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댓재 - 두타산 - 쉰움산 - 천은사 (12.7km, 5시간)




오랜만에 안내산악회 버스를 탔다. 금강산악회, 늘 친절한 회장님과 알게된지도 10년이 넘었다.

6시반 버스를 타고 7시가 넘어 대전을 빠져나가 4시간을 달려 삼척에 이른다.

지난주 설악도 그랬지만, 역시 강원도는 너무 멀고, 산악회 버스는 어쩔수 없는 최고의 선택 이다.



 

 


하장면과 미로면을 연결하는 백두대간길 댓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1시20분)


예전에 무릉계곡에 대한 글을 쓰면서 두타산과 청옥산의 이름과 위치에 대해 언급한적이 있다.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 두타산과 청옥산의 이름이 뒤바뀐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을 준비하면서 다시금 조선시대의 지도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곳에서 댓재를 발견하고는 다시 청옥산의 위치가 미궁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댓재는 죽령이다.


조선시대 지도에는 댓재라는 이름은 없고 두타산 근처에 죽령 이라는 고개가 나와 있으며 다른 이름으로 죽치(竹峙) 라고도 되어 있는 고개를 볼 수가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해보니, 댓재란 말 그래도 대나무재, 즉 죽령 아닌가. 조선시대 지도에 나오는 죽령 또는 죽치는 현재의 댓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두타산 서쪽은 고구려의 죽현현(竹峴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죽령이라 고쳐서 삼척의 영현으로 삼았고, 조선시대는 소달면(所達面)이 되었다고 하며 대동여지도에도 소달산이 보인다. 


문제는 청옥산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지도에, 그 위치가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다. 죽령 이남에 위치하기도 했다가 죽령 북쪽에 그려 넣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후에 청옥산을 바라보며 하겠다.








대간길 햇댓등으로 안올라서고, 계곡을 따라 햇댓등에서 내려오는 안부로 향한다.

길은 완만하고 평탄하여 햇댓등을 거쳐서 오는 것에 비해 수월하다.

햇댓등 이라는 지명도 댓재와 마찬가지로 대나무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참조팝나무꽃








햇댓등을 지나오는 삼거리 능선에 올라 두타산으로 향한다.








두타산으로 향하는 능선길

낮부터 맑아진다는 하늘은 구름이 오락가락

가끔씩 우중충한 구름이 덮혀 숲을 컴컴하게 만든다.


크고 멋들어진 수백년된 소나무들이 많은데

컴컴한 숲에서 사진에 그 자태를 제대로 옮겨담기가 쉽지 않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동해바다








가야할 두타산 정상이 보인다.








두타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뻗은 암릉은 고천리에서 오르는 능선으로 지도에는 염불사 라고

되어 있는데, 저 커다란 바위는 암자가 아닌 염불암 이라는 암봉 이다.

통골재를 지나 두타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과 염불암 능선길 사이의 계곡이 구룡골로

폭포와 소가 늘어선 아름다운 오지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통골재


구룡골로 내려설수도 있고 통골을 지나 번천골로 내려설수도 있다.








댓재에서 4키로를 왔고, 정상까지 2.1km가 남았는데 통골재에서 걸리는 시간은 같다.

그만큼 앞으로 깔딱고개만 남았다는 것이다.








금강산악회 버스를 타고온 일행들과 동행한다.

후미팀 인데, 그다지 후미 스럽지 않은 걸음들 이다.

그렇게 느리지 않은 속도로 꾸준히 걸어 올라간다.














두타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힘차게 뻗은 능선 고지 분기봉의 김해김씨묘를 지난다.

이 높은곳에 묘를 쓰기 위해 애를 썼을것 같다.

후손들 역시 애를 쓰고 있을 테고..








묘 주변에 있던 초롱꽃








이윽고 청옥산과 고적대,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조망이 되는 곳에 이른다.








