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4대 비보사찰중 하나인 동고사를 지나간다.

미륵부처님 아래에 서면 전주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다른 시간 이었으면 올라가 보았을 텐데 이시간은 정면 역광 이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었다.

한달간 산 밑에 머물다 내려와 몇일을 쉬고 시골집에 가며 해질무렵 이곳에 들렀다.

언젠가 전주에 내려오면 제일 먼저 중바위에 가보겠다고 생각을 했던터였다.

늦은시간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조용한 산길을 잠시 걷는다.

 

 

 

 

 

등산 이라고 할 것 까지도 없는 짧은 길을 따라 오른다.

 

 

 

 

 

땀 한방울 흘릴틈 없는 가벼운 걸음 끝에 천주교 성지인 가족 합장묘에 도착한다. 

1801년 신유박해때 처형된 전라도의 첫 천주교 신자였던 유항검 부부와 

동정부부로 알려진 그 자식내외등 일가족 일곱분 순교자의  합장묘 이다.

 

 

 

 

 

 

 

 

 

 

묘지 뒤로 보이는 암릉구간의 첫번째 바위가 보인다.

정상까지 수백미터 바위군락이 이어지는데

바위의 모양이 스님을 닮았다고 해서 조선시대 지도에 '僧岩' 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지금은 천주교 성지가 되어 치명자산 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혀졌다.

치명자(致命者) 라는 말은 순교자를 의미한다.

 

부처님을 닮았어야 할 바위가 이제는 성모의 바위가 되었으니

역시 극과 극은 통하는게 있는것 같다.

 

 

 

 

 

동정부부 부인인 이순이님의 세례명이 루갈다 인데

천주교에서는 이 산을 루갈다산 이라고도 부른다.

 

 

 

 

 

승암산의 성모바위

 

아니다, 루갈다산 이나 치명자산의 성모바위라고 해야겠지
승암산 이라면 중바위 (僧岩) 라고 해야 할 것이고

 

마리아바위 에서 암릉이 시작된다.
첫번째 바위가 상당히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데, 초행길 이다보니
이게 길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된다.

할수 없이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이번엔 살짝 우회해서 중간치기를 한다.

 

 

 

 

 

한옥마을과 전동성당의 뒤에서 전주시를 수호하듯 서있는 기린봉, 승암산, 치명자산
전동성당과 천주교 성지에 있으려니 안중근 의사 생각이 난다. 그 역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 성공한후 4촌동생 안명근은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을 위해 미사를 해달라고 빌렘 신부를 찾아가는데, 빌렘이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상의하니 살인자에게 미사를 해줄수 없다며 거절을 했다. 심지어 일본 검사까지 승낙을 했는데도..

 

이후 안의사의 숭고한 뜻을 이어, 전국적이고 대대적인 항일투쟁을 계획하고, 의거를 며칠 앞두고 안명근이 빌렘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거사계획을 전하게 된다. 빌렘 신부는 이 소식을 천주교 조선교구장 이었던 뮈텔 주교에게 보고를 하게되고, 뮈텔 주교는 득달같이 조선총독부로 달려간다. 유명한 105인 사건이다. 이 대가로 천주교는 명동성당의 진입로 문제를 해결하고 전주의 전동성당 터 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천주교 대표가 하나도 없던 이유도 마찬가지 였지만 일제치하 내내 그들은 친일을 했다. 포교만 중요했지, 정작 하나님의 자식들이 처한 상황은 외면했던 것이다. 그래봤자 조계종이 같은 댓가로 총독부에서 불하받은 땅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겠지만. 조계종이 유교사회 조선시대부터 땅이 지금처럼 많았던건 아니다.

 

 

 

 

 

중바위 암릉에서 바라본 고덕산

 

 

 

 

 

사진 왼쪽 중앙 뒤쪽 마루금에 만덕산의 머리가 보인다.

 

 

 

 

 

전에 네비형님이 주먹바위라 했던게 앞의 바위 이던가..

