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운악산과 함께 경기5악의 한곳이자 100대명산 이기도 하며
양주 불곡산의 임꺽정봉과 더불어 동명의 봉우리로 관심을 끌어왔었고, 오래전 부터
반보님이 그렇게 극찬을 했왔던 감악산을 민수산악회 버스를 타고 홀로 다녀왔다.
산행코스 : 휴게소 - 범륜사 - 장군봉 - 조망봉 - 임꺽정봉 - 정상 - 까치봉 - 선고개 - 휴게소
초입에서 범륜사로 오르는 포장도로를 한동안 걸어 오른다.
운계폭포
비온뒤에 오면 웅장한 모습을 보여줄 높이 20m의 운계폭포는 범륜사로
오르는 포장도로에서 조금 내려가야 볼 수 있다. 범륜사 바로 아래에 자리한
운계폭포는 감악산의 명소중 한곳인데 현재는 제대로된 안내판도 설치되지
않았다. 아마도 올해 9월에 준공예정인 진안 구봉산 구름다리 보다 더 긴
전국 최장의 구름다리인 운계출렁다리가 완공되면 제대로 소개가 될 듯..
2016년 9월 준공 예정인 170m의 국내 최장이 될 감악산 운계출렁다리 조감도
아마도 이 다리가 완공되면, 진안 구봉산이 그랬듯이
한동안 전국의 관광버스가 파주 감악산으로 몰려들것 같다.
산골무꽃
조용한 산사의 느낌이 아닌 어수선해 보이는 범륜사는 그냥 등로에서 스치듯 지나간다.
산행길은 범륜사를 지나면서 부터 시작된다.
내내 이런길
범륜사를 지나 정상 능선에 오를때까지 이런 정돈되지 않은 자연돌길이 이어진다.
등로상에 주렁주렁 개복숭아도 열려 있고
숯가마터
감악산엔 1960년대 까지 숯을 굽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오름길에 이런 숯가마터가 몇군데를 볼 수가 있었다.
숯가마 쉼터
버스에서 내린 같은 리본을 단 일행들과 동행하다보니 계속 직진을 하고 말았다.
숯가마 쉼터에서 임꺽정봉 이정표가 나오는 우측으로 가서 바로 능선을 탔어야 했다.
느낌으로는 우측으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알고보니 직진을 한것 같다.
고들빼기
오름길에 가장 많이 보이던 국수나무
소위 약수터 라는곳 같은데, 그러고 보면 그냥 너덜길로 직진만 한것 같다.
물론 직진을 해도 임꺽정봉은 갈수가 있는데, 임꺽정봉이 아니라 장군봉과
장군봉 아래의 여러 멋진 조망 봉우리들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끝까지 너덜길을 올라 능선에 올라보니 이정표가 묘하다.
같은 리본의 일행들은 바로 임꺽정봉으로 가는데
나는 먼저 장군봉에 들렀다가 임꺽정봉으로 가기로 한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의 조망처
장군봉 가는길 조망처에서 바라본 신암저수지 방향의 암봉
다음에 감악산에 가면 저곳을 꼭 올라보고 싶다.
신암저수지 방향의 조망
쾌청한 날이 라는게 이정도다. 기상청에서 예보하는 쾌청한 날씨는 미세먼지로 인해
이제 의미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미세먼지는 예보가 불가능한가? 하늘에 구름이 없고
쾌청? 하다고 해도, 지상에선 미세먼지로 인해 가시거리 확보가 안되니 이건 쾌청이
아닌 쾌청이 되버린것 같다. 미세먼지의 주범이 화력발전소와 급증하고 있는 디젤차량
이라는데, 아직도 화력발전소는 계속 증설할 예정이고, 디젤엔진의 기술개선 같은
근본적인 대책없이 한심하게 디젤유값 인상이나 고등어가 어쩌고나 하고 있으니..
장군봉
장군봉에서 바라본 임꺽정봉
감악산에선 설인귀 장군도 꺽정이형님에겐 한수 접고 올려다 봐야 한다.
정상 역시 설인귀봉 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기세 좋은건 임꺽정봉이다.
오래전부터 같은 동네의 산친구인 반보님이 이곳 감악산에 대해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진즉 와보고 싶었는데, 미루다가 이제서 왔다. 저 아래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반보님이
말하는 감악산은 한마디로 엄청나고 기가막힌 산 이었는데, 어느날인가 블방 이웃들인
서울분들에게 감악산이 그리 좋냐고 물어보니, 다들 뭐 그냥저냥... 정도라고 하면서
그 친구분의 말처럼 그렇게 기가막힌 산은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이제야 오게 되었다 :-)
장군봉에서 바라본 조망 암봉들
장군봉에서 보니 신암저수지 방향의 조금전 멋진 암봉 말고도 범륜사 방향으로
멋진 조망처와 암봉이 있는데, 아마도 숯가마 쉼터에서 우측 능선으로 왔어야
저길 거쳐서 장군봉으로 왔을텐데 그냥 직진하다보니 이리 되고 말았다.