두타산과 청옥산 중간의 작은 지능선 너머로 박달령이 있고

그 왼쪽 아래로 뻗어내려간 문바위골








김해김씨묘 분기봉에서 번천골 방향으로 뻗어내린 두타산 지능선








두타산에서 바라본 함백산, 백운산, 두위봉








두타산에서 바라본 덕항산, 백병산, 매봉산, 함백산, 대덕산







청옥산


조선시대 대부분의 지도에서 이 산은 두타산 이라는 하나의 산 으로 나온다.

지리산의 반야봉과 천왕봉이 하나의 산 이듯

아마도 해동삼봉 이라는 현재의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와 갈미봉 으로 되어 있는

무릉계곡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두타산 이라는 하나의 산 이름하에 있었던것 같다.


청옥산 이라는 이름은 일부 지도에 나오는데 대부분 두타산과 동시에 등장을 한다.

두타산이 위쪽에 있고, 청옥산이 아래쪽에 있어서 처음엔 두타산과 청옥산의 지명을

뒤바꿔논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옛지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청옥산이 아예 지금의 두타/청옥과 무관한 별개의 산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청옥산의 위치는?


청옥산은 또한 많은 지도에서 청규산(靑圭山) 이라고 나온다.

청규와 청옥은 비슷한 의미로, 조선시대 문헌중 청규산 미로리 라고 쓰여 있는것도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댓재 고갯길과 오십천 사이에 있다고 표시 되어 있으니

댓재와 오십천 사이에 미로리를 접하고 있는 산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또한 이렇게 그린 그 지도가 정확하다는 가정이 전제 되어야 한다.

어떤 지도에는 청규산의 위치가 댓재 고갯길 위에 나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청구요람


붉은색 도로를 중심으로 두타산은 위에 청규산은 아래에 있다.

두타산과 청규산의 거리가 두타산과 백봉령 만큼 떨어져 있다.








조선지도


죽령(댓재)와 청규산과 두타산의 위치를 보면 두타산의 위치가

지금 청옥산의 위치와 비슷하고 청규산이 마치 지금 쉰움산 위치와 비슷하다.

청규산의 위치가 오십천 위쪽에 놓여 있으며 두타산과 멀리 떨어져 있다.








대동여지도


청옥산과 두타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청옥산의 위치가 죽령과 오십천 사이에 위치한다.








청옥산과 고적대, 갈미봉을 당겨본다.

위에서 예로 든 몇개의 조선시대의 지도들을 보면 알겠지만,

현 지도와 비교해 볼때 오류들도 보이고, 당시 지도들을 100% 신뢰할수만은 없다.


그래도 그런 지도들을 통해서 어느정도의 방향과 위치는 짐작할수가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청옥산은 예전의 청옥산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적어도, 청옥산과 두타산의 위치가 뒤바뀌었거나, 청옥산이 해동삼봉과 무관한 별개의 산 이라는 것이다.















두타산 정상 (13시40분)


이곳이 두타산 정상 일수도 있고, 청옥산 이거나, 또는 두타산의 일개 봉우리 일수도 있다.

해동삼봉 전체가 두타라면, 중심이 되는 최고봉 지금의 청옥산이 진짜 두타산 일수도 있다.

나중에 향토사학자가 제 이름을 찾아주는것은 그때 일이다.

하여간 두타는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청옥은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이름이긴 하다.








'두타' 란 속세의 모든 번뇌를 떨어 버리고 불도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과 몸을 닦는 것이다.

두타면 어떻고, 청옥이면 또 어떤가... 이런게 다 쓸데없는 번뇌의 조각인가.. 

땀흘리고 올라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맞으며 멀리 아득한 산그리메 보다가 내려가면 그뿐.








두타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조금전 정상직전에서 보다 못하다.

정상에서 일행들과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일어선다.

이제 긴 하산길이 남았다.








두타산과 고적대는 뾰족한데 최고봉 청옥은 둥글둥글 하다.

이렇게 보면 모르겠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하나의 산 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마치 뫼산(山)자 처럼 생긴 해동삼봉은 두타산 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쉰움산으로 가야하니 일단은 무릉계곡 방향으로 간다.








