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어느날 반보님으로 부터 전화가 온다. 홍성 어느곳에서 길냥이를 한마리 발견했는데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걸 알고 키울 의향이 있냐고 전화를 한것이다. 샴 고양이고, 무척 귀엽게 생겼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길을 가던중이라 지금 당장 결정을 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일을 하던중이라 길게 생각 못하고 엉겹결에 그럼 함

보자고 한것이 그녀석과의 인연이 되었다.

 

 

 

 

아파트 앞 길가에서 녀석을 넘겨 받았는데 완전히 허깨비다.

얼마를 굶었는지 등짝이 달라붙고 삐쩍 말라서 뼈만 남아있는 모습으로 이 상태로 방치하면 아마도 수일내로

죽게될 녀석이 분명했다. 그렇게 힘든 몸으로 길에서 처음 안아들었는데 거부의사도 없이 부비부비를 한다.

목숨을 건 애교일까...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는 몸짓같다.

 

 

일단 이쁜이보다 크고 나이가 들어보여 혹시라도 이쁜이가 이녀석에게 맞을까봐 내방에 보관하고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 주었다.

 

 

이쁜이가 먹던 사료를 덜어 주었더니 이녀석 먹는게 완전 전투적이다.

이효리가 그랬던가...길고양이에게 주는 음식이 그 고양이의 평생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이녀석 도대체 얼마나 굶은 것일까... 어찌나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는지 사료를 방안에 흩날리며 먹는다.

 

 

첫날밤을 그렇게 보내고 다음날 보니 목욕이 필요한 상태다.

이쁜이 녀석은 목욕시키기도 발톱깎기도 참 어려운데 이녀석의 성질을 파악해 보기 위해 슬쩍 발톱을 잡아본다.

이쁜이 같으면 발톱만 잡아도 싫어하고 낼름 이빨부터 들이대는데, 이녀석은 그냥 누워서 척 하니 발을 맡긴다.

마치 네일샵 가서 미용받는 자세처럼 편안히 발을 내게 맡긴다.

 

 

뭐 이런 순한 녀석이 다있나..?

워낙 못먹어서 저항할 기운이 없는것일까? 네발을 다 깎도록 그냥 태연하게 발을 맡기곤 눈길도 않준다.

일단 발톱을 깎아놔야 이쁜이와 다툴때 이쁜이 얼굴에 상처가 없을것 같아 발톱을 깍아줬다.

안아들고가서 목욕을 시켜주는데 역시 목욕도 수월하다.

참 순하디 순하다.

 

 

이녀석 이름도 집사람이 지었다.

순하디 순하다고 그냥 '순이' 라고 한단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이틀에 걸쳐 순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검진도 받고 치료를 받았다.

몸만 삐쩍 골은게 아니라 잘먹지 못해서 그런지 몸도 좋지가 않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원래 내방은 이쁜이의 전용 놀이터 인데, 이쁜이를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온 샴 고양이를 내방에 놓고

문을 닫아 두었더니 이녀석으로 부터 오해를 사고 말았다. 전용놀이터를 뺏긴데다가, 내가 새로온 녀석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다보다. 이후로 우리집에서 나는 이쁜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순이보다 한참이나 (몇달차이) 어린 이쁜이가 새로온 순이를 무척 못마땅해 한다.

순이만 보면 으르렁 대고 싸우려는것 같아 할수없이 순이집을 내방에 만들어 두고 계속 따로 격리 하게 되었다. 

 

 

 

 

 

 

 

어라 저놈봐라 ~

여기가 어디라고...

 

 

 

 

 

 

 

이놈 뭐야?

 

 

이쁜이는 순이만 보면 으르렁 대는데...

속편한 순둥이 순이는 신경도 안쓴다. 

잠시 풀어놨더니 제 밥그릇 다먹고 이쁜이 집에 놀러가더니 남의 밥까지 넘본다.

으르렁대는 이쁜이를 숫제 신경도 안쓴다.

 

 

 

 

 

 

 

하 뭐 이런 황당한 놈이 다 있나...

 

 

태연하니 이쁜이 밥그릇을 넘보는 순이를 이쁜이가 어처구니 없이 바라보고 있다.

처음엔 이쁜이가 다칠까봐 순이 발톱을 깎아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반대다.

이쁜이 성격이 칼칼 한데 반해 순이는 순하기만 해서 오히려 이쁜이에게서 순이를 보호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냥 보고만 있을 이쁜이가 아니다.

내방에 오더니 순이 밥그릇을 싹싹 비운다.

