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표충사 - 관음봉 - 문수봉 - 재약산 - 천황산 - 상투봉 - 필봉 - 표충사 (13km/5시간30분, 식사포함)
진잠새마을금고 5월 정기산행, 재약산 표충사 일주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기고 산행을 시작한다.
예전에는 일주문에 글씨가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재약산 대신 '재악산' 이라는 이름을 걸어 놓았다.
몇년전 이곳을 다녀가면서 재약산과 천황산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때처럼 이번에도 홀로 걷는 산행이니 천천히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뒤에 하고자 한다.
원래 코스는 흑룡폭포를 구경하며 옥류동천을 끼고 사자평으로 올라 재약산으로 가야 하는데
계곡길은 몇번 가본길이고 해서 지난번 인상 깊었던 관음봉~문수봉 코스로 올라선후
하산길은 전에 못가본 상투봉~필봉 코스를 걸어보려고 한다.
하산길 마지막 봉우리가 될 필봉
일행들과 다른코스로 가는데다, 코스가 길어서 영정약수 한모금 마시고 서둘러 표충사를 빠져나간다. 영정약수는 신라 흥덕왕때 이곳의 샘물로 병에 걸린 왕자를 치료 하면서, 그곳에 신령스런 우물이 있는곳 이라 하여 영정사(靈井寺)를 세우고, 이 산이 영정한 약수(藥水)가 있는 산 이라는 의미로 '재약산' 이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약수다.
효봉대종사 사리탑
표충사를 나와 천황산쪽으로 금강동천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효봉대종사 사리탑이 나오는데 그곳에 우측으로 사리탑을 끼고 우측으로 돌길을 지나면 리본 몇개가 나무에 걸려 있다. 고사리분교로 가는 길인데, 중간에 관음봉 쪽으로 능선길로 가야 한다.
사리탑 뒤쪽의 등로 초입의 리본
등산로는 완만하고 잘 나있다.
고즈넉한 숲길,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옥류동천 계곡 옆길을 이용하기 때문에 아곳으로 가는 사람들의 거의 없다. 그래도 등로가 아주 잘 되어 있고, 천천히 걷기에도 참 좋은 길 같다.
산딸기가 익어가는 산길
라-3, 이 이정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곳을 지나 50m 즈음에 왼쪽으로 산길을 타야 한다.
지난번 왔을때는 들머리에 리본이 제법 많이 걸려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모르고 왔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리본들이 많이 없어졌다.
완만하고 좋은 길을 버리고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로 들어서니 지난번에 봤던 산머슴님의 리본이 여즉 걸려있다.
인적이 드문 길이라 가파른 길에 낙옆이 두툼하게 깔려 있어서 약간 미끄럽다.
필봉 하산길 역시 이랬는데, 가파른 길이라 주의가 필요했다.
빨리 걸어갈때는 나무뿌리나, 떨어진 잔가지와 뱀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엊그제 비가 내렸으니, 바위 구간을 통과할때는 손 짚는곳을 조심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등로 중간 발을 딛는곳에 어린 칠점사 한마리가 갑작스런 인간 출현에 놀랐는지 도망도 못가고 누워있다. 나뭇가지로 스윽 한쪽으로 밀어놓고 지나간다.
얼마를 걸어 오르면, 암릉 구간이 나오고 우측으로 조망이 열린다.
지금 일행들은 저 아래 어디쯤 지나고 있을 것이다.
흑룡폭포 위쪽으로 기다란 실폭이 보인다.
암릉 구간에 부처손이 많이 보인다.
거대한 바위 벼랑이 가로 막는다. 관음봉이다.
왼쪽 뒤로는 문수봉도 보인다.
우측 바위 사면을 가로지르면서 가파른 위로 로프가 설치 되어 있다.
우측으로 로프가 비스듬히 대각선 방향으로 틀어져 놓여 있다.
벼랑을 오르면서 바라본 건너편 하산길 능선
꽤 가파른 코스지만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 조심만 하면 된다.
두번째 밧줄로 갈아타고 넘는다.
꽤 길고 가파르지만 조심하면 크게 위험한 구간은 아니다.
그러나 겨울에 이 코스를 하산길로 이용할때는 조심해야 할 것 이다.
지나온 능선과 아래로 표충사가 보인다.
유/불교 이념이 통합된 표충사
표충사는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 봄에 원효대사가 지금의 극락암 자리에 절을세우고 이 절의 이름을 죽림사라고 하였다.
