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산행코스 : 봉양사거리 - 발리봉 - 돌봉 - 장림고개 - 천보산 - 회암사

 

 

 

 

 

칠봉산 ~ 천보산 지도

 

 

 

 

 

 

 

 

봉양사거리에서 산행 시작 (10시55분)

 

 

네비양이 문제인지 기사님이 지난주와 비슷한 알바를 하며 시작한다. 봉양사거리를 지나쳐 샛길로 들어가

대도사 근처에 일행을 내려놓아 그곳에서 일단 단체사진을 한장 찍고 다시 탑승하여 봉양사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진달래가 활짝핀 산길

걷기 쉬운 편안한 육산에 인근 주민들이 운동하러 많이 다닐법한 산 이다.

 

 

 

 

 

 

 

 

발리봉(發離峰) (11시16분) 

 

 

각봉우리마다 지역 자문위원 들이 유래를 적어 두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어느 임금인지, 그리고 봉우리 이름에 대한 유래가 이름과 쉽게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 이다.

안내판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발리봉은 임금께서 처응 등산하기 위해 떠난 곳이라하여 붙여진 봉우리 이며

혹은 봉우리 생김새가 스님들이 공양할 때 쓰는 바루(바리)와 같이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같은 이름으로 용인에도 발리봉(發梨峰)이 있으며, 괴산에도 발리봉(發李峰)이 있는데 셋다 한자가 각각 다르다.

하지만 이는 백두산, 백운산, 소백산 등에서 나오는 白, 또는 박달재 등의 朴과 같은 '밝다' 에서 나온 '밝음'

계통의 산명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발리봉에서의 조망, 임꺽정으로 유명한 양주 불곡산과 우측으로 도락산

 

 

 

 

 

 

 

 

소요산 

 

 

전에 이곳에서 카투사로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캠프 케이시 바로 뒤에 있는 소요산은 친근한 산 이다.

제대하고 25년만에 동두천에 처음 오게 되었다. 저 소요산 줄기 아래 사단 의무대인 우리부대가 있었는데

지금도 옛모습 그대로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칠봉산 능선

 

 

 

 

 

 

 

 

역광에 빛나는 화사한 진달래

 

 

 

 

 

 

 

 

석봉(石峰)

 

 

석봉이란 임금님이 돌이 많다고 해서 붙힌 이름 이라고 한다. 

이정도에 돌이 많다고 하면 예전 임금님 사시던 궁궐 뒷산인 삼각산은 어찌 불렀을까. ㅎㅎ

게다가 이 산엔 여기 석봉 말고 따로 돌봉 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동두천 시내 뒤로 보이는 마차산 (587m)

 

 

 

 

 

 

 

 

매봉, 응봉(鷹峰) 

 

 

응봉은 임금님께서 수렵할 때마다 사냥에 필요한 매를 날렸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봉우리 이며 

혹은 봉우리 모양이 꿩을 채기 위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응시하는 형상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사연은 없고, 닮은 구석을 찾아볼수 없는 이름만 있는 아들바위

 

 

 

 

 

 

 

 

스스로 턱을 괴고 있는 나무

 

 

 

 

 

 

 

 

깃대봉 (旗臺峰)

 

  

깃대봉에는 장군이 군기를 휘날렸다는 등 여러가지 사연이 있지만 이곳은 임금께서 수렵하러 나가 수렵을

시작한다는 표시의 깃발을 꽂았다 하여 붙여진 봉우리 이름 이라고 한다.

 

 

 

 

 

 

 

 

칠봉정

 

 

 

 

 

 

 

 

주민들이 산책하기 좋은산 이라 그런지 칠봉산에는 잠시 앉아 쉬어 갈수 있는 벤치가 많이 만들어져 있다. 

아무래도 이 산을 찾은 등산객들중 가장 멀리서 온 등산객들이 바로 우리가 아닐까 하는 우스개 소리를 해본다.

평범한 육산인 이산은 말이 봉우리가 일곱개나 있는 칠봉산 이지 능선에 늘어선 각각의 봉우리들은 명패를 달아놓지

않았으면 독립된 봉우리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지나칠 그런 밋밋하고 운동하며 걷기좋은 육산 이다.   

 

 

 

 

 

 

 

 

한국전쟁 발발 당일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이곳에서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견하여 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을 해드렸다고 한다.

