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칼바위주차장 - 용추폭포 - 오봉산 - 칼바위 - 도새등 - 해평저수지 (8km, 3시간50분)
버스가 해평저수지 위로 올라와 칼바위 갈림길 앞에 우리들을 내려놓고 다시 저수지 아래 넓은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대부분의 선답자들은 위 지도처럼 저수지 아래에서 도새등으로 바로 올라가서 오봉산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데, 우리는 역방향으로 바로 용추폭포로 올라간다.
오전 8시반경 서대전IC를 빠져나간 버스는 11시40분이 되어서 오봉산 아래에 도착을 한다. 여러대의 버스가 도착해 있는데,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일찍온 등산객들은 이미 하산을 완료 하고 있다. 멀기도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게 도착을 하였다. 산행코스가 짧은점을 감안 하더라도, 10시 전에는 도착을 했어야 했다.
완만한 임도를 따라 용추폭포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혀간다.
크지 않은 산 인듯 한데도 계곡엔 졸졸졸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3시반까지 하산을 하라고 했으니, 약 4시간의 시간이 주어진 셈 이다.
높지 않은 산이고, 길이도 짧아서 여유작작 할줄 알았는데, 사진찍고 조망하면서 걷기엔 빠듯했다.
어떤분 글을 보니, 6시간 걸렸다고 하는데, 5시간 정도면 식사를 하고ㅗ 여유있게 이곳 저곳을 돌아볼수 있을것 같다.
오봉산은 자연 풍경 외에도 특이한 돌탑들이 눈길을 끈다.
보성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2002년부터 4년동안 기남마을 이장님이 쌓았다고 하는데, 한눈에 봐도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산성터 흔적
용추폭포
정상으로 올라가기전 오봉산 계곡 제일 깊은곳의 바위 협곡 사이에 아담한 폭포가 있다.
용추봉, 조타봉, 오봉산으로 둘러싸인 제법 큰 산줄기의 깔때기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여름에 이곳으로 하산을 하게되면 시원하게 땀을 씻어줄것 같다.
이곳은 옛부터 마을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낸 곳인데 120년 전 6월 몹시 가뭄이 들어 보성군수가 기우제를 지내기위해 용추폭포를 찾았으나 큰 뱀이 길을 막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산 아래로 내려가서 목욕재계 한 뒤 기우제를 지냈더니 비가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선조때 문신 오봉 정사제(鄭思悌)는 이곳에서 정진하면서 용추석벽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는 전남 보성군 득량면 마동에서 출생하여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스승 박광전이 보성에서 기병한 전라좌의병의 종사관이 되어 싸우다가 남원에서 전사했다. 향년 39세
題龍湫石壁 - 오봉 정사제
絶境奇觀得雨多 절경기관득우다
摧林擘石見奔波 최림벽석견분파
驚雷白日喧深壑 경뢰백일훤심학
千斛明珠散若沙 천곡명주산약사
鳥弄烟林花意多 조롱인림화의다
山中春興蕩如波 산중춘흥탕여파
步出龍湫晴雨後 보출용추청우후
石門朝日照金沙 석문조일조금사
제용추석벽 - 용추석벽에 시를 쓰다
절경(絶境)에 기이한 경관이 비를 만나 다양해지고
꺾어진 숲과 굽은 바위틈으로 솟구치는 물줄기를 보도다
우렁찬 뇌성 소리 백주에 깊은 골짜기를 울리고
천곡(千斛:천섬)의 맑은 구슬 모래알처럼 흩어지도다.
새들은 안개 숲 속에 재롱을 부리고 꽃 소식 다분한데
산중의 봄 흥취 파도와 같이 동하도다
용추(龍湫)골에 비가 개인 후 걸어 나가니
동구 쪽 바위 문에 아침 해가 금모래에 비추도다
해평저수지에서 용추폭포로 들어오는 오봉산 계곡은 마치 주왕산을 떠올리게 하는 바위 협곡이다.
정상으로 가면서 등로 옆, 조망터로 보이는 곳에 잠시 빠져서 바라본 지나온 오봉산 계곡
오봉산의 명물인 칼바위를 당겨본다.