이후 신라 흥덕왕 4년(829)에는 왕의 셋째 왕자가 풍병으로 고생할 때 사자평의 영정약수를마시고 병이 나았으므로 절 이름을 영정사로 고치고 산을 재약산 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표충사란 명칭은 헌종 5년(1839)에 사명대사의 8세 법손인 천유선사가 임진왜란때 구국을 위해 헌신한 사명, 청허, 기허대사 등을 기리고자 밀양군 무안면 표충사 사당에 있던 삼대선사의 진영과 위패를 옮겨와 모시면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출처 : 표충사>
다시 밧줄구간
관음봉에 오르기 위해선 5번의 밧줄구간을 지나야 한다.
재약산 관음봉
관음봉에 오를때는 땀을 흘려가며 더워했는데, 능선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게 분다.
처음엔 시원 하더니 사진 몇장 찍고 조망하며 서있었더니 살짝 서늘해진다.
관음봉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길
관음봉에서 내려다본 표충사 방향의 그림같은 풍경
정상 빗돌이 보이는 늠연한 문수봉과 왼쪽 뒤로 재약산
앞으로 걸어야할 봉우리들
맨 뒤쪽 능선이 천황산에서 상투봉과 필봉을 거쳐 돌아오는 하산길 능선이다.
필봉을 당겨본다.
흑룡폭포 계곡 건너편 향로산에서 재약봉으로 가는 능선 아래에도 커다란 분지가 보인다.
향로산과 재약봉 사이의 분지를 당겨본다.
천황산에서 필봉을 거쳐 표충사로 돌아오는 능선길이 보인다.
표충사 환종주 코스는 향로봉-재약봉-재약산으로 해서 천황산-상투봉-감밭산으로 이어지는 24km의 긴 코스다. 이날 산행을 하면서 홀로 표충사 환종주를 하고 있던 여성 산꾼을 만났다.
필봉에서 표충사로 내려오는 하산길을 바라본다.
표충사 건너편의 쌍봉과 향로산
재약산과 천황산
재약산과 천황산의 이름에 대해 현재 밀양시와 울산시의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밀양시의 입장은 현재의 천황산이 일제의 잔재이며, 재약산은 원래 명칭인 재악산(載岳山)으로 바꾸고, 현재 재약산 정상을 載岳山 수미봉, 천황산을 사자봉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할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은 재약산(載藥山)을 재악산(載岳山)으로 바꾸는데 부정적 이다. 신라 흥덕왕때 재약산 이라는 이름의 기반이 된 영정약수의 이야기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으며, 載 라는 한자의 의미를 고려해봐도, 岳보다는 藥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고려시대에 쓰여진 삼국사기가 조선왕조실록 같은 당대의 상세한 기록도 아니고 흥덕왕의 세째아들이 있냐 없냐는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것 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10대 악산 이라는 설악산, 화악산, 치악산, 황악산, 월악산, 운악산, 모악산, 감악산, 삼악산, 관악산의 이름을 봐도 악산 앞에 대부분 명사가 오는데, 앞에 동사를 붙혀서 '한국 오악산의 정기를 가득 실은 산' 이라는 설명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한국 오악의 정기를 가득 실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했거나 그만큼 산세가 거창한 산은 아니라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천황산에서 재악산 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고원의 넓은 평원 능선길을 거닐다 보면 멋진 산 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사실이다.
또한 재약과 재악의 논쟁을 떠나서 산 이름이란 시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수 있는 것인데, 이걸 굳이 근거없는 일제의 잔재를 거론하고, 부정확한 옛 기록을 찾아서 현대에 널리 알려진 이름을 바꾸려 하는것은 무의미하다고 보는것이다. 현재 이곳 말고도 많은 산들이 조선시대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애초부터 산 이름이란 어찌 생기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대목이다.
팥배나무
특별성과 보편성
특별성과 보편성의 논리 라는게 있다. 특별성과 보편성이 함께 있을때, 보편성은 생략이 될 수 있고 특별성이 생략이 될 수 없는 경우다. 생략의 전제조건이 복원 임을 고려할때 보편성은 얼마든지 추론 가능하지만, 특수성은 생략이 될시에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어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특수성은 쉽게 보편성, 일반성의 단어로 변경될수 있지만, 역방향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재약' 이라는 이름이 현재의 재약과 재악 논쟁의 시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국어의 모음변화를 들며 재악이 재약으로 변화가 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는데, 나는 반대로 재약이 이후에 재악으로 잘못 옮겨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흔히 ㅑ를 ㅏ로, ㅕ를 ㅓ로 발음하기도 하며, 중모음을 단모음화 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성이 그러하고, 특별성과 보편성의 기본 원리를 생각해봐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등산인구가 2천만이 넘는 이시대, 지금에야 산과 산 이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불과 얼마전만해도 등산과 산명은 그저 극소수 일부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지는 대상에 불과했었다. 남아있는 기록자료가 거의 없는 천년 또는 그 이전에는 이런 이름에 대하여 그저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다가 가끔씩 그 구전을 토대로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재약 보다는 재악이 분명히 편한 발음이고, 산이름에 藥 보다는 岳이 더 흔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약 산이름이 구전되어 내려 왔다면 후대에는 재약은 정확히 유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재악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재약도 대충 들어보면 재악 같다. 산명에 藥을 쓰는것은 그 유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특이한 케이스 임으로 보편적인 岳자와의 원조논쟁을 벌인다면 우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양반이 2%가 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더더욱 산명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과 지식이 적어서 대충 구전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을 것이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 10대 악산에는 악산 앞에 동사가 들어가는 이름이 없다. 어느면을 보더라도 '재악' 보다는 '재약'에 더 명분과 우위가 있어 보인다.