 

 

 

 

 

 

 

일촉즉발

 

 

 

 

 

 

 

처음에 둘이 싸우면 순이는 이쁜이의 상대가 안되었다.

이쁜이 녀석은 온몸이 근육 덩어리 인데, 순이는 삐쩍 골아 근육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와서 소파도

뛰어 오를만한 다리힘이 없었다. 그리고 순이는 싸우는 자체를 싫어한다.

 

그러나 두달이 지난 지금 순이는 이쁜이 보다 골격이 크고 팔이 길어서 둘이 장난을 치면 예전처럼

순이가 당하고만 있지 않다.

 

 

 

 

 

 

 

이쁜이의 까칠한 도발에도 순이는 무대포로 착하기만한 하더니 점점 순이를 보고 으르렁 대는 일이 적어진다.

그렇게 둘이는 점차 서로를 인정하고 의지하며 지내기 시작한다.

나만 이쁜이에게 왕따가 되고, 둘이는 잘 지낸다.

 

 

 

 

 

 

 

이쁜이가 하던대로 순이도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책상에 올라 키보드 앞에서 누워 잔다.

 

 

 

 

 

 

 

처음엔 그렇게 싸우던 녀석들이 이제는 집도 같이 쓴다.

순이 집을 따로 만들어 주었는데, 자기집은 안쓰고 꼭 이쁜이 집에 들어와서 붙어 잔다.

참고로 두놈다 암놈이다.

 

 

 

 

 

 

 

 

 

 

 

 

 

 

보석같이 예쁜 눈을 가진 순이

 

세상에 이놈처럼 순한 고양이가 또 있을까...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게 발톱을 세우거나 이빨을 들이대는걸 본적이 없다.

 

 

 

 

 

 

 

여전히 미모를 자랑하는 토종 미인 이쁜이

 

이 녀석은 암놈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개구지다.

표정연기도 잘하고 본인의 감정 표현이 확실하다.

 

내가 조금만 혼내키면 바로 발톱을 드러내고 인상을 쓴다.

내 팔에 생긴 무수한 상처는 다 이녀석이 만든 작품이다.

어릴적부터 사람하고 살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는것 같기도 하고...

툭하면 무는데 본인이 물려보질 않아서 그게 얼마나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지를 모르는것 같다.

 

 

 

 

 

 

 

구형 보조 컴퓨터 모니터는 이녀석이 잘 올라가서 노는 놀이터다. 

 

 

 

 

 

 

  

이쁜이의 골이난 표정

' 나 지금 기분 엉망이고 이럴때 건들면 다칩니다' 라고 말하는게 얼굴에 쓰여있다.

이녀석은 기분이 좋고 나쁨이 얼굴 표정에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집에서 이쁜이가 제일 싫어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아무래도 순이를 데려오면서 부터 그런것 같은데, 또 다른 이유는 이쁜이가 싫어하는 것들을 내가 하기

때문이다. 발톱 깍기, 목욕시키기...

 

 

 

 

 

 

 

엄마 팔베게 하고 자는 이쁜이

 

순이를 데려온 이후로 나를 싫어 하는 만큼 엄마에게는 애교가 늘어났다.

고2에 올라가는 우리 둘째 이후 처음으로 집사람 팔배게를 하고 자는 생물 이다.

 

 

 

 

 

 

 

 

 

 

 

 

 

지금은 둘이 어찌나 잘 놀고 의지를 하는지...

순이가 없었으면 이쁜이가 얼마나 심심했을까...

 

 

 

 

 

 

 

날이 차가워 지자 컴퓨터 본체위는 경쟁이 치열하다.

본체가 따뜻하기 때문이다.

여기도 원래 이쁜이 자리였는데...

 

 

 

 

 

 

 

순이가 그 좁은데로 무대포로 기어 올라온다.

 

 

 

 

 

 

 

 

 

 

 

 

 

 

 

 

 

 

 

혼자 올라와서 쉬면 딱 맞을 공간인데 두녀석이 좁은데 올라와서 늘 이러고 불편하게 잔다.

편하고 따뜻한 자기집 두고 왜 내방에 와서 이러는지...

적막과 외로움이 싫어서 그러는것 같다.

 

 

나에게 순이를 맡긴 반보님과 순이가 잘 크고 있노라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치료도 하고 살도 찌워 놨으니

이제 데려다가 함 이쁘게 키워보시라 말을 해보니 펄쩍 뛴다. 다 알고 하는 수작이다. :-)

그럼 양육비라도 보내라고 슬쩍 협박을 해본다. 그렇게 그날 구멍난주전자에서 막걸리를 한잔 얻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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