저쪽 조망바위는 어쩔수 없이 신암저수지 방향의 암봉과 함께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저곳도 멋진 조망터 같은데, 저곳 이라도 다녀오기로 맘을 먹고 장군봉 아래 계단을 내려선다.
장군봉을 내려와 조망터로 보이는곳을 올라서 보니 이렇다.
저 암봉은 다음기회에....
뒤로 보이는 곳은 파주시 적성면 같다.
그 뒤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틸교를 헐고 지은 비룡대교가 보이고...
미세먼지가 없다면 임진강 너머 북쪽 산들이 보일텐데..
암봉 뒤로 보이는 적성면
반보님이 군시절 뺑뺑이 돌았다는 유격장
장군봉을 내려가서 오른 조망터에서 바라본 임꺽정봉
그 앞으로 멋진 소나무가 있는 능선이 다음기회로 미룬
신암저수지 방향의 조망이 멋지게 생긴 암봉이다.
임꺽정봉
그리고 암봉 능선의 멋진 소나무
장군봉
좌측의 장군봉과 우측의 임꺽정봉
다시 장군봉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에 있는 이정표
장군봉에 오르면서 바라본 장군봉 사면과 임꺽정봉
신암저수지 방향으로 보이는 암봉도 다음 기회로 미룬다
다시 장군봉으로 돌아왔다.
장군봉 바위틈의 명품 소나무
장군봉에서 바라본 임꺽정봉과 우측 뒤로 원당저수지
임꺽정봉으로 가면서 바라본 감악산 정상의 통신탑
임꺽정봉
가까이 있는 불곡산 임꺽정봉과 함께 꺽정이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것은 이곳이 설인귀봉이 아니라는 점 이다.
임꺽정봉에서 바라본 오른쪽 장군봉
중간은 장군봉을 내려서 다녀온 조망봉
왼쪽은 다음기회로 미룬 신암저수지쪽 암봉
임꺽정봉에서 당겨본 장군봉과, 조망처를 다녀오느라 장군봉을 내려올랐던 계단
임꺽정봉 정상 풍경
임꺽정봉의 명품 소나무
임꺽정봉에서 바라본 비학산 (왼쪽), 파평산 (오른쪽)
임꺽정봉에서 바라본 마차산과 뒤로 소요산, 왕방산, 예전에 다녀온 칠봉산 까지
반보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도 군생활을 했으니, 반보님은 이곳 감악산 아래에서
나는 소요산 아래 미군부대에 있었으니, 멀지 않은 곳에서 같은 시기를 보낸 셈이다.
임꺽정봉에서 바라본 감악산 동북 사면
임꺽정봉 한귀퉁이 사람없는 조망터 그늘에서 점심을 들고 일어선다.
임꺽정봉 정상 밑의 설인귀 굴을 찾았다.
아슬아슬한 바위 벼랑에 좁은 입구를 두고 있다.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고구려출신?
감악산이 자리한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의 지명 뿐만 아니라, 설인귀굴, 마지리 등에서 설인귀와 관련된 지명이 나온다. 적성면은 삼국시대 초기 고구려 관할일때 칠중성에 속한 곳 이었는데, 이후 통일후 중성현을 거쳐 고려초에 적성현으로 되었다. 설마리 지명에 의하면 이곳 칠중성(현 적성) 에서 태어난 설인귀가 말을 타고 감악산을 누비며 훈련을 했다고 해서 설마리 라고 하며 설인귀를 당나라 출신이 아닌 이곳 적성출신으로 전하고 있다고 한다. 한 논문에 의하면 설인귀가 감악산의 산신이 된 배경에는 통일이후 신라 중앙귀족들이 감악산 산신으로 설인귀를 모셨는데, 이유인즉 당시 이 부근 (한강 이북과 임진강 일대)의 고구려 유민들의 유민의식을 저지 하려는 목적으로 설인귀를 내세워 공포감을 조성하여 고구려에 대한 추억을 억압하는 동시에, 고구려의 멸망이 신라가 아닌 중국의 대국 당나라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여 반신라적인 감정을 누르고 고구려의 멸망이 불가항력적인, 어쩔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려는 취지에서 였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알면 이곳에 설인귀 동상을 세우고 한국인들도 인정한 동북공정의 증거자료라고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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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귀굴
사진을 찍는 곳도 벼랑에 걸친 작은바위에 흙이 덮힌 곳 이고, 굴이라고 하는 곳도
아래로 수직으로 뻥 뚫려 벼랑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진중앙 굴 안쪽 상단에 보이는 곳에 마치 굴처럼 사람이 기거할수 있는 공간이
굴속 벼랑중간에 있는데 사다리가 없으면 접근이 불가능하니, 이곳을 사용했다면
