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는 명절날이면 의례히 극장엘 가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게 촌스런 일로 치부되고 말았다.

한가위 명절날 가족 모임에 산을 좋아하는 동서네가 미리 예약해논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온가족이

함께 관람하러 갔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냈을 영상을 기대하면서..

 

 

 

 

 

 

 

 

 

고산자 김정호라고 하면 지도가 주요 소재일 것이나, 솔직히 극장으로 걸어가면서도 지도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은 지도를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소개되어야만 될 우리나라 산하의 아름다운 영상미 였다. 물론 이점에 대해서도 요즘에 다들 잘 알고 있듯이, 현지 답사라는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김정호가 기존 지도의 재편집 위주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고 하여도, 최종적인 마무리를 위해 의심이 가는 지역들은 찾아보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기대에서 였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영상미는 아쉽게도 10분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1934년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어독본에 나오는 왜곡된 김정호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플롯을 짜는게 아니라, 오히려 실질적으로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과, 편집하면서 기존 지도의 오류를 잡아가는점, 그리고 그에 따르는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미를 더 많이 집어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영화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배워왔던 김정호와 지도에 대한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진지 오래인 지금,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인터넷 정보의 바다 시대에, 왜곡된 부분에 대해 충분히 보완되고 감독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더해져서 짧은 상영시간에 아름다운 영상미와 고산자의 지도제작과 판각에 대한 집념이 영화를 지배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대했었는데....그렇게 되었다면 시장성이 없었을까?

 

홍경래의 난과 아버지의 이야기는 김정호가 지도에 대한 집념을 가지게 되는 동기를 설명하는 부분이니까 영화적 허구가 되지만, 천주교 박해, 그로인한 허구적인 딸의 죽음이야기 그리고 대원군과 안동김씨가 지도를 놓고 벌이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아까운 시간들을 할애한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조선어독본에 나오는 그런 역사왜곡은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데, 내가 보기는 이거나 그거나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다.

 

 

 

 

 

 

 

 

 

CG가 아닌 실사라고 하는 백두산 천지 촬영장면

 

 

 

지금은 위와 같은 장면 또한 허구라고 알려져있지만, 그래도 이런 멋진 영상들이 이 영화를 이끌어 주기를 기대했었다. 사실 전국지도를 만들면서 개인 혼자서 전국을 답사하여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는 이야기다. 고산자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에 이미 일본에서는 1821년에 이노다다타카(伊能忠敬) 라는 사람이 관직을 부여받고 막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전국을 답사 측량하며 정밀한 일본연해여지전도(日本沿海輿地全圖)를 완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총독부는 조선어독본에서 비슷한 스토리로 허구적인 내용을 만들어 낸것같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1861년에는 조선도 이미 뛰어난 많은 지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산자를 실질적으로 답사 측량을 하고 제작을 한 제작자 라고 보기 보다는, 기존자료를 모으고 분석했던 뛰어난 편집자요, 목판을 판각하는 훌륭한 각수였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고 보는게 요즘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   그러나, 어듸까지 의지(意志)가 굿샌 그는, 백난(百難)이 앞에 닥칠 때마다 용기(勇氣)를 더욱 더 내여, 이 군(郡)에서 저 군(郡)으로, 이 도(道)에서 저 도(道)로, 십여년 후(十餘年後)에, 마침내 유명(有名)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원고(原稿)를 완성(完成)하얏섯다. 그동안, 팔도(八道)를 돌아다닌 것이 세 번, 백두산(白頭山)에 오른 것이 여덟 차례라 한다. (중간발췌) (출처 : 1934년 조선총독부, 조선어독본 중에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 개인이 만든 사찬지도가 아니라 당시 정부의 지휘나 협조하에 이루어진 관찬지도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보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국지도 제작이란 어느 개인이 할수 있는 사업이 아니고, 일본의 경우처럼 많은 인력과 자금이 소요되는 국가적인 사업이라는 것이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관아는 물론 군사기지, 통신시설 등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는데, 이중 특히 봉수는 긴급한 군사신호를 중앙으로 전달하는 군사통신제도의 하나로서 오직 공공의 정치적, 군사적 연락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것인데, 이러한 중요한 국가적 통신시설이 어떻게 관직도 없는 낮은 신분의 개인에 의해 지도에 정밀하게 표기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일본이 일본연해여지전도를 만들때 허가 뿐만 아니라 전국에 명령을 하여 적극 협조 하도록 한것처럼, 정부의 지휘하에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많은 인원을 투입하여, 전국의 지도 및 자료, 정보를 수집하고 토의하고 편집하여 판각을 한 국책사업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처럼 지도 제작에 필요한 자료를 모아놓고 편집을 하는 가운데도 도저히 답사를 하지 않고는 결론을 낼수 없는 미진한 지역이 있을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답사의 어려움과 국토의 아름다운 비경들을 많이 보여주기를 기대했었다. 편집의 어려운점과 특히 삐끗해도 새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정밀한 판각의 고된과정에 대해 집중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썰렁한 농담장면, 제일 중요하고, 정말 힘들었을 판각장면에서도 코믹한 장면으로 짧게 대체하고, 천주교박해와 대원군과 안동김씨가 지도를 놓고 벌이는 갈등에 촛점을 두다 보니 영화는 이전에 알고 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려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던것 같다.