 

 

 

 

 

 

 

 

투구봉 (鬪具峰) - 임금님께서 쉬시니  군사들이 갑옷과 투구를 풀어 놓았다는 봉우리다

 

 

주위에 명산들이 많은데 왜 굳이 이런 산을 정기산행지로 잡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면서 혹시 그렇다면

하산길에 있는 회암사지에 큰 의미를 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먼 해남 달마산에 가서 산행을

못할지라도 도솔암만 다녀와도 본전은 건진거라고 했듯이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조선 초기의 최대 사찰인

회암사터를 보며 흘러간 역사의 상념에 빠져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룡산 

 

 

그러나 산을 내려와서 칠봉산으로 산행지를 정한 이유를 짐작하고 나니 정기산행의 감동은 산줄기의 멋진

조망보다 더 크게 밀려오게 되었다.  

 

 

 

 

 

 

 

 

말봉

 

 

말봉은 칠봉산의 칠봉에 들어가지 않아 이름만 있고 유래가 없는 숨은 봉우리다.

말을 닮은 봉우리 인가? 아니면 각 봉우리 마다 있는 그 임금님이 이곳에서 잠시 말을 쉬어가신 곳인가? 

 


 

 

 

 

 

 

말봉에서 바라본 감악산

 

 

저 아래에서 군생활을 했던 반보님이 그렇게 극찬을 하는 감악산 이다.

양주 불곡산에 이어 저곳에도 꺽정이 형의 전설이 있는 만큼 반보님과 동행하여 한번 가보고 싶은 산 이다.

 

 

 

 

 

 

 

 

말봉과 왼쪽의 조망바위

 

 

 

 

 

 

 

 

여기도 이름만 있고 사연은 없는 진달래 바위

 

 

혹시 바위 이름 짓는거에 소질도 있고 좋아라 하는 네비 선배님이 다녀가면서 이름만 몽땅 붙혀논것은 아닌지. :-)

그나저나 전혀 진달래스럽지 않은 바위에 진달래라고 붙혀 놓으니 그 사연이 궁금하긴 하다.

 

 

 

 

 

 

 

 

장림고개로 가기전에 잠시 정상에 들려서 간다.

 

 

 

 

 

 

 

 

칠봉산 정상, 돌봉(突峰) (12시37분)

 

 

임금께서 이 곳을 떠나며 이 곳에 돌이 많다고 하시어 붙여진 봉우리다.

여느 산들 처럼 좀 멋진 이름을 가졌으면 좋을텐데 그냥 돌봉 이라니... 투박한 맛도 있는듯 하다.

 

 

 

 

 

 

 

 

칠봉산 정상의 모습

 

 

돌맹이가 좀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고작 이정도 가지고 돌봉 이라고 했으면 그 임금님이 달마산이나 주작산

같은 돌맹이가 많은 산에 다녀오셨으면 그 많은 봉우리들 이름을 뭐라고 했을까? :-)

 

 

 

 

 

 

 

 

그거 잡아 빼면 큰일납니다. ㅎㅎ  :-)

 

 

돌봉을 지나 칠봉산 마지막 봉우리인 솔리봉을 남겨두고 점심 식사를 한다. (12시40분)

4시에 뒤풀이가 잡혀 있기 때문에 다들 식사를 조금 일찍 했어야 했다.

하산시간을 4시로 잡아놓은게 그리 많이 넉넉한것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다들 무척 서두른다.

휴식도, 간식도 없이 빠르게 걷다보니 시간이 충분하게 남았는데도 식사마저 신속하게 해치우고 일어선다.

산행의 묘미중 하나가 산에서 즐기는 느긋한 점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 회원님들 산행 스타일이 생각보다

무척 빠르다.

 

 

 

 

 

 

 

 

솔리봉 (率離峰)

 

 

임금님이 수렵을 위해 금병산을 올라와 보니 현재의 이 곳보다 국사봉이 수렵을 위해 자리가 더 좋다하여

이 곳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떠났다해서 붙여진 봉우리 라고 한다.

 

 

 

 

 

 

 

 

옥정신도시와 양주시 뒤로 수락산과 도봉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솔리봉에서 바라본 천보산

 

 

 

 

 

 

 

 

솔리봉과 천보산 사이 장림고개에는 새로 만들어진듯한 다리가 놓여있다.

아무래도 MTB를 이용하는 분들을 위한 시설인듯 싶은데 덕분에 안부까지 내려서지 않고 편하게 다리를 건넌다.

 

 

 

 

 

 

 

 

일행들이 차한잔 마시고 쉬었다 가고 싶다던 장림고개 다리 밑의 카페 <높은산 오리카페>

 

 

 

 

 

 

 

 

장림고개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길

 

 

 

 

 

 

 

 

오리카페가 근사해 보였는지 여성회원님들은 다리 밑 카페에서 차한잔 마시고 가면 좋겠다고 하고~

총무님은 그러다 산악회에서 제명 당한다며... 어서 가자고 웃으며 달래신다. :-)

 

 

 

 

 

 

 

 

칠봉산과 천보산에는 이처럼 MTB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남들 자전거 타고 오르내릴수 있는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등산객들이 걷고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기가 쉽지 않을듯 하다.

