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은티마을 - 마당바위 - 구왕봉- 지름티재 - 희양산 - 남릉 - 성터갈림길 - 은티마을 (12.4km, 5시간40분)






희양산 남릉에 관한 글을 우연히 접하고 있다가...


모 산악회에서 그곳에 간다고 하는 공지를 보고 홀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 과연 이 코스가 버스로 가도 될 만큼 산길이 개방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봉암사 아래 새로 만든 주차장에 도착하니 , 성골로 넘어가는 다리 앞에 봉암사 보살 요원들이 미리 나와서 영접을 한다.


비지정길을 단속하는 국공 요원들이나 그런줄 알았는데, 봉암사 요원들은 인터넷에서 희양산 주말 산행공지를 매주 검색하여, 이미 우리들이 그곳으로 오는 시간까지 알고 있었다. 공지글이 검색되게 한 실수였다. 남릉은 여전히 빗장이 채워져 있던 것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봉암사라는 절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개인적으로 희양산 남릉은 버스 단체팀으로 진행하는것은 지양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승용차로 진행을 하더라도, 수행하는 스님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바람처럼 조용히 지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불교를 신봉해서가 아니라, 종교란 결국 각자의 주관적 신념이며, 각자의 종교활동, 특히 이곳처럼 '특별한' 곳 에서의 수련이란 모든것에 우선하는 지고지순한 절대 가치를 추구하고 구현하는 존귀한 행위라고 그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결국 우리는 버스에 다시 올라야 했고, 먼 길을 빙 돌아서 은티마을에 이르게 되었다.

은티마을 코스는 여러번 다녀갔기에 좀 김이 빠지는 출발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오랫만에 구왕봉에 올라 희양산을 바라볼수 있었고, 먼 길을 돌아야 했던 남릉의 멋진 모습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은티마을











은티(銀峙)마을의 남근석과 전나무


은티마을은 원래 의인촌리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동리명이 한국의 민족정신을 함유 하고 있다고 해서 은치로 변경(銀峙) 되었다고 한다. 다음지도의 지형도를 보면 이해가 쉬운데, 이곳은 지세가 음부와 자궁의 형태를 가진 여근곡의 지형 (여궁혈) 으로, 여자들의 바람끼를 잠재우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돌과 나무로 비보하여 대책을 세우고 있다.


동네 입구에 남성을 상징하는 남근석을 세우고 전나무를 심었는데, 옆으로 퍼지는 느티나무가 여성을 상징하는 것과 반대로, 위로 쭉쭉 가지를 뻗는 전나무는 남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멋진 은티팬션과 시루봉












은티마을에서 바라본 악휘봉과 마분봉

악휘봉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구왕봉과 희양산 갈림길


빠른 길로 희양산에 올라 남릉 구경을 하겠다는 회장님을 따라 가는데, 말씀과 달리 지름티재가 아닌 구왕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을 잡고 마당바위가 있는 능선에 이를때까지 쉼없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오른다.











갈림길에 있는  희양산 안내도 (남북 방향 주의)











마당바위에 올라 먼저 우측 봉우리 조망터 쪽으로 간다.











바위에 올라서니 우측의 시루봉과 뒤로 조령산 일대가 조망된다.




















마당바위에서 만난 포항에서 오신 분들이 싸온 싱싱한 회무침에, 회장님이 들고 온 막걸리 두잔으로 갈증과 허기를 달랜다.











마당바위에서 올려다보니 위로 멋진 조망바위가 보인다.

구왕봉과 희양산에 있는 백만불짜리 식사터중 하나로 들려 가볼만한 곳 이다..











군자산, 칠보산, 덕가산, 마분봉이 보이는 백만불짜리 식사터

사진에 담은 앵글 양 옆으로 장쾌한 뷰가 화강암 식탁 앞에 펼쳐져 있다.











조망 바위에서 내려다본 마당바위와 은티마을쪽 뷰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한흥실업의 석회석 광산은 흉물스럽게 주변의 분위기를 깨고 있다.












구왕봉 오름길, 마당바위 위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뷰











구왕봉


조망바위를 다녀오는 사이에 회장님 일행을 놓쳤다.

희양산 정상 부위는 인파가 엄청날텐데...


구왕봉은 원래 구룡봉이라 했다고 한다.

