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 어슬렁팀과 대전에서 가까운 공주의 태화산으로 향한다. 천년고찰 마곡사를
품고 있는 산 으로도 유명한데, 여차저차 하다보니 이번에서야 처음으로 마곡사를 찾게 되었다.
산행코스 : 주차장 - 마곡사 - 활인봉 - 갈림길 - 마곡사 - 주차장
그렇지 않아도 느즈막히 출발한 산행길. 마곡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산에서 달려온 달호네를
만난다. 차에서 내려서도 다들 밍기적 밍기적... 어슬렁 회원들 답다. 지난밤 여수에서 올라온 블친
풍님과 한잔한 나도 그렇고, 더 늦게 까지 마셨다는 밀도 그렇고 다들 어영부영하다 해장이 어쩌고
앞풀이가 어쩌고 하며 창가에 올갱이국 메뉴가 보이는 바로 앞 물레방아 식당으로 향하는데, 옆집
귀빈식당 사장님이 부지런하게 나와서 전을 부치다 우리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드신다.
부지런한 사장님 덕에 다들 물레방아집으로 가서 몇몇은 빈대떡에 동동주를 시켜 드시고
몇몇은 올갱이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출발도 안한 산길에 하산하고 뒤풀이 하는 분위기가
난다. 난 해장국에 속을 풀었는데, 한가지 아쉬움은 해장국에서 나는 올갱이 비린내 였다.
유모차를 타고 놀 서윤이와 달호를 남겨두고 이서방만 데리고 한참을 걸어 다다른 마곡사.
절 구경은 하산후로 미루고 일행들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영은암 방향으로 향한다.
계곡 안쪽까지 걷기좋은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지난 주말 돛대봉 하산길에 낙엽에
미끄러지며 무릎 안쪽을 바위에 부딪힌게 아직 낫지 않아서 유사시 바로 내려와서
마곡사나 차분히 돌아보려 했었다. 사실 산을 오르는것 자체가 좀 무리가 있었다.
경사면이 시작되며 계단길이 이어지지만 활인봉으로 가는길은 완만하고 평탄한 숲길이다.
사실 그동안 이곳 태화산을 올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으나, 모두 망설이다가 다른 산을
선택하곤 했었다. 가장 큰 이유가 밋밋하고, 낮으며, 조망도 없는 숲길 이라는 것 이었다.
그런데 무릎이 아프고 나니 그 밋밋함이 오늘 이곳 태화산을 찾게 만들었고, 평범한 숲길이
더욱 편안하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혼자서도 차분히 걷기에 좋아 보이는 소나무 숲길 이다.
능선을 한참 걸어가니 갈림길에 파란색 천막이 보인다. 주막이다.
주말인데도 등산객이 거의 없어 호젓하게 까지 느껴지는 산길인데..
주막 갈림길에서 잠시 쉬었다가 왼쪽 활인봉 방향으로 간다.
이정표에 활인봉1코스 라고 해놨는데, 활인봉(1코스) 라고 바꿔야 좋을듯 하다.
중간에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활인샘 갈림길을 지난다. 아마도 활인봉은 이 활인샘에서
유래가 된듯하다. 최근 자료를 보니 활인샘은 딱히 구경하거나 마실만한 샘터가 아닌듯 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가 앉아있는 태화산 정상이 아무래도 나발봉이 아니고
활인봉 같은데, 활인샘에 대한 유래를 안내하고, 샘터를 정비해 놓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후미 동지 푸름이와 나기
조망만 없는게 아니라 어차피 이날 미세먼지로 인해 대기도 뿌옇다.
어느새 활인봉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엔 다른 등산객들이 올라서 있다.
정상 부근에서 행복한 식사를 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 이라는
저서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것이 행복해지는 방법 이라고 했는데
그분의 말 대로라면 아마도 어슬렁팀이 산에 가는 주된 이유는 행복해 지려는 것일게다.
태화산 정상, 활인봉
속리님이 태화산 오름길에 건너편 높은 산능선을 가리키며 태화산 정상인 나발봉 이라고 하여
태화산이 제법 큰 산 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나발봉은 활인봉 보다 낮은 곳이며,
건너편 먼곳의 높은 봉우리는 나발봉과 무관한 다른 산 이었다. 또한 어떤 지도에는 나발봉이
있는곳은 태화산이며 깃대봉과 활인봉이 있는 곳을 철승산 이라고 표기 해놨는데, 지도의
등고선을 보면 활인봉은 깃대봉과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는 나발봉과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하며,
현재 정상석도 없는 나발봉 보다는 활인봉을 태화산의 주봉 이라고 봐야 할것만 같다. 활인봉과
나발봉 사이에 있는 입구는 좁지만 안이 넓은 자궁같은 샘골이 이중환이 말한 십승지지다.
식사후 활인봉 정자에서 단체사진을 담고서 잠시 쉬어간다.
태화산의 또 다른 봉우리는 나발봉인데, 유명한 마곡사가 있으니 만큼 얼핏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아닌가 생각을 해볼수 있겠으나. 나발봉의 유래는 도적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요즘
방영중인 인기 드라마 '역적'의 주인공인 홍길동이 주로 활동하던 지역이 태화산 앞에 있는
공주 무성산과 그 일대 라고 하는데, 그 도적들이 터프하게 병나발을 분게 아니라 유사시에
나발을 불어 신호를 전달했다고 하여 나발봉 이라는 지명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무성산에는 홍길동이 쌓았다는 무성산성이 남아 있다. 높이로나 유래로 보아도 활인봉이
정상 스럽다는 생각 이며, 이 유명한 명찰에 부처님 닮은 봉우리 하나 없는것도 이상하다.