 

 

 

 

 

 

 

 

해룡산 갈림길 (13시45분)

 

 

여기 동광교 종주끝은 동두천 6산 (칠봉산-해룡산-왕방산-국사봉-소요산-마차산) 종주를 말함이다.

대전의 보만식계와 비슷한 코스인 셈이다.

 

 

 

 

 

 

 

 

천보산에 오르며 바라본 칠봉산

 

 

 

 

 

 

 

 

천보산 정상으로 가기 전에 건너편 지능선에서 고인돌 처럼 생긴 사진 중앙의 기묘한 바위를 본다.

능선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것으로 5분만 되돌아서면 다녀올수 있었지만 다들 잠시 망설이다

그냥 진행을 한다.

 

 

 

 

 

 

 

 

천보산 정상 (14시)

 

 

천보산의 유래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하여 이산에 피신하였다가 난이 끝나자 목숨을 건진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라고

신하에게 명하였다. 신하가 난리 후라 금은보화를 구하기는 어렵고 이름을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이라고 불리워 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천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포천시 방향

 

 

왼쪽부터 뒤로 멀리 희미한 운악산, 우측뒤로 주금산 그리고 천보산맥 왼쪽 앞으로 죽엽산이 조망된다.

 

 

 

 

 

 

 

 

천보산맥 

 

 

 

 

 

 

 

 

천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바위와 조망이 좋았던 만경대와 그 뒤로 멀리 양주의 불곡산과 도락산이 보인다. 

 

 

 

 

 

 

 

 

천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옥정 신도시 조성지와 회암사지

 

 

 

 

 

 

 

 

천보산 능선 뒤로 보이는 칠봉산

여기서 이렇게 보니 산행내내 육산만 거닐었던 칠봉산에 비로소 하얀 바위가 보인다. 

어느님 글을 보니 예전에 군인들의 유격훈련을 하던 장소 였다고 한다.

 

 

 

 

 

 

 

 

사진 중앙 큰 바위로 뻗어내린 지능선 상단에 조금전 고인돌 처럼 생겼다는 멋진 바위가 있다.

 

 

 

 

 

 

 

 

만경대에서

 

 

 

 

 

 

 

 

 

 

 

 

 

 

 

 

만경대의 아름다운 소나무들

 

 

 

 

 

 

 

 

만경대에서 후미에서 함께한 총무님

 

 

 

 

 

 

 

 

만경대에서 바라본 칠봉산

 

 

 

 

 

 

 

 

만경대에서 바라본 회암사

 

 

회암사 주변의 진달래가 너무도 곱게 피어 있다.

만경대에서 회암사로 내려서는 길은 화사한 진달래 꽃길 이다.

예전 회암사지의 방대한 규모가 아닌 회암사가 배출한 유명한 고승인 나옹선사, 무학대사, 지공선사의

부도와 비석 사이에 아담한 터를 마련했다.

 

 

 

 

 

 

 

 

만경대에서 바라본 회암사, 회암사지 일대 풍경 

 

 

 

 

 

 

 

 

만경대에서 바라본 천보산 정상

 

 

 

 

 

 

 

 

만경대 하산길

 

 

 

 

 

 

 

 

만경대

 

 

 

 

 

 

 

 

와룡산에서 전속모델을 했던 백합님과 뒤로 천보산맥 

 

 

 

 

 

 

 

 

 

 

 

 

 

 

 

 

잔돌이 미끄러운 길

 

 

 

 

 

 

 

 

꽃밭 한가운데 자리잡은 회암사

 

 

 

 

 

 

 

 

회암사로 가는길의 화사한 진달래

 

 

 

 

 

 

 

 

만경대

 

 

 

 

 

 

 

 

 

 

 

 

 

 

 

 

 

 

 

 

 

 

 

 

 

 

 

 

 

 

 

 

나옹선사를 추모하기 위한 선각왕사비의 모조비 (보물 제387호)

 

 

선각은 나옹이 죽은 후에 받은 시호이고 비의 글은 고려 말의 대학자인 목은 이색이 지었으며 조선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권중화가 쓴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 비석은 1997년도에 성묘객의 부주의로 산불이 나서 훼손이 되어 불교역사 기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원래 비가 있던 자리에 1999년에 원형 그대로 모조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비석의 용 모양이 굉장하다.

