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잠 새마을금고 산악회를 따라 산과 함께 개방된 자연 박물관 이라고 하는 신라의 수도

경주의 진산인 남산으로 향한다. 천년 불국토의 흔적과 금오신화의 배경이 되는 그곳으로

 

 

 

 

 

 

 

 

남산 산행코스 : 용장골 - 설잠교 - 금오봉 - 바둑바위 - 삼릉

 

 

 

 

 

 

 

 

 

 

늦게 출발한데다, 길도 막히고 하다보니 11시반이 되어서 용장골로 들어선다.

이미 한낮이라 봄날씨 같은 기온에 언땅이 녹으며 개스가 슬슬 피어 올라 원거리

조망은 별무신통 할 것 같은 날씨에 자켓들을 배낭에 넣고 셔츠만 입고 걷는다.

 

 

 

 

 

 

 

 

 

경주 남산 용장골

 

 

 

 

 

 

 

 

 

 

 

 

 

 

 

 

 

 

 

 

 

 

 

 

 

용장골은 매월당 김시습이 은둔하며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한 곳이다.

용장골은 용장사에서 유래를 하는데, 김시습은 단종폐위 사건 이후  용장사에 7년간

머물며 경주 남산의 다른 이름인 '금오'에서 비롯한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낮은 산 이건만 그래도 계곡다운 풍모를 보이는 용장골은 금오산과 고위산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경주 남산의 많은 계곡들중 가장 넓고 깊으며, 수려 하다고 한다.

 

 

 

 

 

 

 

 

 

설잠교

 

단종 폐위 사건이후 김시습이 불교에 귀의 하는데, 그때 법명이 바로 '설잠(雪岑)' 이다.

설잠은 눈덮힌 봉우리 라는 뜻 이며, 그 외에 매월당, 청한자, 췌세옹 등으로 불렸다.

 

 

 

 

 

 

 

 

 

용장사지에서 바라본 용장사지 삼층석탑

 

 

 

 

 

 

 

 

 

용장사지에서 바라본 남산 최고봉인 고위봉

 

 

 

 

 

 

 

 

 

용장사지에서 내려다본 풍경

 

 

 

 

 

 

 

 

 

용장사지 작은 바위에 뻗어내린 소나무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륜대좌불은 용장사의 주존불 이다.

보물 187호 인데, 머리가 있었으면 국보가 되었을 법도 한데 너무도 아쉽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조망이 좋은 용장사지에서 송총무님

 

 

 

 

 

 

 

 

 

용장사지 위쪽의 경주 남산 용장사지 3층석탑 (보물 186호)

 

 

 

 

 

 

 

 

 

삼화령의 대연화좌대

 

 

 

 

 

 

 

 

 

대연화대를 당겨본다.

 

 

 

 

 

 

 

 

 

경주 남산은 해발 500m 가 채 안 되는 낮고 작은 산 이지만, 아웃도어 박물관 이라

불리워도 좋을만큼 천년 신라가 지녀왔던 불국토의 증거들이 온 산 가득히 남아 있다.

절터 147곳,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그리고 왕릉과 산성지를

비롯해 672점의 유물과 유적지가 있는, 산 전체가 자연 그대로의 야외 박물관 이다.

 

 

 

 

 

 

 

 

 

삼화령 갈림길을 지나 금오봉으로 향한다.

 

 

 

 

 

 

 

 

 

경주 남산의 주봉은 금오봉이 아닌 금오산 으로 표기 되어있다.

 

경주의 남산은 금오산 이라고도 부르며, 통상 남쪽의 고위산과 북쪽의 금오산의 두 산을

합하여 남산 이라고 한다. 정상석 인증을 하려는 많은 분들 때문에 돌 하나만 담고 간다.

 

 

 

 

 

 

 

 

 

 

 

 

 

경주 남산의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徐羅伐)’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 한 男神,  한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 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쁜 아름다운 女神이었다. 이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하고 외쳤고, 이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놀랐다.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쪽으로 걸어노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겁에 질려 “산 봐라!”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라고 해야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 신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신은 그 자리에서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南山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望山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삼릉계곡의 마애석가여래좌상

 

멀리서 봐도 거대하고 아름다운 부처님이 바위벼랑 아래쪽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국보와 보물을 떠나서 멀리서 보기엔 매우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이 부처님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불상으로 높이 7m로 냉골(삼릉계)에서는 가장 큰 불상으로

남산 북봉인 금오봉을 향해 앉아 있다. 다들 지나가면서 입을 모아 감탄성을 낸다.

 

 

 

 

 

 

 

 

 

 

 

 

 

 

 

 

 

 

 

 

 

 

 

 

 

마애석가여래좌상 부처님 아래에는 상선암이 자리하고 있다.

 

 

 

 

 

 

 

 

 

마애석가여래좌상 부처님이 계시는 바위 봉우리 위쪽에 우리 일행들이 올라섰다.

 

 

 

 

 

 

 

 

 

일행들을 당겨본다.