한눈에 봐도 섬세하고 꼼꼼해 보이는 돌탑들
기남마을 이장님이 4년간 오봉산 곳곳에 45개의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돌탑들을 자세히 보면 이곳 보성 오봉산의 돌들은 돌탑을 쌓기 좋은 형태의 납작하고 평평한 돌들 인데
사실 이곳 오봉산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구들장의 주산지로 온산의 돌들이 구들장 모양으로 특이하게 생겼다.
나도 지나가면서 두개의 돌탑을 쌓아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사진찍기 제일 싫은 칙칙한 연회색 하늘 빛을 원망하며 오봉산 정상 밑에서 일행들과 식사를 한다.
따끈한 국물에 술한잔 곁들이며 앉아 있는 사이에, 먼데서 왔는데 하늘빛이 안좋다고 타박하는 내 말을 들었는지...
식사를 마칠무렵 문득 고개를 들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온통 하늘을 덮고 있던 연회색 구름들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파랗게 변해있다.
칼바위 일대를 다시 당겨보고
보성 오봉산 정상
정상에서 바라본 돌탑과 가야할 능선
득량만 건너편의 팔영산이 우뚝서서 눈에 먼저 들어온다.
제법 오르내림의 굴곡이 있는 산줄기다.
정상에서 다시 한참 내려선다.
계곡 건너편과 이쪽의 바위 협곡은 주왕산 분위기가 난다.
큰 산세는 아니지만 암벽으로 험한 이 산에는 빨치산 이야기도 전해온다.
1949년 10월 빨치산들이 보성경찰서를 습격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매복한 경찰과의 격전 끝에 100여명의 빨치산들만 오봉산으로 도망갔으나 추격한 군인과 경찰에 의해 사살되고 30여명만이 겨우 산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해평저수지를 중심으로 계곡을 크게 도는 한바퀴 원점회귀 산행도 가능하다.
오봉산에도 풍혈이 있다.
따뜻한 날 임에도 풍혈에서는 더운바람이 훅 밀려든다.
칼바위로 가면서 능선에서 바라본 337봉
저곳에 올라서면 칼바위를 멋지게 내려다 볼 수 있다.
337봉은 칼바위를 들렀다가 다시 올라서면서 능선에서 우측 봉우리로 되돌아 올라야 한다.
산행출발지에서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면 위 사진의 봉우리들을 한바퀴 크게 돌아서 올수 있다.
380봉은 사진으로 봐도, 위성지도로 봐도 제일 높고 정상에 커다란 바위가 웅장하게 멋진곳인데 딱히 이름이 없다.
그곳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오봉산 일대의 중심봉 으로 보인다.
용추봉은 용추산성이 있던 곳이고, 조타봉은 오봉산 정상과 중첩이 되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백바위는 여타의 사진들을 보면 오봉산 칼바위와 더불어 이 산줄기의 가장 멋진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득량만 건너편으로 보이는 거금도와 적대봉
득량만 건너편의 팔영산이 보이는 고흥반도
청암마을 갈림길에 있는 전망대
능선의 칼바위 갈림길에서 칼바위를 다녀온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게 아니라, 위 암봉 너머 건너편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왼쪽의 뾰족한 칼바위와 중앙의 버선바위
칼바위를 내려다볼수 있는 337봉
이곳은 능선 직진방향에서 바로 오를수 없다.
칼바위를 내려갔다가 구경하고 다른길로 올라선후 건너편에서 능선으로 되돌아 오르면 된다.
내려서면서 바라본 칼바위
저 칼바위 목부분의 깍아지른 벼랑에 누군가 마애불을 그려넣었다.
칼바위를 보려면 굴 안으로 지나야 한다.
장제굴 이라고 하며 30평 규모의 넓은 곳인데,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다고 한다.
장제굴
장제굴에서 올려다본 칼바위
칼바위 목 부분에 있는 마애불, 착한분들에게만 보인다고 한다. ^^
마애부처님 이라고도 하고, 원효대사님 모습 이라고도 하는데
저 의지할곳 없는 90도가 넘는 절벽 높은곳에 어찌 새겼을까,, 의아스럽기만 하다.
칼바위를 구경하고 다시 능선으로 되돌아 올라온다.