문수봉 앞의 암봉
천왕산 이라는 기록이 가장 많이 보인다
그런데 우습게도 '재약'이냐, '재악' 이냐를 따지는데,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 천왕산 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온다.
대동여지도 같은 주요 지도에 재악산(載岳山) 이라 쓰여졌다는 주장에 서울대학교 규장각 사이트를 방문하여 대부분의 고지도를 확인해 봤다. 하지만 당시 지도 제작이란 전국답사의 방식이 아닌 기존 지도를 통한 베끼기나, 짜집기 방식이라는 의견이 강한바, 누군가의 초기 오기를 다른 사람들도 그냥 답습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가장 먼저 대동여지도를 보았는데, 현재 지도와 비교해 봤을때 산의 위치도 다르고, 산줄기의 모양도 많이 다른걸 볼 수가 있었다. 실제 답사의 방식이 아닌 서양식 지도제작 기법을 바탕으로 기존에 쏟아져 나온 지도를 편집했다는 의견들이 힘을 얻는 이유다.
규장각의 옛지도를 검토해본 결과, 팔도군현지도와 광여도, 영남지도에는 <천앙산(天仰山)>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팔도지도, 좌해지도, 팔도분도, 해동지도, 여지도(회화식 필사본), 여지도(기타 필사본), 지승지도, 팔도지도 등에서 <천왕산(天王山)> 이라는 산 이름을 쓰고 있었고, 여지도(기타 필사본2)는 <천왕대(天王坮)> 대동여지도와 동국지도, 동여비고, 경상도읍지에서 <재악산> 이라는 산 이름을 쓴것을 확인할수가 있었다. 청구도는 김정호가 작성한 것이기에 별도 추가하지 않았고, 여지도는 종류가 많았다. 이걸보면 재약산도, 재악산도 아닌 천왕산이 더 많은 기록을 보이고 있는 이름이다.
지금 천황산 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는 태백산 천제단 같은 커다란 돌탑이 만들어졌다. 옛 지도에도 나오지만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에 기도를 하는 천앙산(天仰山) 이라는 이름이 천왕이나, 천황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실제로 천황산 정상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문수봉
재약사나 재악사나... 매한가지
또한 현재의 표충사는 죽림사-영정사-표충사로 이름을 바꿔 왔는데, 조선후기 지도를 보면 해동지도, 여지도, 지승지도 등에 재악사(載岳寺) 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팔도군현지도, 광여도, 1872년 지방지도, 비변사인방안지도, 영남지도에는 같은 표충사를 재약사(載藥寺)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경상도읍지, 영남읍지, 동여비고 에서는 영정사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더욱 당시 기록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정사에 대한 정확한 지명확인도 없이, 기존 지도의 산 이름을 좇아서 재악사, 재약사 라고 적었을수도 있고, 영정사가 재약사, 또는 재악사로 대충 불리웠을 가능성도 있다.
밧줄을 하나잡고 문수봉에 오른다.
천황(天皇) 이라고 다 일제의 잔재는 아니다
또한 현재의 천황산을 일제의 잔재 라고만 하는 것에도 큰 무리가 있다. 일제때 제작한 지도에 천황산 이나 천황봉등 '천황' 이라는 지명이 등장을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그들 천황을 떠받들기 위해 그네들이 우리산에 '천황' 이라는 이름을 붙혔다는건 큰 오해가 있다. 일본인들은 절대 산에다 '천황'을 쓰지 않는다.
