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 산악회의 2016년 시산제 장소는 접근이 용이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조선시대 각종 지도에 나오는 대전 원내동 산장산의 용바위 에서 진행이 되었다.

 

 

 

 

 

 

 

 

 

산장산에서 계룡산 수통골로 가는 길은 대전 둘레산길 10구간

 

 

 

 

 

 

 

 

유성으로 가는 길

 

 

모처럼 하늘이 좋은 날 이다. 이번 겨울들어 오랫만에 손끝이 시리고

적당히 싸늘한 바람이 능선에 불어온다. 조망이 좋은 높은산 에서는 

쾌청한 하늘에 예쁜 상고대나 빙화를 볼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접근의 용이함에 선택한 시산제 장소에 약간 아쉬움도 든다.

 

 

 

 

 

 

 

 

 

계룡산의 용이 나왔다는 산장산의 용바위에서 어슬렁산악회 2016년 시산제를 올린다.

 

 

 

 

 

 

 

 

 

어슬렁산악회는 매년 음력 설날과 대보름날 사이에 날을 잡아

시산제를 올리는데, 이날 날씨는 여느때보다 유독 더 좋은것 같다.

 

 

 

 

 

 

 

 

 

날짜를 지키는것 이외엔 산신제 순서에 맞춰 지내는것 빼고는 다들 형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어슬렁 스럽게 융통성있고 자유롭다.

 

 

 

 

 

 

 

 

 

몸이 아픈 아이비님이 삼색채소를 준비하여 산제 후에 비빔밥을 만들었고

결혼하여 아산으로 이사간 달호님도 남편과 5개월된 아이를 데리고 참석했다.

 

 

 

 

 

 

 

 

 

유세차 ~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홍동백서, 조율이시는 근거없는 규칙

 

 

조율이시, 홍동백서의 진설법도 대충대충, 누구하나 트집을 잡지 않는다.

고려말에 유교가 이땅에 도입이 되면서 시작된 제사문화는 흔히 말하는

홍동백서, 조율이시 라고 하는 형식을 누구나 당연시 하는데, 성균관의

의례부장의 최근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어떤 유학서적에도 나오지 않는

근거없는 이야기 라고 한다.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오늘날 풍속이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를 지내는

법이 집집마다 같지 않으니 매우 가소롭다. 만일 예로써 한번 재단하지 않으면

끝내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져 오랑캐의 풍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므로 이에

제례(祭禮)를 뽑아 뒤에 부록(附錄)하고 또 그림을 그렸으니 이에따라..." 

 

 

 

그런데 <격몽요결>의 그림에서도 과일의 종류는 제시되지 않은 채 맨 앞열에

<果>만 놓게 되어 있으며, 고기(肉 또는 炙)나 어류(魚)는 섞여 있다.

좌우는 구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방위를 표시하게 되어 있지는 않다.

 

 

 

 

 

 

 

 

 

멀리 아산에서 신랑과 아기와 함께 참여한 달호

 

 

이이선생은 사과를 젯상에 쓰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사과가 이땅에 도입이 되어 보편화 된것은 구한말 선교사에 의해서 였다고 한다.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아마 이이 선생이 책을 쓸 당시에는 사과를 제상에 쓰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제철과일이라면 감이나 대추, 밤일 텐데 사과나 배는 훨

씬 뒤부터 제물로 사용되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즉, 제물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균관의 의례부장에 따르면 "차례 상을 차리는 규칙이나 절차가 실은

일제 강점기에 말살된 우리의 전통 문화를 되찾으려다 생긴 오류” 라고 한다.

 

 

“책에도 그냥 과일을 올리라는 이야기만 나올 뿐” 이라며  “어떤 과일을 쓰라는

지시도 없다” 고 말했다. 중국 문헌에는 바나나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차례 상에 꼭 올려야 하는 것은 술, 고기, 밥과 국, 나물, 과일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엔 돼지머리를 사서 썼는데, 작년부터 돼지저금통과 머리수육으로 대신한다.

산에 들고 올라가기 귀찮거나, 무거워서 그런게 아니고, 제사를 지낸후 뒤처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예전엔 식당에서도 기꺼이 받아 주었는데, 이제는 동네 식당들도

다들 외면한다. 그런다고 돼지머리를 음식물 쓰레기로 버릴수는 없지 않은가.

 

 

 

 

 

 

 

 

 

송시열 선생의 <송자대전>을 보면 제자가 그에게 어동육서의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에 대한 송시열의 답은 허무하기만 하다. 중국을 기준으로 하면 동쪽이 바다이고 서쪽이

육지라서 어동육서라고 했단다. 그렇게 심각한 철학을 배경으로 정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1000년전 중국 주희가문의 집안 예법이 고려로 넘어오게 되고

조선에서는 성리학이 치국의 이념으로 사용됨에 따라 현재까지

고쳐지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그마나 조선시대에 성리학의 예법을

준수했던 양반은 전체인구 대비 고작 1% 정도 였다는데...아직도

 

 

천년전 중국 주씨가문의 제례법을 따르지 않으면 쌍놈 이라고 하며

지금은 전국민이 정체불명의 양반인양 중국 주씨가문의 천년전 예법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전통문화는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잘못된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답습하는건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다. 

 

 

 

 

 

 

 

 

 

제사음식을 즐겁게 나눠먹고 용바위를 내려선다.

 

 

형식은 어슬렁 스럽지만 다들 마음을 다해 제를 드렸으니 올 한해

다들 무탈산행 하시고, 간절하게 빈 소원이 꼭 이루어 지기를...

 

 

 

 

 

 

 

 

 

내려서는길에 바라본 원내동과 관저동 일대

 

 

 

 

 

 

 

 

 

뒤풀이는 진잠의 <신오거리회관>에서 토종 닭볶음탕으로...

 

 

 

 

 

 

 

 

 

마무리는 원내동 <작품하나 in Cafe>에서 커피 한잔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