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진달래 평원의 화사한 아름다움

 

 

 

달래가 모두 지나가고 온산에 철쭉이 피어나는 5월의 첫번째 주말. 우리나라에서 진달래가 가장 늦게 개화

한다는 비슬산행을 3주전에 예약 하였다. 마치 2년전 5월 첫째주말 오늘 동행하는 님들과 함께했던 황매산의

기억이 떠오르는 구름낀 날씨가 버스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차속에서 걱정스럽게 한다.

 

성군에서 주최하는 진달래 축제가 개화시기와 맞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실망을 하였다는데 마침 이날은

비슬산 진달래가 가장 만개할것으로 예측이 되는 날이고 보니 엄청난 인파가 비슬산을 찾을것으로 예상이

되었는데 날씨탓인지 생각만큼 그렇게 많은 인파는 아니었다.

 

객들을 위해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비슬산, 늘 팔공산에 밀려 대구시민들에게 2인자 역할을 하였으나

진달래가 만개하는 이때가 되면 1인자의 자리에 서서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의 마지막 진달래 산행,

화사한 진분홍 너른 진달래 평원이 기다리는 비슬산행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새벽에 내린비로 연록색 잎이 더욱 싱그러운 5월의 아침

유가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오늘의 즐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10시44분)

 

 

 

 

대견봉 정상에는 시커먼 구름이 머물고 있다.

우리가 정상에 오르기전 저녀석이 어디론가 가줘야 하는데, 한동안 저러고 있다면 오늘 조망은 어려울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스쳐간다.

 

 

 

 

유가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수도암과 도성암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게 보편적인 코스인데

오늘은 유가사를 지나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길을 택하기로 한다.

 

 

 

 

 

 

유가사 주변의 돌탑

 

유가사 주변에 돌탑이 많이 서있어 의아해 했는데... 알고보니

대구 달성군이 유가면 유가사 일대 100만평에 대규모 탑공원 조성사업을 한다고 한다.

유가사가 탑공원 부지를 제공하며, 유가사 일대 100만여평에 100억 정도의 사업비를 들여 실물 또는

축소 크기로 만든 세계의 유명탑과 탑 조각물들로 구성된 대규모 탑 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이러다 제2의 마이산 탑사가 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유가사

 

동화사의 말사인 유가사는 신라 흥덕왕2년에 도성국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절 이름은 비슬산의 바위 모습이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과 같다 하여 유가사로 지어 졌다고 한다.  한 때는 본사를 제외하고 속암자가 99개,

거주 승려 3천명, 딸린 전답이 1천마지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고 한다. 신라시대 때는 유가종의 총본산

이기도 했다. 그 뒤로 진성여왕 3년에 원잠선사가 개축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속 암자로는 수도암, 청신암, 도성암을 거느렸다

 

 

 

 

유가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서 길은 한동안 완만하게 진행이 되며 서서히 몸을 풀어가며 편안히 오를수 있게 되어있다.

소나무 숲을 지나 활옆수 길로 접어드니 새로 돋아난 연두색, 연초록색의 눈부시게 화사한 신록이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싱그러운 기운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간밤에 비가 내렸나 보다.

 

 

 

 

소나무숲 앞에 자리한 활엽수의 싱그러운 신록

 

 

 

 

비슬개별꽃

 

개별꽃의 일종인데 비슬산에서만 난다고 하여 비슬개별꽃 이라고 한다.

오름길에 이놈들이 등로 여기저기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습기 때문인지 벌써 여름의 길목에선듯 무더운 날 이지만, 봄날의 신록속을 걷는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기만 하다.

 

 

 

 

갈림길.... 우리는 급경사 코스를 선택한다. (11시30분)

 

 

 

 

계곡건너 건너편 능선으로 분홍색 진달래 군락지가 보인다.

 

 

 

 

가파른 바위 구간에는 나무계단이 잘 조성되어 있다.

 

 

 

 

정상이 가까워 지면서 병풍듬 주변의 멋진 바위들이 드러나는데...

염려했던것 처럼 사방은 안개구름으로 점점 오리무중이다.

 

 

 

 

잠시전 올라가 조망을 살펴봤던 병풍듬에 외국인 커플이 올라서 있다.

출발할때 올려다 보던 구름 녀석이 다른데로 가지않고 여즉 이곳에 자리잡고 앉아 머무는 것이다.

