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종산제를 함께한 진잠새마을금고 산악회의 시산제가 이번달 진잠의 진산인 산장산의

유명한 바위인 용바위에서 진행이 되었다. 그간 용바위와 범바위를 두고 정확한 위치가

분명치 않았는데 마침 이번 기회를 통해 용바위의 위치를 확실히 알아보고자 한다.

 

 

 

 

 

 

진잠성당 옆 굴다리를 통해 호남고속도로를 넘어 산장산으로 향한다.

전방에 보이는 저 야트막한 산 줄기가 진잠의 진산인 산장산 이다.

 

우습게 보일법한 저 작은 산이 신동국여지승람 이나 대동여지도 및 조선시대 각종 주요지도에

등장을 하는것을 보면 얼핏 높이만 보고 촌동네 평범한 뒷산 으로 지레짐작 해서는 안될듯싶다.

 

 

 

 

 

 

 

 

 가파른 길을 쉼없이 올라 금새 운동시설이 있는 능선 갈림길에 도착을 한다.

왼쪽으로 조금 가면 산장산 정상이고 우측으로 가면 계룡산 수통골 지구에 있는 빈계산 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일행들과 함께 빈계산 방향의 완만한 능선길로 향한다.

 

 

 

 

 

 

 

 

성북산성으로 가는 능선길

 

 

 

 

 

 

 

 

성북산성터 직전의 운동시설

 

 

 

 

 

 

 

 

 

 

 

 

 

 

 

 

 

 백제의 산성으로 삼국시대 근방의 백제산성들과 연결되는 중요 산성중 하나로

대전에서 연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켰다고 한다.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성재고개에는 시산제 준비를 위한 제수음식을 실은 차가 임도를 타고 올라와 있다.

 

 

 

 

 

 

 

 

우측으로 대정동으로 가는 임도 길 이다.

이따가 하산시에 이 길을 통해서 보다 빠르게 원점회귀를 하게된다.

빈계산 방향은 임도를 건너 계속 능선을 타고 진행한다.

 

 

 

 

 

 

 

 

이쪽으로 내려서면 노적봉을 지나 성북동에 이른다.

 

 

 

 

 

 

 

 

잘못표기된 억새길 안내도

 

 

이 안내도에 따르면 앞서 나오는 바위가 범바위고 뒤에 나오는 바위가 용바위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전둘레산길 10구간 이 코스를 다녀간 산꾼들의 글을 보면 어느게 용바위고

어느게 범바위 인지 다들 제각각 이다. 나도 이제껏 앞에 나오는 넓고 평평한 바위는 그냥 마당

바위 이고 산정상에 나오는 뾰족뾰족하고 용의 갈기처럼 생긴 바위가 용바위로 알고 있었다.

 

 

 

 

 

 

 

 

등산로 따라 억새를 한줄로 쭈욱 심었다고 한다. 그 억새가 사진처럼 번식하여 아름다운 억새길이

되길 바라는데 이런 안내판이 문제의 용바위와 범바위 앞에도 예쁘게 놓였으면 싶다.

 

 

 

 

 

 

 

 

용바위 앞에서..

 

 

 

 

 

 

 

 

용바위에서 내려다본 유성으로 뻗은 호남고속도로

 

 

 

 

 

 

 

 

 그리고 역광에 중국발 미세먼지가 낀 진잠 방향

 

 

 

 

 

 

 

 

용바위 에서 바라본 대정동 일대

 

 

 

 

 

 

 

 

 시산제 지내기전 잠시 조망을 하고..

근데 여기가 진짜 용바위 인지, 범반위 인지..

오늘 시산제가 용바위 시산제 인데 잘못하면 범바위 시산제가 될 수가 있다.

 

 

 

 

 

 

 

 

 이 바위는 조망이 좋고 앉아사 쉬기 좋아 야간등산 으로 자주 왔던 곳이다.

바위 중간에 물이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얼어 있다.

그 웅덩이가 용바위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용바위의 전설

 

 

옛날 이곳에서 장사가 태어났는데, 아이를 낳을 때 그 아이를 받기 위해 끊은 무릎 자국과

태를 자르기 위해 사용했던 가위 자국 그리고 바느질 그릇의 자국도 있으며, 바위에 큰 웅덩이

같은 큰 홈이 있어 그곳에 고인 물로 아이를 씻겼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장사 남매가 놀다

오줌 눈 자리 앉은 자리 등이 남아 있으며, 아이를 씻은 물은 지금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다들 소원 성취 하시기를...

 

 

 

 

 

 

 

 

시산제를 마치고 준비한 찌개에 간단히 음복을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이날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목적한 금수봉 까지는 이미 마음을 비웠고

빈계산 까지만 다녀올 생각인데 그것도 쉽지 않을것 같다.

