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으로 가려고 잔뜩 기대를 했는데, 전날 전국적으로 황사 예보를 내립니다.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기상청에 들어가보니 가시거리 4키로.. 황사가 지독하여

이내 원거리 산행을 포기하고 대신 후보로 생각해둔 백골산을 생각해 봅니다.

 

오후 세시 갑자기 황사경보가 해제되고 기상청홈에 가시거리가 20키로라고

 나오는걸 보고 바로 배낭을 챙겨 기다리고 있을 그리운 꽃님 보러 출발합니다.

 

 

 

 

 

 

 

 

 

 진고개식당 : 대전 동구 신하동 215-35

 

 

 

 

 

 

 

 

 

진고개식당앞에 주차를 하고 느긋히 걸음을 옮기는데...

아... 엊그제 뒤늦은 한파 때문이었나요...

마중나와 있어야할 꽃님이 보이지 않네요..

 

 

 

 

 

 

 

 

 

이 계곡의 풍경도 새싹이 이제 나올락 말락

 

 

 

 

 

 

 

 

 

작년엔 늦게 와서 게으르게 피어난 님들을 만났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부지런한 개체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새봄 새꽃 대신에...

겨울을 견뎌낸 헌 산수국을 반깁니다.

 

 

 

 

 

 

 

 

 

 

 

 

 

 

 

 

 

 

 

 

 

 

 

 

 

 

 

 

 

 

 

 

 

백골산에서 바라본 대청호

 

 

 

 

 

 

 

 

 

백골산성

 

가파른 경사면에 세워진 테뫼식 백제의 산성은 천년이 넘는 세월에

돌무더기만 남기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작년에 꽃님을 보러 왔을때도 짙은 황사로 인해 조망을 전혀 할수가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작정을 하고 온 이날도 전날 갑자기 황사 예보를 하니 백골산과

황사의 우연이 늘 겹치듯 하는 불안한 느낌을 피할수 없었는데, 황사경보가

해제되고도 아직도 가벼운 황사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작년에 못한

조망을 할 수 있으니 꽃님을 보지 못한 서운함이 약간은 가시는듯 합니다.

 

 

 

 

 

 

 

 

 

 

 

 

 

 

 

 

 

백골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이렇습니다.

 

 

 

 

 

 

 

 

 

일단 지난번 가보지 못한 능선 끄트머리까지 가봅니다.

아직 해는 많이 남아 있고, 찾아볼 꽃님은 한분도 안계시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강살봉 방향으로 향합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산

나무도 돌계단에도 이끼가 가득 합니다.

 

 

 

 

 

 

 

 

 

어슬렁의 진수를 보여주듯 걸어갑니다.

낙엽도 보고, 나무도 보고,,, 이생각, 저생각..

바쁘게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들도 바라보고..

진정한 어슬렁은 비로소 혼자 걸어갈때 가능하다는것을

새삼 느끼면서 천천히~, 느릿느릿~ 즐기듯 걷습니다.

 

 

 

 

 

 

 

 

 

여럿이 걷다보면 이런걸 눈여겨볼 틈도 없고

흔한 소나무 새싹에 렌즈를 들이댈 일도 없습니다. ㅎ

 

 

 

 

 

 

 

 

 

조선시대 선비스럽고 풍류를 아는 괴산쪽의 소나무들의 수려한 자태와 달리

여기 소나무들에게선 백제 병사의 억세고 투박한 기개와 패기가 느껴지네요.

하긴 백골산의 사연을 아는 소나무라면 고고한 풍류를 뽐낼수 없었겠지요..

 

 

 

 

 

 

 

 

 

강살봉으로 가는 길도 대청호 오백리길 입니다.

 

 

 

 

 

 

 

 

 

꾀꼬리봉을 지나고

 

 

 

 

 

 

 

 

 

 

 

 

 

 

 

 

 

아무도 없는 숲길을 어슬렁 어슬렁...

 

 

 

 

 

 

 

 

 

강살봉

 

강살봉에 도착하니 정상석 대신 아는분 이름표가 보입니다.

몇년전 여산에서 대청호둘레산길을 가면서 지나갔나 봅니다.

 

 

 

 

 

 

 

 

 

강살봉에서 바라본 환산 (고리산)

 

백제의 최전방이던 고리산 입니다. 백제 성왕때 태자 창이 저곳을 지키고 있었고

지금보니 고리산과 백골산 사이에 넓은 분지가 보이는군요. 이곳과 백골산 뒤쪽

현재의 대청호쪽 평야지에 왜와 백제의 연합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을 겁니다.

 

 

 

 

 

 

 

 

 

 

고리산과 뒤쪽의 신라 최전방 지역이었던 충북 옥천을 당겨 봅니다.

고리산 자락 우측뒤로 보이는 낮은 동산이 관산성 전투로 유명한 삼성산 입니다.

삼년산성의 신라기병이 이곳에 몰래 와있던것을 모르던, 성치산성에 있던 성왕이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대신들과 말타고 고리산으로 달려오다, 미리 정보를 입수한

신라 기병의 포위망에 관산성 앞에서 붙잡혀 좌평들과 함께 목을 베인곳 이지요.

 

 

 

 

 

 

 

 

 

관산성 전투는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에서 잡힌 백제 성왕의 목을 신라군 최말단

병사가 잘라 경주로 가져가 관청 계단밑에 묻어두고 조롱거리로 삼은것에 분개하여

태자 창이 앞뒤 가리지 않고 기병을 동원하여 관산성으로 돌격하였으나 대패하게

되는 전투를 말하는것 입니다. 게다가 이후 여기서 기병을 잃은 백제군은 증평에

주둔하던 신라 김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장군의 기병에 백골산 배후를 기습당하고

옥천에 주둔한 신라 주력군의 협공에 백골산에서 전멸에 가까운 참사를 당합니다.

 

 

 

 

 

 

 

 

 

관산성 전투 개요

 

 

 

 

 

 

 

 

 

다시 백골산으로 돌아옵니다.

 

 

 

 

 

 

 

 

 

백골산에서 바라본 조금전 다녀온 꾀꼬리봉과 뒤쪽의 강살봉

 

 

 

 

 

 

 

 

 

백골산 제일 조망터에 잠시 앉아 음악을 틀어놓고

저녁빛으로 물들어 가는 호수를 보며 일몰을 기다립니다.

 

 

 

 

 

 

 

 

 

백골산 아래 대청호, 당시 저곳은 호수가 아닌 들판이었겠지요..

산 밑에 본진을 두고 있던, 백제, 왜 연합은 후방에서 생각지 못한

기병의 기습을 받고 혼비백산 하여 이곳 백골산으로 일패도지하여

도주하였을 것이고, 이 야트막한 산은 반대편 옥천에서 밀려드는

신라 주력군에게 앞뒤로 포위되어 주검으로 뒤덮혔을 것입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 만하니
눈 감을밖에

 

 

 

 

 

 

 

 

 

황사로 인해 그저그런 일몰을 본후에 천천히 산길을 내려섭니다.

이곳 노루귀는 열흘 후에야 제대로 모습을 드러낼것 같고, 인근에

노루귀 볼 수 있는 곳을 따로 모르니 수일내로 다시 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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