쩝,,조망이 아쉽게 되었다.

 

 

 

 

정상에서 월광봉을 거쳐 조화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정상부는 구름이 더욱 심해진다.

안타깝다.

 

 

 

 

원거리 조망에 대한 기대를 비워가며 정상으로 향한다.

 

 

 

 

도성암을 거쳐 올라오는 길에도 진달래가 예쁘게 피어 있다.

 

 

 

 

 

비슬산 정상 대견봉 (12시26분)

 

그동안은 우리일행 밖에 없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많은 인파들이 몰려든다. 도성암을 거쳐 올라온 분들이다.

줄을서서 기다려 기념 한컷 남기려는 분들이 많아 이 사진으로 대신을 한다.

 

 

비슬산의 정상은 대견봉인가? 천왕봉인가?

 

비슬산 정상(1083.6m)의 명칭은 현재도 논란중이다.

국립지리원을 비롯해 최근 발간된 지도나 책 대부분은 정상을 '대견봉(大見峰)'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사 등 사찰과 주민들은 최고봉을 '천왕봉(天王峰)'으로 부르며  현재 표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사는 2008년도에 삼국유사를 저술한 보각국사 일연 스님과 설악산 신흥사 회주 무산 오현 스님의

비슬산 관련 시를 모아 새긴 '비슬산 시비'를 제막하면서 천왕봉이 대견봉으로 불리는 등 비슬산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았으며, 비슬산 산신 이름이 정성천왕(靜聖天王)이란 사실을 삼국유사에서 찾아냈다고 밝혔다. 

현재 비슬산 정상의 대견봉 이라는 표지석은 원래 대견사지 위쪽 봉우리에 조그맣게 세워져 있었으나 1997년

현풍유림이 이를 뽑아내고 화강암으로 크게 만들어 옮겨 세웠다고 한다. 

 

정원재 대구시 교통국장도 '100인 포럼' 기고(2007년 12월호)를 통해 비슬산 정상을 '대견봉'이 아니라 '천왕봉'이라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국장은 "산 아래 주민들이 아직도 주봉을 천왕봉이라고 말하고 있고 대견봉과 대견사지와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으며, 조선초 사료에 천왕봉이라는 지명이 나온다"며 "비슬산의 주봉은 천왕봉이며 대견봉은

대견사지 서쪽에 있는 다른 봉우리를 말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1844년(헌종 10)에 간행된 현풍읍지를 보면 비슬산에는 조화봉(照華峯, 남쪽), 대견봉(大見峯, 最高頂), 천왕봉(天王峯,

與大見峯, 雙峰) 등 모두 3개의 봉우리가 등장하는것 으로 보아 지역주민과 유가사측의 주장이 옳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상에서 바라본 안개에 가려진 조화봉쪽 풍경

멋진 전망대와 바위끝 쪽으로 모여 앉아 쉬어갈수 있는 장소가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다.

여유만 있다면 저곳 한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락가락 하는 구름을 벗삼아 쉬어가도 좋을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유가사와 유가면 음리 일대

그리고 유가사 뒤로 늘어선 산자락 정상에 와우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음리일대에 현재 건설중인 대구 달성군 현풍, 유가면의 '대구테크노폴리스' 지구 공사현장이 보인다.

대구테크노폴리스 지구는 연구 개발과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주거, 교육, 문화 등 정주 환경이 조화된

미래형 첨단 과학도시로 구축 한다고 한다.

 

 

 

 

흐릿한 SW줌으로 유가사와 오른쪽 위의 출발지 주차장을 당겨 본다.

광학줌이 부실한 탓에 조금 먼거리를 당겨볼라 해도 소프트웨어 줌을 써야 하니 화질이 크게 떨어진다.

 

 

 

 

대견봉까지 선두에서 산행을 함께하신 우리들의 멋진 회원님들

 

 

 

 

흔적

 

 

 

 

도통바위를 거쳐 도성암으로 가는 능선 뒤로 감흥리 일대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곳도 도처가 전망대고 휴식처다.