아마도 당시엔 이곳 말고 위쪽으로 따로 출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벼랑쪽에서 바라본 설인귀굴
설인귀에 관한 중국 기록에 의하면 설인귀( 薛仁貴 )는 당조( 唐朝 )의 명장으로 강주( 絳州 ) 용문( 龍門: 지금의 산서(山西) 하진(河津)) 사람이고 이름은 예( 禮 ), 자( 字 )는 인귀( 仁貴 )로 자로써 행세하였으며 수( 隋 ) 대업( 大業 ) 9년( 613년 )에 태어나서 당( 唐 ) 영순 2년( 683년 )에 졸( 卒 )하였으니 주요 사적은 당 태종( 太宗 ), 고종( 高宗 ) 시기 이다. 설인귀는 어려서부터 빈한( 貧寒 )하였으나 글을 익히고 무예를 연습하였으며 팔에 힘이 있었고 장성하여 농사일을 하였으며 류씨( 柳氏 )를 처로 맞아들였습니다.(중략) 이처럼 기록이 남아 있고, 농민으로 태어나 대장군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중국에서 추앙하는 설인귀를 그로인해 멸망을 당한 옛 고구려 지역땅의 후손들이 그를 이곳 출신이라고 하고, 감악산 산신으로 모시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수 없다. 설인귀 굴 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숨어 지내던 굴 이라고 하는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제 다시 정상으로
정상에 가며 고릴라바위에서 바라본 감악산 동북능선과 뒤로 마차산
고릴라바위에서 본 임꺽정봉과 구름재로 이어지는 감악산 남릉
그 뒤로 또다른 임꺽정봉이 있는 양주 불곡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러니까 옛날에 꺽정이 형님이 오른쪽 임꺽정봉과 구름재 너머
저쪽 임꺽정봉을 동네 친구들과 오며 가며 뛰어다녔다는 소리다.
감악산 정상
감악산 이란 이름의 유래는 바위 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쏟아져 내려 바위가 감색으로 보인다 하여 감악산 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감악산 정상을 설인귀봉 이라고 한다니, 중국에 소문나기
전에 적성일대와 감악산에서 설인귀와 관련된 정확한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고 유래와 지명을 올바르게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감악산 정상에는 풍우에 마모되어 유래를 판독할수 없는 비석이 하나 서있다.
이 감악산비는 진흥왕순수비, 또는 설인귀비 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몰자비, 빗돌대왕비 등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엄청난 사료가 될 수 있는
비석의 진실된 유래는 판독불가 비석 그대로 여즉 비밀에 붙혀져 있다.
정상에서 까치봉을 지나 선고개에서 하산한다.
하산길 뒤돌아 본 장군봉과 우측 뒤로 미뤄둔 조망암봉
감악산 정상과 임꺽정봉
임진강과 북녘땅이 잘보이는 조망터에 세워진 정자
왼쪽부터 정상에서 임꺽정봉 그리고 장군봉...
반대쪽은 바위 절벽인데, 뒤쪽은 육산 같다.
맑은날은 개성의 송악산도 보인다는데..
까치봉으로 가는 길
돌양지꽃
까치봉과 뒤로 적성면
당겨본 까치봉과 왼쪽 뒤로 글로스터고지
설마리전투 또는 감악산전투 라고도 하는데, 중공군의 5차공세때 적진에 고립되었던
영국 제29여단 글로스터 대대가 까치봉 뒤로 보이는 낮은 235고지 (글로스터고지)를
3일간 사수한후 대대원 530명이 중공군의 포로가 되고 겨우 69명만이 탈출했던 전투로
결국 중공군의 3개사단이 3일간 글로스터 대대로 인해 발이 묶이는 통에 아군이 안전하게
철수하고 중공군의 공세를 차단할수 있었던 세계 전사에 빛나는 위대한 전투 였다고 한다.
까치봉에서 바라본 정상
까치봉에서 이어지는 하산길 풍경
파평산 방향
하산길 암릉에 있는 명품 소나무
하산길 능선 조망
하산길에 반보님이 근무 했다는 벙커를 발견하고
살짝 들어가본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듯 보이지만
군시설이라 보안상 흑백에다 점박이 코팅을... :-)
하산길
선고개에서 평탄하게 내려서는 길을 따라 하산 완료
4시간의 산행시간이 주어졌지만 크지 않은 산이고
혼자 걸음 하다보니, 여유있는 산행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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