 

 

 

 

 

 

 

 

가는길에 왼쪽으로 넓직한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도 마당바위라 불리울만한 바위다.

 

 

 

 

 

 

 

 

좀 더가면 우측으로 바위가 하나 또 있는데...

 

 

 

 

 

 

 

 

 용바위의 전설과 흡사한 바위 홈이 여기에도 있다. 

 

 

 

 

 

 

 

 

 다시 만나는 이정표를 봐도 우리가 시산제를 지낸곳은 범바위다.

 

 

 

 

 

 

 

 

봉소사 갈림길

 

 

예전 겨울에 눈에 푹푹 빠져가며 발자국도, 길 흔적도 없는 산길을 대충 내려서보니 봉소사가 나왔다.

지금은 등로가 분명하게 나 있을까?

 

 

 

 

 

 

 

 

 산 정상부에 이렇게 커다란 바위가 있다.

사진에서 보는 크기감 보다 실제 바위는 훨씬 더 크다.

이건 무슨 바위 인가? 사연이 있을법 한데...

잔가지를 헤치고 바위를 올라서 본다.

 

 

 

 

 

 

 

 

 범바위

 

 

바위를 내려서 정상부에 가니 드디어 용처럼 생긴 범바위가 있다.

생긴건 이 바위가 용 처럼 생겨서 많은 산객들이 용바위라고 잘못 소개를 하고 있는 바위다.

 

 

 

 

 

 

 

 

 

 

 

 

 

 

 

 

 

 범바위에서 진대장님

 

 

 

 

 

 

 

 

 범바위에서 진대장님, 송총무님, 박은숙 대장

 

 

 

 

 

 

 

 

 오늘 내 사진은 이렇게 뽀샵 되어서 나왔다.

 

 

 

 

 

 

 

 

 빈계산을 향해 걷고는 있지만 이날 뒤풀이 식당 예약을 12시에 해놓았다고 하니

빈계산을 다녀올수는 없을것 같고 이만 되돌아 가야 할 것 같다.

 

 

 

 

 

 

 

 

오른쪽 길따라 전방의 빈계산, 중앙의 우뚝선 금수봉, 그 사이의 도덕봉

금수봉 좌측으로 백운봉, 관암산, 계룡산 천황봉이 보인다.

 

 

금수봉은 정상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보면 주위의 온 산이 비단을 수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금수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반대방향 역광의 방동 뒤쪽으로 보이는 장군봉, 위왕산, 약사봉, 대둔산

 

 

 

 

 

 

 

 

 빈계산과 금수봉 사이의 도덕봉

 

 

빈계산은 고지도에는 分鷄山 으로 나오는데 산의 모양이 마치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라고 해서 암탉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대전지역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고

<대전시사>에 따르면 54개의 작은 소국들로 이루어진 마한 중에서 신흔국

이곳 빈계산 자락에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좌측끝 관암산 뒤로 계룡산 천황봉 정상 안테나가 희미하게 보인다.

 

 

 

 

 

 

 

 

천황봉 안테나를 잡기위해 광학줌을 넘어서 좀 더 당겨본다.

 

 

 

 

 

 

 

 

 성북동 뒤 능선 넘어로 보이는 향적산 정상과 희미한 통신 안테나

 

 

 

 

 

 

 

 

계룡산 수통골 금수봉, 빈계산 방향의 조망도

 

 

 

 

 

 

 

 

봉덕사 (봉소사)

 

 

 

 

 

 

 

 

대전을 가로질러 계족산, 식장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우측끝으로 서대산이 더욱 희미하게 보인다.

 

 

 

 

 

 

 

 

유성쪽 풍경

 

 

동행하신분이 대전은 아직도 개발 가능한 노는땅이 7천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그 널널한 여유로움이 좋기만하다.

 

 

빈계산 방향으로 향하다 결국 시간이 촉박했는지 앞서가던 선두가 되돌아 온다.

어차피 컨디션도 최악이라 미련없이 뒤돌아 선다.

 

 

 

 

 

 

 

 

범바위에서 바라본 진잠방향

 

 

이게 범바위 인지 용바위 인지 진실을 가려보기 위해 인터넷 조사를 해보았다.

그러고 나니 더욱 헷갈리기만 한게 여기 저기 안내도가 틀리고

각자의 산행기에 소개된 명칭도 제각각 이다.

 

 

하여 우선 고지도를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 저기 자료를 찾았으나 이것도 여의치 않아

국회도서관에 로그인을 하여 고지도 자료를 찾아 보았다

 

 

 

 

 

 

 

 

조선시대 진잠현 지도 - 대동여지도에 소개된 산장산(파란원)과 계룡산(붉은원)

 

산장산...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산이다.