사진에 보이는 능선은 359봉에서 계곡으로 뻗어내린 암릉
359봉
능선에 올라 우측의 337봉에 오른다.
바다쪽으로는 벼랑을 이뤄 천연 바위 성벽이다.
사진의 바위 위가 337봉 정상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뾰족한 바위봉에 가려면 살짝 내려서 저 끝으로 가야한다.
뾰족한 암봉 끝에 서면 칼바위가 이렇게 내려다 보인다.
마치 뭔가 알을 깨고 튀어 나와서 커다란 암봉이 조각난 느낌이다.
337봉 정상에 선 반보님
다음 봉우리 359봉
일행들이 359봉에 오르고 있다.
계곡 건너편 능선 뒤쪽으로 다음지도에 오봉산 이라고 나오는 작은오봉산의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저곳을 다녀온 어느분이 블방에 써놓은걸 봤다. 큰놈보다 작은놈이 더 좋았다고..
마을 이장님이 쌓으셨다지만, 이정도 돌탑이면 예술작품 이라고 해도 될듯 하다.
도새등으로 가려면 왼쪽 끝 봉우리를 넘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시간에 쫒겨 칼바위를 지나면서 부터는 꽤 바쁘게 진행을 해야만 했다.
다시 내려섰다가 올랐다가..
이곳부터는 바다쪽 바위벼랑 끝에 안전시설을 해놨다.
재작년 기사를 보니 보성군에서 300억을 들여 이곳 오봉산을 정비하여 명소로 키운다고 한다.
아마 이런 작업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인듯 싶다.
그런데 두꺼운 은색쇠봉이 지나치게 촘촘하게 박힌것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안전은 확실하게 된것 같은데, 사진으로 보는것보다 훨씬 두꺼운 쇠봉은 멋진 그림을 망치는것 같다.
절반정도의 두께에 풍광과 어울리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제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은오봉산 우측 뒤로 멀리 무등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새 하늘은 다시 회색으로 칙칙하게 변했다.
득량만 방조제
다른 돌탑을 쌓았던 이장님이 아닌 마을 주민의 솜씨인듯
이정도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을것 같다.
작은오봉산
조새바위
조새바위의 전설
득량면 오봉산에 있는 바위로서 돌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따고 그안의 속을 긁어내는데 쓰이는 연장인 '조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조새바위'라 불린다. 일명 황새바우라고도 하는데 바다 건너 고흥군에서 바라보면 황새가 마을을 노려보고 있는 형국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마을 주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는 일이 많아 마을인심이 흉흉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가 조새바위 때문이라고 생각한 고흥 마을 주민들이 오봉산으로 구름같이 몰려와 몇날밤을 새워 조새바위를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위가 너무 커 꿈쩍도 하지않아 마을 주민들이 손을 쓰지 못하고 모두 돌아갔다고 한다.
득량만(得粮灣)
작은오봉산 앞에 펼쳐진 들판 건너 송곡리에 박실(박곡)마을이 있다. 산자락에 차밭이 있다고 다전(茶田)마을로도 불린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박실마을의 영해부사 양산원의 집에서 군량미를 구할수 있었다고 한다. 양산원의 집터에는 지금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하며, 득량(得粮) 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편 득량에 대한 또 다른 지명 유래는 득량만 입구에 있는 작은 섬인 득량도에서 비롯된다고도 한다.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이 득량도에서 두차례에 걸쳐 식량을 구했다는 데에서 그 섬 이름이 득량도가 되었다고 한다. '득량도' 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지도에도 나오기 때문에 '득량' 이라는 이름이 간척사업이후 식량을 구할수 있게되어 비롯되었다 라고 하는 말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본다. 아마도 득량도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간 만 이라 득량만 이라는 이름이 생겨난듯 보인다.
도새등에서 하산을 시작한다.
산을 다 내려와서는 산죽밭과 대나무밭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남도는 이렇게 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현장 뒤풀이 대신 일행을 태운 버스는 벌교로 향한다.
벌교 시장에 내려주고 한시간반 여유를 주니 반보님과 시장통 한바퀴 돌아보고
식당에 들어가 짱뚱어탕에 소주 한잔 하며 산행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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