신라 헌강왕때 봉암사터에 절을 지으려 할때 그곳에 못이 있었고, 못 안에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지증대사가 신통력으로 그 용들을 모두 구왕봉쪽으로 쫒아내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구왕봉에서 바라본 희양산

산에선 산을 볼 수가 없다고, 구왕봉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희양산을 보기 위함히 아닐까 싶다.











구왕봉 정상에서 내려가기 전에 멋진 조망터가 있다.

구왕봉에서 바라본 희양산, 뇌정산, 작약산 그리고 봉암사

아래 골짜기는 지름티재에서 월봉토굴을 지나 봉암사로 내려서는 길인데... 연중 막혀있다.











구왕봉 하산길은 급경사 밧줄길











조금만 내려서면 조망터 겸 또 다른 백만불짜리 식탁을 만난다.

예전 비온 직후 구름 한자락이 희양산을 감싸고 있던 날, 저 식탁에서 가졌던 점심 식사를 잊을수 없다. 











그 식탁에서 바라본 희양산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급경사 밧줄





























지름티재


지름티재에 도착하니 여기 저기에서 식사를 하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새벽 4시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온지라 이미 배가 많이 고픈 상태지만 그냥 오르기로 한다.




















희양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구왕봉





























가파른 밧줄구간이 시작되는데 한참 위쪽에서 시끄럽다.

아마도 한 구간에서 정체가 되고 있는듯 하다.





























이날 경상도에서 오신 분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그분들 나누는 말씀을 들어보니...

희양산 밧줄구간을 두고, 영동 천태산 밧줄은 여기에 비하면 밧줄 축에도 못들어간다는 말을 한다. 틀린말은 아니다. 구왕봉과 희양산 밧줄은 까칠하다. 평소엔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조심해야 하고, 비온 뒤나 겨울에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하산길로 이용시에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가파른 밧줄구간을 통과하고 우측 능선을 타고 희양산 정상부로 향한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지나온 구왕봉












명산들로 가득채운 희양산의 주변 산들











속리산을 당겨보고












이날 자주 언급이 되었던 대야산도 당겨본다.













정상으로 가다 등로 왼쪽편 잡목 아래로 암반지대가 나오며 반대쪽 시계가 열려있다.

잡목을 헤치고 살짝 내려가 암반에 올라서니 화려한 조망이 펼쳐진다.

대간길은 시루봉에서 이만봉과 뇌정산/백화산 갈림길 봉우리 에서 백화산으로 급회전을 한다.











희양산에서 바라본 조령산, 월악산, 포암산, 부봉











다시 등로를 따라가며 조망바위 마다 올라서 본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이날 산행의 인증 사진을 한장 얻었다.











위 사진을 찍은곳에 서있는 필자 (와일드로버님 作)

멋진 곳 이라고 두팔을 벌려 보라고 해서 한장 얻게 되었다.





























희양산 정상


예전의 소박한 자연석이 그리울 정도로 거창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괴산에서 세웠으면 오석으로 조그맣게 세웠을텐데, 문경시에서 세운 빗돌이다.


희양산 (曦陽山), 햇빛희 자를 쓴다.

멀리서도 훤하게 보이는 거대한 화강암산이 햇빛에 빛나는 모습을 이름으로 담은듯 하다.











희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괴산 35명산 최고봉인 백화산과 황학산

전에 분지리를 기점으로 한바퀴 돌아본적이 있다.











점심을 낼름 해치우고 남릉으로 가기위해 회장님 일행을 찾아보는데 많은 인파속에서 찾을수 없다.






































등로에서 왼쪽 암반 벼랑지대로 내려가본다.

가서보니 조용하고 멋진 밥터가 나오고...

왼쪽으로 정상에서 아래로 이어진 벼랑에 튀어나온 바위능선에 사람들이 올라서 있는게 보인다.

우리 일행임을 짐작하고 다시 정상으로 서둘러 되돌아 올라간다.











희양산 남릉으로 내려선다.











희양산 남릉











남릉에 내려서며 바라본 풍경

왼쪽 뇌정산, 8년전 겨울 등산객 실종 사건으로 유명한곳.

끝내 못찾고 세달후에 백화산에서 만덕사로 내려오는 산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왼쪽 원북리로 바로 내려서면 되었을텐데, 어찌 악천후에 그 먼 백화산까지 가셨을까나...











