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초가을에 억새가 아름다운 화왕산과, 암릉길이 근사한 관룡산, 구룡산을 다녀왔다.
산행코스 : 옥천식당 - 685봉 - 배바위 - 화왕산 - 관룡산 - 구룡산 - 암릉 - 김영수목원 (7시간20분)
옥천식당에서 바라본 구룡산 암릉
옥천리 옥천식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비들재로 가다가 학생수련원을 지나서
우측 산길로 향한다. 이후 능선 까지는 물이 흐르는 미끄러운 계곡길로 계곡을
몇번씩 건너면서 능선으로 향한다. 좌우는 온통 소나무 밭으로 척 봐도 송이산
이라는것을 느낄수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화왕산은 송이로 유명한 산 이다.
능선으로 향하는 소나무 숲길
젖버섯류 인지, 온산이 이 버섯으로 덮혀있는듯 했다.
드디어 능선에 올라 화왕산으로 향하는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일행들 뒤로 보이는 전방의 저 봉우리를 넘어서야 한다.
능선왼쪽으로 지리산과 황매산이 보인다.
진행방향에서 왼쪽 송현리로 내려서는 암릉 중간의
뾰족한 봉우리 뒤로 멀리 가야산이 보인다.
영취산과 병봉
꽃을 들여다 보기 아까울 정도로 화창하게 맑은 날 이다.
이번 가을은 몇일이나 머물다 갈까..
지난 여름처럼 지독한 겨울이 될런지..
일행 두분이 등로 왼쪽 암릉에 올라서 계시길래 따라가 보았다.
소나무로 가득한 산, 앞 봉우리로 향하면서 점심 식사를 한다.
건너편엔 화왕산을 들렸다 가야할 관룡산과 구룡산 암릉이 보인다.
구룡산 암릉 우측으로는 반가운 노단리와 비슷한 노단이 저수지가 보인다.
화왕산 비석바위
화창한 가을날 ~
조금전 개미대장님이 서있던 암봉
구룡산 암릉을 끝까지 따라서 노단이 저수지 까지 갔어야 했는데...
울프 대장님
점심 밥터에서 개미대장님이 결국 송이를 하나 찾아낸다.
이제 저만치 화왕산이 보인다.
화왕산
산아래 창녕읍과 지평선에 우뚝선 가야산
관룡산과 구룡산 암릉을 당겨본다.
화왕산 정상부의 분지
우측에 배바위
배바위
2009년 정월 대보름날 화왕산 정상에서 벌어진 억새태우기 행사에서 갑작스런 역풍이
배바위쪽으로 부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저 배바위 위로 피신을 하는 바람에 뒤가 벼랑이라
추락등으로 인해 7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을 당했던 뉴스의 중심에 섰던 곳이다.
배바위에서
배바위도 화왕산 정상 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만
화왕산 정상은 정면 왼뽁의 두개의 뿔같은 봉우리중 왼쪽이다.
배바위에서 바라본 화왕산 분화구
화왕산(火旺山)은 이름 그대로 화기가 왕성한 산이다. 2009년 화왕산에서 억새태우기
행사를 한다고 했을때 뭔가 불안감이 들었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기가 왕성한 산인데다
화왕산의 화기가 지맥을 타고 대구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판에, 비보를 하여 화기를
줄이지는 못할망정, 불을 지른다고 하니 뭔가 좋지 않은일이 생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왕산성
1597년 정유재란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7만5000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화왕산성을 에워쌌다. 전라도 전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화왕산성 공략에 나섰던 것인데
당시 성안에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인근 고을의 군사, 백성들과 함께 농성 중이었다.
그런데 전주를 점령하려면 화왕산성보다는 인접한 황석산성 함락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
왜적은 7일간 대치하다 함양 황석산성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얼마 안되어 황석산성을
지키던 군사와 백성 7000여명이 전사, 대패했다는 비보가 전해져 다들 통곡했다고 한다.
화왕산은 이름 그대로 화기가 넘치는 오래전 화산의 분화구 였다고 한다. 정상부의 둘레는
약 10리로 정상부의 사진에 보이는 억새밭을 십리억새밭 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측으로
파란색 펜스의 용지가 보이는데, 세군데 용지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을 했다고 한다.
배바위에서 정상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모습
화왕산 정상부에는 인증사진을 담으려는 긴 줄이 있다.
줄이 길어서 자체 모자이크 하신분과 더불어 정상석만 담아왔다.
火王山 이냐, 火旺山 이냐?
오래전 구봉산을 다녀오면서 천황봉과 산이름에 대해 글을 남겼고, 지난번 재약산을 다녀온후 천황산과 산 이름에 대해 다시 언급을 한적이 있지만, 이곳 화왕산도 왕자를 두고 王 이냐 旺 이냐를 두고 아직도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친일의 잔재는 결단코 청산되어야할 문제지만,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천황' 이라는 산명을 두고 일제의 잔재다 라고 하여, '천왕' 이라고 바꿔야 한다는 점이나, 旺이 日 + 王 이기 때문에 일왕을 지칭하고 있고, 이것은 일제가 한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키기 위해 지명을 바꿨다는 주장을 하는것은 피해망상적인 억지라고 다시금 말하고 싶다.