 

 

 

 

진달래 뒤로 서있는 포토존 조망바위 위에 선 초록님

 

정상부에서 조망을 하고 사진도 찍고 정상옆 진달래 군락지 앞 너른 억새밭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늘은 맛난 비빔밥을 준비한 초록님 덕분으로 이번 산행도 과식이다. ^^

 

 

 

 

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이다. (13시27분)

어느덧 안개도 사라지고 진달래 군락지의 붉은 빛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대견봉에서 월관봉을 거쳐 진달래평원으로 가는 길은 완만하다.

 

 

 

 

비슬산 대견봉 아래 있는 병풍듬

 

 

 

 

비슬산 대견봉

마을 주민들과 유가사 스님들은 천왕봉이라 부른다고 하니 조만간 어찌되었건 정리가 필요한것 같다.

 

 

 

 

대견봉을 내려와 진달래 군락지로 가는 능선 길에서 조망바위에 선 일행들

 

 

 

 

비슬산 진달래 군락지

비슬산 30만평의 넓은 진달래 평원은 국내 최대의 진달래 군락지 라고 한다.

 

 

 

관기봉에서 비들산으로 뻗어나간 능선

 

 

 

 

진달래 평원 앞에서 즐거운 우리님들

 

 

 

 

대견봉을 내려와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며 바라본 산행 출발지인 우측 사면

유가사가 있는 양리 뒤로 와우산성이 자리한 산자락이 늘어서 있다.

 

 

 

 

지나온 대견봉

 

사람 키보다 높은 진달래 군락에 파묻혀 있는 기분은 어떨까?

가는 봄날의 마지막 진달래를 아쉬워 하는 상춘객들을 위로하는듯 고지대의 진달래가 곱기만 하다.

 

 

 

 

보다 정확한 낙동강 홍수 예보를위해 낙동강 유역의 중심인 비슬산 조화봉(해발 1057m)에 설치된 강우레이더

진달래 군락지에서 강우레이더가 있는 조화봉 정상까지는 비슬교 라는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비슬산 진달래 평원 (클릭)

 

 

비슬산 참꽃축제

 

해발 1000미터 이상 고지의 약 30만평에 펼쳐지는, 전국에서 유일한 참꽃 군락지라는 비슬산 진달래 평원.

달성문화원은 이러한 비슬산을 보다 널리 알리고 참꽃사랑의 계기 마련과 시민들에게 자연휴식공간을 제공하고자

1997년부터 매년4~5월경 참꽃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는 14회 참꽃 축제가 4월23일~5월1일 사이에 열렸는데

해당 기간에 축제의 주인공인 진달래가 피지 않아 참가자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화사한 비슬산의 진달래

 

 

 

 

 

 

 

 

비슬산 진달래 평원을 지나며...

 

 

비슬산의 이름 유래

 

비슬산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유래가 전해 내려온다.

 

첫째로는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이란 이름에서 볼수 있듯이 정상 바위의 생김새가 신선이 앉아

거문고를 켜는 형상이라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둘째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달성군지 에서는

비슬이란 말은 범어의 발음을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비슬의 한자의 뜻이 포(苞)라고 해서 일명

포산(苞山)이라고도 하는데 포산이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을 의미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때 유가사에 온 인도의 스님이 비파 모양이라는 의미로 비슬산이라 했고 조선 때에는 비슬산

한자가 포를 의미하기 때문에 포산이라고 했다. 

 

세째는 먼 옛날 천지가 개벽할때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는데, 비슬산의 높은 봉우리가 물에 잠기지

않아 정상의 바위에 배를 매었는데 그 바위 형상이 비둘기 처럼 생겨 비들산 이라고 불리우다가 비슬산이

되었다는 설이 전해온다. 고창의 선운산에도 능선의 바위에 배를 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이곳 저곳에

멋 옛날 대 홍수의 전설을 자주 볼수 있는데 이정도로 산꼭대기 까지 물이 들어찰 홍수라면 서양에서

말하는 약 5천년전의 노아의 방주와 같은 시기가 아닐까도 생각을 해본다.

 

 

 

 

비슬산 진달래 평원 파노라마 (클릭)

 

 

 

 

진달래 군락지 너머로 보이는 대견봉(천왕봉)

 

 

 

 

당겨본 조화봉의 강우레이더와 비슬교 뒤로 뾰족뾰족 돋아난 듯한 톱날바위

 

당나라 스님 일행들이 이 곳에 이르러 저 봉우리가 중국에서도 비친다 하여 조화봉(照華峯)이라 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고 보면 대국(당나라)에서도 보인다는 대견봉이나 거의 같은 맥락의 이름이다.