승암산 암릉 뒤로 산불감시타워가 보이고
왼쪽 뒤로는 서방산 종남산 산군들이다.
미세먼지가 많이 끼어 원거리 시계는 썩 좋은날이 아니다.  

 

 

 

 

 

텅 빈 중바위 전망대

 

 

 

 

 

전주의 주산 답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버지가 마지막 한달을 보내셨던 다가산 엠마오사랑병원을 당겨본다.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것이 그때 저곳에서 이곳을 보았기 때문이다.

맑은 날 다시 와서 전주를 보고 싶다. 

 

 

 

 

 

모악산 우측으로 해가 넘어간다.

 

 

 

 

 

 

 

 

 

 

모악산과 우측의 구성산

구성산 아래 귀신사는 조선시대 각종 지도에도 나오는 고찰 이다.

지금쯤이면 귀신사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노랗게 물들었을 것이다.

 

 

 

 

 

 

 

 

 

 

한옥마을 뒤쪽의 오목대와 도로 건너의 발산(鉢山)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다음지도에 발산은 발리봉 으로 나오는데, 스님들의 밥그릇을 말하는 조그만 발산은
조선시대 여러 지도에 나오고 있으며, 중바위와 어울리는 지명으로 볼 수 있겠다.

 

인근의 오목대나 이목대의 지명 역시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 한자가 이성계의 4대조인
穆祖를 기리는 穆을 써서 李穆臺 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은 정체불명 배나무가 되어 있다.
오목대 역시 잘못 되긴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비롯되었는지 때로는 발산을 가리켜
이씨 왕조가 이곳에서 나왔다는 의미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매직아워가 시작 된다.

 

 

 

 

 

지금은 중바위에 산자를 붙혀서 중바위산 또는 조선시대 지도의 '승암'을 따서 승암산 이라고도 불리우지만 조선시대 지도에 승암산 이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느 지도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지명이 있으니 바로 능선을 끼고 옆에 있는 기린봉 이다.

 

승암산이 조금 더 높으니 승암산 기린봉 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유교가 국교인 조선시대에 중바위, 승암은 산 이름으로 명함도 못 내밀 것이고, 능선으로 이어진 하나의 산으로 본다면 낮은 기린봉이 주봉이 된다고 볼 수 있겠고, 둘로 나눠 말한다면 승암산이 주산이 아니라 기린봉이 주산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지도에 전주를 중심으로 북쪽의 건지산, 남쪽의 곤지산을 둔것을 보니 건곤감리의 이치를 따른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동쪽으로는 상서로운 전설의 동물 기린을 배치하여 한옥마을 뒤쪽에서 경기전을 향해 기운을 불어넣는 의미를 둔것 같다.

 

그런데 위성지도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승암산과 기린봉이 한 덩어리로 전주를 바라보는 커다란 거북이 형상이나 스님 같고, 기린봉을 단독으로 들여다보면 스님이 기린등에 올라타서 뒤돌아 앉아 경기전이 아닌 반대방향인 아중리를 바라보는 모습처럼 보인다.

 

 

 

 

 

시내를 가로질러 몇년전 일출을 보았던 황방산이 보인다.

동쪽은 기린이 지키고 서쪽은 누런 삽살개가 지키는 모습 이다.

 

 

 

 

 

 

 

 

 

 

중바위에서 바라본 전주시 야경

 

 

 

 

 

RX10 mk1을 사서 고쳐가며 쓰는데, 너무 막 굴렸는지 수명이 다해간다.

결국엔 렌즈 안쪽에 곰팡이가 생겨서 수리불능, 시한부 판정을 받아논 상태다.

RX10 mk4로 바꿀건지, 미러리스로 갈지 고민중이다. RX10 mk5가 나온다는 소리도 있고..

화질은 DSLR만 못하고 특히 어두워지면 젬병이지만 산행하며 막쓰기에는 그래도 편하다.

 

 

 

 

 

이제 매직아워도 끝나가고,,,

배낭을 꾸려 불을 밝히고 산을 내려간다.

기린봉과 중바위는 다음에 맑은 날 다시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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