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교차로에서 대청호 자연생태공원으로 넘어 가는 대청호수로 벚꽃길

터널을 지나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벚꽃 구불길을 돌아갈때

도로에서 우측으로 빠지는 작은 샛길로 들어서면, 좁은 진입로부터 양쪽으로

벚꽃이 예쁘게 반기는,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다다른다. 금성마을 이다.

 

 

 

 

 

봄철 대청호 환상의 벚꽃길 한바퀴 돌때면 늘 생각나는 곳

오래된 커다란 벚나무에 화사한 연분홍 꽃이 흐드러진 곳

 

 

 

 

 

 

 

 

 

 

창고 앞, 여인네 네다섯이 봄꽃 소풍을 나왔나보다.

얼핏 보기에도 푸짐해 보이는 도시락 바구니는 한쪽에 치워두고

햇살 좋은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즐거운 수다를 나눈다.

 

 

 

 

 

이곳은 대청호 유명한 벚꽃길 차도에서 조금 들어간 조용한 곳..

인근 꿀벌들이 모두 몰려온듯 벌들 앵앵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벚꽃필 무렵이면, 작가님들이 즐겨찾는 곳이고

웨딩촬영이나 모델 출사도 가끔씩 보인다.

 

 

 

 

 

 

 

 

 

 

숲을 향해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니 길가에 설유화가 곱게 피어있다.

 

 

 

 

 

대청호 오백리길 제4구간이 지나가는 곳

잠깐 마을을 벗어나 숲길을 걸어 신성봉 정상의 신선바위를 향한다.

 

 

 

 

 

대청호 신선바위 (오백리길 제4구간)

 

신성봉 정상에 오르니, 이 작은 산에 상상하기 어려운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있다.

사진에 보이는 바위 몇개가 전부가 아니고 그 옆으로도 뒤로도 바위들이 있다.

 

 

 

 

 

상당히 큰 바위인데, 우측으로 돌아올라 갈수도 있고

두 바위 사이의 좁은 틈으로 오를수도 있다.

 

 

 

 

 

간신히 한명 낑겨 지나갈만한 좁은 틈에 각자가 보인다.

한쪽은 초서체고 우측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초서체는 號神發(호신발)로 신이 부르면 발(반응)한다는 뜻 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님들 다녀간 글을 보니 彌神藏(미신장) 이라고 잘못 옮겨놨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신선봉유적'편에 彌神藏 이라고 설명해 놓은게

잘못되었는데, 그게 영향을 끼친것 같다. 아무래도 초서체의 필법이 

한가지가 아니고 필체가 다양하다보니 혼동을 한듯 보인다.

 

중국 웹사이트에 서법자전 이라고 초서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사전이 있다.

한자사전 같은 글자가 아니고 유명인들이 필체를 사진을 찍어서 옮겨놨다.

그곳에서 號神發과 彌神藏의 다양한 필체를 비교해보니 호신발이 맞다는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참고 (http://www.shufazidian.com/)

 

'호신발'이란 ' 호를 천지신명께 고한다' 라는 뜻으로, 이글은 조선말 주역의 전설적

대가였던 야산 이달(也山 李達) 선생이 새긴것 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지금도

호신발 행사를 해마다 하는것 같다. 이달 선생의 제자들이 제를 지내고 바위틈으로

들어가 '호신발'을 크게 외친 다음 자기의 호를 크게 외친다고 한다.

 

 

 

 

 

惺惺主人翁 皇皇上帝位(성성주인옹 황황상제위), 성성주인옹은 대오재 송을규의 별호 이다.

송을규 선생은, 계룡산 향적산에서 정역을 창시한 김일부, 모악산의 강증산, 경상도의 박만규와

함께 조선의 4대 역학자라 불렸던 지리산 문도사의 수제자로써 인터넷 자료를 찾아 두분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첫 만남부터 흥미진진 하기만 하다. 당대의 천재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결국 훗날 사돈지간 까지 되었다. '황황상제위'란 결국 송을규의 깨달음이 황황상제의

지위에 해당할 정도로 지극히 높은 경지에 있다는 것을 이달 선생이 표현한게 아닌가 싶다.

 

다음 시는 야산 선생이 대오재 선생에게 드린 글 이라고 한다.

 

贈惺惺主人翁 宋大悟齌乙奎

 

天心星拱象 하늘 중심으로 별들이 둘러서고
出入巽乾宮 나고 듦을 손건방으로 하는구나
佛坐三千上 삼천 세계에 부처가 앉았으되
極歸一五中 결국 황극 한가운데로 돌아가네
何干無爲世 어찌 무위한 세상을 간섭하리오
本是自然翁 본래 자연옹인 것을
道也身常主 도는 늘 내 몸의 주장 되니
安危每聽功 평안하나 위태로우나 매양 공을 생각하게 

 

 

 

 

 

담에 가면 '號神發, 若水' 하고 외치고 신선문을 통과 해야겠다.

 

 

 

 

 

신선바위에 올라서서 바라본 대청호의 모습

 

 

 

 

 

바로 뒤에 오를수 없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신선바위 상단의 커다란 바위 뒤쪽에서 바라본 모습

앞쪽의 좁은 틈이 신선에게 호를 외치고 올라서는 신성한 문 이다.

 

 

 

 

 

신선바위 뒤쪽으로도 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신성봉 너른 정상에 모인 커다란 바위들이 신비하기만 하다.

 

 

 

 

 

 

 

 

 

 

 

 

  

 

 

 

 

 

 

 

 

 

 

 

 

신선바위를 구경하고 정상에서 금성마을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이 보여 내려오는데

길은 중간에 사라지고 거친 쌩길 사면을 내려온다. 너덜이 자주보여 보니 예전에

산성터 인듯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옥천방향으로 대청호 바로 옆이 백골산이고

그 뒤가 백제군의 최전방 고리산이니 만큼 백제시대 산성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거친 사면을 조심스레 내려오다가 문득 깜짝 놀라 바라보니 오가피다.

막 나온 산삼 모양이다. 이제 슬슬 삼이 나올때가 된듯 보인다.

 

 

 

 

 

주변에 개별꽃도 지천이고, 양지꽃이 노랗게 피어있어 한컷 담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내려오니 입구 커다란 벚나무 앞에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대청호 벚꽃행사 주차장도 폐쇄되고, 다들 조심하는 시기라 올해

대청호 벚꽃 감상은 금성마을에서 만족하고 나머지는 '드라이브 스루' 감상을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