 

 

 

 

 

 

 

 

 

대동여지도가 가치가 있는것은 정교한 목판 제작에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 김정호는 목판을 원하는 안동김씨와 대원군에게 자신의 무엇보다 소중했던 딸의 목숨과도 바꾸지 않으며 끝내 지키려고 한다. 그가 지도를 만드는 신념은 바로 목판제작에 있는것이다. 즉 지도가 누구 개인의 소장품 이거나, 국가가 소유하여 소수의 양반들만 이용하는 지도가 아니고, 이를 쉽게 찍어내서 널리 보급하고, 이로인해 필사된 지도를 베끼는데서 오는 오류를 막아내면서, 힘없는 백성들이 손쉽게 지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지도를 손으로 그리는것 보다는 백배 힘든 과정이 판각과정 일테고, 아마도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대부분의 시간을 판각에 할애했을게 분명한데도 영화 고산자 에서는 이부분은 가볍게 처리되고 만다.

 

 

 

 

 

 

 

 

 

황매산

 

 

정말 아름다운 화면이었을테고, 이 처럼 변해가는 사계의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기다렸을텐데, 아쉽게도 2016년은 전국적으로 철쭉이 해갈이를 하는 시기였는지 황매산을 비롯해서 전국의 철쭉 유명산지의 꽃들의 상태가 엉망이다.

 

 

 

 

 

 

 

 

 

대원군과 김정호

 

 

 

흥선 이하응이 대원군이 된것이 1863년 12월이고, 김정호가 1861년도에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착오를 정정하고 보궐하기 위해 32권 15책의 대동지지를 편찬하며 살다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1866년 대원군이 민비를 왕후로 맞은해에 폐질환으로 죽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에 대원군 집권초기와 김정호의 말년이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원군이 김정호를 첩자로 오인하고 부녀를 옥에 가두어 죽였다 라고 하는것은 조선 정부의 무능력을 부각시키고,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편입된 것을 정당화 시키려 왜곡한 것이라는 것이다.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추국안 등 당시 어느 사료에도 김정호가 투옥된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최근 연구에서는 신헌 등이 비변사와 규장각의 지도를 김정호에게 제공한 것으로 추측되는등 김정호의 지도 제작을 사실상 조선 정부에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 대원군(大院君)은 다 아는 바와 같치, 배외심(排外心)이 강(强)한 어른이시라, 이것을 보시고 크게 노(怒)하사 "함부로 이런 것을 만들어서, 나라의 비밀이 다른 나라에 루설되면, 큰일이 아니냐." 하시고, 그 지도판(地圖版)을 압수(押收)하시는 동시(同時)에, 곳 정호(正浩) 부녀(父女)를 잡아 옥(獄)에 가두섯드니, 부녀(父女)는 그 후(後) 얼마 아니가서, 옥중(獄中)의 고생을 견디지 못하얏는지, 통탄(痛嘆)을 품은채, 전후(前後)하야, 사라지고 말앗다. (중간발췌) (출처 : 1934년 조선총독부, 조선어독본 중에서)

 

 

 

 

 

