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오백리길 전구간 지도 (출처 : 대청호 오백리길 http://www.dc500.org)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 상세도 (출처 : 대청호 오백리길 안내판 인터넷 자료)

 

 

 

5구간 코스 : 대전 동구 신상동 오리골 버스종점 → 신상교 → 대청호반길(5-1) → 바깥아감 승강장 → 강살봉 → 백골산성(전망대) → 절골 승강장 → 꽃님이 식당 → 방축골 → 청주 절골 → 571번 도로 → 모래재 → 대전 동구 내탑동 와정 삼거리 (방아실 입구)

 

 

5구간 소개 :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의 제목은 백골산성낭만길 입니다. 흥진마을과 방축골의 갈대밭길과 호반도로를 따라 와정삼거리로 가는길의 벚꽃길은 정말로 아름다운 낭만이 있는 길이며, 중간에 있는 백골산성은 삼국의 운명이 걸렸던 옛날의 전투에서 비롯된 산 이름과 더불어 지나간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보며 걸을수 있는 곳 입니다.

 

 

5구간 거리 : 인터넷 자료로는 5구간이 대략 13km 정도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산길샘 나들이 GPS 기록을 보니 16.44km가 나왔네요. 걸어본 느낌도 그정도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이번 5구간 안내를 아래와 같이 4코스로 나누어 포스팅 하고자 합니다. (1코스 흥진마을  - 2코스 백골산 - 3코스 방축골 - 4코스 명품벚꽃길)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 백골산성낭만길 Part 1 흥진마을 바로가기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 백골산성낭만길 Part 2 백골산성 바로가기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 백골산성낭만길 Part 3 방축골 바로가기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 백골산성낭만길 Part 4 명품벚꽃길 바로가기

 

 

 


 

 

 

 

 

 

 

 

 

 

 

 

코스 : 바깥아감 - 강살봉 - 백골산 - 태봉정 - 진고개식당 - 구절골

 

 

 

 

 

 

 

 

 

 

흥진마을에서 바깥아감으로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백골산성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5구간 제2코스 백골산성 코스를 소개 하고자 합니다.

 

 

 

 

 

 

 

 

 

 

길은 완만하게 시작됩니다.

조금 걸어가니 다시 이정표가 나오네요.

길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신작로 처럼 넓고 경사도 완만 합니다.

 

 

 

 

 

 

 

 

 

 

첫번째 낙엽길은 솔잎 이네요.

솔잎이 부드럽게 깔려 있는 소나무 구간 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800미터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데, 여전히 길은 편안 합니다.

등산화가 아니라 운동화만 신고와도 충분히 산행을 할 수 있는 정도 입니다.

 

 

 

 

 

 

 

 

 

 

가을 낙엽을 만끽하며 부드럽게 고도를 높혀 가는 길

백골산에 오른게 여러번 이지만 이쪽에서 이렇게 오르는것은 이번이 처음 입니다.

이렇듯 초입은 산성 같지 않게 경사도가 완만 하네요.

 

 

 

 

 

 

 

 

 

 

이렇듯 부드러운 산에 어울리지 않는 '백골' 이라는 험한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천년 이전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결론적으로 끝난 신라의 삼국통일, 그리고 그 통일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여러가지 사건과 전투들 가운데, 이곳 백골산과 바로 옆의 고리산의 이야기는 빼놓을수 없는 이야기 입니다.

 

 

 

 

 

 

 

 

 

 

부드럽던 산길이 강살봉에 가까워 지면서 경사가 점점 급해집니다.

 

 

 

 

 

 

 

 

 

 

강살봉 (335m)

 

아무리 찾아봐도 강살봉을 한자로 표기해 놓은 것이나, 이름에 대한 유래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을수가 없네요. 백골산 이라는 산 속에 있는 봉우리 '강살'. 결코 이름이 범상치 않습니다. 이곳에 강도 있고, 죽음도 있기에 강살봉 이라는 이름에도 분명히 사연이 있을것 같습니다.

 

 

 

 

 

 

 

 

 

 

강살봉에서 바라본 고리산 (환산)

 

이곳 백골산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면 먼저 저 앞에 있는 고리산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두 산은 그만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백제 말기 신라와의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산 입니다. 고리산에서의 문제가 결국 이곳이 백골산 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영향을 끼치게 되었지요. 역사적으로 하나의 스토리 안에 있는 산 인데, 이렇듯 백골산에서 고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정도가 고작 이정도 라는게 아쉽기만 하네요. 적어도 한군데 정도는 고리산이 온전히 보여질수 있는 조망터가 있으면 좋을텐데요.

