의 노골적인 친일행위에 대하여 살펴 보면, 31본산 주지들에서 말사 주지들까지 불교 언론계와 학계 등이 전방위로 친일에 가담

했으며,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친일 승려들은 ‘탁발보국’이라는 명목으로 군수품과 국방 헌금 등을 헌납했다. 이들은

1940년부터 실시된 창씨개명에서도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한다. <친일 승려 108인>의 저자 임혜봉 스님은 “친일 승려들은 징병제를

옹호했고, 적극 홍보했다. 용산에 있는 일본군 사령부를 방문해 비행기 기금을 헌납했다. 1943년 일제가 학도병을 징집하자 ‘제 발로

걸어 나가 죽는 것이 조선 청년 승려들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변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고 환수 하고 있는

상황 에서 불교에 대해 같은 법을 적용 해야 옳지  않을까?

 

이제와서 불교계의 친일 행각을 거론하고 싶은게 아니라, 일제에 의하여 불법으로 불하받은 국토는 국민에게 돌려줘야 함이 옳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취재중에 발견한 또 다른 사실은 사찰 임야에 대한 소유권이 모호하고, 분쟁이 발생하면 조계종이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소유권을 주장할 경우 법리 해석 측면에서 논쟁거리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희양산 출입을 금지하는 목책과 경고문으로 사찰 소유의 땅의 유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지금에야 스님들이 친일을 할리 만무하겠지만, 그동안 궁금했던 엄청난 사찰의 땅들이 일제시대에 친일의 댓가로 불하받은것 이라면

이제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화두 처럼 국가와 국민에게 돌려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구왕봉

 

통제구역 표지판에서 3~4분 진행을 하니 그림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바로앞의 산이 조금전에 넘어 왔던 구왕봉이다.

 

 

구왕봉 옆쪽으로도 산과 구름이 어우러져 한폭의 산수화를 그려내어 정숙 보행 하려하는 우리들을 무아지경에 빠뜨리며

절로 모르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림들을 엮어서 진경산수화 병풍을 만들어 보았다.

 

 

희양산에 올라서니 이번엔 반대로 구왕봉이 구름쇼를 연출한다.

구름이 어찌나 빨리 이동을 하는지 마치 8배속 동영상을 보는듯 하다.

 

 

 

 

정상으로 가는길에 희양산 꺼비를 만났다.

 

 

봉암사는 구름에 가려 안보이고...

희양산에서 바라보는 절경에 숨이 멎을듯 하다.

 

봉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서,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종찰(宗刹)로 879년(헌강왕 5)에 지증대사인 지선(智詵)이 창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폐쇄적인 사찰로 연중

부처님 오신날만 일반인들에게 출입이 허용된다. 전국 각지에서 禪 수행을 위한 최고의 선승들이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수행을 정진하기 위해 찾는 정신적, 상징적 절로 유명하다. 하지만 멀리 희양산 정상을 다니는 산꾼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들의

참선에 방해가 될 정도라면... 수많은 인파가 경내를 찾는 전국의 국립공원의 유명사찰에선 참선이 불가능 하다는 말인가?

참선 이라는 것을 해보지 못한 무지 몽매한 산꾼으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구왕봉

 

 

숨죽이고 바라보는 절경

 

 

 

희양산 정상도 구왕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괴산의 명산중에 으뜸이라고 하는데...

스님들의 통제속에 제대로된 비석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어찌보면....

지금 이대로의 정상석이 더 멋진건지도 모르겠다.

 

 

 

 

 

 

 

 

 

 

 

 

 

 

 

희양산 정상의 전망바위 에서의 조망

 

 

뒤돌아 오늘길에 바라본 구왕봉 정상은 구름에 가려 있다.

 

 

바위에 올라 시원한 조망을 다시한번 감상하고...

 

 

 

 

 

 

 

 

하산전에 산객의 발길을 좀더 붙잡아 두려는듯...

구름쇼는 관객들의 넋을 빼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하산길

 

희양산성을 따라 가다가 등산로는 왼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희양산성은 옛날 후백제와 신라의 국경 다툼이 치열했던 흔적 이라고 한다.

 

 

배의 선수처럼 생긴 큰 바위가 기울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 놓은 귀여운 지팡이들...

 

 

지름티재로 올라가는 이정표를 만나고... 이어서 구왕봉에 오르기전 잠시 쉬었던 정자를 만난다.

 

 

은티마을로 하산중에 있는 그림같은 별장에 속리님의 시선이 오래 머문다.

 

 

가을의 꽃 갸냘픈 코스모스를 담고, 우리를 알아보고 들렀다 가라는 주막집 사장님의 유혹을 장시간 운전을 하고

가야할 갈길먼 나그네의 입장에서 완곡히 거절하고... 터벅터벅...

 

 

오름길에 만났던 은티마을 유래비와 멋진 소나무들을 다시 만나면서...

오늘 황홀했던 산행을 마무리 한다.

 

구왕봉 - 희양산 산행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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