정상에서 200m 지점, 급하게 내려서는 첫 밧줄구간 왼쪽 능선으로 발자국이 있다.

따라가보니 능선에 바위군락이 있고 사진에 보이는 멋진 조망 바위가 있다.








조망바위에 올라 바라본 하산길 능선이 보인다.

조금 내려가다 갈라지는데 우측 지능선 끝으로 쉰움산이 보이고

무릉계곡으로 내려서는 왼쪽 능선이 다시 갈라지는걸 볼 수가 있다.

멀리 동해바다와 동해시와 묵호항이 보인다.








동해시와 삼척시가 보인다.

쉰움산으로 뻗어내린 줄기가 삼척과 동해시 사이에 있는 갈야산으로 이어진다.








무릉계곡 방향








기암협곡으로 한폭의 산수화 같은 무릉계곡의 멋진 암벽들이 보인다.

관음암도 보이고, 그림폭포도 보인다.








쉰움산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따라 오십정과 쉰움산 정상이 보이고

그 뒤로 쌍용양회의 채석장이 보인다.

현재 무릉계곡의 삼화사도 쌍용양회 채광 때문에 현 위치로 이전 된것 이라고 한다. 








삼척시와 우측 동해쪽 풍경








동해시








묵호항, 쌍용양회 & 삼화동








묵호항과 동해시








조망 바위에서 바라본 갈미봉 (우측봉우리)








조망바위를 내려와 능선을 따라 바쁘게 일행을 뒤쫒아 간다.

능선길은 갈림길을 만나기 전에 조망터가 세네군데 나온다.

첫 조망터에서 바라본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진 능선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 박달재가 있고, 청옥산 뒤로는 고적대가 보인다.








고적대에서 갈미봉을 지나 이어진 능선과 아래 무릉계곡














조망터를 두어개 더 지나고 무릉계곡과 천은사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 천은사 방향으로 향한다.









쉰움산으로 가다 바라본 무릉계곡으로 향하는 산성터 갈림길에서 우측능선








천은사 갈림길에서 오십정 까지는 완만하고 평탄한 길 이다.

이정표와 돌탑이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난다.

일행들은 쉰움산 정상에 가지 않고 오십정에서 하산할 계획이라

혼자서 쉰움산을 다녀오기 위해 중간부터 뛰다시피 서둘러 간다.




















병풍바위를 지나며 잠시 서서 둘러본다.








병풍바위 옆에는 소원의 실타래를 감아논 너덜바위 지대가 있다.









소원을 빌며 감아논 실타래가 몇개 보인다.








조금 더 가니 오십정이 나오고 그곳에도 소원을 비는곳이 있다.








그곳에도 실타래가 감겨져 있다.

쉰움산 정상에는 50여개의 우물이 있는데 이게 여성을 상징 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타산 정상 방향에 남성을 상징하는 돌들로 제단을 쌓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유명한 기도터 라고 한다.








쉰움산 바위벼랑위의 50개의 우물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50여개의 우물이 있다고 해서 쉰움산 (쉰개의 우물 산) 이라고 한다.

옛 지도에 나온 청옥산의 위치가 대충 이쯤 인듯도 한데, 혹시 우물에 비친 하늘빛을 보고 청옥이라 한것은 아니겠지..

누군가 청옥산의 위치에 대해 속시원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여성을 상징하는 50개의 우물 옆에 사진 왼쪽 위로 남근석을 세워둔 기도터가 있다.








쉰움산 오십정 기도터에서 술과 과일을 두고 기도를 하는 분들








오십정에서 바라본 두타산








五十井 이라 새겨진 빗돌이 서있다.

오십정산 이라고 되어 있지만 다들 쉰움산 이라고 부른다.








오십정에서 바라본 계곡 건너편의 갈매기산(663m) (사진 우측 중앙)

왼쪽 아래로는 천은사 계곡과 내미로리가 보인다.








무릉계곡뿐만 아니라 동해바다를 향한 곳에도 여자바위(우물, 오십정)가 있다.