동네 뒷산이 아니라는 소리인데..

아쉽게도 아직 정상석도 없다.

 

 

 

 

 

 

 

 

조선시대 진잠현 지도 -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충청도지도에 소개된 진잠과 산장산

 

 

충청도에 명산이 부지기수 인데, 그 와중에 300m도 안되는 이곳 산장산이 실렸다.

참으로 결코 우습게 보면 안되는 대단한 산 이라는 것 이다.

 

 

 

 

 

 

 

 

조선시대 진잠현 지도 - 여지도서에 나오는 산장산과 용바위

 

드이어 용바위가 나오는 지도가 보인다.

1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여지도서에 산장산에서 빈계산으로 가는

능선의 봉우리중 가장 우뚝선 곳에 용암 이라고 용바위 표시를 해놓았다.

그럼 위에서 범바위라고 했던곳이 용바위란 말인가?

 

 

 

 

 

 

 

 

조선시대 진잠현 지도 - 1805년 충청도읍지 진잠현의 산장산 용바위와 범바위의 정확한 위치

 

 

드디어 범바위와 용바위가 모두 나오는 지도를 찾았다.

1805년에 제작된 충청도읍지 이다.

충청도읍지에 나올 정도면 이 바위들도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다.

자세히 보기위해 확대를 해본다.

 

 

 

 

 

 

 

 

 

조선시대 진잠현 지도 - 충청도읍지


진잠이 왼쪽이고 빈계산이 우측인 지도에서...

진잠쪽에 가까운 바위가 용바위 이고, 빈계산 쪽으로 높은 봉우리에 있는 바위가 호랑이 바위다.

다른산엔 나오지도 않은 바위가 이곳 산장산엔 떡 하니 표기가 되어있다. 

그만큼 중요한 바위라는 것 일테다.

 

즉, 이날 우리가 시산제를 지냈던 바위가 바로 용바위 라는 것이다.

이 용바위에서 바로 계룡산의 鷄龍이 나와서 산 이름이 산장산(産長山)이 되었다고 한다.

 

 

 

 

 

 

 

 

 

 성재고개에서 오던길이 아닌 임도를 따라 대정동방향으로 걷다가 다시 우측으로 틀어

산길로 영주기도원 방향으로 향한다.

 

 

 

 

 

 

 

 

이윽고 다시 굴다리를 지나 호남고속도로를 오른쪽에 끼고 진잠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을 했던 이 조그만 산장산이 유명한 지도에 실렸던 다른 큰 이유는 바로 진잠 이다.

진잠 이라는 지명은 대전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 있던 회덕현과 진잠현 이 두개의

현중의 하나로 현청이 있는 현재의 원내동은 바로 옆의 산장산과 더불어 대전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이다.

 

진잠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진현현(眞峴縣)이었는데, 고려초에 현재의 이름인 진잠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초의 1413년(태종 13)에 진잠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가 1896년에 충청남도

진잠군이 되었는데, 1914년 군면 폐합 때 진잠군이 폐지되고 대전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 진잠현 지도 - 진잠현 읍지

 

 

진잠의 지명은 진압할진에 봉우리잠 자를 쓴다.

진잠현의 동헌은 현재 진잠초등학교 교내에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관청을 짓기위해 허물어 버렸다고 한다.

그자리에 있는 진잠초등학교는 1913년에 개교한 유성구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 이다.

이제 고3에 올라가는 우리 둘째와 이번에 졸업하는 첫째의 모교이다.

 

 

향교가 있던 곳은 향교가 있다고 해서 교촌으로 불리우다가 지금 교촌동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듯이 원내동이 있던 곳의 원래 지명은 내동리 인데, 현재의 원내동은

1983년 대전시 중구로 편입될때 원래 내동이었다 하여 원내동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진잠현 지도 - 청구도에 나오는 진잠현과 회덕현

 

 

청구도에 나오는 진잠현과 회덕현이 현재의 대전이 되었다.

지금은 대전의 변방 이지만 예전엔 최고의 중심가 였다는 소리다.

 

 

 

 

 

 

 

 

오늘 뒤풀이 장소는 원내동 두메산골 오리집

 

 

 

 

 

 

 

 

오리고기를 먹고 몇몇이 모여 치킨을 먹으러 갈때까지만 해도 상태가 좋지 않아 힘들었다.

그런데 다시 다들 자리를 옮겨 사무실에서 산더덕주와 솔냄새 진한 잣주를 몇잔 먹고나서부터

상태가 호전되더니, 몇일째 약을 먹고도 안낫던 감기가 자고나서는 말끔히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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