 

 

 

 

 

 

 

 

 

 

그럼 이제 백골산의 유래와 이름에 관련된 옛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계기와 기틀이 된 중요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5세기 중엽 고구려의 침공으로 백제는 수도를 웅진(현재 공주)으로 천도하고, 나제동맹을 맺고 국토회복의 그날을 위해 힘을 모으다, 6세기 성왕때 이르러서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되자 신라와 힘을모아 고구려에 빼앗긴 고토 회복을 시도 합니다.

 

신라와 백제, 그리고 백제의 영향권에 있던 가야의 동맹군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백제는 현재 서울, 인천, 하남, 수원, 포천등 (현재 서울, 경기) 옛 고토 6개군을 회복하고, 신라는 한강상류 부근의 화천, 춘천, 양구, 가평, 여주, 원주, 제천, 진천, 안성, 괴산등 (현재 강원, 충북) 10개군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 본토 상황도 어지럽고 북쪽에서 계속적인 돌궐의 침공을 받을때라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제동맹을 깨기위해 신라와 밀약을 합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고구려의 침공으로 왕이 죽는등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는 전략적 파트너로 신라를 선택)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동맹을 깨뜨리고 서로 싸우도록 유도를 해야 했기에, 신라측에 한강이북의 점령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백제의 영토이자 노른자땅인 한강이남의 6개 군도 신라가 가져가도록 돕겠다는 비밀 합의를 합니다.

 

어차피 언젠가 백제와는 한판 벌여야할 신라의 진흥왕은 덥석 고구려의 미끼를 물게되고, 신라에 합병된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형왕의 아들인 김무력 (김유신의 조부) 으로 하여금 백제군을 급습하게 하여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옛 땅인 6개군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백제의 6개군에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김무력을 신주의 도독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이래서 금관가야의 후손인 김유신의 고향이 남쪽이 아니라 충북 진천이 되는 것이죠.

 

433년에 두 나라간 맺어진 나제동맹이 120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이렇게 진흥왕에 의해 깨지게 됩니다. 이렇게 신라 진흥왕은 배신의 아이콘을 달게 되고, 백제의 성왕은 이후 심중에 복수의 칼날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듯 20대 초반의 패기 만만한 진흥왕에게 배신을 당한 50대의 노련한 성왕은 분노를 참고, 신라군을 공격하는 대신에 자신의 딸을 진흥왕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건 성왕의 화친전략이 아니라, 최후의 절대 한방을 위해 신라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참고 또 참는 전략이었던 것이죠. 딸을 적에게 시집 보내면서 미소속에 눈물을 감추고, 복수의 칼날을 숨기는 전략 이었습니다.

 

백제의 성왕은 딸을 시집 보내면서 한편으로 신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왜, 가야와 동맹을 강화하고 연합군을 결성하게 됩니다. 마침내 백제군 총공격의 D 데이가 찾아오고 그 대상이 빼앗긴 한강 부근의 6개군이 아니라 바로 이곳 백골산과 고리산 앞의 충북 옥천의 관문인 관산성 (현재 삼성산) 이었습니다. 경주에서 강원도 까지 길게 늘어선 신라군의 허리를 끊는 전략이었지요.

 

백제 태자인 부여창을 연합군 사령관으로 삼아 고리산과 백골산 일대에 진영을 구축하고, 성왕은 인근의 성치산성에 성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양국 힘의 균형은 백제 연합군에 기울어진 상태였구요. 그런데 이때 뜻밖의 큰 변수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백제 연합군 최전방인 고리산에 머물며 연합군을 지휘하던 태자 부여창이 몇일 앓아 눕게 되는데, 이 소식을 접한 성치산성의 성왕이 아들을 위문하러 가게 됩니다. 당시 백제군의 전방 라인과 신라군의 전방 라인 사이에는 구천 이라는 하천이 신라군 산성 아래를 흐르면서 마치 해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 DMZ인 천변을 따라 백제군들이 성치산과 고리산을 오가면서 연락을 주고 받는 이동 경로로 사용했었구요.

 

젊은 신라 왕에게 배신을 당하면서도 웃으며 딸을 시집보내고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호랑이 같은 열혈 성왕이 4명의 좌평(백제는 총6좌평 제도, 현재 장관)을 동반한 50여명의 (요즘 장,차관 및 청와대 수석들) 신하들만 데리고  태자를 위문 가다가 구진베루 라고 하는 구천 한가운데서 미리 첩보를 입수하고 잠복하던 신주 김무력장군 휘하에 있던 삼년산성의 기병에게 잡히게 됩니다.