王 과 旺 은 조선시대부터 혼용되어 왔다
조선시대에 지도와 문서를 만들면서 우리말 산 이름을 한자화 하였는데, 일제시대 훨씬 이전 조선시대 부터 산이름을 쓰면서 王과 旺 을 거리낌 없이 혼용을 해왔었고, 많은 지도와 문서에 기록이 남아 있는데, 도대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자꾸 친일의 잔재라고 주장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旺을 日 + 王 라고 하는것은 스스로 욕을 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절대 일왕 이라고 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일본의 왕을 일왕이라 칭하는곳은 오직 여기 한국밖에 없다. 그들의 왕은 왕도, 황제도 아닌,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천황' 으로 옥황상제와 동급이다. 그런 그들이 일제시대에 식민지 백성들이 밟고 다니는 신민지의 산명을 정하면서 일왕 이라는 이름을 쓴다는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천황 이라는 말도 무서워서 감히 쓰지 못하는 그들이 인왕산, 화왕산, 가리왕산 등에서 일왕을 의미하는 旺를 썼다는것은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격이며 엄청난 매국행위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감히 天皇山 이라는 이름도 쓰지 못한다
일본에는 여러곳의 天王山이 있지만, 天皇山은 오직 키츠쿠리쵸에 있는 안토쿠 천황과 관련된, 지금도 정상에 신사가 있는 56.7m의 낮은 산 하나뿐이다. 그것도 인근 마을사람들은 감히 天皇山(てんのう) 이라고 부르는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고 무서워해 에둘러서 高山 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자신들은 부르지도 못하는 경외스러운 이름을 우리보고 밟고 다니라고 우리산 이름 으로 천황산 天皇山(てんのう) 이라는 이름을 붙혀줄수가 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더우기 일왕을 의미하는 뜻으로 산이름을 바꿀수 있었을까?
|
정상에서 바라본 동문으로 가는 방향의 풍경
정상부에서 바라본 건너편 배바위 방향 조망
당겨본 배바위
천문대가 있는 건너편 비슬산
동문으로 가면서 바라본 아름다운 화왕산 억새 평원
아홉마리 용이 승천 하였다는 화왕산 용지
정상에서 지나온 길
십리 억새평원
동문으로 빠져서 관룡산으로 향한다.
허준 등등 사극 세트장
동문을 지나서 평탄한 임도길을 따라 허준세트장을 지나고 옥천삼거리에 이른다.
사진 찍는다고 후미인줄 알았는데, 다들 하산길 이라고 하고, 우린 관룡산으로 향한다.
조망터 없는 산길을 따라 금새 관룡산에 도착하고 인증사진을 남긴다.
구룡산으로 가면서..
관룡산을 지나 구룡산으로 가면서, 그리고 구룡산을 지나서 하산길이
이날 산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로 멋진 암릉이 늘어서 있다.
건너편 구룡산과 멋진 암릉
앞쪽 암릉이 이날 산행코스중 유일한 위험 구간 이다.
다들 왼쪽으로 우회를 하고 혼자 넘어섰는데 밧줄이 있지만 까탈스럽다.
밧줄 우측이 벼랑인데, 밧줄이 부득이 우측으로 매어져 있어서
밧줄을 중앙쪽으로 옮겨서 홈에 끼우고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올라서야 한다.
구룡산 전후의 암릉은 이구간의 백미라고 볼 수가 있는데, 무조건 책임회피적
우회를 강요하는 팻만만 걸어놀게 아니라, 안전시설을 조금만 보완을 해준다면
누구나 좋아할 정말 멋진 코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나온 암릉
구룡산 정상이라고 추정되는 곳에서 정상석을 찾았으나 발견할수 없었는데
알고보니, 갈림길에서 암릉 하산길이 아닌 반대편으로 조금만 더 가면 있다고 한다.
하산길 암릉
아.. 두번째 암봉,,저곳을 넘어섰어야 했다.
저 암봉을 넘어서 노단이 저수지로 직진을 하던지
아니면 관룡사 갈림길에서 관룡사로 빠지던지 했어야 했다.
화왕산의 용지에서 용이 승천하는것을 보았다는 관룡사
관룡산에서 구룡산을 거치며 지나온 암릉
떡바위에서
아쉬움을 남기는 암봉과 우측뒤로 노단이 저수지
저 멋진 암봉을 일단 넘어섰어야 했다.
아래 안부에서 일행들이 GPS 지도를 보고 우측 가파른 샛길로 가기로 정하고 있다.
결국 가파른 샛길로 내려서는데, 아무래도 인적이 드문 길이고
근래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결국 가볍게 생각했던 선택으로
바쁜 하산길이 쌩길을 헤매는 고난의 시실리 2km가 되고 말았다.
올려다본 암릉
가파른 샛길로 내려섰는데, 리본도 없고, 길도 끊어지고, 그러다가 헤매면
다시 희미한 샛길 같은게 나오다가 없어지고를 반복한다. 마을 건물 직전까지
내려서니 정글이 가로막아 다시 되돌아선후 방향을 잡고 농장으로 내려섰다.
고난의 길을 빠져나와 김영 수목원으로 하산을 하였다.
구룡산에서 능선을 타고 관룡사나 노단이로 내려서는 길목엔 흔한 이정표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관룡산에서 구룡산으로 가는 암릉과 구룡산 하산길의 마지막
암봉엔 안전시설만 조금 보완해 두면 더욱 멋진 코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화왕산, 그동안 사진으로 보고,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산 이었다.
'포토에세이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무 가득한 가야산의 마애불과 해인사 (0) | 2016.10.28 |
---|---|
대둔산 - 단풍이 바위와 어우러진 비오는날의 그림같은 추경 (0) | 2016.10.19 |
가을 약초 버섯산행 그리고 반야사 문수전 (0) | 2016.10.05 |
계룡산 황적봉, 천왕봉 - 멋진 조망과 봉우리 이름에 대하여 (0) | 2016.09.28 |
산장산 꽃무릇 - 상사화길 따라 천천히 걷다 (0) | 201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