마곡사 덕분에 멀리서도 많이들 다녀갔다. 사실 산세는 운동하기 딱좋은 동네 뒷산 급 이다.
나발봉으로 향하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다가 우측으로 내려설 예정이다.
이날 조망은 잡목에 가려 이정도 뿐이다. 저 뒤에 높은산이 나발봉 이라고 착각했던
태화산과 무관한 이름도 없는 570봉 이고 바로 앞의 야트막한 산줄기가 나발봉 이다.
나발봉으로 가는 능선길을 걷다가 우측으로 샘골을 향해 내려선다.
다들 샘골 이라고도 하는데, 이정표엔 생골 이라고 되어 있다
산길을 내려서 생골로 들어선다. 마을에 찬 샘이 있다 해서 생골이라 부르는데
샘골에서 변하여 부르는 마을 명이다. 시양동 또는 西陽洞이라고도 부른다.
샘골은 지도에서 나오는 작은 계곡이 아니라 상당히 넓은 곳이다. 빙둘러 산으로 에워싸인
좁은 입구를 태극으로 굽이치는 물길이 다시 한번 가로막고 있는 이곳의 안쪽 터는 전쟁도
피해간다는 여인의 자궁을 닮은 편안한 십승지지로 좁은 입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넓은
10만평의 농지를 품고 있다고 한다. 다 마곡사 소유의 농지인데 사는 사람이 없어서 대부분
휴경지가 되어 잡목숲으로 변해버렸다고 하는데, 50년 전만해도 500명 가량이 살았었다고..
더덕 꽃
산수유가 막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생골 길을 내려선다.
태화산 마곡사는 백범 김구와도 관계가 깊은 곳 이다. 한성황후 시해에 분개한 김구는
황해도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쓰치다를 정보장교로 생각하여 죽이고 '국모의 원수를
갚을 목적으로 거사를 벌였다'는 대자보를 붙인 뒤 성명과 주소까지 적어 놓고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3개월 뒤 체포됐고,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며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형집행일 우연히 사형수 명단을 훑어보던 승지에게 '국모보수(國母報讎)(황후
시해 복수)' 라고 하는 범행 동기가 발견되었고, 고종에게 급히 보고되어, 긴급 어전회의
후에 사형집행정지가 결정되었다. 사형이 집행되기 바로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황명을
전달하는 파발이 제아무리 빠른 말을 타고 달려도 사형집행을 막지 못했을텐데 다행히
3일전에 서울-인천간 전화선이 개통되어 고종의 특명이 바로 인천 교도소에 전달 되었다.
불모비림
불모는 사찰의 불화나 불상을 제작하고, 단청을 시공하는 이들을 가리키는데, 마곡사는 예부터
불화를 그린 화승도량으로 유명 하다고 한다. 특히 마곡사 화승을 대표하는 금오당 약효스님은
마곡사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최대 화승공동체를 유지했던 근대의 대표적인 불모 라고 한다.
샘골 길을 내려와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들 바로 하산을 하고
이서방님과 둘이서 마곡사를 둘러보러 내려간다.
마곡사는 백제 의자왕 3년(643년)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했는데, 마곡(麻谷) 이라는
이름은 신라시대 보철화상이 법문을 열때 삼나무(麻) 처럼 사람들이 빽빽하게 계곡에 모여
들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있다.
마곡사로 들어가는 길은 정문인 해탈문을 지나면서 부터 시작된다.
명부전
마곡사의 구조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 건너느냐 아니냐로 나뉘는것 같다.
극락교를 건너면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선다.
마곡사 대광보전 (보물 제802호)
마곡사 오층석탑 (보물 제799호)
마곡사 오층석탑은 원나라 시대의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특이하고 귀한 탑 이라고 한다.
마곡사 대웅보전 (보물 제801호)
시간상 대적광전과 대웅보전을 겉만 보고 말았다. 금산사 미륵전도 그렇지만 마곡사 2층 전각도
상당히 귀한 건축물인데, 아쉽지만 마곡사에 대한 자세한 탐방은 다음기회에 다시 해야할것 같다.
또 다시 김구선생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사진에 보이는 태화천 왼쪽 데크가 바로
김구 선생이 머리를 자른 곳이다. 천만다행으로 전화가 개통되어 목숨을 건진 김구 선생은
이후 탈옥을 감행하여 이곳 마곡사로 오게 된다. 이곳에서 스님의 권유로 승려가 될 결심을
하고 저 데크에서 삭발식을 가지게 되었단다. 후에 그는 백범일지에서 '...내 상투가 모래
위에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고 술회했다.
마곡사는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절 이기도 하다. 영어 쓰는것을
싫어하는 밀을 위해 우리말로 바꾸자고 했다. '절박'
춘마곡 추갑사 라고 하였는데, 정말로 봄이 되면 아름다울것 같다.
주마간산으로 마곡사를 한바퀴 슬쩍 돌아보며 다음을 기약하고는 일행들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산으로 돌아갈 달호네를 위해 이곳에서 뒤풀이를 하려는 것이다.
앞풀이때보다 훨씬 푸짐해 보이는 차령산맥에서 뒤풀이를 하고 아쉬움을 달랜다.
바위에 무릎 안쪽을 찧고나서 가볍게 생각하였는데 그게 꽤 오래가며 이번에 까지
애를 먹였다. 마곡사와 태화산은 다음에 편할때 다시와서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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