오십정 빗돌이 있는 우측 바위 벼랑과 왼쪽 아래로 비린내골의 바위 협곡이 보인다.

비린내골은 임진왜란때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그 썩는 냄새가 비릿하여 '비린내가 나는 골'로 불리워지다가 '빛내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쉰움산 정상을 향해 뻗어 있는 오십정의 바위 능선

중간쯤 가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된다.








쉰움산 정상은 사실 앞에 있는 저 봉우리다.

저곳에 가보려고 일행들과 같이 걷다 먼저 서둘러 내려왔다.








오십정을 지나니 천은사로 하산하는 길과 쉰움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직진을 하여 쉰움산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옆으로 돌아간다.

중간쯤 돌다가 더 가면 안될듯 하여, 그곳에서 왼쪽편의 정상부를 향해 쌩길을 치고 사면을 오른다.








쉰움산 정상


삼각점이 있는곳에 누가 돌을 세워두고 매직등으로 적어둔것 같은데 지워지고 없다.

지도를 보니 직진해서 천은사나 무릉계곡으로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길이 좋지 않아 보인다.








쉰움산 정상에서 바라본 건너편 갈매기산


건너편 갈매기산 아래의 바위를 보면 색깔이 검은색 이다.

무릉계곡 협곡에 있는 커다란 검은색 그림폭포와 협곡의 바위들도 그렇고

저 갈매기산 너머 뒤편에 있는 대방골의 시커먼색의 엄청난 기름바위도

비린내골 바위 협곡의 검은색 암벽들도 그렇고 두타산의 바위들은 온통 검은색 이다.

그 검은색 바위로 인해 이곳 두타산에 '흑악사' 라는 사찰이 있었다.








쉰움산 정상에서 바라본 두타산 정상


다시 쉰움산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분명히 등산로가 있을만한

능선을 택해 내려선다. 그런데, 쌍용양회 채석장으로 인해 이 길을 찾는이가 적어서 그런지

등로라고 생각되는 능선도 거의 사면이나 마찬가지인 쌩길 수준이다. 등로가 따로 없다.








갈림길에 내려서니 마침 무릉계곡 갈림길에서 내려오다 먼저 오느라 헤어진 일행들을 만나서 동행한다.









하산길 걸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들 바쁘다.

이날 주어진 시간은 5시간, 거리는 12.7km, 고로 시간당 2.7km 씩은 가야만 한다.

내 경우, 이정도 속도면 웬만큼 맞춰서 걸을수 있고, 크게 무리는 없지만, 거기까지다.

산행중 최저행복 권장속도가 시간당 2km 라고들 하는데, 2.7km는 워라벨이 무너지는 속도다.


일할때는 Work 라벨, 산에서는 Walk 라벨 (Life Balance)


야생화들은 외면하거나 대충 찍어야 하고, 운동 시합하듯 걸어야 한다.

커다란 카메라를 내던지면 아마도 훨씬 더 여유로울 것이다.

주변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할 수도 없고, 이 속도에 걸을만한 사람들도 주변에 드물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없이 걸으며 산행하는것을 대다수가 싫어 하기에 동행할 사람도 없다. 

다들 승용차로 가서 시간무제한에 행복지수 상승하는 속도로 걷는것을 선호한다.


나도 등산 초기 한때는 빨리 걷는게 능사인줄 알았는데, 지금은 여유있는 산행이 좋다.

사진도 찍고, 조망터에 올라서서 천천히 둘러도보고, 야생화들과 눈을 맞추며 걷는게 좋다.

그래도 안내산악회의 장점은 많다. 덕분에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산행을 할 수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많은 장점들이 빠른 진행속도 하나 때문에 모두 상쇄 되는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들도 꽤 부지런히 진행을 하고 있는 편이라, 우리 일행들이 정상에서 출발할때

뒤늦게와서 식사를 하고 있던 노부부가 이 길을 달리듯 내려올 생각을 하니 안쓰럽고 걱정이 된다.