 

 

 

 

병풍듬과 뒤로 유가바위가 보이는 대견봉과 월광봉(우측)

그리고 두 봉우리 사이에 잘록하게 들어간 곳이 마령재다

 

 

 

 

대견사지

 

신라 헌덕왕(憲德王, ?~826) 때 중국의 황제가 지었다고 전하는 대견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지금은 주춧돌과

석탑 1기만 남아있다. 절터 한쪽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고, 암벽 동굴에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대견사에 얽힌 전설

 

중국 당나라 황제가 어느날 세수를 하려는데 대야 물속에서 험한 지형에 웅장한 절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황제는 이 절을 찾기 위해 중국 곳곳을 뒤졌으나 찾지 못하자 신라에 사람을 보내 찾은 게 대견사지였다.

황제가 신라에 돈을 보내 절을 짓게 하고 대국(당나라)에서 보았던 절이라고 해 대견사라고 했다 한다.

 

한눈에 봐도 조망이 대단한 곳임을 알수 있는데, 중국황제가 세숫대야로 보았다는 팔영산의 전설에 이어

두번째 등장하는 중국 황제의 세숫대야 전설이 흥미롭기만 하다.

 

 

 

 

조화봉에서 관기봉으로 가는 능선

 

 

 

 

참꽃군락지 안에 마련된 원형 데크

 

 

 

 

대견사지 석탑 앞에서 (14시38분)

 

대견사는 임진왜란때 허물어져 버려 빈 터에 주춧돌과 석축만이 남아 있다.

대견사지 삼층석탑도 허물어져 있던 것을 달성군에서 1988년에 복원 하였다고 한다.

높은 벼랑 끝에 세워져 있는 탑이 매우 인상적이다.

 

 

 

 

대견사터 뒤편의 암벽과 하단의 바위동굴

 

 

 

 

대견사터에서 바라본 전망대가 마련된 1034봉

 

 

 

 

대견사터에서 바라본 관기봉과 비들산

 

 

 

 

대견사지 암굴 우측바위 입구에 음각 되어진 대견사지 마애불

 

유가면등의 지명과도 관련이 있다는 정통밀교의 유가심인 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슬산 일대가 밀교와 연관이 있다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한참을 조망하며 쉬던 대견사터를 지나 자연휴양림쪽 계곡으로 하산 시작

 

 

 

 

부처바위(왼쪽)와 대견사 삼층석탑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약1만년~8만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슬산 암괴류는 길이 2㎞,

폭 80m에 두께가 5m에 달하고 크기가 1-2m인 바위가 강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세계 최대라고 하며 2003년에 천연기념물(435호)로 지정되었다.

 

 

 

 

 

 

 

 

가파른 길을 내려서 만나는 비슬산 자연휴양림

 

 

 

 

자연휴양림이 끝나는 곳에 소재사가 자리하고 있다.

 

 

 

 

소재사 입구에 핀 금낭화

 

 

 

 

소재사

 

재앙을 소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소재사

신라시대에 창건되고, 한때 상주대중이 300명이 넘을 정도의 큰 규모로 많은 고승들이 배출된 사찰 이었으나

지금은 조촐하니 동화사 말사로 자리하고 있다.

 

 

 

 

 

 

 

 

소재사 앞 비슬산 자연휴양림 입구의 휴양림 계곡에 설치된 분수대 주위의 풍경이 환상적 이다.

 

 

 

 

올려다본 비슬산 정상 (16시 10분)

 

주차장으로 돌아와 총무님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돼지고기 볶음을 안주삼아 회원님들과 막걸리를 한잔 나누며

하루 산행을 정리한다. 비슬산 정상의 멋진 바위와, 진달래 평원의 고운빛에 넋을 놓고 즐거웠던 산행이었다.

비록 영취산 만큼의 촘촘하게 붉은 진달래밭은 아니었지만 산세가 웅장하고 더 없이 수려한 비슬산의 진달래

평원은 충분히 그 이상의 아름다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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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지도

 

등산코스 :: 유가사 - 정상 - 대견사지 - 자연휴양림 - 주차장  (약 10km, 5시간 30분/점심식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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