일제가 지도를 제작하는데 있어 산명을 지역민들에게 물어 적어 한자로 옮길때, 천앙산이나 천왕산, 또는 천황산이 대충 '처낭산', '처놩산' 이라고 부르는것을 천황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조선말 대한제국이 되면서 왕을 황제로 바꾸고 나서 천왕이 천황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917년에 제작된 일제시대의 지도인 조선지형도를 보면 천황산의 지명이 그들의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않고 천황의 소리나는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라고 기록되어 있는점, 일제시대 이전인 1872년 용담현 지도에 현재 진안 구봉산 장군봉 이라 되어 있는 봉우리가 천황산 이라고 되어 있고, 같은지도에 월출산도 천황봉이라 되어 있으며, 장수군 노곡리 뒷산도 천황봉이라고 되어 있는 기록을 보면 <천황> 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으로 일제의 잔재라고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일본의 천황 이전에 이땅에도 옥황상제를 가리키는 천황 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극소수의 식자들이나 천왕은 불교의 사천왕에서 왔고, 천황은 도교의 상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지, 조선시대 대다수의 백성들에겐 천왕이나 천황이나 매한가지인 높으신분 정도 였을 것이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관음봉
일본인들은 감히 天皇山 이라는 이름을 부르지도 못한다
일본 포털에 들어가서 일본의 천황산(天皇山)을 검색해 보니 흥미로운점을 발견할수 있었다. 일본에는 여러곳의 天王山이 있지만, 天皇山은 오직 키츠쿠리쵸에 있는 안토쿠 천황과 관련된, 지금도 정상에 신사가 있는 56.7m의 낮은 산 하나뿐이다. 그것도 인근 마을사람들은 감히 天皇山(てんのう) 이라고 부르는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고 무서워해 그 낮은 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에둘러서 高山 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들도 어떻게 감히 天皇山 이라는 산 이름이 있냐며, 혹시 잘못된 이름이 아닌지 유래 등을 조사하는것을 보았다.
자신들은 부르지도 못하는 경외스러운 이름을 식민지 백성들이 밟고 다니는 이땅의 우리산 이름으로 천황산 天皇山(てんのう) 이라는 이름을 붙혀줄수가 있었을까? 결코 그럴수 없다는것을 알수가 있다. 그리고 일본에는 여러개의 天王山이 있다는데, 한국의 천왕산이나, 천왕봉도 그럼 일제의 잔재란 말인가? 그건 분명 아니라고 본다.
원래 천황산 이라는 지명이 있었던 곳도 있고, 천왕산 이던것이 일제시대에 천황산으로 바뀐곳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일제시대에 천황으로 바뀌었다면, 그곳은 아마도 일본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 조상님들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들이 우리산에 '天皇' 이라는 이름을 붙히는것은, 자기 얼굴에 침뱉는 정도가 아니라, 매국적 범죄였을 것이니, 우리 조상님들이 왜 그랬을지는 대충 상상이 된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재약산과 천황산
문수봉에서 바라본 사자평 또는 재약평
사자봉의 위치가 이곳이 아니니 사자평 이라기 보다는 이제 재약평 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지..
사자가 노닐만한 너른 평원이 재약산을 감싸고 사자령(천황재)에서 이곳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거시적인 사자평은 사자령 일대와 이곳을 통틀어 부르는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커다란 억새밭 이었는데, 지금은 온통 숲 이다.
고산에서 볼수 있는 마가목 나무가 몇그루 보인다.
고사리분교에서 진불암으로 가는 사거리를 만나 재약산으로 향한다.
재약산에 오르면서 바라본 문수봉과 관음봉
뒤로는 우뚝솟은 향로산
사자평 뒤로 신불산과 구름에 덮힌 간월산이 보인다.
간월산과 신불산은 다녀온지 너무 오래되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재약산 정상으로 가는 긴 계단을 만난다.
재약산 정상
재약산 전망대
재약산 정상
정상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다.
천황재에 내려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출발한다.
재약산에서 바라본 천황산
천황산에서 필봉으로 돌아오는 능선방향 조망
천황재 (사자령), 사자평과 천황산 (사자봉)
천황재로
천황산
우측의 주황색 지붕은 예전 목장 건물
천황산에서 능동산으로 가는 능선 귀도 우뚝선 가지산
두번째 이정표에서도 역시 천황재로..
새로만든 이정표를 보니 한자가 이상하다.
재약산의 약자도 藥 이 아닌 葯 을 썼고, 천황재의 '재'자도
번체를 쓴게 아니라 중국인들을 위한 간체를 사용했다. 흠..
오래전 천황재엔 동동주를 팔던 주막이 있었는데..
억새밭의 크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영알의 억새밭이 점점 줄어드는게 아쉽기만 하다.
천황재에서 바람막이를 꺼내입고 식사를 한다.
옥류동천 계곡으로 올라선 일행들은 지금어디까지 왔을까...
혼자서 걷는길이 호젓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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