 

 

 

 

 

 

 

 

 

일행들이 섰던 곳으로 가서 바위 봉우리에 올라 조금전 지나왔던 곳을 바라본다.

 

 

 

 

 

 

 

 

 

 

 

 

 

 

 

 

 

바둑바위에서 바라본 경주시내

 

바둑바위는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너른 바위로 조망이 참 좋은 곳이다.

 

 

 

 

 

 

 

 

 

들판건너 왼쪽 맨앞의 가장 작은 산이 여신이 산이 되었다는 망산 이다.

 

 

 

 

 

 

 

 

 

하산길, 삼릉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바둑바위에서 확실한 이정표가 없다. 지도에 하산길로

보이는 곳엔 출입금지 금줄이 걸려있고, 이정표 대신 나무에 걸려있는 유일한 안내판에는

삼불사로 되어 있어, 일행들이 돌아나온다. 나중에 보니 삼불사로 되어 있는곳을 따라 잠시

 더 내려가면 다시 이정표가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삼불사와 삼릉주차장 갈림길이 이다.

 

 

 

 

 

 

 

 

 

상선암

 

상선암은 경주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로, 원래 신라시대 절터 라고 한다.

 

 

 

 

 

 

 

 

 

현재의 상선암 자체는 크게 볼 것은 없다.

법당 하나와 요사채 하나로 구성 되어 있다.

 

 

 

 

 

 

 

 

 

하산길, 올라서면 딱 좋을것 같은 바위가 있다고 했더니, 역시 그곳에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는 마애선각여래좌상 이다.

 

 

 

 

 

 

 

 

 

조금 더 내려가서 우측 위로 작은 부처님이 보이는데, 얼핏 보기는 그저 그렇다.

일행들은 모두 그냥 지나치고, 카메라를 든 내가 대표로 다녀오기로 한다.

 

 

 

 

 

 

 

 

 

그런데 구릉을 올라서 대면한 부처님의 첫 모습은 강렬하기 그지 없다. 

 

 

 

 

 

 

 

 

 

멀리서 보기에 작고 그저그런 모습일거라 생각한거와 달리 이날 산행 코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부처님상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남산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으로 보물 666호 이다.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 모습에 두손 모아 합장을 한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부처님 뒤에 작은 기도 동굴이 있다. 

 

 

 

 

 

 

 

 

 

동굴 안에서.. 

 

 

 

 

 

 

 

 

 

먼저 내려간 일행들이 등로 우측 위쪽 바위에 여섯분의 부처님을 그려넣은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부처님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뒤따라 다녀온다.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의 일환이거나, 아니면 술취한 못난 사대부의 행패인지, 아니면

일제시대에 민족정신을 말살 하려는 일제의 만행 때문인지 경주 남산에는 유독 머리가

없는 부처님들이 많이 보인다. 이 머리와 두손이 없는 석조여래좌상 부처님도 계곡에

묻혀 있다가 1964년에 발견되어 현재의 큰 바위 위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 위로 좀 더 올라가니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천년의 세월을 보듬고 있지만 부처님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세월도 지우지 못한 붉은색 작은 입술 

 

 

 

 

 

 

 

 

 

 

 

 

 

 

 

 

 

이후부터 하산길은 소나무 숲길 이다.

 

 

 

 

 

 

 

 

 

 

 

 

 

 

 

 

 

 

 

 

 

 

 

 

 

소나무 숲의 성지 라고 불리우며 전국에서 많은 사진 작가들이 몰려든다는 삼릉 소나무 숲 

 

 

 

 

 

 

 

 

 

삼릉

 

삼릉, 세 무덤의 주인은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라 전해진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서 세 왕의 무덤과 솔숲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감회가 새롭다.

천년전 이 작은 산에 가득했을 아름다운 불상들과 많은 사람들, 석공들, 스님들, 불자들의

조용한 미소와 망치질 소리, 호연지기와 풍류를 거론하며 몰려 다녔을 화랑과 낭도들의

호기찬 웃음소리를 떠올려본다. 천년 신라의 진산은 이렇게 또 장구한 세월을 보내며

목이 잘린 불상들과 흔적만 남은 절터를 남겨두고 옛 영화를 무덤속에 봉인 하고 있다.

 

 

 

 

 

 

 

 

 

너무도 아름다운 경주 남산 삼릉 소나무 숲

 

 

 

 

 

 

 

 

 

삼릉 솔숲의 명품 소나무들

 

 

 

 

 

 

 

 

 

 

 

 

삼릉 솔숲을 빠져 나오면서 산속에 펼쳐진 야외 박물관 탐방을 마친다.

산 자체가 뽐내는 아름다운 풍취나 품광 보다는 남산이 천년의 세월동안

조용히 품고 있는 불교유물의 아름다운 품격이, 멀리서도 이 낮은 산을

찾는 전국의 탐방객들에게 충분한 이유와 가치를 전해줄 수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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