남릉에서 바라본 희양산 윗쪽 암벽과 구왕봉











봉암사


조계종 특별 수도 도량인 봉암사는 봉황과 같은 바위산 아래 자리잡은 특별한 절 이다.

신라 헌강왕7년 (881년) 도헌이 창건한,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의 종찰 이었다. 현재는 1982년 조계종 종단에서 봉암사를 특별 수도원으로 제정하고, 봉암사와 희양산 일대를 성역화 해서 부처님 오신날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참 묘한것이...

봉암사(鳳岩寺) 라는 봉황의 바위에서 비롯된 이름이, 요즘에 와서는 바위산을 막고 있는 봉암사(岩寺)가 되버린듯 하다.











봉암사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올라간 긴~ 골짜기 '용곡(龍谷)'

봉황같은 바위산에 용같은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 봉암사 터를 봉암용곡(鳳巖龍谷) 이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용곡의 긴 골짜기는 그 끝을 악휘봉 턱밑에 두고 있다.











위성 지도를 보면 우리가 내려선 남릉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하얀 화강암이 마치 봉황의 날개처럼 뻗어있는것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산의 생김이 마치 갑옷입은 장군이 말을타고 튀어 나오는 형상 이라고 하는데 위성지도에서 본 흰 화강암과 나무의 모습이 마치 백마를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하다.











남릉 중턱 조망터까지 내려와서 비경을 보고 다시 올라선다.











남릉 전망대에서 잠시 쉬며 소맥 한잔에 목을 축이고 일어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봉암사와 가은읍 원북리 일대



세계에는 수만종의 종교가 있다. 그중에는 신도수나, 정통성 등을 따져서 종교다, 사이비다 라는 주장들이 분분하겠지만, 그건 각자 자신들의 주관적인 입장이고,  다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절대 진리이자 궁극의 진실 이라고 믿고 전파 한다.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고, 이슬람은 알라신의 율법대로 살라고 하고, 불교 역시 부처님 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친다. 어느분이 절대 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속하게도, 어느 신도 직접 나서서 이 혼돈스런 상황을 정리해 주지 않는다.


어느 한 신만이 절대 궁극의 진리라고 한다면, 나머지 수많은 종교인들은 한마디로 삽질하고 있는게 되는 셈이니, 스스로 알아서 대중에게 사과하고 공통의 종파재산을 국가나 사회에 환원하고 해산 할 것인가?

아마 그럴일은 없을 것이다.











은티마을로 하산을 위해 다시 정상으로











지름티재에서 올라온 가파른 밧줄길을 지나쳐 시루봉쪽으로











후삼국때 견훤과 경순왕이 교전을 하였다는 희양산성터를 지난다.

남쪽은 천연 화강암 성벽이니, 북쪽 충청도쪽으로 성곽이 조성되어 있다.











곧 이어 은티마을로 내려서는 이정표가 나오고, 길을 따라 내려선다.

지도에는 이 반대편이 대궐터로 나온다. 산성이 있을때 행궁도 있었던것 같다.

반대편으로 가면 대궐터를 지나 성골로 하산을 할수 있을것 같은데, 통행이 제한되다 보니 숲이 무성해진듯 보인다.











뒤돌아본 희양산











다시 갈림길로..




















주막집은 앞 마당을 확장하였다.











못보던 데크길을 따라 계곡 옆으로 걷는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땀을 씻으려는 등산객들이 앉아 있다.











 

데크길을 걸으며 시원한 물에 세족을 하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2500년전 인도와 네팔사이에 있던 샤카족의 소국인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던 싯다르타는 엄격한 신분사회인 인도의 카스트제도 하에서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있다' 는 평등사상을 통해 카스트제도의 억압에 눌려 있던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불교의 기반을 마련했다.


샤카족의 무니(성자) 라는 뜻의 샤캬무니가 지금의 석가모니가 되었으며, 그래서 우리가 스님들에게 '성불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싯다르타가 말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시라' 라는 뜻일 게다.


산에 다니면서 사찰을 경유 할때, 그곳에서 기르는 개들을 볼때가 많다.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절밥을 먹는 개들은 참으로 표정과 몸짓이 온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성불하세요' 라는 화두를 풀어냈는지 모른다. 절집의 개들만 먹는게 다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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