 

신라군들도 적군의 소통 통로를 입수하고 하급장교 정도를 잡은줄 알았는데, 잡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적국의 왕과 적국 최고위 수뇌부여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장을 호령하던 성왕과 수뇌부들 50명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이게 됩니다. 말 그대로 어이없는 비명횡사를 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백제 연합군은 구심점인 성왕을 잃고 전장의 흐름을 신라에 넘겨주게 됩니다.

 

 

 

 

 

 

 

 

 

 

▲참고도 (구진베루 : 성왕이 태자를 위문가다 사망한곳)

 

 

 

 

 

 

 

 

 

 

 

 

 

 

 

성왕은 죽은 후에도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먼저 신라군이 성왕을 잡았을때 말을 관리하는 노비에게 왕의 목을 베게 하는 모욕을 주고, 둘째는 그 목을 신라로 가져가 경주의 관청인 북청의 계단 밑에 묻어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다니게 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사위인 진흥왕이 말입니다.

 

이후 자신 때문에 부왕을 잃게 되었다는 생각과 부왕의 죽음 그리고 주검과 관련된 신라의 예를 벗어난 상식적이지 못한 행태에 이성을 잃은 태자는 수만의 기병을 몰아 관산성을 공격하였는데, 결국 대패를 하고 그곳에 말무덤 이라는 지명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성왕도 잃고, 기병도 모두 잃고 지지부진 하던 백제 연합군에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집니다. 최전방 고리산성과 바로 뒤에 있는 백골산성은 좁아서 대규모 병력이 상주할수 없기에, 대부분의 병력들은 고리산과 백골산 사이 그리고 백골산 뒤쪽의 금강변 평야지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신주에서 고구려를 상대하던 신라북쪽 최전방을 지키던 김무력 장군의 대규모 기병부대가 비밀리에 남하하여 전혀 방비가 없던 연합군 후방을 급습하게 되었고, 관산성에 있던 신라 주력군도 이에 대응하여 앞 뒤로 신라군에 쫒긴 군대가 이곳 백골산에서 전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만명의 백제병사가 이곳에서 죽게되어 백골이 산을 이루었다고 해서 백골산 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백제와 신라의 균형추는 급속히 신라에 기울게 되었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되는 기틀을 마련해 줍니다.

 

 

 

 

 

 

 

 

 

 

이렇듯 백골산과 고리산은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보이듯, 백골산에서는 잡목에 가려 고리산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예전엔 저 산과 이 산 사이에도 수많은 야전 막사가 세워지고 병사들로 가득 했겠지요.

 

 

 

 

 

 

 

 

 

 

충북쪽 산에 가보면 바위와 어우러지며 마치 여인의 아름다운 춤사위나, 선비의 고고한 멋이 생각나는 소나무 가지들의 유연한 몸짓을 볼 수가 있는데, 이곳 백골산의 소나무들은 사진에서 보듯 거칠고, 투박하고 억세기만 합니다. 마치 오래전 그 옛날에 이곳에서 죽어간 백제 병사들의 한과 기상이 나무에 깃들어 있는듯 보이기도 합니다.

 

 

 

 

 

 

 

 

 

 

어디 사연없는 이름 없겠냐 마는 대청호 오백리길 중에 7-1코스인 고리산성 구간과 이곳은 역사와 더불어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곳 같습니다.

 

 

 

 

 

 

 

 

 

 

이렇게 백골산에 얽힌 오래전 옛날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살방살방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 입니다.

 

 

 

 

 

 

 

 

 

 

정상에는 백골산성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네요.

 

 

 

 

 

 

 

 

 

 

정상은 능선 가운데라 양쪽으로 길이 있습니다.

위 이정표에 있는 구절골로 내려가서 다음 구간인 방축골로 들어설 수도 있구요

반대쪽으로 가서 태봉정을 경유 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백골산 최고의 조망터는 정상에서 태봉정 방향으로 조금 가야 합니다.

 

 

 

 

 

 

 

 

 

 

 

 

 

 

 

 

 

 

 

백골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이정도 입니다.

잡목에 가려서 시원한 조망은 어렵지만, 대신 근처에 멋진 조망터가 있지요.

 

 

 

 

 

 

 

 

 

 

태봉정 방향으로 몇 미터 가다보면 이렇게 묘지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백골산 최고 조망터 입니다.

 

 

 

 

 

 

 

 

 

 

백골산성 조망터에서 바라본 대청호 풍경 입니다.

아래쪽으로 이어지게될 다음 코스인 꽃님이 반도라 불리우는 방축골이 보입니다.

대청호를 내려다 보는 조망은 7-1코스인 환산성 (고리산성) 구간에서 내려다 보는게 훨씬 낫지만 백골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대청호 풍경도 가히 절경 입니다.

 

 

 

 

 

 

 

 

 

 

방축골의 주요 명소들을 당겨 봅니다.