조선을 깎아내리고,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 하기 위해

김정호와 전국답사 이야기 및 흥선대원군 이야기등을

상세왜곡한 1934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어독본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한 왜곡의 단초를 제공한 1925년도 동아일보, 육당 최남선◆ 

 

... 그런데 홀로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대업(大業)을 아름답게 완성한 학계의 위인에게 조선과 조선인은 무엇으로 보답했는가. 재주는 있는데 과문하여 공부하지 않는 어리석은 놈이라 함과, 가정을 버려가면서 먹을 것 생기지 아니하는 일에 골몰하는 미친놈이라고 욕함은 그에게 도리에 단 꿀 같은 후대(厚待)였다. 그 재주가 암만해도 서양 사람에게서나 왔을 것이라는 혐의는 필경 국가의 험요(險要)를 외국인에게 알릴 장본이 되겠다는 죄를 씌워 반평생의 심혈과 일가의 희생으로서 고심하여 쌓았던 조선 최고의 보탑(寶塔)인『대동여지도』는 그만 몰이해한 관헌에게 그 판목을 몰수당하고, 너무 뛰어나 시비꺼리가 된 그 제작자는 인간의 가장 비참한 운명으로써 그 뜨거운 마음의 불을 끄지 아니하지 못하게 되었다. (중략) (출처 :  고산자를 懷함, 1925년 동아일보)

 

 

 

 

 

 

 

 

 

이런 아름다운 영상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영화는 마지막으로 대동여지도에 빠진 독도를 채워 넣으려 한다. 산에 다니다 보면 산 이름에 대해 논란이 있을때 많은 분들이 대동여지도를 마치 조선 옛지도의 바이블 처럼 기준을 삼아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국민들이 신뢰하는 중요한 고지도에 빠져있는, 최근 한일간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는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채워넣고 있다. 물론 목판본이 아닌 필사본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나와 있지만, 목판본은 여러가지 추측을 가져오는 사유로 인해 독도가 빠져 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 영화에서 너무 많은 시간과 스토리가 독도에 빠져있는점은 이 영화가 아쉬운 또 한가지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실제적으로 백두산도 한번 가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지도 제작에서 가난한 지도쟁이가 독도를 몇번씩 찾아가고 해적을 만나 지도를 뺏기면서 또 다른 문제의 단초를 제공하는등의 민족주의에 바탕을둔 영화적 허구에 집중되는 시간이 아쉬웠다. 대동여지도에는 빠져있지만, 김정호가 그 이전에 지은 청구도에는 독도가 나와있다. 물론 이때도 김정호가 울릉도를 가보고 울릉도와 독도를 그려넣었다고는 판단되지 않는 오류가 있지만...

 

 

 

 

 

 

 

 

 

대동여지도

 

 

위 대동여지도 상단 맨 우측에 있는 표지에는 古山子校刊(고산자교간)이라 쓰여있다. 제작이 아닌, 교간(校刊) 이란 교정(校正), 교열(校閱)과 간행(刊行)을 줄인 말인데, 이는 즉, 자료수집, 편집 및 교정 그리고 판각을 주관 하였다는 것이다. 방대한 작업이다 보니, 여러명이 제작에 참여했을것이고, 다른 이들을 시켜 실측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에 김정호 작(作) 이라고 하지 못했나 하는 추측도 있다.

 

 

 

 

 

 

 

 

 

고산자 김정호

 

 

아웃오브 아프리카 같은 영상미를 기대했었는데...

 

 

제일 보고 싶은건 지도 외적인 아름다운 우리나라 국토의 비경 영상미였고, 두번째는 지도를 제작하는데, 여러 지도와 정보를 취합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답사를 가보는 치밀한 제작과정이었는데, 영화를 통해 영화 외적인 역사 왜곡 이라는 부분과 대동여지도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보게 되었다. 종내는 독도를 보게 되는 것으로 감동을 강요하며 영화는 허무한 결말을 맞게 되는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감동대신 멍한 느낌이 들고 말았다. 같이 간 가족들은 보다 만 영화 같다고도 하고, 자신이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단지 위안이 되는점이 영화 시작부분에 짧게 나오는 아름다운 답사영상 이라고 하니, 이 점이 더욱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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