 

 

 

 

 

 

 

 

회암사 대웅보전 뒤로 보이는 만경대

 

 

회암사 대웅전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신축한 대웅보전 옆에 관음전이 있는데, 예전 사진을 보면 대웅보전 자리에 지금 옆에 있던

관음전이 대웅전 으로 서있었는데, 지금보면 이전 대웅전이 왼쪽으로 옮겨와 관음전이 되고 대웅보전이

신축이 된것이다. 그럼 이전 대웅전 건물이 옆으로 통째로 옮겨진 것일까?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의 부도탑이 스승인 지공선사의 부도보다 윗자리에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어르신들이 위에 자리하는게 상례인데,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무학대사 홍융탑(보물 제388호)과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

 

 

 

 

 

 

 

 

무학대사 비

 

 

 

 

 

 

 

 

회암사 약수

 

 

이곳에 기거를 했던 조선 태조와 예전의 유명 고승들 그리고 사냥하러 나왔다던 임금님들이 모두 이 샘물을

마셨을것 아닌가..  역시 물맛이 무척 시원하고 좋았다.

 

 

 

 

 

 

 

 

회암사지 옛터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고 해설사 까지 붙혀 두었다.

 

 

회암사의 정확한 창건과 폐사가 된 기록은 없지만 추정건데 고려 충숙왕 때인 1328년 인도 고승인 지공(指空)

선사가 창건했으며, 이후 지공의 제자인 나옹(癩翁)선사가 다시 세웠고 조선초 태조와 효령대군등이 이곳에

머물며 불도를 닦았던 국가적인 사찰이었다.

 

 

고려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의 목은집 에는 당시 회암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3천여명의 승려가

머무르는 대사찰로 건물은 모두 262칸이며 높이 16척의 불상 7구와 10척의 관음상을 모셨다고 한다. 건물들이

크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기가 동국 제일이며, 중국에서도 이러한 사찰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기록

하였다.

 

 

 

 

 

 

 

 

회암사터

 

 

조선 전기 최대의 사찰 이었다는 회암사는 이렇게 흔적만 남기고 있다.

문정왕후는 아들인 명종이 12세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며 불교를 억압한 정책들을 바꿨는데

이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보우(普雨)대사 이다. 하지만 그는 불교의 중흥을 도모하며 회암사 중창을 하는등

과도한 불교 행사를 하게 되었고, 이는 조선의 유교사회 사상과 맞지 않아 유학자들로 부터 큰 반발을 사게

되었고, 결국 중창 낙성식을 끝낸직후 문정왕후 사후에 이 큰 사찰이 방화를 당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회암사터 

 

 

예전에 탤런트 전인화가 문정왕후로 나왔던 TV 드라마 여인천하가 기억난다.

문정왕후 이전에 조선은 건국초기부터 지속되어온 불교탄압정책 (선종, 교종의 통폐합, 도첩제, 승과폐지 등)

으로 교단이 황폐해지고 사찰에는 승려를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문정왕후가 보우를 중용하면서, 승과가

부활되고, 교/선종이 복구되었으며, 승려의 수가 급증 하는등 유교이상을 숭배하며 지속적인 불교말살 정책을

통해 유교를 최고의 정치적 이념으로 삼아 조선을 지배했던 유학자들에게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문정왕후 사후에 위와 같이 보우대사와 함께 기지개를 켰던 조선 불교는 다시 보우대사가 유배후 장살을

당하면서 암흑기를 맞게 되었고, 심지어 권력을 잡은 유학자들로 부터 보우대사는 문정왕후와 로맨스가 있던

요승으로 까지  폄하되게 되었다. 아무튼 문정왕후 사후에 난정이도 죽고, 보우대사도 죽고, 동국제일의 사찰

이었다는 이곳 회암사도 불타버린 것이니 아쉽기만 하다.

 

  

 

 

 

 

 

 

산행후 회암사지 입구에 있는 댓돌 한정식 집으로 이동한다.

그냥 산행후 간단한 뒤풀이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날 저녁은 산악회의 자문위원 으로 계시는 김영 선생님의

옛날 제자분들이 서울쪽으로 산행을 나오신 선생님께 대접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요즘같이 스승의 권위가 땅으로

추락한 시대에 참으로 훈훈한 모습이 아닐수 없다. 처음 뵙는 분 이지만 그만큼 멋지고 훌륭한 선생님 이셨을 것이

분명하다.

 

 

차에서 들었던것을 깜박 하고, 나오는길에 제자분들 중에 한 여성분께 선생님이 서울에서 교편을 잡으셨는가 보다고

물어보았는데, 전주라고 하신다. 그래서 저도 전주에서 학교를 나왔는데, 어느 학교냐고 다시 물어보니 우전초등학교

라고 말씀을 하신다. 윽.... 선배님 이시다. 연식을 따져보니 11년.. 한참 선배님. 꾸벅. 바로 버스를 타고 오느라 길게

인사를 나누진 못했지만 뜻밖의 곳에서 멋진 제자분들중 한분중에 초등학교 선배님을 뵙고 나니 더욱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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