방축골 최고의 조망터에 자리한 카페 팡시온은 요즘 그 동네에서 가장 핫한곳 같습니다.

식사와 음료, 차를 겸할수 있는 곳인데, 일단 그곳에 가서 보면 자리가 참 좋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골산에서 바라본 대청호 조망도

오래전 당시는 호수 건너편쪽으로 아름다운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을 테구요..

이쪽으로는 마을과 논밭, 그리고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을 겁니다.

사진 오른쪽 끄트머리 즈음에 고해산으로 가는 대청호 오백리길 5-1구간 내탑수영장 구간이 있는데

금강변 백사장에 정말 아름다운 천연수영장이 있었답니다.

 

 

 

 

 

 

 

 

 

 

대전시의 명산이자 옛날 백제군 주요거점이었던 계족산성을 당겨 봅니다.

 

 

 

 

 

 

 

 

 

 

백골산성의 흔적

 

천년이 넘는 세월에 산성은 무너져서 백골 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패망한 백제의 모습을 보는듯 합니다.

 

 

 

 

 

 

 

 

 

 

태봉정을 향해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사진속 계단을 따라 태봉정으로 올라서도 되고, 오른쪽으로 바로 내려서도 됩니다.

두 길은 결국 산 아래 입구에서 만나게 되니 어느길을 택해도 됩니다.

 

한쪽에 서있는 만든지 오래되어 보이는 이정표에는 태봉정 방향으로 '경치좋은곳' 이라고 표기해 놨는데, 이정표를 만들때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잡목으로 인해 태봉정에 올라서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대청호 오백리길 팻말은 양쪽으로 붙어 있습니다.

다만, 노루귀가 피는 이른 봄 철에는 오른쪽 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곳 백골산에 여러번 온적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자생하는 노루귀를 만나러 왔었습니다.

노루귀 군락지는 이곳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다 보면 있습니다.

밟지도, 캐지도 마시고 조심히 보고만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노루귀 길은 많이 다녔던 지라 오래간만에 태봉정으로 올라섰습니다.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태봉정 주변의 잡목으로 인해 '경치좋은곳' 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태봉정에서 내려가는 길은 낙엽이 두툼하게 깔린 비단길 입니다.

길도 편하고 좋네요.

 

 

 

 

 

 

 

 

 

 

계단길엔 어느분이 이렇게 친절하게 낙엽을 쓸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산을 다 내려와 마을 앞에서 뒤돌아 보니 갈림길이 보입니다.

오른쪽은 태봉정을 거쳐서 내가 방금 내려온 길 이구요

왼쪽길이 봄날에 각종 야생화와 노루귀 꽃이 예쁘게 피는 길 입니다. 

 

 

 

 

 

 

 

 

 

 

백골산을 내려서면 바로 만나는 유명한 곳이 한식마을의 맛집 '진고개식당' 입니다.

대청호 오백리길을 걷게되면 이곳 신절골로 하산하지 않고 바로 구절골로 내려서는 길도 있지만, 백골산만 산행을 한다면 바로 이곳이 들머리 이정표가 되는 곳 이기 때문 이기도 합니다.

 

 

 

 

 

 

 

 

 

 

맛집 외에도 진고개 식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진고개식당 앞에 이 처럼 공터가 있는데, 백골산을 산행 하시는 분들이 이곳에 차를 세워두기 좋기 때문 입니다.

 

 

 

 

 

 

 

 

 

 

이렇게 진고개 식당을 출발하여 구절골로 향하면서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 백골산성낭만길 중의 백골산성 코스를 마치고 다음코스인 꽃님이 반도, 방축골로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있었던 옛 일들을 상상해 보면서 그 옛날 백제군의 슬픔과 한이 서린 백골산을 걷는 것은 분명 코스 이름처럼 낭만적인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 두 나라의 흥망이 걸렸던 중요한 역사현장을 당시를 생각하며 걷는 것은 분명 또 다른 느낌이 전해오는것 같습니다.

 

 

 

 

 

 

 

 

 

 

여행지 정보

 

- 여행지 :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中 백골산 구간

- 주소 : 대전광역시 동구 신하동 215-35 (진고개식당 앞 공터)

- 대중교통 : 대전역에서 62번, 63번 버스 이용 (바깥아감 하차) (상세 노선은 Part 1 사진 참조)

- 연계볼거리 : 흥진마을 반도, 방축골, 대청호 벚꽃길 (봄철추천)

- 주변식당 : 진고개식당 (한방오리, 백숙, 매운탕, 새우탕), 송가네 왕가마솥 (순두부, 청국장 전문점)

- 상세 홈페이지 : http://www.dc50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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