이 코스에 5시간은 조금 박하고 6시간은 되어야 할것 같다.


이런 산행을 하다보면, 문득문득 남부군 빨치산 생각이 난다.

차로 8시간을 오고 가는데, 산행시간 1시간을 더 못줘서 공비처럼 걸어야 하는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수려한 소나무들이 뽐내듯 늘어서 있는 쉰움산 하산길

마치 일대 소나무들의 우두머리 일것같은

어마어마한 나무를 만나 기를 받는다고 살짝 껴안아 본다.

사진으로는 그 위용을 제대로 담을수 없었다.








노루오줌


드디어 계곡을 만나니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계곡 상류는 취수원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씻으려면 천은사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천은사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공터와 화장실이 나오는데, 뒤쪽으로 그늘진 계곡이 조용하고 씻기 좋다.














천은사


신라 경덕왕 17년(758년), 인도에서 건너온 세명의 신선 (頭陀三仙)이 이곳에 와서 절을 창건한후 백련대(白蓮臺)라 불렀는데, 고려 충렬왕 때, 동안거사 이승휴가 이곳 용안당에서 대장경을 다 읽었다는 뜻으로 백련대를 간장암(看藏庵 1304년)이라 바꾸었다. 이승휴는 이곳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하고 이후 간장사라 바꾸었으며, 조선 선조때 1598년 서산대사가 중건을 하고, 절의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르다고 해서 흑악사(黑岳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말, 대한제국때인1899년 태조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능(준경묘)을 만들고 이 절을 원당사찰로 삼았는데, 이때 '하늘의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로 천은사로 바꾼 것이 지금의 천은사로 불리게 되었다. 30년간 도로를 막고 통행세를 징수해서 악명이 높은 동명의 지리산 절 때문에 이름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1872년 지방지도 - 두타산 이라는 이름하에 커다란 두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아래로 사찰이 2개 있는데, 무릉계곡의 삼화사와 흑악사(천은사) 라고 되있다.


<채제공 번암집 >

흑악사를 방문하려는데 비가 올 듯하다. 밤에 앉아 시를 읊다 / 將訪黑岳寺 有雨意 夜坐却吟 

     

산사에 새로 사귄 벗이 있으니 / 蕭寺有新契
유배를 와서도 내 삶이 맑도다 / 謫來吾事淸
산에 가는 날이 내일이거니 / 山行在明日
한밤에 일어나 날씨 묻노라 / 夜起問陰晴
짚신은 파선이 방랑하며 신던 것이요 / 草屨坡仙放
먼지바람은 굴자가 떠나며 일으킨 것이라네 / 埃風屈子征
새장 속 새가 높이 나는 새로 변하여 / 籠禽化莽眇
곧바로 동천을 향해 가로질러 날리라 / 直向洞天橫









고려말 동안거사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집필했던 역사적인 장소, 천은사


제왕운기는 몽고와의 긴 전쟁후 부마국으로 전락하여 자주국으로의 위치가 흔들리던 고려사회에서, 단군을 우리 역사에 편입시켜 역사의 유구성을 과시하고, 단군을 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나타내었으며, 발해를 최초로 우리 역사속에 포함시켜, 만주일대 까지도 고려의 영토임을 고증하였고,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성, 자주성, 주체성을 가진 우수한 문화민족임을 국민 각자에게 자각하게 하였던 고려중기의 대민족서사시다









천은사를 내려서니 바로 금강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막걸리 두잔으로 갈증을 풀고, 조용한 계곡에서 시원하게 땀을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얼마간후 후미가 도착을 하여 대이리로 이동, 덕항산 산행을 하신 분들을 태우고 대전으로..


돌아오는길 차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빛이 왜 그리고 고운지..

청옥빛 하늘에 예쁜 구름 한조각 휘날리듯 날아가는, 아름다운 그림에 하염없이 빠져 들었다.

이윽고 서쪽에서 스며든 붉은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며 그리움 가득한 하늘에 꽃을 그려낸다.



유익종 - 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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